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21. 속리산 (1) >
“회장님······.”
황 실장은 서운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지만.
“어서요.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하고 들어가죠.”
지혁은 지휘통제실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세크 위원들에게 말했다.
윤 사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허 부사장은 입맛을 다셨고, 고 전무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오진원이 말렸다.
“회장님, 의심할 사람이 따로 있지. 설마 세크 위원들이······.”
“형님도 위성폰 주세요.”
“······어? 나도?”
“네.”
지혁은 오진원과 세크 위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을 못 믿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거예요.”
“······.”
“지금 막 나온 얘기를 추 이사가 알고 전화했습니다. 이 정보가 어디서 흘러나갈 가능성이 가장 클까요?”
“······.”
“오혜빈 사장 위치추적을 한 사실을 아는 분들은 지금 지휘통제실에 계신 분들 뿐이거든요.”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뭐, 도청 장치가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우선은 가까운 분들부터 하나씩 확인해 봐야죠.”
지혁은 윤 사장에게 위성폰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의심이 아닌 확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근데, 왜 가장 먼저 나한테 손 내미세요?”
“바로 옆에 계시니까요.”
윤 사장은 서운한 표정으로 지혁을 바라봤는데.
지혁은 그를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로 윙크하고는 빨리 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쳇······ 너무 하시네.”
윤 사장은 주머니에서 위성폰을 꺼내어 건네었고, 이후 세크 위원들은 차례대로 꺼내서 주었다.
지혁은 여전히 지휘통제실 문 앞을 가로막은 상태에서 말했다.
“가져가서 강제로 열어보는 건 아닌 거 같고요. 이 자리에서 통화랑 메시지 확인할 테니까요······ 윤 사장님부터 잠금 해제해 주세요.”
“사적인 정보인데.”
“어서요.”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지만, 윤 사장은 가족들과만 연락하고 꺼릴 게 없기에 바로 잠금 해제했다.
“음······.”
지혁은 쑥 훑어보더니.
“오케이. 별거 없네요. 다음 허 부사장님?”
“회장님, 죄송한데. 제 폰은 혼자 봐주시면 안 될까요?”
“네? 왜요?”
“회장님 앞에서 보이는 게 좀······.”
“네? 프라이버시 지켜드리려고 앞에서 보는 거잖아요.”
“하아······ 안 되는데.”
허 부사장은 울상을 지으며, 위성폰 패턴을 열었고.
지혁은 통화기록부터 살핀 후, 메시지를 읽었다.
[아빠, 언제 와?]
[몰라. 졸려 죽겠는데, 오지혁은 왜 이렇게 아무 때나 사람을 불러내는지.]
[고생이다, 진짜. 우리 아빠 연세도 많으신데.]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웬만한 건 알아서 하지······.]
[무슨 일인데?]
[그건 얘기 못 해줘. 회사 일이잖아.]
[알려주면 뭐 어떻다고. 치. 아빠는 회사 일에는 너무 철벽 치시더라.]
지혁은 문자 내용을 보고 충격받았다.
‘오 회장도 아니고, 오지혁?’
아무리 가족 간의 대화라도, 회장이라도 명칭도 빼먹었다.
지혁이 신입시절, 인사팀장 때부터 보여준 열혈 충성심의 허 부사장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저한테 불만이 많으셨나 봐요.”
“······ 죄송합니다.”
허 부사장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했다.
“제가 오늘 많이 피곤해서······ 딸한테 실언했습니다. 평소엔 안 그렇습니다······.”
눈앞에서의 모습과 매우 달라서 좀 놀랐지만, 딸에게조차 회사 일을 철벽 치는 걸 확인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지혁은 허 부사장에게 위성폰을 건넨 후 황 실장의 핸드폰을 열려는데, 허 부사장이 말했다.
“회장님······ 저의 충성심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오해 안 합니다. 본대로만 믿습니다.”
허 부사장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혁은 황 실장의 폰을 확인 후 돌려주며 말했다.
“황 실장님, 잘 봤습니다. 부인과 대화 안 하고 사세요?”
희한할 정도로 너무 기록이 없었다. 폰은 왜 들고 다니나 싶을 정도로.
그나마 있는 아내와의 메시지도, 실무적인 느낌의 단답형이었다.
[밥은?]
[먹었어.]
