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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65화 (265/301)

외전7. 청주 쉘터 (1)

오진원이 따뜻한 말을 건네주니, 바싹 긴장했던 대원들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지혁은 그룹의 회장으로서 절대적인 권한과 지지를 받고 있으나, 회사 내 인기에 있어서는 오진원도 그에게 뒤지지 않았다.

지혁이 세크 위원장으로서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오진원은 그룹의 내실을 키우고 성장을 이끌었다.

오진원이 없었다면 지혁이 미래 준비를 완벽하게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직원들은 지혁을 존경했고, 오진원은 사랑했다. 지혁이 그룹의 아버지라면, 오진원은 어머니였다.

“부회장님이 말씀하시니까 참 쉽네.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할 때는 불안해하더니.”

지혁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도 이상하게 오진원 앞에서는 동생처럼 행동하게 된다.

오진원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회장님이 너무 무섭게 말씀하셨잖아요.”

지혁은 특임대를 향해 말했다.

“모두 나가서 대기해. 나도 곧 나갈 테니.”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나가자, 오진원이 지혁에게 물었다.

“조심하고. 제수씨한테는 얘기했니?”

회사에서는 보통 직급으로 호칭하지만, 세크 위원들과 있을 때만 편하게 대한다.

“아니요. 회사 일을 집사람한테 다 얘기하진 않아요.”

“이건 얘기해야 하지 않나.”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한 일 아니니까.”

오진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봐도 위험한 일인데.’

올해 51세. 여태까지 장가를 못 갔지만, 아내에게 얘기해야 할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혁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더 권하지 않았다.

“형님, 쉘터 잘 부탁드릴게요.”

“알았어. 걱정 말고, 다치지 말고 잘 갔다 와라.”

지혁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늦어질 수도 있거든요?”

“얼마나?”

“그건 모르죠. 청주 쪽 상황을 정확히 모르니까요.”

“······.”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꼭 지켜주셔야 해요.”

지혁은 오진원을 믿는다. 다만, 그의 너무 착한 성품이 불안했다.

“뭔데? 꼭 그렇게 무섭게 얘기해야 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외부인은 쉘터 안으로 들이면 안 돼요.”

“······.”

“제가 없는 동안은 절대로요. 홍채 인식된 직원 외에는 안 돼요.”

위험에 빠진 사람이나, 노약자가 사정하면 오진원은 받아줄 것 같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약간의 일이 큰일로 변질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지혁은 오진원에게 그걸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아직 없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약속한 거예요.”

“응.”

지혁은 지휘통제실을 나가기 전, 세크 위원들과 한 명씩 인사했다.

‘회장님, 염려 마시고 몸 잘 챙기십시오.’

‘절대 다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다가 윤 사장 앞에서 잠깐 멈췄다.

“잘 보셔야 해요.”

오진원을 눈짓으로 가리킨 뒤, 지혁의 조용히 말했고.

“알겠습니다. 염려 마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윤 사장은 지혁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

쉘터의 비밀통로.

불시에 밖으로 나가야 할 시에 이용할 목적으로 설계된 이 통로는, 쉘터에서 700미터 떨어진 밖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밀통로로 모습을 드러낸 지혁을 보고, 특임대는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했다.

지혁은 그들을 둘러보며 대뜸 말했다.

“레슬링팀 손들어 봐.”

지혁은 수를 세워본 뒤.

“딱 반반이네. 섞는 게 좋긴 한데, 지금은 팀워크가 없으니까, 레슬링이 특임대 1팀. 태권도가 특임대 2팀이다. 알겠나?”

“네!”

“각 팀의 최고참 앞으로 나와.”

두 남자가 나왔는데.

지혁은 우선 탄탄한 체격에 귀가 뭉개져 있는 남자를 보았다.

“자네가 레슬링인가?”

“네! 맞습니다.”

“팀원들 앞에서 소개해. 태권도 팀도 알아야 할 테니까.”

강인한 외모와 달리, 그는 뻘쭘해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최성수라고 합니다. 올해 35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지혁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들리겠냐? 앞으로는 목소리를 크게 내라. 소리를 질러서라도.”

“알겠습니다.”

그다음 옆에 선 마른 체격에 키가 큰 남성을 보았다.

“태권도지? 소개해.”

“네! 안녕하세요. 남규혁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31세입니다.”

지혁은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특임대 대원들에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이 팀장이다. 작전 중에는 두 사람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알겠지? 죽기 싫다면.”

“······.”

“내가 죽음을 강조하는 건, 작전 중에 지휘자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전체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긴 한데, 그건 알아서 새겨듣길 바래.”

명령 불복종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것.

지혁이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말투와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혁은 두 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는데, 대원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잘 부탁해. 뭐 필요한 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고.”

“네! 알겠습니다!”

팀장들이 자리로 들어간 뒤.

지혁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지금부터 청주 쉘터로 이동하는데, 팀당 1명씩 전방경계조로 본대의 800미터 전방에서 이동한다. 특이 사항을 발견하면 손을 들어 사인을 보내면 되는 거야.”

지혁은 각 팀에서 가장 날래 보이는 두 사람을 지명했다.

“너, 너. 할 수 있지?”

“······.”

경계조가 정확히 뭔지 몰라도, 설명을 들어봤을 때 가장 위험할 거라는 건 인지할 수 있었다.

지명된 두 사람은 당황하여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왜? 못하겠어? 그럼 가족들 데리고 지금 쉘터에서 나가면 돼.”

두 사람은 곧바로 손을 번쩍 들면서 소리쳤다.

-할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후로 팀원들은 지시를 아주 잘 따랐다.

“거기 둘.”

“두 사람은 후방경계조야. 전방경계조와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상 징후 발생 시 바로 본대에 신호를 보낸다.”

