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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69화 (269/301)

외전11. 나를 지키는 운동 (2)

실전은 달랐다.

막상 폭도들이 각목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달려드니, 선도직원들은 손발이 떨리고 오줌마저 지릴 지경이었다.

- 다 뺐어!

- 다치기 전에, 가방 두고 꺼져!

피차 경험이 적을 때는 간절하며 눈 돌아간 사람들이 유리하다.

폭도들은 과감하게 달려들었고, 선도직원들은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 으악~!

- 사람 살려!

선도직원들 사이의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고.

- 미쳤나 봐! 진짜 때리잖아!

- 어떡해! 저 사람 피 흘려!

직원 중 가장 앞서있는 사람이, 폭도의 각목에 머리가 터져 피를 흘렸다.

선도직원이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엮인 게 없는 사람들.

지혁만 믿고 이곳까지 왔기에, 다친 사람을 보며 전우애보다는 겁부터 났다.

- 도망쳐!

- 저리 좀 비켜봐요!

- 꺅~! 무서워!

폭도들은 사정없이 달려들었고, 선도직원들은 와해되었다.

우왕좌왕하며 전투대형도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서로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는데······.

‘탕탕!’

두 번의 총소리와 함께.

폭도들 가장 앞의 두 사람 이마에 구멍이 생겼다.

헤드샷이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고.

“총알 아껴야지.”

지혁은 리볼버를 허리춤에 꽂은 뒤, 양손에 25cm 단검을 쥐었다.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스륵. 스륵.

수많은 폭도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살벌한 아우라에, 머릿수가 훨씬 많은 폭도들은 뒷걸음질 치다가.

- 저 사람, 선도그룹 회장 아니야?

- 오지혁 맞지?

- 제정신이야? 사람을 죽여?!

스륵. 스륵.

지혁은 계속 다가갔고.

선도직원들은 지혁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느덧 지혁이 선도직원들과 10m 이상 멀어지게 되자.

- 됐어. 지금 혼자야.

- 총도 아닌, 칼 들고 있잖아.

- 죽여!

‘우와아~’

폭도들은 일제히 지혁에게 달려들었고.

지혁은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아······ 살아 있는 기분.’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낀다. 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다.

지혁은 폭도들을 우습게 보지 않았다.

아무리 하찮은 전투력이라도, 머릿수는 무시 못 하기에.

‘푹-’

‘슥삭-’

지혁은 이리저리 찌르고 베며, 오랜만에 살을 가르는 감각에서 쾌감을 느꼈다.

‘내가······ 꽤 그리워했었구나.’

사냥하는 기분이랄까.

사슴 무리에 맹수 한 마리가 뛰어든 것처럼.

이리저리 물고 날뛰는 기분이 참 괜찮았다.

‘쉘터 밖으로 나오길 잘했어.’

청주 쉘터 구출 작전에 직접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 살려줘!

-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 도망가!

단검을 쥔 지혁의 양손은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의 주변엔 비명과 살 찢기는 소리만 들렸다.

선도직원들은 이 모습을 기겁하여 지켜봤다.

- 무서워······.

- 우리 회장님 맞지?

지혁의 진짜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더 이상 숨길 필요 없는 능력이.

***

꽤 시간이 흘렀다.

지혁의 주변엔 피가 낭자했으며,

앞뒤로 쓰러진 사람은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헉. 헉.”

숨 쉴 때, 온몸이 들썩일 정도로 너무 지쳤다.

지혁 또한 여기저기 찢기고 베인 자국이 많았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는데, 적의 피만은 아닐 것이다.

“헉. 헉.”

지혁을 둘러싼 폭도들과의 공간이 점점 좁혀졌고.

단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줄어들며, 숨소리는 갈수록 거칠어져 갔다.

- 오 회장 지쳤어! 조금만 더 힘내자!

- 이 사람만 무너지면 끝이야! 잔챙이들은 순식간이야!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만 보는 선도직원들을 말한 거였다.

