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8. 청주 쉘터 (2)
‘이게 얼마 만이야?’
얼마 만인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비서실에서 근무할 때 매일 보던 사이였기에, 추 이사의 얼굴을 기억 못 할 수가 없다.
‘이 양반도 늙으셨네.’
사십대였던 추 이사가 지금은 예순이다.
요즘 예순이면 청년이라 하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다. 지혁은 머리가 새하얀 그를 바라봤다.
‘불안하다.’
경비요원에게 보고 받은, 군중을 중앙에서 통제하는 사람.
그 인물은 정말 선도그룹 출신이 맞았고, 게다가 추 이사라는 걸 확인하고 보니,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날’이 터진 후 처음 느껴보는 불안함이었다.
추 이사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들 다 속고 있는 거라고! 눈을 뜨세요! 눈을!”
-눈을 떠라! 눈을 떠라!
추 이사가 한마디 하면, 옆에서 바람 잡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혁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노조원들 때려잡는 거로 진양 형님 눈에 띄었었는데, 지금은 노조 코스프레 하네.’
역시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살폈는데.
추 이사의 무리들이 인각벽을 세워서 쉘터를 막고 선 채, 반대편에 대치 중인 선도직원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하는데.
선도 직원들 사이에서도 수군거리는 바람잡이들이 보였다.
대충 보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였으나.
지혁의 눈에는 보였다.
‘잠식하고 있어.’
시간을 끌면서 추 이사가 교묘하게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지혁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쉘터 주변에 운집한 사람이 수만 명이 넘었고.
지혁은 얼굴이 너무 잘 알려진 사람이다. 섣불리 움직이면 정체가 드러날 것이며,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게다가 추 이사는 지점장을 인질로 잡고 있었고, 그 때문에 지혁은 더욱 움직일 수 없었다.
쉘터가 정상적으로 전개 되려면, 지점장이 무사해야 한다.
‘좀 더 지켜보자.’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라는 생각에, 대원들에게도 지켜보라며 사인을 보냈다.
***
추 이사는 용의주도했다. 내부자로부터 첩보를 받아서 쉘터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비상 사태가 일어나자 마자, 청주 프리미엄 아울렛에 사람들을 몰고 들어가, 내부 직원들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 내었다.
쉘터를 곧바로 점거하여 전개하려 했으나, 뭔짓을 해도 프리미엄 아울렛에 쉘터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았고. 그 사이 선도전자 반도체 공장 직원들이 자전거 타고 몰려온 것이다.
두 그룹 간에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추 이사가 확성기를 들고 격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제발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 속긴 뭘 속아!
- 내가 당신 누군지 아는데!
- 회사에서 쫓겨나서, 앙심품고 이러는 거 모를 줄 알고!
추 이사는 부정적인 목소리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오 회장이 왕국을 만드는 겁니다. 그는 전체주의 사상을 가진 정신병자이며, 아주 위험한 인물입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었기에 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 미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우리 회장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추 이사는 방금 말한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큰소리 말했다.
“이것 보세요. 완전히 세뇌된 사람들입니다. 이게 오지혁의 무서운 점이에요! 의심을 해보려 하질 않잖아요. 독일과 일본 군국주의에 넘어간 국민들 모습이 딱 저랬어요.”
선도직원들은 흥분하여 소리쳤다.
- 우기지 말고, 증거를 대!
- 니가 그 시대 국민을 봤어?!
- 도대체 누가 미쳤는지 모르겠네.
“증거?”
추 이사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여러분들이 다 아는 얘기 해볼까요? 평사원에서 시작해서 대한민국 최대 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그 야심을 이루기 위해 사촌 형제들 다 끌어내렸죠. 선도전자를 글로벌 회사로 올려놓은 오진양 부회장님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되었는지······ 이거 모르는 사람 없죠?”
- 그게 무슨 상관이야!
- 맞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오진양 부회장님뿐만이 아니라, 그 형제들을 다 잡아다 족쳤습니다. 제가 비서실에서 직접 봐서 아는데, 형제들이 오지혁을 만나면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칩니다. 한참 막내 동생에게요.”
모르는 얘기를 하니, 선도직원들은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증거를 대라고요? 하하. 그걸 눈 앞에 두고도 대라는 게 참 웃깁니다. 이래서 당신들 눈이 멀었다는 거예요.”
