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0. 나를 지키는 운동 (1)
과천 쉘터 앞.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 제발요!”
이십 대 중반의 여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어서 비키세요!
- 계속 이러시면, 강제로 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경비요원들이 말려도 여자는 필사적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갈 수는 없어요!”
매스컴이라고는 라디오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도, 전시상황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소문은 금방 돌게 마련이다.
중국군과 러시아군이 한반도에 진출할 계획이며, 그 전에 미사일 공격부터 시작할 거라는 소문은 서울에 허다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바다를 건너지 않는 한, 피난은 의미가 없었지만.
사실, 지금 바다를 건너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가냐 늦게 가냐의 차이일 뿐, 전 세계는 전쟁터로 변하여 공멸의 길로 치닫고 있었다.
‘선도그룹의 쉘터.’
인간도 동물이라, 안전한 곳으로 본능이 이끌리기 마련이다.
“저 살아야 해요. 선생님 좀 불러주세요!”
- 여기서 선생님을 왜 찾아요.
- 어서 가시라니까.
여성은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오진원 선생님!”
‘오진원’이라는 말에 경비요원들은 멈칫했다.
“선생님! 보고 계시면 말씀 좀 해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경비요원들은 당황했으나, 여자가 찔러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어서 안 가요?!
- 어디 감히 그 이름을?!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쉘터를 향해 소리쳤다.
“오진원 선생님!”
경비요원이 위협적으로 밀쳐내면, 결국엔 떨어지던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여자는 악바리였으며, 필사적이었다.
“선생님~!”
***
과천 쉘터, 지휘통제실.
한 여성이 너무 난리를 친다고 하여, 해당 CCTV의 스피커를 켰다.
[오진원 선생님! 저 은미예요! 김은미요!]
오진원은 별생각 없이 보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의자를 바투 앉았다.
‘은미? 누구였더라? 얼굴이 낯익은데?’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를 사람은 몇 없다.
[양주 백석읍에서 가르쳐주셨잖아요. 학교 끝나면 데리러 와 주시고, 할머니 돌아오실 동안 함께 있어 주시고······ 흑흑.]
김은미는 목 놓아 울었다.
‘아······ 그래. 기억난다.’
지혁과 최 부회장의 부름으로 선도그룹으로 돌아오기 전.
양주 백석읍에서 방과 후 교육 봉사활동을 하며, 하루하루 소일거리로 평화롭게 살던 시절.
김은미는 유독 눈에 띄고, 마음이 가는 아이였는데.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잠잘 시간이 다 되어 할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늘 혼자 있는 아이였다.
그 모습이 보기가 딱하여, 오진원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줬었다.
‘잘 컸네.’
당시 11살이던 김은미는 이십 대 여성이 되어 오진원 앞에 나타났다.
[선생님 말씀 듣고, 저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억울하잖아요. 겨우 24년 살려고, 손가락질 견뎌내고, 밥 굶어가며 대학 간 게 아니라고요! 흑흑.]
김은미는 필사적이었으며, 경비요원 세 명이 그녀를 간신히 막아서고 있었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흑흑.]
결국, 김은미는 경비요원들의 완력을 당하지 못하여,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고.
[흑흑······.]
질끈.
화면에서 나오는 처연한 울음소리에, 오진원도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배어 나왔다.
“후유······.”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데리고 들어오고 싶었다.
윤 사장은 그런 오진원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봤다.
“부회장님, 아는 분입니까?”
“네······ 예전에 봉사 활동할 때 가르쳤던 친구예요.”
“아······ 네.”
안타깝지만 더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오진원이 냉정을 잃고, 룰을 어길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 워낙 인정이 많은 사람이니까.
[선생님! 살려주세요!]
“후우······.”
급기야 오진원은 어깨까지 떨면서, 울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윤 사장은 불안했다.
세크 위원들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만약, 오진원이 룰을 어기는 지시를 하면, 어떻게든 막을 생각이었다.
그를 존경하지만, 세크 위원들에게는 지혁의 명령이 절대적이다.
‘절대로 외부인은 받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오진원은 눈물을 흘리며 턱을 들썩였고,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감정이 고조되어갈수록 윤 사장은 긴장했다.
묘한 긴장감이 지휘통제실에 흐르는 가운데.
‘덜컹!’
오진원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크 위원들도 반사적으로 따라 일어나, 움직일 자세를 취했다.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
오진원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
“저, 룸에 가서 쉴게요. 저 여성분 사라지면 불러주세요.”
아무리 인정이 많아도, 그는 리더였고.
가슴을 쥐어짜듯 아팠지만, 오진원은 선을 넘지 않았다.
‘휴우······.’
윤 사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네, 부회장님. 알겠습니다. 상황 정리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위이잉-
오진원이 지휘통제실 밖으로 나간 뒤.
[우우······ 우우······.]
문밖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
구미로 향하는 선도그룹 직원들.
최성수 팀장은 다친 아이로 인해, 하루를 허비한 데다가, 부상자들을 돌보며 가느라 이동 속도가 더뎠다.
위이잉-
‘오지혁 단장님’
최성수는 수신자를 확인한 후, 긴장하여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최 팀장. 어디야?]
“보총대로 24km 지점입니다.”
[뭐?!]
지혁의 언성이 올라갔다.
이 위치면 앞으로 4일은 더 가야 구미에 도착한다.
[거기까지밖에 안 갔어?]
“······.”
[왜 이렇게 늦어?]
최성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동 간에 적 포탄이 낙하했는데, 중간에 다친 사람이 생겨서 돌보느라······.”
지혁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야이, 미친 새끼야!]
