외전6. 심상치 않은 일 (2)
특임대 담당인 고 전무는 당황하여 말했다.
“회장님, 이제 막 소집되었고, 훈련도 안 되어 있습니다. 지금 특임대를 보내는 건 너무······.”
이르다는 얘기였는데, 지혁 또한 그걸 모르지 않았다.
“이 중에 훈련받은 사람 있습니까?”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으로 조금씩 맛은 봤지만, 시간을 따로 내어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은 없다.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청주 쉘터로 배정된 사람들은 싹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
“이건 비상 상황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비상 상황.’
이 말에 고 전무는 더 반박하지 못했다.
지혁이 말했다.
“특임대가 준비가 덜 되어 있어도, 사무실에서 일만 하던 사람들보다야 낫겠죠.”
운동을 업으로 삼고, 매일 단련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얘기였다.
“운동선수들이 투쟁심도 강하고, 습득력이 빨라요.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택입니다.”
이어서 지혁은 세크 위원들이 펄쩍 뛸 말을 했다.
“가는 중에 중요한 건 제가 교육해도 되니까요.”
“잠깐. 잠깐.”
황 실장이 지혁이 손을 들고 말했다.
“설마, 회장님······아니죠?”
방금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의아한 건 다른 세크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함께 간다는 소리로 들렸기에.
“제가 가려고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
“미치셨어요?!”
“회장님이 가긴 어딜 갑니까!”
“큰일 날 소리를······.”
지혁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럼 어떡합니까? 특임대가 전투 경험도 없고, 숙달도 안 되어 있는걸.”
“······.”
“이럴 때일수록 지휘자는 경험 있는 사람이 해야죠. 그게 무시 못 합니다. 생존률이 달라져요.”
‘그 세계’에서 수년간 재난 속에 살았던 경험자.
췌장암의 고통 때문에, 죽고 싶어서 앞장서서 싸웠었다.
통증 때문에 등을 구부리고 다닌 탓에, 미친 꼽추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전투력 만렙이자, 압도적인 생존능력으로 ‘그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사람.
그게 바로 오지혁이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황 실장은 불안함을 안고 물었다.
“잘못되면?”
피식.
지혁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회사생활보다 잘하는 게 이 일이거든요.”
세크 위원들은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봤으나.
‘그날’이 온 이상, 지혁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
그의 진짜 능력을 말이다.
회사원이라 숨겨야 했던 능력을 펼칠 때가 온 것이다.
지혁은 확신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걱정은 적들에게나 하세요. 저에겐 아무 일 없습니다.”
***
지혁이 워낙 자신 있게 말해도.
위험한 일에 그룹 총수가 나선다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선도그룹에서 지혁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취임 후 11년간, 지혁의 색깔로 회사를 운영해 왔고.
그가 예고했던 대로 그날도 터져버렸다.
남들이 뭐라 하건 지혁은 ‘방주 프로젝트’를 완수했기에, 선도그룹 직원들은 현재 안전할 수 있는 거다.
만약 지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쉘터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은 그의 존재를 대체할 사람도 시스템도 없다.
“전 절대 반대합니다.”
윤 사장은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청주 쉘터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7만 명 살리자고 43만 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위험에 안 빠진다니까요. 전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자신하십니까? 지금은 일반 상황이 아니라고 회장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윤 사장은 톡 쏘듯 말했다.
그룹에서 지혁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는데, 그중 한 명이 윤 사장이다.
“지금 상황은 저에게 물 만난 물고기라고 할 수 있는······.”
지혁은 진심이었으나, 윤 사장은 들을수록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 그러시면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하하. 참나.”
지혁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윤 사장의 심정을 이해 못 하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역할 수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확신했다.
“윤 사장님, 왜 그러세요.”
“저 싸움 잘합니다? 그리고 육군 병장 만기 전역했어요.”
올해 59세.
지혁은 윤 사장이 노병이라 무시하여 웃는 게 아니다.
“비웃지 마세요! 웬만한 청년보다 제가 더 강할걸요? 몸 관리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제가 질문하나 드릴게요.”
“······.”
“사람 죽여본 적 있으세요?”
지혁은 윤 사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는데.
꿀꺽.
윤 사장은 순간 그의 눈에서 공포를 느꼈다.
‘뭐야? 자기는 죽여봤다는 거야?’
말이 안 되지만, 지혁의 눈빛은 분명 그런 의도였다.
“질문의 의도가 뭡니까?”
“······.”
“사람 안 죽여봤으면 나서지 말라는 거예요? 그럼, 회장님은 죽여보셨어요?”
윤 사장은 어떻게든 지혁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높였는데.
“전투 중에 서로를 죽이는 건 살인이 아니지만. 어쨌든 경험은 있죠.”
지혁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 네에?”
윤 사장의 말끝이 떨렸고.
세크 위원들도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사람을 죽여봤다고?’
‘뭐야······ 진짜 특수부대원이었나?’
‘특수부대원이라고 전투를 벌이는 건 아니지. 해외파병? 혹은 특수요원?’
워낙 지혁이 특출난 행동을 했었고, ‘오 회장과 함께 나를 지키는 운동’에서 현란한 퍼포먼스를 보였기에,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았다.
지혁은 윤 사장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숱한 전투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 이 정도는 저한테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오래전 일이어도, 목숨 걸고 했던 일을 몸이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지혁은 자신 있었다.
세크 위원들은 더 말리지 못했다.
지혁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더 얘기해봐야 입만 아프다.
“그럼 중앙통제는 누가 해요? 회장님 안 계실 동안에.”
