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6. 존경으로 부족하다 (1)
과천 쉘터 앞.
27연대는 작전대기 중이었다.
“전 병력. 안전장치 해제!”
2천 명의 병사들의 소총 안전장치 푸는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합참차장으로부터 작전준비 명령을 받았다.
‘작전 개시’ 명령만 떨어지면, 쉘터로 돌격할 수 있는 상황.
탱크도 기동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치직-’
연대장 옆의 통신병에게 무전이 왔다.
“연대장님, 합참차장님입니다.”
연대장은 보고했다.
“작전준비 끝났습니다.”
잠시 후.
짧은 무전 명령이 떨어졌다.
[작전 개시.]
“네, 알겠습니다.”
연대장은 통신 주파수를 바꾼 뒤, 수화기에 대고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
“전군. 이동하라!”
철컥! 철컥!
제식에 맞춘 병력의 발걸음 소리.
점점 과천 쉘터에 가까워지며, 일촉즉발의 상황에 다가가고 있는데.
위이잉-
쉘터 정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민무늬 회색 전투복.
방탄조끼.
디스플레이와 헤드셋이 부착된 헬멧.
M4 소총.
완전 무장한 군인의 모습이었다.
단신으로 나타난 남자는 헬멧에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선도그룹 회장, 오지혁이다.]
지혁이 목소리는 쉘터의 확성기를 타고 과천시 전체에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모두, 동작 그만!]
움찔.
연대장의 명령에 이동 중이던 병력은, 지혁의 사자후에 걸음을 멈췄다.
본능이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큰일 날 것 같았다.
위이잉-
그때, 쉘터의 여러 개의 문이 동시에 개방되었고.
착! 착! 착!
완전 무장한 회색 군복의 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 순식간에 쉘터 앞으로 나와, 군인들을 멀찍이 둘러쌌다.
“도대체가······.”
연대장은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모두 M4 소총을 들고 있었으며, 방탄복과 헬멧 등 지혁과 같게 완전히 무장한 상태.
그냥 군인이었다.
도저히 민간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
연대장 옆의 작전과장이 말했다.
“여, 연대장님. 못해도 1만 명은 넘겠습니다.”
완전 무장한 병력이 쉘터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고, 그 수는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위이잉-
쉘터 지붕 위, 기관포가 나타났는데.
7열장 개틀링포.
대구경 포.
대량살상 무기였다.
지금처럼 개활지에서 병력이 뭉쳐있을 경우, 기관포를 쓰는 건 개미 사냥이었다.
-뭐야······ 민간인이라며.
-다 죽겠는데?
-이 전투 해야 해?
병력 차이와 기관포에 압도되어, 군인들은 술렁였으며.
가장 앞선 군인들은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지혁은 헬멧 마이크에 대고 다시 말했다.
[합참에 내가 분명히 경고했다.]
겁에 질린 군인들은 지혁의 말소리만 들어도 움찔했다.
[오판하지 말라고. 난 분명 그렇게 경고했다.]
연대장의 손이 떨렸다.
‘몰살이다.’
엄청난 병력과 무기로 포위된 상황.
지혁의 지시 한 번이면, 끝장날 것 같았다.
[마지막 경고다.]
차가운 목소리가 공기를 뚫고, 군인들의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한 발짝만 더 우리 쪽으로 움직이면.]
지혁이 한 손을 들었고.
찰칵! 찰칵!
선도직원 수만 명이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다 죽인다.]
***
국방부, 용산 지하 벙커.
영상으로 현장 상황을 보며, 합참차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씨발, 무슨······ 다 총이 있어?!’
일부 경비원에게만 총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소총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영상으로 추정해봤을 때, 쉘터 밖으로 나온 인원수는 약 2만 명.
이 많은 수가 모두 M4 소총을 들고 있다.
대한민국 군인에게 보급된 것보다 더 좋은 소총을 말이다.
‘저게 다가 아닐 거란 말이야.’
합참 분석관은 과천 쉘터의 수용 인원은 약 6만 명으로 추정했다.
