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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84화 (284/301)

< 외전26. 그물 (2) >

딸깍.

지혁과의 전화를 끊은 뒤, 심우민은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총을 수풀 속에 은폐한 후.

단검 두 자루를 꺼내어 잡았다.

몇 번 휘둘러본 뒤.

‘20분 버티려면······.”

가방에서 끈을 꺼내어 단검과 손을 묶어버렸다.

일전에 구미 쉘터 앞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 단검을 오래 쥐고 있기가 어려웠던걸 떠올렸다.

20분간 단둘이 정신없이 싸워야 하는데, 무기를 잃어버려선 곤란하다.

“뭐 하십니까?”

특임대원은 이상한 눈길로 심우민이 하는 걸 지켜봤다.

“꽤 긴 시간 싸워야 하는데, 손아귀 힘이 풀릴 수 있으니까요.”

“총 놔두고요?”

특임대원은 아직 총을 들고 있었다.

“아, 말씀 안 드렸구나. 어서 총 숨기세요.”

“네?”

의아한 얼굴로 물었는데, 심우민은 계속 추 이사 일행을 주시하며 말했다.

“총 쏘면 다 도망갈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 기다리기로 한 거 아닌가요?”

특임대원은 심우민이 단검을 손에 묶는 모습을 불안하게 보았다.

‘설마, 둘이서 저 수십 명을 상대하자는 건 아니겠지?’

심우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저놈들 지금 가려는 거 안 보이나요?”

“······.”

“못 가게 막아야죠.”

“그러니까, 그걸 우리 둘이서······.”

알아듣게 얘기했는데도, 특임대원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특임대원을 보며, 심우민은 말했다.

“왜요? 무서워요?”

“······.”

“무서우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갔다 올 테니까.”

“자, 잠깐만요. 혼자 어딜 가세요.”

심우민은 인상을 팍 쓰며, 반말이 나왔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당신 특임대원 아니야?”

“······.”

“빨리 결정해. 갈 거야? 말 거야?”

‘특임대원 아니냐?’라는 물음.

이 한마디에 함축된 뜻을 알기에, 특임대원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알겠어요. 같이 가요.”

심우민은 그가 양손에 단검 묶는 걸 도와준 후 물었다.

“안 풀릴 것 같죠?”

“네.”

“그럼 갑시다.”

심우민은 곧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괴한의 뒤로 다가가서, 목을 칼로 그어 버렸다.

- 으아악!

그는 쓰러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괴한들은 일제히 심우민과 그의 뒤에 머뭇거리던 특임대원을 바라봤다.

‘헉, 씨발.’

순식간에 특임대원은 심우민과 함께 위험에 노출되었다.

- 뭐해!

- 빨리 잡아!

- 옷 보니까, 선도그룹 놈들이네!

괴한들 수십 명이 뛰어왔고.

심우민은 웃으며 특임대원에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열심히 싸우세요.”

이제 망설일 이유는 사라졌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특임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우민 옆에 서서 공격 자세를 취했다.

“시간 끄는 게 목적입니다. 무리하게 공격하지 마시고.”

“무리하기 싫습니다.”

어느덧 괴한들은 공격 거리까지 다가왔고.

“우악~!”

심우민은 양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

심우민과 특임대원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이리저리 도망치며 찌르고 벤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심우민은 지쳤고 몸에 핏자국은 점점 많아졌다.

“헉. 헉.”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심우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었다.

‘젠장, 왜 이렇게 안 오시는 거야.’

- 칼 버려!

- 저. 손에 묶고 있는 거 봐.

- 독한 놈.

- 빨리 그냥 죽이자.

영락없이 죽게 될 타이밍.

심우민은 머리를 굴렸다.

“추 이사!”

심우민은 추 이사를 큰 소리로 불렀다.

“추 이사! 거기 있나?”

‘추 이사’를 부르는 소리에 괴한들은 멈칫했고.

잠시 후, 음울한 얼굴의 반삭발 남자가 괴한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 불렀나?”

