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20. 협박의 대가 (2) >
‘죽이겠다’라는 말에 추 이사는 아무 대꾸도 없었고.
지휘통제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지혁의 위압감에 눌려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추대웅. 왜 말이 없지?”
잠시 후.
스피커에서 추 이사의 음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듣고 있다.]
추 이사 또한 지혁에게 반말했다.
예전에 모시던 직장 상사이긴 했지만, 퇴사한 지 오래되었고 연장자니까.
[그걸 협박이라고 하나? 아무 소용없다.]
“협박 아니야. 살인 예고라고 할까.”
[······.]
“조용히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넌 선을 여러 번 넘었다.”
[웃기는 소리. 오지혁 너는 절대 날 못 죽인다. 난 쉘터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거든.]
“그럼, 들어가서라도 죽인다. 지금까지 나는 표적을 놓친 적이 없다. 비서실장 할 때 옆에서 봐서 알 텐데?”
[······.]
“한다면 한다. 넌 내 손에 죽는다.”
추 이사는 아무 대꾸가 없었고.
지휘통제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허허.]
추 이사의 음울한 웃음소리.
지금까지 벌인 일도 그렇고, 이 상황에 웃는 모습도.
세크 위원들은 그가 제정신으로 안 보였다.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오혜빈 사장 가족 찾아서 죽이라는 거지?]
“······.”
[어떻게든 날 죽일 거라면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거 아니야?]
오진원의 표정이 굳었다.
추 이사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협상하려는데, 도리어 지혁이 협박하고 있었으니.
“지금 오 사장이 네 손에 들어갔나? 너무 자신하는 거 같은데.”
[······.]
“자신감은 잡은 뒤에 가지면 될 것 같고······ 그래, 네가 오 사장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하든 죽게 될 거야. 그건 맞아.”
“지혁아······.”
오진원이 옆에서 지혁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말렸는데, 지혁은 그의 손을 밀어냈다.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잖아? 허튼짓하지 않는다면 곱게 죽을 거고, 그렇지 않으면 너의 죽음을 목격하게 될 거야.”
‘내 죽음을 목격한다?’
추 이사는 지혁의 말이 선뜻 이해가 안 되었다.
‘죽음 따위······.’
퇴사한 후, 시도한 모든 일들이 안 되었다.
사업 실패를 되풀이하여 생활고를 겪었고, 아내와 자식마저 떠났다.
추 이사에게 애써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복수심만 가득했다.
[그런 말, 나한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쓸데없는 소리는······.]
“육사시미 좋아하나?”
지혁은 갑자기 먹는 얘기를 했다.
“아무리 강성인 녀석들도, 자기 몸이 부위별로 구분되는 걸 보면 부드러워지더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입에서 살려달라는 소리 나오게 할 거라는 거야.]
[······!]
끔찍한 말에 세크 위원들도 미간을 찌푸렸다.
“넌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가 될 거고, 네 몸이 종아리부터 갈빗살까지 부위별로 구분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
“몸 속의 신장과 대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는 거지. 그리고 서서히 피가 말라서 죽어가는 거야. 물론 나도 즐길 거고. 원수의 살을 발라낼 때 쾌감은 정말······.”
[······.]
뚝.
추 이사는 더 듣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뭐야? 끊은 거야?”
지혁은 세크 위원들을 돌아봤는데.
“······.”
모두 기겁하는 얼굴로 지혁을 보았다.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끔찍한 표정이었는데.
“왜들 그래요?”
“······.”
아무도 대꾸가 없었고, 황 실장은 의자를 조금씩 뒤로 물리고 있었다.
“아~”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에이~ 전략이잖아요. 전략. 트래쉬 토크 몰라요?”
“······.”
“상대방 기죽이려고 위협적으로 말한 거예요. 욕하고 싸울 때 더 심한 말도 하는데, 이 정도 갖고 뭘 그래요?”
허 부사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그렇죠? 하하.”
세크 위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마디씩 했다.
- 회장님, 놀랐잖아요.
- 어떻게 자기 몸속을 보면서 죽어가요.
- 상상만 해도 끔찍해.
오진원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오 회장, 아무리 트래쉬 토크라도, 이런 건 좀 피하자.”
“하하. 형님 있을 때는 피해 볼게요.”
비위 약한 윤 사장은 ‘육사시미’ 부분부터 귀를 막고 있었는데.
얘기가 끝난 것으로 보이자, 귀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회장님, 아무래도 제가 제안한 대로 하셔야겠는데요. 추 이사보다 빨리 가려면 구미 쉘터에서 출발하는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과천에서 가면 늦습니다.”
윤 사장은 심우민에게 맡겨 보자고 제안했었다.
청주의 북서쪽에 있는 청주 쉘터.
구미의 서쪽에 있는 구미 쉘터.
두 곳에서 속리산 캠핑장까지의 거리는 비슷했다.
추 이사의 손에 오혜빈 가족이 넘어가면 골치 아파진다.
속도가 중요해진 상황.
이제 더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지혁은 상황 근무자에게 지시했다.
“구미 쉘터 연결해 줄래요.”
“알겠습니다!”
자정을 넘은 새벽이었지만, 연락을 꺼리지 않았다.
지혁은 쉘터장을 포함한 주요직책자들은 24시간 대기하라고 지침을 줬었다.
자다가도 급한 일로 호출하면 무조건 응답해야 한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구미 쉘터장입니다.]
화면에 쉘터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자다가 나왔는지 머리가 눌려있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밤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지혁은 황 실장에게 눈짓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설명을 시작했다.
“오혜빈 사장님이 행방불명됐거든요. 마지막 위치가 속리산으로 확인됐는데······.”
