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2. 깜냥
용산. 국방부 지하 벙커.
24시간 비상 상황이었다.
주변국을 예의주시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작전계획을 짜고 있는데.
“차장님!”
적 이동 경로를 분석하느라 정신없던, 합참차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현재 실질적인 지휘통제를 맡고 있고, 계속 위급상황이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의 이름이 불렸다.
대답하지 않아도 말하겠거니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국내에 전투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전투?”
합참차장은 이 말에 약간 관심을 보였으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규모가 어떻게 되는데?”
비상 사태 발생 일주일.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났고.
평시라면 신경 쓸만한 일이지만, 지금은 전투상황이라는 게 특이할 것도 없었다.
“드론으로 확인한 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양측 포함 16,000여 명 정도입니다!”
“만······ 뭐?!”
합참차장은 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슨 소리야?”
‘이 정도면, 사단급 규모 전투인데?’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만 명이 넘는 인원이 격돌한 소식은 처음이었다.
‘적 특수전 부대인가?’
척후조가 투입된 걸 수도 있으나, 그렇게 보기엔 규모가 너무 컸다.
만 명이 넘는 정규군이라면, 국경선을 넘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별생각이 다 들었는데.
“영상 볼 수 있나?”
“네! 지금 바로 화면에 띄우겠습니다.”
픽!
‘이런, 미친.’
화면을 보자마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상황실에 있는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무슨 일이야? 왜 저렇게 죽자고 싸워?’
‘이게 전투야, 막싸움이야.’
‘좀비 떼 아니야?’
단검과 각목을 든 사람들이 머리 터지게 싸우고 있었는데.
모두가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특히, 손에 조그만 단검을 들고 있는 무리는 전투 방식이 잔혹했는데.
‘아니, 낭심을 저렇게······.’
‘저 사람 봐. 눈만 노리고 찔러.’
‘저렇게 사정을 두지 않는다고? 사이코패스인가?’
전투를 못 하게 하거나, 불구로 만들어버릴 곳만 골라서 공격했다.
마치, 목만 물고 늘어지는 도사견 같았다.
모두 화면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가운데.
합참차장이 물었다.
“신분 파악됐어?”
“네, 영상으로 분석한 거라 정확도가 떨어지긴 합니다만, 파악은 됐습니다.”
“뭔데?”
“각목 든 패거리는 서울구치소 탈옥수들입니다.”
“서울구치소는 의왕시에 있지 않아?”
“사건 발생 날, 구치소가 폭격으로 와해된 후 탈옥수들 쏟아져 나왔습니다. 북쪽으로 이동 중인데, 구리시까지 온 것 같습니다.”
왜 북쪽으로 이동 중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대한민국의 법 내에 자유롭지 못한 범죄자 신분이라, 기회다 싶어서 위쪽으로 이동하는 거였다.
합참차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상대편은 뭔데? 내가 보기엔 탈옥수들보다 더 잔인한 것 같은데.”
각목을 든 탈옥수들보다 조그만 칼을 든 사람들의 수법이 더 악랄했다.
사정없이 급소만 노렸으니까.
“아······ 그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화면으로 보여주는 게 이해가 빠를 거로 생각했다.
‘선도전자 반도체 영업 2팀 한시경’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 묻은 직원 패찰을 보여주었다.
“맙소사······ 또?!”
합참차장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선도그룹인 거지?”
“네, 맞습니다.”
“거기 도대체 뭐 하는 회사야?”
“아시다시피 스마트폰과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대한민국 1등 기업······.”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누구나 다 아는 선도그룹 설명을 들으며, 합참차장은 고민에 빠졌다.
‘심상치 않아.’
거대한 벙커도 놀라웠지만, 지금 본 잔인한 전투방식.
‘저건 분명히 배운 거야.’
동작은 좀 어설프지만, 정확하게 급소만 노렸다. 일부가 아니라, 직원들 전투방식이 모두가 비슷했다.