폭도들은 지혁 주변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다시 공격 준비를 했다.

- 죽여~!

누군가 기합 소리를 시작으로 폭도들은 일제히 달려들었고.

“후!”

지혁은 기합 소리를 낸 후, 다시 맹수처럼 싸웠다.

어떻게 하면 눈앞의 사람을 쓰러뜨릴지만 생각했다.

완전히 지쳐서, 몸을 휘청이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지혁을 보며.

선도직원들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 저러다 회장님 큰일 나는 거 아니야?

- 점점 몰리잖아. 어떡해.

직원들이 조금씩 움직일 조짐을 보였고.

지혁은 생각했다.

‘이제 좀 움직여라, 언제까지 버텨야 하냐.’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으나.

선도 직원들이 자극받고,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에 전략적으로 앞장선 거였다.

한 사람의 분전은 여러 사람의 용기를 북돋기도 한다. 특히,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계속 보고만 있을 거야?!”

지혁은 큰 소리로 외쳤고.

망설이던 직원들이 또 한번 꿈틀거렸다.

“나 다음은 누구일 거 같아?! 어!”

이 한마디에, 기회를 엿보던 직원 한 명이 소리치며 달려 나갔고.

“회장님~!”

한 사람이 용기를 내자.

- 우와아~!

드디어 선도그룹의 직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죽음을 각오하니, 교육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 내 눈!

- 미쳤어! 막 깨물어!

- 아악! 씨발, 거긴 안 돼! 하지 마~ 하지 마~

선도직원에게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짓밟히고 있는 폭도가 소리쳤으나, 소용없었다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에서 학습된 것들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피하지 마! 밀어붙여! 절대 등 돌리지 마!”

지혁은 선도직원들을 독려했다.

“과감하게! 살고 싶으면 죽여!”

‘생존’을 사이에 둔 두 무리의 격돌.

구리 시가지에서의 혈투는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

“에이~ 이 나이 먹고 진짜.”

내일모레가 환갑인 윤 사장은 중얼거리며 룸으로 향했다.

쉘터가 전개된 이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최장기간 비서실장을 한 선도그룹의 실세이기에, 지혁의 부재중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다들 윤 사장을 찾아온다.

오진원은 상징적인 리더이며 최종 의사결정권자다.

실무적으로는 윤 사장이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윤 사장님.”

막 룸을 들어가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영화배우께서 여긴 웬일이야?”

손정진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하하, 놀리지 마세요.”

CCTV 속 극적인 결혼 서약으로, 손정진은 과천 쉘터에서 영화배우로 불리고 있다.

선도물산 상품기획 1팀에서 꽤 오랜 시간 함께 근무했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안다.

“할 말 있으면 어서 해~ 그냥 오지 않았을 거 아니야.”

손정진이 찾아온 이유가 분명 있을 거로 생각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손정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아내가 우울증 걸리게 생겼습니다.”

“뭐?!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윤 사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정진의 하체를 보았고.

“아~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손정진은 두 손으로 하체를 다소곳이 가린 뒤, 말했다.

“아내가 밖에 두고 온 부모님을 너무 그리워해서요.”

윤 사장은 그제야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손정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31살이면 어리지 않습니까.”

“어리지.”

손정진은 띠동갑 아내의 눈물을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게다가 너무 효녀입니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아······ 효녀랑 결혼하면 피곤한데.”

연륜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사장님, 어떻게······ 아내 부모님 생사라도 알 수 없겠습니까?”

“······.”

“이런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그의 아내 하서연은 온종일 울고만 있었다.

굉장히 어렵고 폐 끼치는 부탁이란 걸 알고 있으나, 손정진 입장에서는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윤 사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어디 사시는데?”

“서울 창동입니다.”

“북쪽이네?”

“네, 맞습니다.”