상황 설명을 다 들은 후.
구미 쉘터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출동하겠습니다.]
세크 직속답게, 쉘터장은 지혁의 지시에 토 한번 달지 않고 임무를 받아들였다.
지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서 얘기를 듣던, 윤 사장이 불쑥 말했다.
“심우민 대리 좀 불러주실 수 있습니까?”
***
약 10분 뒤.
심우민은 후드티의 모자를 둘러쓰고 화면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잠결에 나와서요.]
“괜찮아.”
지혁은 심우민의 인사를 받는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황 실장이 다시 상황 설명해주려는데.
“황 실장, 내가 할게.”
윤 사장이 나섰다.
“심 대리. 회사에 위급한 일이 생겼는데, 자네에게 맡기려고 하네.”
윤 사장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심우민은 어두운 얼굴로 얘기를 들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표정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그러니까, 결론은 간단해. 빨리 속리산 캠핑장으로 가서, 오혜빈 사장님 가족을 구출하면 된다.”
[······.]
심우민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고, 윤 사장은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왜? 자신 없나?”
화면에는 심우민과 쉘터장이 함께 보였는데.
심우민은 썩은 표정으로 옆에 앉은 쉘터장을 향해 말했다.
[구미 쉘터 직원들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며, 수만 명이 문 열어달라고 절규해도 눈도 깜짝 안 하시더니······ 사람 한두 명 구하는 일에 아주 적극적이시네요?]
아무리 비상시국이라도 엄연한 직급 차이가 있는데, 너무 건방진 태도였다.
그런데, 쉘터장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직급과 상관없이 심우민은 현재 구미 쉘터에서 영웅 대접받고 있었으니.
[쉘터장님, 이렇게 쿨한 분이셨어요?]
[······.]
화면 속에 쉘터장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지혁은 재밌다는 듯 이 모습을 웃으며 지켜봤다.
결국, 윤 사장이 나섰다.
“심 대리, 개인적인 얘기는 나중에 풀고, 지금 회장님 기다리시잖아. 할 수 있겠나?”
심우민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한테 선택권이 있습니까? 회사 일이잖아요. 직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어.’
약간 건방지긴 하지만,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태도가 지혁은 마음에 들었다.
윤 사장이 말했다.
“설명할 때 얘기했지만, 급한 일이네. 당장 출발할 수 있겠나?”
심우민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저 지금 얘기 들었습니다. 저한테 지휘권을 맡긴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그렇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상황 파악 좀 하고 움직이겠습니다.]
“급하다니까?”
[10분이면 됩니다. 저한테 맡기실 거면 제 식대로 했으면 합니다.]
‘10분 만에 전략 구상한다고?’
“알겠네.”
[그럼 곧 다시 연결하겠습니다.]
팟!
대답도 듣지 않고, 심우민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
황 실장은 옆에 앉은 윤 사장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아무리 봐도 심우민이 탐탁지 않았다.
구미 쉘터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건 인정하지만.
심 부장의 아들인 그가, 지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게 불안했다.
윤 사장도 귓속말로 답했다.
“우리한테 나쁜 선택지가 아니야. 이번 일로 판명이 나겠지.”
정확히 10분 뒤.
[심우민입니다.]
그가 화면에 나타났다.
[지금 바로 출발할 건데요. 요청사항이 있습니다.]
윤 사장이 대답했다.
“얘기해 보게.”
[완전 무장을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M4 자동소총도 필요합니다.]
“가서 다 청소하겠다는 건가?”
[그건 상황에 따라서 결정하겠습니다.]
‘흠······.’
윤 사장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선도그룹은 출장 중에 완전 무장 하는 걸 지양했다.
불시에 당하기라도 하면, 선도그룹의 자산인 자동소총과 군사 장비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 인원은?”
[저 포함 4명입니다.]
“뭐?!”
‘이 사람이 아까 상황 설명을 못 들었나? 캠핑장이 거대하던데. 만약에 세력을 형성했다면 100명이 넘을지도 모를 일인데.’
[인적 자원은 최소화할 테니, 무기 자원을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그의 요청사항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지혁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사람 대신 무기를 믿겠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하하.”
지혁은 웃으며 생각했다.
‘훈련이 부족한 사람들보다는 화력을 믿겠다는 거잖아.’
냉정하게 머리를 쓸 줄 안다고 보았다.
“그래, 그렇게 해. 다만, 캠 챙겨가서 작전 상황을 지휘부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라.”
지혁은 지시를 내린 뒤, 윤 사장을 보았다.
“윤 사장님 들으셨죠? 허락하겠습니다.”
윤 사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심우민이 물었다.
[회장님, 불가피한 경우 사살해도 됩니까?]
“물론이야. 위험을 무릅쓰지 말고, 적극적으로 방어해.”
위험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쏘라는 말.
심우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상황 설명할 때 빠진 얘긴데. 추 이사 일행이 나타날 수도 있거든?”
[추 이사라면······.]
처음엔 놀랐다가, 심우민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청주 쉘터의 불한당들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꼭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심우민은 벼르고 있었다.
그들 덕분에 많은 동료가 죽었고, 가족들이 고생했다.
“혹시 나타나면 말이야. 추 이사까지 올 가능성은 적지만.”
[네.]
지혁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나머지는 심 대리한테 맡길 테니, 추 이사는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라. ”
[······.]
“걔는 내꺼야.”
지혁의 차가운 말에 지휘통제실에 싸늘한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는 것 같았고.
심우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케이, 수고.”
팟!
화면이 꺼졌고.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수고 많으셨고.”
세크 위원들과 오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모두 위성폰 꺼내서, 저한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