그룹 회장에게 욕 일갈을 듣고, 최성수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런 정신 나간 새끼를 봤나. 다친 사람 살리고, 니 목숨 대신 줄래?]
“······.”
[그럴 수 있다면 인정할게. 할 수 있어?]
최성수는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대답했는데······.
“함께 살 수 있다면, 그래도 노력해 보는 게······.”
[지금 그런 상황 아니잖아!]
“······.”
‘후우······.’
지혁은 한숨을 쉬었다.
수십만 명을 생각해야 하는 최고 지휘자다.
지혁의 입장에서는 최성수가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
[됐어. 말 안 듣는 놈 필요 없어. 현 시간부로 팀장 바꾼다.]
그는 두 번 기회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 다음 연장자 불러.]
“단장님, 제가······.”
[빨리!]
지혁의 사자후에 최성수는 식겁하여, 바로 아래 팀원을 불렀고.
최성수보다 키가 좀 더 큰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 또한 레슬링 선수답게 귀는 뭉개져 있었다.
[이름이 뭐냐?]
“안태욱입니다.”
[지금부터 네가 특임대 1팀 팀장이다. 여러 생각 말고, 내가 하달하는 임무에만 집중해.]
안태욱은 당황하여 대답했다.
“네?! 아, 알겠습니다.”
지혁은 또박또박 말했다.
[전속력으로 이동. 이틀 내로 구미에 도착한다. 열외되는 인원이 생기더라도 강하게 몰아붙여. 사상자 발생해도 되니까.]
“네.”
[구미 시가지에 도달하면, 전투대형으로 재정비한 후 진입한다.]
“네? 전투대형이요?”
지혁은 구리 시가지에 진입하기 전에 위험한 사람들을 발견하였고, 이를 팀장들에게 알리고자 연락한 거였다.
[아침 교육 기억 안 나? 배운 거.]
10년간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을 했다.
기억 못 할 리가 없었다.
안태욱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억합니다.”
[그래, 정신 바짝 차려라. 배운 대로 하면 돼]
***
특임대 2팀. 남규혁 팀장도 지혁의 전화를 받았다.
“네, 단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어디냐?]
“삼사로 43km 지점입니다.”
이틀만 더 가면 되는 거리.
이미 도착한 지혁보다는 느린 속도지만, 이 정도면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다.
[특이 사항은 없고?]
“개활지에서 적 항공기를 만났었습니다.”
[피해는?]
“사망자는 80여 명 정도, 부상자는 900명쯤 됩니다.”
지휘 경험이 없는 사람이, 개활지에서 적 항공기를 만났는데 1만 명으로 이 정도 피해를 본 거면 꽤 잘 처신한 거였다.
[다친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
“······.”
남규혁은 이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에.
[뭐해? 묻잖아?]
“살 사람만 살렸습니다.”
[······.]
“그 자리에 두고 온 사람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규혁은 의기소침하게 대답했지만.
지혁은 미소짓고 있었다.
[그 이후엔 어떻게 했어?]
“개활지가 나타나면, 주변에 은폐하여 숨었다가, 밤에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80점.]
“네?!”
지혁은 ‘그 세계’에서 지휘자들을 칭찬할 때면 점수로 말했는데.
80점은 굉장히 후한 점수였다.
남규혁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해라.]
“······.”
[네 판단이 맞으니까, 누가 뭐라든 의심하지 마. 지금까지 하던 대로 가는 거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시가지 진입 전에 전투대형을 갖추라는 말만 전했다.
특임대 1팀과는 달리,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더 당부하실 말씀은······.”
[없어. 넌 알아서 해도 되겠다. 수고해.]
***
구리시.
시가지를 최대한 통과하지 않기 위해, 팔당으로 돌아서 한강변을 끼고 올라왔다.
구리 쉘터로 가기 위해서는 구리시 수택동에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시가지를 통과해야 하는데.
‘빨리 변했네.’
눈을 희번덕거리는 사람들 무리가 보였다.
그날이 터진 지, 5일이 지났다.
전기와 물은 끊겼다.
준비할 새도 없이 그날을 맞이한 사람들은 비축해 놓은 생필품은 당연히 없었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으로 연명했지만, 그 또한 전기가 끊겨 상하거나 며칠 새에 동났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
흉흉한 얼굴로 선도직원들의 배낭을 바라봤다.
“전투대형!”
지혁이 큰 소리로 외치자.
선도전자 반도체 공장 직원들은 순식간에 사업부별로 대형을 이루었다.
“무기 준비!”
촥! 촥!
여기저기서 쇳소리가 들렸다.
개인 무기를 분출하기 전이지만, 선도그룹 직원들은 조그만 과도나 다용도 칼은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이 모든 게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의 효과였다.
수십 명 단위로 등을 맞대고, 동그랗게 원을 이루어, 칼을 빼 드니.
- 저 사람들 뭐야?
- 다 칼 들고 있는 거 같은데?
- 괜찮아. 조그만 거잖아.
폭도들은 각목과 야구 배트를 꽉 말아쥐고 침을 삼켰다.
지혁은 앞장서서, 선도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아침마다 저와 함께했던 운동 기억하시죠?”
- 네!
“써먹을 때가 왔습니다. 보아하니, 말 통할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각자의 생존을 위해 맞선 사람들.
이 자리에는 악인도 선인도 없었다.
“나와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뿐입니다.”
폭도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들의 숫자도 절대 적지 않았다.
“알려드린 대로 손에 사정 두지 마세요.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겁니다!”
-네!
지혁은 폭도들을 향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금 길을 비키고 무리를 해체하면, 아무도 해치지 않겠다.”
-우와~!
폭도들은 대답 대신 선도직원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고.
지혁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전투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