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4. 넥스트 (1)
용산, 국방부 지하 벙커.
지혁과의 통화는 스피커로 연결되어, 벙커 안의 군인들이 모두 듣고 있었다.
‘적이냐, 아군이냐.’
합참차장의 물음에 지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그는 지혁이 당황한 걸로 생각했다.
“왜요? 말씀 못 하시겠습니까?”
피식.
수화기 너머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나를 적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합참차장님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합참차장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가능성은 두고 있습니다.”
지혁은 이어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아군이라고 말하면 믿을 겁니까?]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주면 믿겠죠.”
[그게 뭡니까?]
합참차장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무기를 버리고 법에 따라야 할 겁니다. 그리고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여······.”
[지랄하고 있네.]
작은 중얼거림이었으나, 또렷이 들렸다.
합참차장은 당황하여 말을 멈추었다.
[지금 법이 존재합니까?]
“······.”
[상황 보시면 알 텐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기 마련이거든요. 시민들이 지금 어디로 몰리고 있습니까? 정부와 군인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쉘터 앞이 이렇게 붐비지는 않았을 텐데요?]
사태 발생 일주일이 지난 지금.
전국의 쉘터 앞은 들어가겠다는 사람들로 난리였다.
[혹시, VIP들 자리 모자라서 쉘터가 탐나는 건 아니죠? 합참차장님은 어떻습니까? 쉘터 들어오고 싶으세요?]
“이, 이보세요. 말을 너무 함부로!”
[아, 중장쯤 되면 이미 대피처가 마련되어 있으려나요? 합참차장님 가족들은 이미 안전한 곳에 있겠죠?]
국방부 벙커에 울리는 스피커.
합참차장은 몹시 당황했다.
지혁의 말이 다르다면 반박을 할 텐데, 그의 가족들은 장성 가족 대피 계획에 따라 남산 대피소에 피신해 있다.
“근거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적이냐 아군이냐. 그런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원하는 것만 얘기하세요.]
꿀꺽.
합참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보통 사람 아니구나.’
그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간단합니다. 법에 따라서 무기를 버리고, 쉘터를 개방하여 국방부 지침에 따르도록 하세요. 국가 위기 상황에서 주요 시설은 국방부에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불가하다.]
지혁의 목소리는 격양되었고, 더 이상 존칭하지 않았다.
[그따위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나? 우리가 위기를 준비하는데, 당신들이 해준 게 뭐 있다고, 인제 와서 이래라 마라야?]
“······.”
[아군인지 적인지 궁금하다고?]
“······.”
[내 앞을 가로막는 게 적이다.]
국방부 벙커는 얼어붙었다.
민간인이 군인을 대상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선도그룹 회장의 말이라 절대로 가볍게 들을 수 없었다.
[합참차장. 오판하지 마라.]
군사작전을 펼치면, 대응하겠다는 걸 암시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오판하지 마라.]
***
과천 쉘터, 보안 출입문.
손정진은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오토바이는 쉘터의 귀중 자산이다.
아무리 지혁의 허락을 받았어도 개인의 일에 오토바이를 내주지는 않는다.
‘소요 시간 : 1시간 30분.’
지혁과의 약속 장소인 군자교까지 자전거로 1시간 30분 거리.
휑한 거리에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시가지.
출발하기 전에, 방금 나온 출입문을 돌아보았다.
‘괜찮을 거야. 반나절이면 갔다 올 텐데.’
선도물산 상품기획팀에 처음 입사했을 때, 그의 사수는 오지혁 팀장이었다.
신입사원일 때 지혁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필요한 일을 할 때는 뒤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돌아보지 말자. 이미 나왔어. 선택했어.’
쉘터에 있는 하서연과 부모님이 자꾸 떠올랐지만, 손정진은 자전거에 올랐고.
‘후우-’
한숨을 토해낸 뒤,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양재천 자전거길.
우리나라에 자전거길은 참 잘 되어 있다.
자전거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앞에 거리끼는 게 없었다.
가끔 보이는 움푹 팬 포탄 자국만 조심하면 되었다.
지혁의 지침대로, 약간 돌아가더라도 시내는 통과하지 않고 자전거길만 이용했다.
‘하천 자전거길로 다 연결되어 있네.’
길도 좋고, 날씨도 좋았다.
포탄 자국과 시체들만 보이지 않는다면, 나들잇길이었다.
양재천 자전거길을 지나 한강 자전거길로 접어들어, 곧이어 영동대교를 건너는데.
“와······.”
다리 위를 올라가니 다 보였다.
서울은 말 그대로 개판이 되어 있었다.
반파되어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영동대교.
아스팔트 밖으로 삐져나온 철근 사이로 보이는 강변북로와 올릭핌대로에 시체와 차들이 뒤섞여 있었다.
-살려주세요!
영동대교를 건널 때, 어디선가 비명도 들렸는데.
구원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사태 발생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길거리에서 ‘사람 살려’라는 말이 들린다면, 낚기 위한 술수일 가능성이 크다.
손정진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앞만 보고 갔다.
-아저씨, 배고파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도,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시간이 지나며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공포심을 느꼈으나,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서울숲을 돌아, 중랑천 자전거길에 접어든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부랑자 두 명이 자전거길 위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딱 봐도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영동대교 건널 때 본 건가.’
자전거 핸들을 옆으로 하여, 돌아가 보려 했는데.
‘스륵’
부랑자 둘은 몸을 꿈틀대며 손정진의 경로를 다시 막았다.
‘맞구나.’
손정진은 허리춤 단검에 손을 올리고, 잔뜩 경계하여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좀 지나갑시다.”
밖에 나오면 사람을 제일 조심하라고, 지혁이 자주 말했었다.
부랑자 중 한 명이 대꾸했다.
“굶주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나?”