밖으로 나온 2만 명이 모두 완전 무장한 걸로 봤을 때, 나머지 4만 명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쉘터에 대해서 짐작이 안 되었다.
과연 몇 명까지 무장을 할 수 있으며, 어떤 무기가 더 있을지.
짐작이 되지 않으니, 더욱 두려워졌다.
[보고드립니다. 과천 쉘터 측에서 수만 명의 병력이 무장하여 아군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기관포도 확인됩니다!]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현 병력으로는 대응할 수 없습니다. 큰 피해가 우려됩니다!]
합참차장은 고민했다.
과천 쉘터를 완전히 장악하려면.
‘최소 3개 사단은 와야······.’
그 정도는 되어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국군의 주력은 국경에서 적군과 대치 중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교전도 벌이고 있다.
3개 사단 규모를 후방으로 빼서, 선도그룹에 대응시키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어.’
합참차장의 눈엔 선도그룹이 위험해 보였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보유한 자원에 탐이 났다.
‘일단 부딪혀 봐? 어떻게 나오나 보게?’
한참 고민 중에, 작전참모가 다가왔다.
“차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는 최근 합참차장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들이 국가의 위기 상황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며, 선도그룹 직원 또한 국민인데,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
“남자 직원들이 동원령에도 응하지 않았고, 총기를 휴대한 것도 불법이기는 합니다만. 현재 비상시국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이 저들뿐입니까?”
“······.”
작전참모는 평소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합참차장은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벌집 건드리지 마십시오.”
“······.”
“무얼 생각하고 계신 줄 아는데, 과욕입니다.”
합참차장은 눈을 크게 뜨고 작전참모를 바라봤다.
“이봐, 작전참모.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보면 모르십니까?”
작전참모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군사작전 벌이면, 몰살입니다.”
“······.”
“부탁드립니다. 오판하지 마십시오.”
***
지혁은 바싹 긴장했다.
쉘터 밖으로 나오기 전에 전 직원들과 신호를 맞췄다.
첫 번째 손을 올렸을 때, 안전장치를 풀고.
두 번째 손을 올리면, 일제히 사격하는 걸로.
‘승리의 기본은 선제공격이야.’
쉘터 밖으로 나온 무장 직원은 2만 명이다.
비극을 감수하더라도, 순식간에 2만 명의 화력과 기관포를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10분.’
그 정도 시간이면 27연대를 몰살시키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부웅-’
탱크 엔진음이 크게 들렸고.
지혁은 손을 움찔했다.
꿀꺽.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손 올릴 준비를 하고, 탱크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는데.
‘음?’
탱크는 제자리를 돌아서, 포신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래도 지혁은 긴장을 풀지 않고 지켜봤다.
-후퇴하는 거야?
-진짜?
그때, 27연대에서 구령 소리가 들렸다.
“뒤로~ 돌아!”
병력이 일제히 뒤로 돌았고.
쉘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번쩍!’
지혁은 한 손 대신, 양손을 번쩍 들었고.
- 우와아~!
과천 쉘터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이겼다!
-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 나 솔직히 무서웠어!
- 하하!
직원들은 얼싸안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수만 명의 앞에 선 지혁은 물러나는 병력을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며 쉘터를 향해 뒤돌아섰다.
- 회장님! 회장님!
직원들을 지혁을 연호했다.
진심으로 좋아했으며, 일부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우와아~!”
지혁도 허공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쳤다.
과천의 천지가 선도그룹 직원들의 목소리로 흔들렸다.
민간인이 군인을 무력으로 몰아냈다.
직접 전투는 하지 않았지만, 이건 분명히 무력으로 이긴 거였다.
- 회장님! 회장님!
지혁은 큰 환호를 받으며 쉘터 안으로 들어갔다.
***
- 회장님! 회장님!
-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만 따르겠습니다!
- 사랑합니다!
쉘터 내부에 직원들이 2열로 늘어섰고.
그들 사이를 걸어가는 지혁을 향해, 박수치고 환호했다.