이 물음에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몰라서 물어요? 다들 아실 거 같은데?”
***
용산. 국방부 지하 벙커.
국가 비상 상황에 분주하고 정신이 없었다.
북한은 본격적으로 작전을 전개했고,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병력 움직임을 보여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핵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위치는 파악하고 있으므로 선제타격을 준비하고 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핵 전술은 손쓸 도리가 없다.
믿을 건 미군뿐인데, 그쪽도 본토 방어와 대응 공격을 준비 중이라 정신이 없었다.
합참차장은 작전도를 보며 어제를 떠올렸다.
‘날벼락이 따로 없네.’
돌이켜 보면 순식간이었다.
일선 부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으며, 동원령 발령 시 제대로 징집이 될지도 미지수였다.
아직 초반이니 차츰 자리를 잡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합참차장은 불안했다.
‘평화가 길었으니까.’
3성 장군이여도, 전투는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실전과 훈련은 다르다.
아무리 군경력이 많아도, 다 처음 겪는 일.
머리를 싸매고 작전계획과 전술지도를 살피고 있는데.
“차장님.”
한 영관장교가 다가왔다.
“왜?”
“잠시 이쪽으로 좀 오셔야겠습니다.”
“뭔데?”
“국내에 이상 징후가 있습니다.”
합참차장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화면 앞으로 갔는데.
이게 뭔가 싶어서, 합참차장은 여러 차례 눈을 깜빡거렸다.
“저게 뭔가?”
새하얗고 커다란 낮은 돔 형태의 건물.
위에는 방공포가 설치되어 있고.
회색 전투복을 입은 사람들이 소총을 들고 그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저거 M4 소총 아니야?! 미군 거잖아?”
“분석해본 결과 비슷하긴 한데, 약간 다릅니다. M4를 개량한 것 같습니다.”
헬멧부착 디스플레이, 헤드셋, GPS 안테나, 헬멧 접속장치 등 최신식 장비로 완전무장을 했는데.
국군보다 더 좋아 보였다.
합참차장은 황당하여 물었다.
“저기가 어디야?”
“과천 프리미엄 아울렛입니다.”
“······ 뭐라고?!”
합참차장은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적 지상군이 침투하기 전일 텐데, 벌써 시설물을 점거했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가. 그럼 빨리 폭격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 그게.”
장교는 한 화면을 학대하여 보여주었다.
‘선도엔지니어링 철강 2팀 김성식 대리.’
한 무장 요원이 매달고 있는 직원 패찰이었다.
“선도? 선도그룹?!”
“네.”
“······.”
“지금 저 건물도 선도물산의 프리미엄 아울렛입니다.”
합참차장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교란작전일 수도 있어. 선도그룹 직원이 왜 저러고 있겠어.’
일단, 정확한 상황 파악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접촉해 봐. 적일 수 있으니까, 완벽히 무장해서 다가가야 해. 지금 후방 교란 나면 난리 나는 거야.”
“알겠습니다. 바로 작전 지시하겠습니다.”
***
다음 날 아침.
건장한 체격 남성들이 지휘통제실로 들어왔다.
“어서 와요.”
‘SST. 선도 특임대.’
남성들은 오 회장을 향해 일제히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와~ 체격들 좋으시네.”
첫 임무이며 아직 훈련이 안 되어 있는 만큼, 태권도와 레슬링의 격투기 선수들로만 구성했다.
피지컬이 전투에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분명 유리한 점이 있다.
지혁은 단련된 대원들을 보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곧 펼칠 작전에 관해서는 얘기 들으신 걸로 압니다.”
지휘통제실로 들어오기 전, 고 전무가 그들에게 브리핑해주었다.
“이 중에 도저히 못 가겠는 사람은 손 들어주세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
“괜찮습니다. 손 드셔도 됩니다. 겁먹은 대원이 있으면 팀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일부 대원이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는데.
“진짜 작전 빼 드릴게요. 대신 쉘터에서는 추방됩니다.”
망설이던 표정들이 싹 바뀌었다.
본능적으로 안다. 지금은 어디에 있어야 사는 길인 건지. 절대로 쉘터를 떠나서는 안 되었다.
“없는 거죠?”
“네!”
대원들이 대답하자, 지혁의 눈빛이 바뀌었다.
“지금부터 작전이 끝날 때까지 날 단장으로 불러라. 회장 아니야. 알겠지?”
“네!”
“작전 중에 상관의 명령에는 절대복종이다. 투입하라면 투입하고, 죽으라면 죽는 거야.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할 거야.”
무시무시한 말에 멈칫했지만, 이번에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내 지시대로만 움직이면 별일 없어. 그리고, 가장 중요하며 명심해야 할 거.”
지혁은 대원들의 하나씩 훑어보며 말했다.
“작전 중에 절대 망설이지 마라.”
“······.”
“머뭇거리다가 당하면 끝이야. 총알과 칼이 뚫지 못하는 몸은 없다.”
“······.”
“위협이라 여겨지면 과감하게 행동해도 된다. 실수로 상대방을 해치는 게, 실수로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낫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20명을 두 개 팀으로 나눈 후, 팀원들 면면을 확인하고 있는데.
지혁의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너무 무섭게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이게 협박이야, 독려하는 거야?”
“······.”
“다들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염려 말고 다녀와요. 가족들 걱정은 말고.”
대원들은 평화로운 그의 얼굴을 보며, 두려웠던 마음이 달래지는 것 같았다.
“제가 잘 보살피고 있을 테니까.”
선도그룹의 이인자이자, 지혁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