[몇 시 도착?]
[모름.]
[기다리지 말고 자.]
[수고.]
“매일 얼굴 보는데 연락은 왜 하냐며, 귀찮아합니다.”
“아들은요?”
황 실장에게는 시안이와 동갑내기 아들이 있다.
“아들은 말 걸어도 대꾸도 안 하는데요.”
황 실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고, 윤 사장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12살이면 그럴 때 됐지. 중학교 가봐라. 쳐다도 안 본다.”
“그런 말씀 마세요. 슬퍼져요.”
지혁은 고 전무를 바라봤다.
“전무님 차례입니다. 잠금 해제해 주세요.”
그는 굳은 얼굴로 꿈쩍도 안 했다.
“고 전무님? 못 들으셨어요?”
여전히 가만히 있었고, 지혁은 머뭇거리는 그가 의심스러워졌다.
다른 세크 위원들도 미심쩍은 눈길로 고 전무를 바라봤다.
“마지막입니다. 잠금 해제하세요.”
지혁은 여차하면 움직일 생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고 전무는 굳은 얼굴로 내내 땅을 보다가.
“알겠습니다. 다만, 확인하시려는 목적 이외의 것은 문제 삼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
“남들은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전 진심이거든요.”
고 전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물론이에요. 내부자인지 여부만 확인할 겁니다.”
고 전무는 떨리는 손으로 잠금 해제했고.
‘흠?!’
지혁은 메시지를 보다가 깜짝 놀라서, 고 전무를 바라봤는데.
그는 입술을 깨물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하아······.”
지혁은 한숨을 쉬고는 고 전무의 핸드폰을 닫았다.
“의심스러운 건 없네요.”
“······.”
‘이래서 남의 사생활은 보지 말라는 건가? 하필이면 왜 유부녀를 만나는 거야?’
세크 위원들은 높은 도덕성을 갖길 바랐는데, 고 전무의 메시지는 꽤 충격이었다.
알게 돼서 불편한 진실.
하필이면, 유부녀도 지혁이 아는 사람이다.
이 또한 ‘쉘터 생태계’에서 충분히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고 전무님은 나중에 따로 얘기 좀 하시죠.”
“······네.”
지혁은 오진원의 핸드폰까지 확인한 후에 말했다.
“다 확인했고요.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세크 위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가능성을 완벽히 배제한 건 아닙니다. 행동 조심하시고, 자신도 모르게 정보가 새어 나가지는 않는지 항상 점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
구미 쉘터.
심우민은 새벽 4시경, 특임대를 소집했다.
“본부에서 특별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
“총 필요 인원은 3명입니다. 먼저 지원받겠습니다. 함께 작전 수행하실 분?”
특임대는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구미로 못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팀장이셨던 두 분은 지원 자격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구미로 오는 동안 여러 번의 삽질을 보였던 최성수와 안태욱은 제외했다.
“없으십니까? 함께 하시면 좋을 텐데.”
“······.”
“오케이. 그럼 제가 지목해야겠군요.”
심우민은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 오래 끌지 않았다.
“저는 이 작전에 대한 지휘권을 받았습니다. 지시에 대한 거부는 쉘터 퇴출인 거 알고 있으시죠?”
여전히 특임대는 대답이 없었다.
“자, 그럼, 빠르게 선정하겠습니다.”
심우민은 기다렸다는 듯, 청주에서 구미까지 올 때 눈여겨봤던 특임대원 3명을 선정했다.
방금 지원자를 물었던 건, 독단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절차를 밟기 위함이었다.
“지금 선정되신 분들에게는 특혜가 있어요. 작전 수행 후에 과천 쉘터로 이동하게 될 거예요.”
- 우왓!
- 진짜요?!
- 하하! 대박!
선정된 대원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특임대원들은 과천 쉘터에 있다가 작전 때문에 밖으로 나왔으며, 그들의 가족은 과천 쉘터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
임무로 인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된 그들은, 과천 쉘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 너무 반가웠다.
- 이런 게 어딨어요!
- 선정할 때 얘기해줬어야죠!
뒤늦게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특임대원들이 불만을 토로했으나.
심우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눈치 챙기셔야죠. 제가 구미 쉘터로 못 돌아올 수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심우민은 원하는 대원들로 선정하고 싶어서 특혜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안 한 거였다.