즉, 훈련은 덜 되어 있어서 좀 투박하지만, 전문 교관의 손길이 느껴졌다.
합참차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선도그룹 총수가 오지혁 회장 맞지?”
“네, 맞습니다.”
“그 사람 연락해 볼 수 있나?”
“확인해보겠습니다.”
***
화성 쉘터를 향한, 남규혁의 특임대 2팀.
청주에서 출발한 지 5일 만에 화성 쉘터에 도착했다.
남규혁은 지혁의 지침대로 화성시에 진입한 뒤에 전투대형으로 경계하며 움직였으나.
사람들의 이목을 좀 끌었을 뿐, 구리 시가지처럼 공격적인 사람들은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소식은 들었습니다.”
화성 쉘터장은 반갑게 그들을 맞아주었고.
이동 중 약간의 사상자는 있었으나, 대부분 안전하게 화성 쉘터로 입성했다.
남규혁은 임무 완수를 99% 해냈다.
구미 쉘터로 향한 특임대 1팀.
중간에 팀장의 판단 실수로 지체하여, 청주에서 출발한 지 8일 만에 구미에 진입했다.
바뀐 안태욱 팀장은 철저하게 지혁의 지침대로 움직였고, 전투대형을 유지하여 구미 시가지에 진입했다.
‘휴······ 다행이다.’
시가지를 반쯤 통과했는데, 위협적인 모습은 없었다.
다만 부랑자들이 많았는데.
구미에는 공장 근무자들이 많았다.
갈 곳 잃고, 가족도 없는 근로자들이 무리에 스며들었다.
“직원이 아닌 사람들은 행렬에 못 끼어들게 하세요!”
안태욱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전파했으나.
너무 긴 시간 행군하여 지친 데다가.
행군 중 지체할 때, 이미 많은 외부인이 섞여 있었다.
외부인이 외부인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전할 리는 없었고.
안태욱의 지시는 잘 전달되지 못했다.
‘와······ 씨, 이걸 어떡하냐.’
안태욱은 끝도 없이 이어진 행렬을 보았다.
청주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1만 명 규모의 행렬이 구미시에 진입할 때 이미 2만 명이 넘었고.
시가지 진입한 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이 많은 인원을 쉘터에서 받아줄 리 만무하다.
오로지 ‘선도직원’만 쉘터에 입장할 수 있다.
“팀장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한 특임 대원의 물음에, 안태욱은 한숨을 쉬었다.
곧 있으면 구미 쉘터 도착인데, 안도감보다는 걱정이 늘어갔다.
전 팀장이던 최성수는 유구무언이다.
안태욱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가봐야 하지 않을까?”
“······.”
“지금으로서는 별도리가 없잖아. 도착해서 생각하자.”
우선 구미 쉘터에 도착하는 목적만 생각하기로 했다.
‘홍채 인식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으니까, 거기서 걸러내면 되겠지.’
***
[문 못 엽니다.]
“네?!”
구미 쉘터 앞.
확성기에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태욱은 흥분하여 소리쳤다.
“저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오는 길에 사람이 몇 명 죽은 줄 아세요?!”
“······.”
“제발 열어주세요!”
안태욱의 필사적인 외침에, 확성기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구미 쉘터장 송은용입니다. 특임대 최성수 팀장님 되시죠?]
안태욱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팀장은 맞습니다만, 안태욱입니다. 중간에 사정이 생겨서 바뀌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맞는지 확인해보는 듯했다.
[그렇군요. 안태욱 팀장님. 지금 문을 못 연다는 거지, 직원들을 안 받겠다는 게 아닙니다.]
“······.”
[전 분명 1만 명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 드론으로 확인해보니, 못해도 3만 명은 넘는 거 같거든요?]
‘3만?!’
안태욱도 놀랐다.
인원이 불은 걸 예상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인원이 너무 많습니다.]