추 이사는 거대한 돔 형태의 청주 쉘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증거잖아요! 증거!”
흥분하여 소리쳤다.
“오지혁이 예언자인가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갑자기 아울렛 사업에 진출하여, 지하 벙커를 만드냐는 말입니까! 네?!”
추 이사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고, 사람들은 점점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이 전쟁······. 다 오지혁이 계획한 거예요. 눈에 뻔히 보이는 정황인데, 왜 믿지를 못하는지······.”
추 이사는 가슴을 두드리며,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정말 답답합니다.”
멀리서 잠자코 듣던 지혁은 눈을 부릅떴다.
‘이런 미친 놈이······.’
추 이사는 계속 말했다.
“국가를 뛰어넘는 초일류 기업이 이 정도 분쟁도 못 만들 거 같나요? 인류를 싹 밀어버리고 오지혁이 왕국을 만들려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라니까요.”
손가락으로 쉘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쉘터. 선도그룹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잖아요. 말 잘 듣는 자기 사람들로만 세상을 구성하겠다는 거예요. 아주 위험하고 음흉한 인간이라고요!”
선도직원이 소리쳤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 오 회장님이 왜 그런 짓을 벌여?!
- 무슨 이유로?!
추 이사는 양 손을 펼치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유?!”
- ······.
“미친놈한테 이유가 필요 있나요?”
추 이사는 주변에 모인 대중을 훑어보며 소리쳤다.
“이 중에 오지혁이 미친놈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신기하게도.
이 물음에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정상인 같아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긴 하니까.
“이 방공호!”
- ······.
“이걸 보고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건, 여러분들이 완전히 현혹되어 있다는 겁니다.”
- ······.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정신 차리고, 다함께 삽시다.”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추 이사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쉘터 마스터키······ 누가 갖고 있죠?”
청주 쉘터는 아직 전개되기 전이었다.
지금까지 이 얘기를 한 이유. 본심을 드러냈다.
“미친놈한테 운명을 맡기지 마세요. 여러분도 머지않아 살사람 죽을사람으로 갈릴 겁니다. 저와 함께 맞서 봅시다. 속으면 안 돼요.”
지혁은 듣는 내내 어이가 없고, 열불이 났지만, 간신히 참고 있었다.
“쉘터 마스터키 누가······.”
‘우당탕탕!’
갑자기 군중들 사이에서 소란이 벌어지더니.
-마스터키 찾았습니다!
-지점장과 부지점장 홍채가 마스터키입니다!
정보를 입수한 한 무리가 남자를 끌고 나왔는데, 청주 아울렛 부지점장이었다.
“놔~! 이거 놔!”
선도직원들은 부지점장을 뺏기지 않으려고 밀어붙였고, 추이사 일행은 그들을 막았다.
양측에서 몸싸움이 벌이는 가운데, 결국 부지점장은 추이사 앞으로 끌려 나왔고.
“두 분. 어서 눈 뜨고, 홍채 인식하세요.”
쉘터 가동을 위해, 추 이사는 지점장과 부지점장을 협박했다.
두 사람은 눈을 질끈 감고 뜨지 않았는데.
“뜨지 않으면, 떼냅니다.”
추 이사는 다시 한번 위협적으로 말했다.
“씨발, 다 죽게 생겼는데, 나 지금 뵈는 거 없어. 마지막 경고다. 귀찮은 일 만들지 말고. 눈 떠.”
칼 끝을 눈두덩에 대고, 지그시 누르니.
결국······.
- 우와아~!
청주 쉘터가 전개되었다.
***
추 이사 일행은 물밀듯이 쉘터 안으로 들이닥쳤고.
선도 직원들은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했다.
일대 혼란 상태.
추 이사와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자, 거칠어졌다.
쉘터 안으로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선도직원들을 폭행하고.
일부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쉘터 안으로 데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다치는 건 둘째치고, 자칫하다간 선도직원들이 와해되어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상황.
‘탕! 탕!’
일대 혼란을 뚫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한 남자를 주목했다.
지혁이었다.
그는 선도 직원들에게 말했다.
“직원 여러분! 오지혁 회장입니다! 모두 지금 제 뒤쪽으로 이동하세요! 특임대! 어서 직원들 통제해!”
