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5. 넥스트 (2)
장모는 딸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안전하다는 소식에 눈물을 계속 쏟아내었고.
장인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냉정함을 유지했다.
“그 말······ 사실인가? 정말 내 딸이 살아 있는 거 맞지?”
손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의도불꽃놀이에 저 만나러 간다는 말 들으셨죠?”
장인은 그 사실을 모르지만.
“흑흑. 맞아.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고 했었어······ 흑흑.”
장모가 울면서 대답했다.
“왜 하필 포탄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에 데이트 약속을 잡은 건지······ 열불이 나서 진짜.”
손정진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약속 장소는 프로포즈 이벤트를 위해 며칠을 기다려 어렵게 잡은 거였다.
그곳에 포탄이 많이 떨어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저희 선도그룹에서는 위험을 대비하여 쉘터를 만들어 놨거든요. 아내는 그곳에 안전하게 있습니다.”
‘아내’라는 말에 장인의 눈썹이 꿈틀대었으나, 뭐라고 하진 않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손정진 뒤에 있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어?!”
TV와 신문에서 접했던 어딘가 낯익은 얼굴을 보고, 장인과 장모는 놀랐는데.
“선도그룹 회장 오지혁이라고 합니다.”
“어이쿠.”
장인은 그보다 한참 어린 지혁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뭐해? 인사드리지 않고.”
장모는 장인의 채근에 재빨리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고.
지혁은 함께 허리를 숙인 뒤 말했다.
“회사의 중요한 인재가 밖에 꼭 볼일이 있다고 하여 함께 왔습니다.”
“······.”
장인, 장모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손정진을 바라보았다.
-회장이 챙기는 인재라고?
-내 딸 신랑이?
생각지 못한 지혁의 한마디에 손정진은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분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앞으로 손 팀장이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겠어요. 어찌나 두 분 걱정을 하던지. 어서 짐 챙기시죠. 지금 이동해야 합니다.”
장인과 장모는 감동 받은 눈빛으로 손정진을 바라보았고. 지혁은 계속 말했다.
“하서연 씨는 쉘터에 안전하게 있습니다. 쉘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임을 선도그룹과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합니다.”
지혁은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선도그룹의 회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두 사람은 더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장인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따르겠습니다.”
아파트 앞.
지혁과 손정진은 오토바이를 개조 중이었다.
정확하게는 임시방편으로 보조석을 만들었는데.
구리 쉘터에서 출발하기 전에 지혁은 철제연결봉을 챙겼었다.
창동에서 과천까지 자전거로 이동하기엔 너무 멀고, 하서연의 부모가 자전거를 못 탈 가능성도 생각했다.
그래서 오토바이에 보조물을 연결할 수 있는 철제를 가져온 건데.
“정진아, 유모차 튼튼한 걸로 구해와라.”
“알겠습니다.”
아파트 복도를 돌며, 유모차를 확인했고.
그 중 디럭스 사이즈에 바퀴가 튼튼한 것 두 개를 챙겨서 내려왔다.
지혁은 곧바로 철제봉으로 오토바이와 유모차를 연결했다.
“떨어져 있어 봐.”
휴대용 용접기로 연결부위를 튼튼하게 고정하여, 빠르게 달려도 문제가 없도록 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손정진은 지혁의 용의주도함에 새삼 탄복했다.
‘역시······ 우리 회장님이야.’
손정진은 단순히 자전거에 태워서 갈 생각만 했었다. 만약, 장모가 자전거를 못 타면 뒤에 태워서 가려고 했다.
지혁 덕분에, 창동에서 과천까지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할 건 없고, 잘 보고 배워. 이런 세상에 살아가려면 모든 걸 활용할 줄 알아야 해.”
“알겠습니다.”
그때, 장인과 장모가 짐을 한 보따리 싸 들고 내려왔고.
“이, 이게······ 뭡니까?”
오토바이에 연결된 유모차를 보고, 장인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유모차에 앉아서 가실 겁니다. 우선······ 짐이 많네요? 배낭 하나만 빼고 다 버리십시오.”
지혁은 유모차에 앉아서 시범을 보였다.
“수영장에서 튜브 위에 앉듯이, 엉덩이만 걸치고 다리는 안전가드에 걸쳐서 올리세요.”