안태욱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차피 직원들만 받는 거잖아요. 사람이 몇 명이든, 홍채인식하여 통과한 사람들만 입장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굳게 닫힌 철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무단으로 무리에 합류한 사람들······ 목적이 뚜렷합니다.]
“······.”
[문을 개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질서정연하게 한 사람씩 홍채인식을 할 수 있을까요?]
안태욱은 이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구미시에는 갈 곳 잃은 공장근로자들이 많아서, 계획된 인원 받을 때도 애를 먹었습니다.]
“······.”
[그때 실패한 사람들이 분명 무리 중에 섞여 있을 거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위험을 무릅쓸 가능성이 있죠.]
쉘터장답게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청주 쉘터의 선도그룹 직원들······ 딱한 사정 이해하고, 저도 안타깝지만. 구미 쉘터장으로서 우리 직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태욱은 멘붕이 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씨발, 어떻게 해야 해?!’
구미 쉘터가 못 받아주면, 이 인원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원을 추려주시면, 받겠습니다.]
다행히 쉘터장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진 않았다.
“그게 몇 명입니까!”
[······ 12,000명까지 추려보시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도 적극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안태욱은 뒤돌아섰다.
‘······.’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데, 안태욱은 숨이 턱 막혔다.
엄청난 압박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쩌지, 어떡한다.’
고민하던 중,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이 수밖에 없어.’
철문에 대고 얘기했다.
“저 뒤에까지 목소리가 안 들릴 것 같아서 그러는데요. 확성기로 전해주십시오.”
[뭘 전해드릴까요.]
“선도그룹 직원들은 직원패찰을 목에 걸라고 해주십시오.”
[······.]
“그 후에 철문 앞쪽으로 이동하라고······ 이렇게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안태욱은 이 방송을 한 뒤, 패찰이 없는 사람들은 뒤로 쫓아낼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었고.
3만 명은 순식간에 웅성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목에 직원 패찰을 건 사람들이 앞쪽으로 이동했고.
천천히 두 무리로 나눠지기 시작했는데.
그때.
“씨발! 내놔! 내놓으라고!”
한 남성이 완력으로 여성의 직원패찰을 빼앗는 소리가 들렸고.
‘어?!’
생각지 못한 상황에 안태욱이 당황해했는데.
항상 시작이 어려운 법.
이 소동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직원 패찰 없는 사람들은 달려들기 시작했다.
- 우와아~!
순식간에 직원패찰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고.
3만 명은 한데 엉켜서, 개판이 되기 시작했다.
***
청주 출발 3일째 되는 날 밤.
지혁의 무리는 구리 쉘터에 도착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신세환 구리 쉘터장이 정문까지 나와서 인사했다.
“일단 몸부터 살피시는 게······.”
쉘터장은 지혁의 몸에 난 여러 상처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일당백은 없다.’
지혁이 특임대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가 아무리 엄청난 전투력의 소유자여도, 쇠로 만든 팔다리가 아니다. 혼자 적진에 들어가서 막 싸움을 했으므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크게 다친 건 없어요. 일단 상황부터 살피고.”
지혁의 말에 쉘터장은 미안해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일찍 오실 줄······.”
7일 거리를 3일 만에 왔다.
당연히 예측 못 할 수 있다.
지혁은 쉘터장 옆의 보좌관에게 말했다.
“오늘 저랑 같이 들어온 사람들, 명단 작성해 주세요.”
“네? 그건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건 알 필요 없고.”
보좌관은 무심결에 물어봤다가, 당황하여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혁은 오늘 함께 온 사람들을 정규군으로 쓸 생각이다.
‘유일한 전투 경험자들이야.’
쉘터장이 늦게 와준 덕분에,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출혈은 좀 있었지만.
“치료실이 어디죠?”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지혁은 보좌관을 따라 움직이려는데.
위이잉-
진동음이 들렸다.
지혁은 위성폰을 꺼내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윤현성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