“알겠습니다.”

지혁은 가장 기본적인 걸 알려줬다.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가정하고 움직여라. 특히 은폐할 만한 곳은 더욱 유의해야 해.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내 신호에 반드시 집중해라.”

“알겠습니다.”

“여러분의 기억이 끊기는 거, 순식간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하나뿐인 생명 소중히 하자고.”

“······네!”

지혁은 시계를 본 후 말했다.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알려줄 테니, 지금 바로 출발한다. 오토바이 운전할 줄 아는 사람들로 선발한 걸로 아는데. 다들 탈 줄 알지?”

-네!

“출발 2분 전. 마지막으로 장비 점검하고, 스트레칭 한번 해.”

잠시 후.

지혁은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전방경계조 출발.”

***

출발한 지 1시간째.

지금까지 가는 길에 큰 위협은 없었다.

자주 해보지 않은 오토바이 운전이라 어색하고, 사주경계에도 낯설어했는데.

운동선수들이라 그런지, 습득 속도도 빠르고 움직임도 좋았다.

지혁은 본대 가장 앞자리에 위치해서, 전방조의 상황을 살폈다.

빠르게 이동 중.

번쩍!

앞선 전방조에서 손을 번쩍 들어, 노란색 수건을 흔들었고.

지혁은 곧 본대에 신호를 보내어, 속도를 죽였다.

“오토바이 길옆으로 이동시킨 후, 은폐해.”

이동 중 처음 받은 이상 징후.

팀원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지혁도 약간 긴장했다.

몸을 숙이고 빠르게 전방조 가까이 이동했다.

“무슨 일이야?”

“전방 자동차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사람?”

“네. 좀 전에 문밖으로 다리가 뻗어 나왔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야 한다.

원래 전방조가 해야 하지만, 특임대 신생아들에게 시킬 순 없었다.

“권총 꺼내고,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차 주변 살피다가 이상 징후 보이면 망설이지 말고 발포해.”

“알겠습니다.”

지혁은 단검을 꺼내었다.

양손을 자유롭게 하고, 유사시 빠르게 쓰기 위해 단검을 입에 물고.

자세를 낮추어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대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와······ 속도가.’

포복에 가까운 자세였는데.

달려가는 것처럼 빠르며, 흙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정숙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굉장히 숙달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특임 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혁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반파된 차량에 도착했다.

입에 문 단검을 오른손으로 옮겨서, 아이스픽(거꾸로 쥐는 모양)으로 잡은 뒤.

몸을 차량에 바싹 붙이고, 백미러로 차 안의 실루엣을 살폈다.

확인됨과 동시에.

사사삭-!

번개 같은 속도로 차 안에 진입하여, 칼끝을 목젖에 겨누었다.

“사, 살려주세······.”

한 남자가 차 밑부분에 한쪽 다리가 끼어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는데, 다리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

지혁은 칼을 거두고, 그의 안색과 맥박을 확인했다.

‘끝났네.’

살 가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혁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특이 사항은 없어서, 특임대에 가까이 오라고 신호를 보낸 후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일 끝나고, 주말이라 가족들 만나러 가는 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져서요······.”

자동차 옆에 움푹 팬 자국이 있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참 운 없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남자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사정하는데.

지혁은 빈말 하지 않았다.

“못 살립니다. 죄송합니다.”

“······.”

남자도 짐작하고 있었는지,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에 떨며 계속 흐느끼기만 했다.

“저, 그럼 부탁 하나만.”

“말씀해보세요. 들어드릴 수 있는 거면.”

남자는 조수석을 가리켰는데.

피 묻은 로봇장난감이 있었다.

“우리 아들 생일 선물인데. 이것 좀······.”

‘아들’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아팠지만······.

“미안합니다. 그것도 못 들어드리겠네요. 지금 작전 중이라, 부피가 큰 걸 가지고 다닐 수 없습니다.”

우······. 우······.

남자의 낮은 울음소리.

지켜보던 특임대원 중에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으나.

지혁은 변화가 없었다.

언제봐도 마음은 아프지만, 숱하게 보았던 장면이니까.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고통스러우실 거 같은데.”

“······.”

“빨리 가는 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남자는 피가 배어 나오는 다리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은 왼손으로 그의 눈을 가리고.

가장 빠르게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지점인 심장 위에 칼끝을 두었다.

잠시 후.

대원들은 기겁했고.

지혁은 남자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짧게 묵념한 뒤 일어났다.

***

청주 인근.

사람 벽이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지혁은 오토바이를 숨기기 좋은 장소에 주차시킨 후.

전투복을 벗고, 준비해온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단검과 권총만 챙겨서,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휴대했다.

지혁은 대원들의 무기 휴대 위치를 차례대로 다 봐줬다.

두근두근.

투입 직전.

대원들은 긴장으로 얼굴이 땀 범벅이었다.

지혁은 대원들 앞에 서서 말했다.

“일당백은 없다.”

“······.”

“떼거리로 몰리면 당할 수밖에 없어. 군중 안으로 진입하면 절대로 튀는 행동 하지 마라.”

서로의 얼굴에 땟국물을 묻히게 한 뒤, 같은 편임을 식별하기 위해 손목에 붉은색 띠를 둘렀다.

“출발.”

산개하여 군중 속으로 접근했다.

지혁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며 안쪽으로 깊숙이 이동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쉘터가 안전하다는 소식이 대중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과하게 많았다.

한참을 가다가.

인파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

지혁이 눈에 생각도 못 한 얼굴이 들어왔다.

쉘터 앞, 수많은 군중을 향해 선 사람.

선도그룹 출신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오 부회장과 그룹 총수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일 때.

지혁에게 유일하게 타격을 줬었던, 오진양의 최측근이었던 남자.

추대웅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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