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67화 (267/301)

외전9. 국토대종주

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지혁을 옆에서 보좌하는 특임대원이 물었다.

“단장님.”

“응?”

“이대로 가도 되겠습니까?”

“뭐가?”

“청주 쉘터······ 나중에 위협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무기 차지하고, 비상식량까지 확보하고 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화근은 뿌리 뽑는 게.”

지혁은 특임대원 얼굴을 본 후, 살짝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특임대원은 부동자세를 취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오대현입니다!”

지혁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본관이 연일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해주입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에 공격하자는 말을 할 줄 알고.’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대원이었고, 지혁은 그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리고 지혁은 직급이 어떻든, 대화가 통하는 상대에게는 얘기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놈들······ 무기 차지 못해. 비상식량도 못 갖고.”

“네?!”

오대현은 의아함에 눈이 동그래졌다.

‘쉘터를 이미 뺏겼는데······ 희망 사항 아닌가?’

추 이사가 선동 중일 때, 지혁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수적으로는 선도직원들이 좀 더 많았으나, 밖에서 오랜 시간 대치 중이었고.

추 이사 일행 수도 적지 않을뿐더러,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출혈이 많은 전투를 벌일 필요는 없었다.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며.

깡통 쉘터는 내줘도 상관없으니까.

“인사담당자와 건강관리사. 우리 일행에 따라오고 있는 거 맞잖아?”

“네, 아까 혼란 중일 때, 그분들부터 확보하라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의 홍채가 무기와 비상식량의 마스터키다. 지점장과 부지점장의 홍채로 쉘터의 모든 것이 전개되는 게 아니다.

추 이사는 머지않아, 식량이 동나서 스스로 쉘터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무기 하나 없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말이다.

‘풀어놓은 사냥감이지.’

오대현을 향해 물었다.

“분하냐?”

“좀······ 그렇습니다. 특히, 회장님 비난할 때는 정말······.”

지혁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조만간 털 거야. 지금은 무사히 가는 것에 집중하자.”

“네! 알겠습니다!”

***

그날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났다.

과천 쉘터 앞은 국군과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섞여서 난장판이었으나, 내부는 다른 세상인 듯 고요하고 조용했다.

A-52. 손정진의 룸.

“흑······.”

하서연은 일어나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

본인이 안전하다고 느낄수록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죄송하고 불안한 마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흘렸다.

“······.”

손정진은 그녀가 왜 우는지 잘 알고 있으나, 쉽게 달래줄 수 없었다.

‘부모님을 포기하라고 할 수도 없고, 모시러 가겠다고 할 수도 없고.’

쉘터 안에서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봤다. 그래 봐야 핸드폰이었는데, 당연히 터지지 않았고.

그녀의 부모님은 위성 전화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서연이 어디에 있는지, 생존해 있는지도 알릴 방법이 없다.

말 그대로, 재난 상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이별’인 상황이었다.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 알려도 좋을 텐데······ 흑.”

부모님도 분명히 하서연을 많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손정진은 그녀와 결혼해서 행복하면서도, 매일 울기만 하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본인 가족만 멀쩡하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괜히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서연이 집이 창동이었지······.’

하필 위치도 과천과 반대편, 서울 북쪽 끝이다.

3일째 하서연이 눈물만 쏟아내는 걸 보니,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서연아, 오빠가 가서 모시고 올까?”

“······?”

하서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손정진을 바라보았는데.

“······.”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느꼈고.

“미쳤어요?!”

“······.”

“이 상황에 나가긴 어딜 나가요!”

“그럼 어떡해. 네가 이렇게 슬퍼하는데.”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신부라서, 그녀를 보면 아이를 돌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안돼요. 오빠는 절대 안 돼요.”

하서연은 ‘오빠는’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혹시······ 밖에 계시는 분들 없어요? 특수요원이라든지.”

쉘터에서 전개하는 경비요원과 안전요원은 선도그룹의 직원들이 교대근무를 하는 것이다.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인 일로 그들에게 위험한 임무를 요청할 수는 없다.

“없어. 서연아.”

“······.”

“내 일은 내가 해결해야 해.”

하서연은 다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무리 부모님이 걱정되어도, 손정진을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저 우는 수밖에.

하서연은 한참을 울다가 말했다.

“차라리 내가 나갔다 오면 안 돼요?”

“서연아······.”

“흑······.”

‘하아······.’

손정진은 계속 우는 그녀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

특임대 1팀. 최성수 팀장.

레슬링 팀원 6명과 함께 구미 쉘터를 향해 이동한 지 3일째.

출발하기 전, 지혁이 알려준 지침을 철저히 따르며 빠르게 이동했지만,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다.

‘1만 명의 사람들······.’