직원들은 지혁의 지시대로 이동했고, 그 사이에 추이사 일행들은 더 빠르게 쉘터 안으로 움직였다.
-우와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너무 많았고. 지혁은 당장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추 이사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쉽게 청주 쉘터를 잃게 될 줄은 몰랐다.
“오지혁!”
폭도 한 명이 오지혁을 향해 뛰어들었는데.
탕!
지혁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다리를 쏘았다.
“다음부턴 심장이다. 물러서.”
사람을 쐈다. 모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지혁은 차갑게 말했다.
“정당방위는 잔인할 거야. 궁금하면 와봐.”
안 그래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총 들고 위협까지 하니.
폭도들은 혼비백산하여 쉘터 안으로 더욱 빠르게 이동했다.
“······.”
지혁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추 이사의 눈과 마주쳤고.
총구를 겨누자.
그는 피식 웃고는 쉘터 안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
과천 쉘터. 지휘통제실.
쉘터 앞에 접근한 탱크와 무장 병력들을 보고 심각해졌다.
“예상보다 빠르네.”
윤 사장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군대가 올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다만, 쉘터 문을 폐쇄해 버리면 핵무기가 떨어져도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도록 설계를 해놨다.
군대가 와도 문 닫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되기에, 전혀 걱정을 안 했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왔다.
아직 못 들어온 직원들이 꽤 많다.
지금 정문을 폐쇄해 버리면, 많은 직원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엔······.’
갑자기 군에서 투입 작전이라도 벌이면 골치 아파진다.
“지금 정문 폐쇄하는 건 제외합시다.”
오진원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직원들을 끔찍이 생각하는 그로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오 회장 곧 올 테니까. 어떻게든 시간 벌면서 버텨보자고요.”
지혁이 오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위이잉-
그때, 윤 사장의 위성 전화기가 울렸다.
[오지혁 회장님.]
수신자 확인 후, 급하게 받았다.
“네! 회장님!”
[지금, 청주 쉘터 잃었습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전 괜찮고요. 지금 급해서, 상황설명은 나중에 하는 거로 하고.]
지혁의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계속 울음소리만 들렸다.
[화성, 구미 쉘터에 연락하세요. 각 1만 명씩 갈 테니, 받을 준비하라고요.]
청주 쉘터로 배정된 직원을 인근 쉘터로 분산시킬 계획. 윤 사장은 곧바로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회장님.”
지혁은 전화를 끊으려다가, 물었다.
[빨리 말씀하세요.]
“군에서 왔습니다.”
예상보다 빠른 상황에 지혁도 놀랐지만, 답은 명확했다.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정문 폐쇄하세요. 다수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구리 쉘터에도 연락 취하세요. 1만 명 갈 거라고.]
청주 쉘터에서 이동할 직원은 약 3만 명.
구미와 화성에 1만 명씩 보내고, 나머지 1만 명은 과천으로 데리고 올 생각이었는데. 군대가 와 있으니 계획을 바꾼 것이다.
[저는 구리에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뚝.
***
청주 쉘터에서 4km 떨어진 곳.
3만 명이 집결한 가운데, 지혁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주목하세요!”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모두가 집중하니 지혁의 목소리는 잘 전달되었다.
“지금부터 타지역 쉘터로 이동합니다!”
사람들 앞에 서기전, 반도체 사업부의 팀장들을 불러서 이동계획을 전달했었다.
“각자 어느 쉘터로 이동하는지는 들으셨죠!”
지혁은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와 특임대 팀장이 앞장서서 갈 건데. 우리 뒤를 따라와도 되고, 다른 길로 가도 됩니다.”
이 수많은 인원을 일사불란하게 데리고 갈 수는 없었으며, 그게 꼭 안전하다고도 할 수 없다.
“살아서, 무사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됩니다! 각 쉘터에는 얘기를 해놓았으니.”
직원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주었다.
“도착하면, 삽니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도착하십시오.”
지혁은 옆에 선 특임대 1팀장과 2팀장을 보았다.
1팀장은 구미, 2팀장은 화성으로 1만 명 씩 통솔하여 이동한다.
그리고 지혁은 나머지 1만 명과 함께 과천으로 간다.
“출발하지.”
“네.”
3만 명 선도직원들의 국토대종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