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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81화 (281/301)

< 외전23. 약속은 지켰다 >

[으앙- 삼촌~!]

정아윤이 지혁을 찾으며 울부짖는 모습이 메인화면에 적나라하게 보였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지휘통제실에 울려 퍼졌다.

[으앙-]

- 하아······ 울음소리에 한이 맺혔네.

- 아, 속상해.

- 젠장, 딸 생각나네.

세크 위원들은 속상해했고.

오진원은 정아윤을 따라서 울고 있었다.

“아윤아······ 흑흑.”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무서웠단 말이야! 으앙-]

빠득!

지혁은 이빨을 깨물었다.

하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화면만 뚫어지게 볼 뿐이었다.

[회장님, 통화 연결해드릴까요?]

지혁은 곧바로 대답했다.

“하지 마라.”

그때 오진원은 바꿔 달라고 말하려 했는데.

지혁은 마이크를 손으로 막고, 오진원에게 말했다.

“형님, 하지 마세요.”

“애 달래줘야지. 지금 무서워서 저러잖아.”

“다 끝나고 달래줘도 됩니다. 지금 작전 중인 요원들이 감정적으로 동요되면 안 돼요.”

“지혁아, 그래도······.”

지혁은 오진원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상황 근무자에게 말했다.

“마이크 끄세요.”

“알겠습니다.”

현장으로 연결된 마이크를 꺼버렸고.

오진원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부터 정아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엄마는 놀기 싫다고 하는데, 아저씨들 여러 명이 데려갔어요······.]

들을수록 충격적이었다.

정아윤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오혜빈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 아니, 이게 말이 돼?

- 사태 발생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일이 생긴다고?

- 아윤이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다들 처음엔 쉽게 믿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 구체적이었다.

아이가 충격을 받고 지어낸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

이젠 지휘통제실에 수군거림이 사라졌으며, 정적 속에서 화면만 보았다.

인간이 이렇게 빨리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산속에 사람도 없고, 단절되어 있다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도구처럼······ 이건 좀 심하긴 했어.’

상황이야 어찌 됐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정아윤과 대화를 끝낸 뒤.

심우민은 감정적인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

[회장님, 심우민입니다.]

“그래.”

[아윤이 얘기하는 거 들으셨죠.]

“들었다.”

[적입니다. 확인했습니다.]

후우- 후우-

심우민은 흥분으로 숨소리가 거칠었고, 지혁은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가라앉혀라. 전투 시작 전에 냉정하지 못하면 실수한다.”

지금 누구보다도 흥분해야 할 사람이, 흥분하지 말라며 주의시키었다.

지혁은 차분하며 냉정했다.

지휘통제실의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도 그가 너무 침착하니까,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사내리 섬멸작전 시작하겠습니다.]

“승인한다.”

지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놈도 살리지 마라.”

***

사내리 캠핑장.

순식간에 두 명이 죽었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두 사람 모두 비명 없이 즉사했기에 캠핑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찰칵.

캠핑장 가까운 곳에서 기계음 소리가 들렸다.

심우민을 포함한 특임대원 4명은 캠핑장 바로 앞 수풀 속에 몸을 숨긴 뒤. 각자 맡은 텐트 입구를 조준하고 있었다.

팟.

쿵.

텐트에서 누군가 나와서 두 걸음만 떼면, 곧바로 쓰러졌다.

가까운 위치에서 확대경으로 조준사격을 하니, 백발백중이었다.

소음기 때문에 총소리도, 화염도 보이지 않았다.

팟. 팟.

사내리 캠핑장에는 정숙한 가운데 점점 시체가 쌓여갔다.

텐트 밖으로 나오면 죽는 거였다.

어느 정도 시체가 쌓이자, 텐트 밖으로 나오는 수가 적어졌다.

“어휴, 진짜. 이게 사람 새끼야. 발정 난 개새끼야.”

목줄을 찬 한 여성이 투덜대며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어?”

눈 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눈이 커졌다.