청주 쉘터의 직원들을 살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과천 쉘터로 돌아와서, 무력 사용 없이 탱크까지 몰고 온 군인들을 돌려보냈다.
‘그날’이 오기 전에도 지혁은 직원들에게 존경받았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차원이 달랐다.
생명을 구해준 영웅.
존경을 넘어, 숭배의 대상으로 직원들은 그를 환호했다.
- 회장님! 회장님!
한 여직원이 달려 나와 기습적으로 지혁을 껴안았다.
지혁이 살짝 미소 지으며 떼어내자.
그 여직원은 그 자리에서 눈을 까고 실신했다.
열광적이다 못해 지혁에게 미쳐버린 직원들.
교회 집사인 윤 사장은 이 모습을 보며, 약간 우려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러다가 우상 숭배하겠는데.’
오로지 ‘생존’에만 집중된 환경.
인간은 본능에 충실해진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쿵짝. 쿵짝.
그때, 어디선가 음악이 들렸고.
- 우와아~!
- 뛰자!
과천 쉘터 중앙에 모인 수천 명의 직원은 일제히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모르는 사람끼리 껴안고 어깨동무하며, 마음껏 즐겼다.
평소의 정숙하고 수줍은 많은 선도그룹 직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하. 즐기세요!”
심지어 지혁도 박수를 치며, 흥을 돋워주었고.
하얀 옷을 입은 직원들은 지혁의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 춤을 췄다.
세상이 무너져가고, 길거리 시체가 즐비했지만.
쉘터 안에서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
지휘통제실.
“휴······ 개운하네.”
지혁은 상의가 땀에 흠뻑 젖어서 들어왔고.
세크 위원들은 대기 중이었다.
“형님, 저 없는 동안 고생 많았어요.”
지혁은 오진원과 악수하며 말했고.
오진원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때맞춰 와줘서 고맙다. 살 떨리더라.”
지혁이 없는 5일 동안.
오진원은 쉘터 전체의 지휘를 맡으며 몸무게 3kg가 빠졌다.
모든 결정에 생사가 달렸다고 생각하니 압박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자연히 살이 빠졌다.
지혁은 중앙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청주 쉘터 이주민들은 괜찮아요?”
구미와 화성 쉘터로 간 이주민들의 상황이 궁금했다.
황 실장이 대답했다.
“화성으로 간 이주민들은 별다른 이상 없이 도착했습니다.”
특임대 2팀장 남규혁이 이끌었던 그룹.
지혁은 그에게 중간 보고받은 후,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가 이끈 이주민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었다.
문제는······ 구미로 간 이주민들이다.
“구미 쪽은요?”
“그게······.”
황 실장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했다.
무리에 부랑자들이 섞여서, 구미 쉘터장이 받지 않으려 했고. 그로 인해 직원패찰을 뺏기 위한 대혼란이 벌어졌다는 것.
“팀장 또 바꿔야겠네.”
나름 머리 쓴다고 했으나, 그 정도 상황을 예측 못 하는 사람을 팀장으로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황 실장은 대혼란이 극적으로 정리된 과정을 설명했는데.
“심우민?!”
못해도 반은 죽었겠다고 생각하며 참담한 기분으로 듣다가, 지혁은 깜짝 놀랐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었다.
“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상황을 정리했고, 무사히 선도직원과 가족들을 구미 쉘터로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선도사가인 ‘희망의 노래’로 무리를 구분했다고······.”
“하하. 참나.”
지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세크 위원들은 대부분 예순이 지났고.
지혁은 지금 젊은 인재가 고팠다.
“어디서 근무하는 직원인데요?”
“선도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입니다. 나이도 29세밖에 안 됐습니다.”
“와······ 신입사원이라고요? 너무 좋은데요?”
‘그럼 타고난 거잖아?’
리더 경험이 없는 자가 수만 명을 통제하여 사람을 구해냈다는 건,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지혁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화상통화 연결해주세요! 얼굴 좀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