윤 사장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정찰 드론 몇 개 띄워 놓긴 했는데, 너무 끝 쪽이라 거기까지 갈지 모르겠고.”

“······.”

“내부 확인은 불가능해.”

손정진은 윤 사장을 찾아왔을 때, 어느 정도 결심이 되어 있었다.

‘역시······ 방법은 하나뿐인가.’

“제대로 확인하려면, 외부로 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겠죠?”

윤 사장은 손정진을 힐끔 바라봤다.

“진심이야?”

“······ 저로서는 도리가 없습니다. 아내가 꽤 심각합니다.”

하서연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내내 울기만 했다.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내가 두고두고 원망할 것 같아서요.”

휴우······.

외부 출입은 개인의 선택이다.

아무리 위험해도 본인이 나가겠다면,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조건이 있었는데.

“회장님 허락 없이 나가면, 못 들어오는 거 알지?”

나갈 수는 있으나, 지혁의 허가 없이 나가면 들어올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계십니까?”

“출장 가셨어.”

“아······ 이 시국에 출장을.”

손정진은 지혁이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알기에 많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방법이 없습니까?”

“위성 전화기를 갖고 계시긴 해.”

“정말 죄송하지만······ 연결해주실 수 있습니까?”

윤 사장은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

“만약, 회장님이 못 나가게 하면 어떡할래?”

손정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말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겠습니다.”

***

구리 쉘터, 지휘통제실.

쉘터장은 굳은 얼굴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회장님은? 아직 소식 없어?”

“네, 도보로 청주에서 여기까지 일주일은 걸리니까요. 아직 별다른 정황은 없습니다.”

“흠······.”

신세환 구리 쉘터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쉘터장은 프리미엄 아울렛 지점장이 이어서 한다.

지점장은 ‘그날’이 오기 전에 ‘쉘터의 존재’에 대한 1급 비밀을 알고 있다.

따라서, 프리미엄 아울렛은 선도물산 리조트 부문이 관리하는 사업이지만, 지점장 선발은 선도그룹의 세크가 직접 한다.

이를 의아하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선도그룹 내의 세크의 위치는 절대적이었기에,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못했다.

“구리시 치안 상황은?”

“안 좋습니다. 생필품이 동난 데다가, 서울 구치소 수감자들이 탈출했는데, 그들이 구리 쪽으로 이동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그래?”

“네, 최근 정찰 나갔던 경비요원들이 부상을 당하여 돌아왔었거든요. 시민들이 너무 폭력적이고 과격해졌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반시민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아······.’

세크로부터 임명받은 쉘터장들은 일반 선도그룹 직원들과 달랐다.

세크 위원들처럼, 지혁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쉘터장은 시계를 본 후 말했다.

“오늘 저녁부터 정찰대 운영한다.”

“네? 방금 말씀드렸지만······.”

이 위험한 상황에, 굳이 정찰조를 내보내겠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구리 시내에서 위험한 사람들이 많다며? 무조건 나가야지.”

“······.”

“특임대와 경비요원들 전체 출동 준비시켜.”

“네, 알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상황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쉘터장님! CCTV 21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메인화면에 CCTV 21번이 띄워졌다.

“저, 저게 뭐야······.”

구리시 한복판에 피범벅이 된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 중.

리더의 포스를 뿜어내는 한 남자가, 피를 뒤집어쓴 채 눈만 희번덕거리며 카메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 맙소사.”

매일 아침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으로 만나는 얼굴.

아무리 몰골이 흉악해도 선도그룹의 회장, 지혁을 못 알아보는 직원은 없었다.

그가 뭐라 소리치는데.

마이크 연결은 안 되어 있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하시는 거지?”

지혁은 카메라를 향해 또 한 번 소리쳤고.

‘빨리, 안 튀어와!’

쉘터장은 지혁의 입 모양의 뜻을 알아채고, 빠르게 지시했다.

“당장 출동해! 모셔 와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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