그녀는 두 발자국 이상 떼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녀를 옥죄는 목줄이, 지금은 생명줄이었다.

“꺅-!”

바닥에 널브러진 수십 구의 시체.

여성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고.

- 뭐야? 무슨 일이야?

- 왜! 왜!

텐트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팟. 팟. 팟.

그리고 학살이 시작되었다.

목줄을 차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머리, 목, 심장 등의 급소에 총을 맞고 쓰러졌으며.

- 사람 살려!

- 어디야! 누구야?!

팟. 팟.

어디선가 들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시체만 쌓여갈 뿐.

어디서 쏘는 건지.

누구를 쏘는 건지.

왜 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대응할 수 없었다.

하늘의 심판처럼, 목줄을 차지 않은 사람들은 죽어갈 뿐이었다.

“텐트로 들어가! 나오지 마!”

그중 한 남자가 외쳤고.

팟.

이 외침이 그 남자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황급히 텐트로 돌아가던 중에 몇 명이 더 죽었고.

“······.”

사내리 캠핑장에 죽음의 고요가 흘렀다.

맑고 푸른 시냇물이 핏물로 변하고.

초록 잎사귀는 붉게 물들었다.

***

심우민은 수풀 속에서 좀 더 기다렸다.

캠핑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아무도 감히 텐트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차례 바람이 불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제 적이 있다는 건 인지했겠지.’

지금부터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심우민은 특임대원들에게 모이라고 손짓했다.

각 포인트에서 텐트를 겨냥하던 특임대원들은 총구를 거두고 심우민에게 다가왔다.

“모두 소음기 해제하세요.”

찰칵!

“방검복 다시 확인하시고요.”

상대방의 무기는 칼이다.

근접전을 벌이면 당할 수 있으므로, 방검복을 착용했다.

“모두 준비 끝났죠?”

- 네!

심우민은 가장 가까이 있는 텐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청소 작전 돌입합니다. 목줄도 방해되면 사살하세요.”

- ······.

“우리의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리하게 목줄 찬 분들 피하려다가 당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눈치 빠른 적들은, 목줄은 사살 안 한다는 걸 알고 방어막 삼을 수도 있거든요.”

심우민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인질로 삼고 위협하면, 다 죽이세요. 우리는 네 명이 전부입니다. 한 명 당하면 팀 전체가 위험해지는 거예요. 절대로 당하면 안 됩니다.”

- 알겠습니다!

심우민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앞장섰다.

몸을 숙이고 조심스럽게 첫 번째 텐트로 가까이 다가갔다.

특임대원 세 명은 사주경계를 하며, 심우민을 따랐다.

텐트 주변에 위치한 뒤, 심우민은 특임대원에게 말했다.

“둘은 주변 살피고, 당신은 저랑 같이 안에 청소합니다.”

“알겠습니다.”

심우민은 방아쇠 위에 검지를 올리고, 특임대원 한 명에게 신호를 보냈다.

확-!

특임대원이 텐트 입구를 걷자마자.

탕. 탕. 탕.

텐트 안에 숨어있는 남성들을 향해 자동소총을 갈겼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살육이었다.

생명의 움직임이 없자, 심우민은 안으로 들어가 적들이 죽었는지 건드려본 뒤.

“클리어. 다음 텐트로 갑시다.”

탕. 탕. 탕.

소총 소리가 한동안 속리산에 메아리쳤다.

텐트를 하나씩 청소해 나갔다.

“히익!”

눈치를 챈 일부 남성이 텐트를 뛰쳐나와 도망치면.

탕!

사주경계 중인 특임대원이 놓치지 않고 조준사격으로 정리했다.

아주 깔끔한 청소였다.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

어느덧 모든 텐트를 청소하고, 가운데 가장 큰 텐트만 남았다.

“마지막 텐트입니다. 이번엔 다 같이 들어갑니다.”

텐트 하나 남겨놓은 상황.

깔끔히 청소했기에, 밖에 사주경계 인원을 남겨놓을 필요는 없었다.

딸깍!