산개 대형으로 움직였으나, 어차피 사람이 걷기 좋은 길은 하나다.

떼거리를 이루어 긴 행렬의 가장 앞에 최성수가 위치해 있었는데.

잘 따라오는지, 뒤를 한 번씩 돌아볼 때면······ 부담감에 숨이 턱 막혔다.

“후우······.”

숨을 몰아쉬고는, 앞만 보며 불길한 생각은 안 하려는데.

‘쉐에엑-’

하늘 높은 곳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어?!”

‘쾅-!’

갑자기 여기저기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청대로 4km 지점.

그나마 다행인 건, 이동구간이 개활지가 아닌 산지여서 숨을 곳이 있었다.

‘꺄아악-!’

행렬은 난리가 났고.

최성수는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다만, 본능적으로······.

“옆으로 피하세요! 도로 밖으로 벗어나세요!”

그 또한 황급히 몸을 피하며 소리쳤고.

‘쉐에엑- 펑!’

항공기 굉음과 주변에 포탄 떨어지는 소리.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날’ 서울에 포탄이 떨어질 때 겪어봤다. 눈 앞에서 팀동료가 포탄에 사지가 찢기는 것도 목격했다.

알기에······ 더 두려웠다.

-으아악-!

여기저기 들리는 비명.

최성수는 귀를 막고, 웅크렸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더 이상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최성수는 귀를 막았던 손을 풀고, 천천히 눈을 떴다.

얼마 전 길거리에서 봤던 참혹한 광경을 또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제발······.”

다행히 피해는 별로 없었다.

이 행렬을 표적으로 한 공격이 아니었으며, 산지에 있는 도로라, 상공에서 정확하게 식별되지 않았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특임 대원들과 함께 행렬 주변을 돌며 정비했는데.

“으앙~!”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은폐하기 좋은 곳에 위치에 있었어도, 다친 사람은 있었다.

최성수가 놀라서 울음소리 들리는 곳을 찾자.

한 대원이 손짓하며 소리쳤다.

“팀장님! 이쪽입니다!”

팀원이 손짓하는 곳에 가보니, 한 아이의 아랫배 오른쪽이 깊이 찢겨 있었다.

포탄으로 인한 돌 파편이 튄 것이다.

‘참······ 운도 없다.’

“으앙~!”

아이는 계속 울고, 배에서 피는 계속 배어져 나왔다.

옆에서 부모는 눈물을 쏟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떡하지.’

1만 명의 사람들은 다시 이동할 준비를 마쳤는데.

최성수는 도저히 아이의 부상을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이의 엄마가 최성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꿀꺽.

‘어떻게 해야 할까.’

지혁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생겨도, 일찍 도착하는 데에 중점을 둬라.’

“제발요······ 흑. 제발.”

최성수는 뒤에 쭉 늘어선 수많은 사람과 다친 아이를 계속 번갈아 봤다.

옆의 대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팀장님, 아무래도 지금은 이동하셔야 하지 않을지······.”

“······.”

“살려주세요!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그 대원의 말을 들은 아이 엄마는 더 크게 울며불며 소리쳤고.

최성수는 쉘터에 있는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떠올랐다.

빠직.

최성수는 어금니를 깨물고, 소리쳤다.

“잠시 쉬었다 갑니다! 일행 중에 의사 혹은 의학 지식이 있으신 분 있으면 앞으로 나와주세요!”

결국 그는 아이를 살려 보는 거로 선택했고.

그 자리에서 반나절 이상을 지체했다.

대규모 인구 이동의 소문은 빨랐고.

잠시 머무르는 동안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행렬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위협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특임대 2팀. 남규혁 팀장.

그는 태권도 팀원들과 함께 화성 쉘터를 향해 이동 중이다.

최성수 팀장처럼, 그 또한 이런 상황과 직무가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뭐라고, 1만 명을······.’

밤낮으로 발차기만 하던 사람이다.

학교 다니면서 반장 한 번 해본 적 없고, 태권도 팀에서도 주장은 해보지 못했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태권도 팀 주장은 ‘서울공습’ 때 사망하여 쉘터에 오지 못했다.

“팀장님! 이상 없습니다.”

“후방도 이상 없습니다!”

대원들이 차례대로 그에게 와서 보고했다.

남규혁은 대원들을 2교대로 해서, 계속 1만 명 행렬의 앞뒤를 번갈아 이동하며 정찰하도록 지시했었다.

행렬이 너무 길어서, 상황 파악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힘내자. 저분들은 그냥 일반인이잖아.”

“네!”

이동 자체도 쉽지 않은데, 행렬 앞뒤로 오가며 사람들을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남규혁은 대원들을 독려하며, 그 방식을 유지했다.