장인은 침을 삼켰다.
‘이 자세로 과천까지 간다고? 충격이 한곳으로만 쏠릴 텐데.’
지혁은 진지하게 말했다.
“좀 불편하시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손정진은 미안한 얼굴로 두 사람이 유모차에 앉는 걸 도와주었고.
지혁은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후 물었다.
“준비되셨죠? 빨리 달릴 겁니다. 꽉 잡으세요. 손 팀장도 어서 타라.”
지혁은 장인, 장모 앞에서는 그의 이름을 안 부르고 손 팀장이라고 호칭해주었다.
손정진이 뒷자리에 앉자마자.
‘부아앙-!’
오토바이는 굉음 소리를 내며 출발했고.
“어흑!”
고스란히 항문에 전해지는 진동에, 장인과 장모는 비명을 질렀다.
***
합참차장은 심각한 얼굴로 화면에 집중했다.
지혁과의 통화 이후, 과천 쉘터에 1개 연대를 배치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 보고만 있었다.
‘오판하지 마라.’
그룹 회장이 국방부에 한 경고.
합참차장은 지혁의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위협으로 인식되기는 해.’
직원들을 살리기 위해, 전국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지었다는 발상. 합참차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목적과 의도가 있어야만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시각에는, 결코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직원을 구하기 위해서라지만······ 진짜 속뜻은 뭘까?’
고민이 깊어가는데.
보좌관이 다가왔다.
“차장님! 전화 연결입니다.”
“누군데?”
“모르는 사람입니다.”
“뭐?!”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모르는 사람을 전화연결 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짜증이 났다.
보좌관은 그의 표정을 살피고는 재빨리 말했다.
“전화를 끊으려다가······ 아무래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누군데 그래?”
“청주 선도 아울렛······ 점유자라고 합니다.”
부릅!
합참차장은 눈이 커졌다.
“연결해봐.”
“네!”
잠시 후 상황실 스피커에 목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합참차장입니다.”
[······ 혹시 스피커로 통화 듣고 있습니까?]
상황실 인원 모두가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대표자분과 일대일 통화를 원합니다.]
합참차장은 스피커를 끄라고 지시한 후, 귀에 위성폰을 댔다.
“네, 제가 대표자고요. 이제 저만 듣습니다. 청주 아울렛 점유자라고 하셨죠?”
[정확한 명칭은 아울렛이 아니라 쉘터입니다. 저는 선도전자 전 비서실장 추대웅 이사라고 합니다.]
비서실 팀원이었으나, 오 부회장은 그를 비서실장으로 불렀었다.
“네, 그러면 어떻게 호칭하면 될까요.”
[편하게 추 이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추 이사는 선도전자를 퇴사한 이후에 치킨, 빵집, 떡볶이, 보험대리점 등 여러 사장직을 경험했으나.
자신을 소개할 때는 항상 전 선도전자 이사로 소개한다.
“아······ 네. 추 이사님. 무슨 일로 통화를 요청하셨습니까.”
[제가 쉘터를 들어와 보니······.]
추 이사는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최대 10만 명은 수용할 수 있고요. 내부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서, 50년은 버틸 만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실제 점유자라고 하니, 신뢰가 갔다.
현재 위성폰 발신 위치도 분명 선도 청주 아울렛이었다.
[이런 곳을 선도그룹 혼자 쓰기엔 아깝습니다. 공공재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적 재산이니까요.”
[전시에는 필요에 따라서, 공영화시킬 수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얘기를 왜 이 사람이 할까.’
합참차장은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 선도전자에서 왜 나오게 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추 이사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사업하려고 제 발로 나왔습니다.]
“아, 네.”
‘근데 왜 자신을 사장이 아니라, 추 이사라고 소개할까.’
분명 사연이 있어 보였다. 속이 보이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선도그룹 직원도 아닌데, 청주 쉘터는 어떻게 점유하게 되신 겁니까?”
[기다렸다가 뺏었습니다.]
합참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이후 추 이사는 쉘터 내부 환경과 가치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였고, 합참차장은 귀담아들었다.
“쉘터에 대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합참차장은 전화를 끊으려는데.
[잠깐만요.]
“······.”