벌떡.
부랑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굶주린 사람치곤 쌩쌩해 보였다.
‘생존력이 있는 사람들이네.’
밖에서 지금까지 멀쩡한 상태로 생존했다는 것은, 전투력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자전거와 가방 내려놓고 가라. 우리도 힘 빼기 싫어.”
손정진은 뒤를 돌아봤다.
‘지금 빨리 자전거에 올라타서, 뒤로 돌아가면······.’
부랑자들은 무릎을 굽히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미 늦었어. 더 위험해져.’
자전거 안장에 앉자마자, 무방비 상태로 끌어내려질 것 같았다.
‘2대1.’
다행인 건, 두 사람이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다.
‘빨리 달려가서, 목에 꽂자.’
백만 명의 인파가 몰린 여의도불꽃놀이 현장에서, 홑몸도 아니라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살아남았다.
손정진에게는 야수의 본능이 있었다.
‘스릉!’
허리춤에서 25cm 단검을 꺼내어 꽉 말아 잡고.
“후우!”
기합과 함께, 손정진은 부랑자들을 향해 내달렸다.
***
군자교 아래.
지혁은 이미 도착하여 시계를 보고 있었다.
‘좀 늦네?’
약속 시간보다 10분이 지났다.
시간이 많이 지난 건 아니지만, 손정진은 지혁에게 일을 배웠다.
절대로 빠르거나 늦지 않게, 약속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내려가 볼까.’
5분만 더 기다려보고 한강 방면으로 내려가 볼 생각이었는데.
‘철컥. 철컥.’
멀리서 자전거 페달 소리가 들렸다.
지혁은 활짝 웃었다.
손정진이었다.
‘끼익’
손정진은 자전거를 세우고, 지혁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엄청 반갑다?”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이리와~ 인마~”
지혁은 팔을 벌렸고, 손정진은 수줍게 다가가 안겼다.
토닥토닥.
지혁은 손정진을 안고, 가볍게 토닥이며 물었다.
“괜찮냐?”
손정진은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 피칠을 하고 있었고.
지혁은 그가 오는 중에 전투를 치렀음을 짐작했다.
“아, 네. 크게 다친 곳은 없습니다.”
‘파르르.’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도,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다.
“몇 명이나 만났냐?”
“6명 만났습니다.”
“······ 뭐?!”
지혁은 놀라서 손정진을 바라봤다.
‘혼자 6명을 처리했다고?’
“처음엔 두 명, 그다음엔 세 명, 마지막에 모퉁이 돌아 나오기 전에 한 명이었습니다.”
“하하, 참나.”
지혁은 황당한 듯 웃으며 물었다.
“6명 다 처리한 거야?”
“네, 돌아갈 길이 없기도 하고······ 기다리실까 봐.”
지혁은 어이가 없었다.
“와······ 너 어떻게 살았냐?”
손정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죽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싸웠습니다. 회장님께서 알려주신 대로요.”
지혁은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수십만 명이 죽은 곳에서, 혼자도 아닌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과천 쉘터를 걸어서 왔을 때부터 말이다.
현재 세크 위원들은 은퇴할 때가 되었고, 그다음을 고민 중이었다.
‘손정진이······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 세계’에서 직접 겪어봐서 안다.
결단력, 판단력, 용기, 냉정함, 운.
이런 것들이 없다면,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 혼자서 6명을 해결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니지.’
국방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 것이기에, 빨리 과천 쉘터로 돌아가야 한다.
“정진아, 자전거 버리고, 뒤에 타라.”
지혁은 오토바이로 왔다.
“네, 알겠습니다.”
뒷자리에 정진이 오르자.
“꽉 잡아.”
“네!”
‘부아앙-’
오토바이는 중랑천자전거길을 질주했다.
***
도봉구 창동.
대단지 아파트에 들어섰다.
사람이 살아있지 않는 것인지, 다들 숨죽이는 건지.
대단지 아파트에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344동이랬지?”
“네!”
“어서 앞장서라.”
“알겠습니다.”
지혁과 손정진은 집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720호.’
정진은 처가댁 앞에 섰다.
결혼 후 첫인사.
문을 두드리려는데.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손정진이 머뭇거리자, 지혁이 재촉했다.
“뭐해? 서둘러야 해.”
“아, 네.”
‘똑똑.’
손정진은 목소리를 정갈하게 하여 말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사위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지혁은 황당한 얼굴로 손정진을 바라봤다.
“장난하냐?”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첫인사라······.”
“똑바로 안 할래?”
지혁의 눈빛이 무섭게 변하자, 손정진이 식겁해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쾅! 쾅!’
“장모님! 사위 왔습니다!”
‘쾅! 쾅!’
“장모님!”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 문은 여전히 꽉 잠겨 있었다.
손정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하서연이 저와 한 이불 덮고 잡니다!”
‘덜컹!’
이 한마디에 바로 문이 열렸고.
후다닥!
손정진은 60대 남성에게 멱살을 잡혔다.
“이 새끼가 내 외동딸을!”
“케켁, 장인어른 처음 인사드립니다. 손정진이라고 합니다.”
“손정진?”
뒤에서 장모가 나타났다.
“서연이 남자친구?”
만난 건 처음이지만, 남친 생겼다며 사진 보여준 적이 있어서 얼굴과 이름은 알고 있었다.
장모가 아는 척을 하자, 장인은 멱살을 풀었고.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손정진은 그 자리에서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장인, 장모님께 사위 인사 올립니다.”
절을 한 뒤.
당황하여 눈을 끔뻑이는 두 사람에게, 손정진은 무릎 꿇은 채로 말했다.
“상황이 급박하여 허락없이 결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손정진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두 분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
“어서 가시죠. 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딸이 살아있다는 말에.
철퍼덕.
장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