탄창을 갈아낀 뒤, 특임대원에게 텐트 입구를 걷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확!

찰칵!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려다가.

‘어?!’

턱수염이 수두룩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앞에 세우고, 칼을 들고 있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여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오혜빈 사장님인 것 같은데.’

초췌했지만, 묘하게 지혁과 닮은 듯한 외모.

분명 사진으로 봤던 오혜빈이 맞았다.

허름한 원피스 비슷한 걸 입고 있어서, 불빛에 실루엣이 비쳤는데, 다행히 속옷을 다 입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오혜빈의 또렷한 눈빛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안 늦었구나.’

하지만 텐트 안에는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고, 여기저기 체액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정아윤의 얘기를 들으며, 혹시나 싶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전시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더니······.’

참혹한 현장을 보고 나니.

심우민은 너무 화가 났다.

이곳에서 피해당한 여성들, 모두 심우민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지금 화가 나는 건 인간성에 대한 실망감일 것이다.

“인간이 방패가 된다고 생각하나?”

심우민은 턱수염에게 말을 걸었다.

“뭐?”

“너 총 쏴본 적 없지? 사람이 방패가 되겠냐고. 총알이 사람 두 명 뚫는 건 일도 아니야.”

“······.”

“나 같으면 다른 걸로 가렸지.”

심우민은 일부러 실실 웃으며, 미친놈처럼 행세했고.

턱수염은 당황하여 말했다.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건데? 누가 보냈어?”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심우민은 턱수염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살고 싶지?”

“······.”

“우리 재밌는 게임 하나 할까?”

“······.”

심우민은 총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가 심장을 쏠 테니까, 뭐든 앞을 가려봐.”

“뭐?!”

“만약 총알을 막아내면, 살려줄게.”

“······.”

“여기 캠핑 장비 많잖아. 뭐든 상관없어. 단, 지금 이 텐트 안에 있는 것만 활용하기야. 어때? 재밌겠지?”

“미친놈······.”

찰칵!

심우민은 장전하고 말했다.

“싫으면 그냥 지금 죽고. 어떡할래?”

턱수염은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으니까.

“정말······ 막아내면 살려줄 거야?”

심우민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니까. 그 여자를 방패로 삼아도 상관없어. 근데 나라면 그런 선택은 안 하겠어.”

턱수염은 여전히 머뭇거렸고.

심우민은 총구를 그의 심장에 겨눈 뒤 말했다.

“3초 준다.”

“아, 알았어! 알았어!”

턱수염은 오혜빈을 옆으로 밀어낸 후, 한쪽 구석에 있던 코펠을 짚어서 심장 앞에 대었다.

심우민은 오혜빈을 챙기라며, 특임대원에게 눈짓을 주었다.

턱수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 지켜야 해!”

“알았다니까. 준비됐어?”

“후우~ 오케이!”

턱수염은 코펠을 꼭 안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탕!

“큭!”

턱수염은 코펠을 안은 채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는데.

코펠은 총알 자국으로 움푹 들어갔지만, 뚫지는 못했다.

턱수염은 아파서 괴로워하면서도, 웃으며 좋아했다.

“하하, 살았······.”

“아, 한 번에 안 뚫리는구나?”

“어?”

탕! 탕! 탕!

심우민은 코펠을 향해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탕! 탕! 탕!

여러 번 한 곳에 명중되자, 코펠 바닥이 뚫렸다.

심우민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 지르며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씨발!”

탕! 탕! 탕!

턱수염은 이미 의식을 잃었고, 그의 살점과 코펠의 쇠 파편이 함께 튀기고 있었지만.

탕! 탕! 탕!

가슴 형체가 사라질 정도로,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특임대원들은 끔찍하여 고개를 돌렸다.

딸깍.

더 총알이 나오지 않자, 심우민은 한숨을 쉬고는 총을 던져버렸다.

“후우······.”

그의 눈이 돌아가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죽이 된 턱수염 남성.

“약속 지켰다.”

심우민은 후련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번 쏜다고는 안 했잖아.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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