“선정되신 분들은 완전 무장해서 밖으로 나오세요. 저도 가족들 만날 생각하니 좋네요.”
심우민의 가족 또한 과천에 있다.
집은 서울이지만, 사업부가 청주에 있어서 기숙사 생활했었다.
***
심우민은 대원들에게 상황 설명을 한 후 물었다.
“모두 아시겠죠? 요약하면 오혜빈 사장님 가족 구출 작전입니다.”
작전지도를 펼쳐놓고 말했다.
“위성지도로 보니까, 68번 국도가 가장 깨끗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997번 국도로 우회해서 갑니다.”
- 깨끗한 도로로 가야 안전하지 않나요?
- 도로가 안 좋으면 이동하기가 어려울 텐데.
심우민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죠?”
“······.”
“그래서 사람이 적을 걸로 예상되는 도로로 가는 겁니다. 오토바이로 이동할 거니까요. 길이 끊겨 있지 않은 한 이동에 제한은 없을 겁니다.”
심우민은 작전지도에서 캠핑장 주변의 언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곳이 캠핑장 상황을 살피기에 가장 위치가 좋습니다. 여기서 적인지 살핀 후에, 섬멸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 적인지를 어떻게 알아봅니까?
- 섬멸이라는 게 뭐야? 다 죽이겠다는 거예요?
심우민은 살짝 미소 짓고는 말했다.
“차례대로 말씀드리죠. 사람들 간의 관계를 관찰해보면, 말이 통할지 안 통할지 알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면, 적으로 간주합니다.”
“······.”
“그리고 적이라면 섬멸이 깔끔합니다. 그게 가장 안전하니까요.”
심우민은 자동소총과 소음기를 두들기며 말했다.
“우리에겐 장비빨이 있지 않습니까.”
“······.”
“적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상황 본 후에 결정하겠습니다."
대원들은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십 대의 청년이 참 신기했다.
심우민은 오토바이에 타기 전,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는데.
“실수로 죽일지라도, 실수로 죽지는 마세요.”
지혁이 평소에 많이 하던 말이었다.
***
예상대로 길은 좋지 않았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전혀 안 마주친 건 아니지만, 자동소총으로 완전 무장한 사람들에게 감히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른 아침, 속리산 사내리 캠핑장에 도착했다.
“완전 산속이네?”
캠핑장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산속 깊은 곳에 있었다.
오토바이를 은폐시킨 후, 심우민이 지시했다.
“모두 조용히 따라오세요. 포인트로 이동합니다.”
위치를 봐뒀던 캠핑장이 보이는 언덕 위로 이동한 후.
딸깍!
쉘터 지휘부에 송신될 캠을 켜서, 헬멧에 달았다.
“포인트 도착. 지금부터 구출 작전 전개합니다.”
한동안 수풀 속에 숨죽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찰했는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왜 목줄을 하는 거야?’
일부가 목줄을 하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대부분 노약자와 여성들이었다.
‘젠장······ 세력화된 건가?’
지혁이 작전 지시를 내릴 때 ‘세력화’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했었다. 워낙 외딴곳에 있기에 가능성이 크다면서 말이다.
‘세력화가 되었다면, 권력을 쥔 사람들이 적이야. 그 사람들은 말 안 통해. 뭐라도 얻어내려 할 거야. 협상하려고 주는 순간, 말리는 거야.’
심우민은 지혁의 지침을 떠올렸고.
‘적이다.’
목줄을 차지 않은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빨리 오혜빈 가족분들 위치 확인하세요. 얼굴 기억하죠?”
-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진을 보여준 후 얼굴 확인시켰다.
적으로 정의한 이상,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전투를 치르려면, 신변 확인부터 빠르게 해야 한다.
한참을 숨죽이고 관찰하다가.
‘음?’
캠핑장 옆 개울가에, 바닥에 쪼그려 앉아 목줄을 차고 밥 먹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뒤돌아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는데.
“건너편으로 가서, 저 아이 얼굴 확인 좀 하고 올래요?”
“알겠습니다.”
심우민의 지시를 받은 대원은 건너 쪽 언덕으로 가서, 쌍안경으로 그 아이를 살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는 뒤돌지 않았다.
잠시 후, 대원이 돌아와서 말했다.
“정아윤,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