[합참에 꼭 필요한 정보가 있는데. 이건 맨입으로 못 드리고요······ 관심 있으십니까?]
‘필요한 정보?’
쉘터 점유자의 제안.
지금까지 쉘터에 대한 설명으로 신뢰감도 쌓였고, 쉽게 무시가 되지 않았다.
“뭘 원하시는데요?”
[식량입니다. 청주 쉘터 안에서 거주민들이 며칠째 굶고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소리도 들렸다.
‘50년은 살만하다며? 근데 식량이 없다고?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식량 부족’의 얘기를 들으니 신뢰감이 떨어졌다.
“정보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내키지 않으면 관두셔도 좋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오지혁이 지금 과천 쉘터에 없습니다.]
“······!”
[뭔가 해보시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합참차장은 생각지 못한 고급정보에 눈이 커졌다.
“확실합니까?”
[며칠 전에 저와 마주했었고. 제가 선도그룹 출신이지 않습니까. 내부에 아는 사람이 좀 있습니다.]
“······.”
그래도 못 미더워하자.
[지금 군인들이 과천 쉘터 앞에 진 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믿음이 가나요?]
만약 사실이라면, 작전 전개를 궁리 중인 합참차장에게는 귀가 번쩍 뜨일만한 정보였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
[좋은 자원을 확보하여, 국가와 국민에 기여하는 영웅이 되시면 참 멋지지 않겠습니까?]
합참차장의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식량은 일주일 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
과천 쉘터, 지휘통제실.
오진원과 세크 위원들은 CCTV로 바깥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병력은 점점 늘어나고.”
윤 사장은 답답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회장님이 계셨으면······.’
오진원이 지혁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쉘터를 잘 지키고 있으나.
국군과 대치 중인 비상 상황에서는 뾰족한 의사결정을 못 하였다.
평시에 뛰어난 지휘관이 있고, 전시에 뛰어난 지휘관이 있다.
오진원의 경우 전자였다.
“탱크가 늘어났네요.”
계획된 8만 명 중 6만 명이 입주한 상황.
지금도 밖에는 홍채인식을 기다리는 선도직원들이 있었다.
‘쉘터를 폐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쉘터 폐쇄’를 전개하면, 미사일이 날아와도 못 뚫는다.
단, 더 이상 인원은 받을 수 없으며, ‘쉘터 생태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오진원도 이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이었다.
“폐쇄해야겠죠?”
군사작전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직원 더 받겠다고, 먼저 입주한 6만 명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
어찌 보면, 리더로서 해야 할 당연한 결정인데.
“······.”
세크 위원들은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쉘터 폐쇄’가 전개되면, 돌이킬 수 없다.
오진원은 어느 정도 결심을 한 뒤, 마지막으로 윤 사장에게 물었다.
“회장님 지금도 연락 안 되나요?”
“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죠?”
‘쉘터 폐쇄’가 전개되면 들어올 수 없다.
그러면, 지혁은 다른 지역의 쉘터로 이동해야 하며. 가족 및 지휘통제실과는 떨어지게 된다.
고민되는 게 많았지만.
‘더 늦으면 이도 저도 아니야.’
결국, 오진원은 결심을 내렸다.
“쉘터 폐쇄합시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
세크 위원들은 말릴 수 없었고.
오진원은 폐쇄 레버에 손을 올렸다.
‘지혁아, 미안하다. 이게 최선인 것 같다.’
눈을 질끈 감고, 내리려는데.
[보고드립니다!]
정찰팀에서 긴급 무전이 왔다.
[11시 방면! 양재천 자전거길에서 신원불명체 빠르게 접근 중!]
다급한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유모차로 보이는 물체 두 대가 시속 80km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드론으로 화면 띄우겠습니다!]
“유모차? 이게 뭔 소리야?”
오진원은 레버에서 손을 떼고 화면 앞으로 다가왔고, 세크 위원들도 화면에 집중했는데······.
자세히 보니 유모차가 맞았고, 그 앞에 오토바이가 연결되어 있었다.
80km 속도로 달리는 유모차는 없기에, 정찰팀은 그 쪽에 집중한 것이다.
황 실장은 화면 가까이 다가가, 오토바이 운전자를 유심히 살폈는데.
“회,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