‘쉐에엑-!’

3일째 되던 날.

상공에서 항공기 소리가 들렸다.

삼사로 12km 지점.

그들이 현재 지나고 있는 도로는 평야 지대의 완벽한 개활지였다.

‘젠장!’

남규혁은 상공을 본 후, 입술을 깨물었고.

본능적으로 지시했다.

“모두 길 밖으로! 논밭으로 몸 숨기세요! 빨리!”

행렬 가운데로 뛰어다니며 소리쳤고.

항공기 소리에 멍해 있던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놀라서 도로 주변 논밭으로 피했다.

- 꺄아악-!

- 엄마~!

행렬이 있던 길 한가운데로 포탄이 떨어졌고.

‘콰과광!’

이후로 한동안 포탄이 계속 떨어졌다.

-으아악!

-사람 살려!

아무리 주변으로 몸을 숨겼어도.

지형의 불리함은 어쩔 수 없었다.

‘하아······ 이런.’

하필 개활지 구간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납작 몸을 엎드리고 기다리다가.

포탄 낙하 소리가 그치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쯤.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행렬이 모여있던 자리에 생긴, 수십 개의 움푹 팬 포탄 자국.

만약 남규혁이 빠르게 지시하지 않았다면, 몰살 수준으로 당했을 것이다.

발 빠른 대처로, 큰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 엄마~! 엄마~!

- 내 다리 어디 갔어! 내 다리!

- 으앙~!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피해가 막심했다.

지시 전달이 늦어진 뒤쪽 행렬은 제때 피하지 못했다.

남규혁은 입을 멍하니 벌리고 절규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점점······ 멘붕이 찾아오고 있었다.

‘씨발······ 이거 어떻게 해야 해.’

대원들은 남규혁의 지시를 기다렸다.

‘개활지. 적 항공기. 사상자들.’

동공이 흔들리고, 입술이 떨렸다.

“팀장님, 저희 어떻게 합니까?”

뭔가 지시를 내려야 했다.

지금까지 반장도, 주장도 못 해보고 남들 지시만 따르며 살았던 그의 사정을, 상황은 봐주지 않았다.

‘규혁아, 정신 차리자.’

이럴 때일수록 여러 고민 말고, 지혁의 지침만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빠르게 이동한다! 빨리, 사람들 움직이게 해!”

“네! 알겠습니다!”

다친 사람 눈치 보여서 머뭇거리던 멀쩡한 사람들은, 지시가 내려지자 또 포탄이 떨어질까 발 빠르게 움직였고.

- 이봐요! 우린 어떡하라고요!

- 저 사람들도 데려가야죠!

-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남규혁은 일부 사람들의 비난에 차갑게 대꾸했다.

“우선 살 사람부터 삽니다.”

***

4일째 되던 날.

지혁은 구리에 거의 도착했다.

청주에서부터 구미 쉘터, 화성 쉘터, 구리 쉘터 까지.

모두 보통 걸음으로 7일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혁의 행렬은 최성수, 남규혁보다 두 배 정도 빨랐다.

- 헉! 헉!

- 뒈질 것 같아.

- 그래도, 진짜 뒈지는 것보단 낫다고 하셨어.

그들보다 두 배 빨랐던 것은 밤낮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걷지 않고 뛰었다.

뛰거나, 뛰듯이 빠르게 걸었다.

이를 위해, 웬만한 짐들은 다 버리고, 필수적인 짐들만 챙겨서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에게 몰아주었다.

낮에는 산간 도로.

밤에는 개활지를 이동했다.

적 포탄이 낙하하는 소리가 들린 적도 있지만, 지혁의 행렬은 노출되지 않았다.

밤낮없이 뛰고 걷는 행군에 너무 힘들어서,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 오지혁 회장을 씹는 직원도 생겨났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 사람의 사망자도 없었다.

발목이 접질리거나, 탈수 증세로 입에 게거품 물고 기절하는 정도 외에, 큰 부상자도 없었다.

‘이 정도로 죽지 않아. 날씨도 괜찮고.’

10월의 선선하고 좋은 날씨.

지혁은 날씨까지 고려하여 ‘뜀걸음 행군’을 계획한 것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하늘이 새파란 날.

3일간의 강행군으로 눈에 독기가 가득한 1만 행렬이 구리시에 진입했다.

“대원들, 지금부터 사주경계 확실하게 해. 의심나는 거 있으면 바로 발포하고.”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절대 망설이지 마.”

텅 빈 거리.

주인 없는 자동차와 여기저기 부서진 건물들이 보였다.

시가지에 들어서기 직전, 지혁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긴장하자.’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그 세계’를 경험해 봤기에 잘 알고 있다.

결국, 가장 위협이 되는 건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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