심우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렸어도, 회사 선배님이잖아. 살려주면 안 돼?”

추 이사는 어이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말투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지? 회사 선배님이라고 부르려면 좀 공손해야 하지 않을까?”

추 이사는 심우민을 골똘히 보다가 말했다.

“너가 심우민이구나?”

“······!”

심우민은 깜짝 놀랐다.

‘날 알아?’

추 이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깡도 좋고, 듣던대로 괜찮아 보이네.”

“날 어떻게 알지?”

심우민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추 이사는 다른 말을 했다.

“난 선도그룹이 하려는 건 다 알아.”

그는 묘한 눈길로 심우민을 보다가 말했다.

“내가 아무한테나 제안하는 거 아닌데.”

“······.”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이라도 투항해라. 여기서 벌인 일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심우민은 황당한 얼굴로 추 이사를 보다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정상인은 아니네.”

심우민은 먼 곳으로 시선을 한번 돌린 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비는 게 어때?”

“뭐?”

“혹시 알아? 그러면 그분께서 곱게 죽여주실지.”

“하하.”

추 이사는 큰 소리로 웃었다.

“호기로운 건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건지.”

심우민의 시선은 여전히 멀리 있었다.

“글쎄, 상황 파악은 너가 못 하는 거 같은데.”

“자꾸 선배한테 말 그딴 식으로 할 건가?”

“난 너처럼 정신 나간 선배 둔 적 없어.”

빠직.

추 이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새끼가, 좀 전에 먼저 선배라 부르더니.’

어린 사람과 입씨름하면, 나이 많은 사람만 손해다.

추 이사는 괴한들에게 빨리 처리하라고 손짓을 한 후, 뒤돌아서는데.

“추대웅.”

심우민은 심지어 이제 그를 추 이사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함께 일해봐서 잘 알잖아. 우리 회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말이야.”

“······.”

“왜 그랬어?”

“뭘?”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어?”

추 이사는 심우민이 죽을 때가 되어 실성했나 싶었다.

“이 어린놈이, 닥치고 그냥 죽······.”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푹! 푹!

- 으악!

- 아악! 내 눈! 내 눈!

괴한들 무리 뒤쪽에서 칼질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고.

순간 홍해 바다 갈라지듯, 비명이 들린 곳으로 괴한들 무리가 갈라졌다.

“오, 오지혁!”

추 이사는 눈알이 떨어질 만큼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지혁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양손에 들고, 웃으며 말했다.

“추 이사······ 씨발, 너무 보고 싶었다.”

***

- 죽여! 죽여!

- 밀리면 안 돼!

- 아니! 왜, 저 한 사람을 못 막아!

선도그룹의 최고 수장인 지혁에게 괴한들이 몰렸지만.

사사삭-

지혁의 단검은 무채 썰듯이 현란했고.

괴한들은 추풍낙엽으로 쓰러졌다.

- 케켁

심우민을 공격하려던 한 괴한의 입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목뒤에서 지혁이 찔러 넣은 것이다.

“깜짝이야.”

심우민은 칼날의 주인을 확인하고, 당황하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뭘. 우리 화면으로 봤잖아.”

사사삭-

심우민은 한 사람 상대하기도 버거웠는데, 지혁은 대화하는 중에도 노룩(no look)으로 두세 명을 상대했다.

‘와······ 사람이 칼을 저렇게 다룰 수도 있구나.’

심우민은 절로 감탄이 되어, 혀를 내둘렀다.

첩보 영화에서 볼만한 신기에 가까운 칼 솜씨였다.

그 짧은 칼날로 적의 공격을 다 막아내었으며, 공격은 짧고 단순했다.

지혁이 찌르거나 휘두를 때면 꼭 한 명씩 쓰러졌다.

- 커컥.

방금도 여러 차례 방어하다가, 한번 휘두르니 괴한의 얼굴이 위아래로 찢어졌다.

‘공격 방식도 너무 잔인하고.’

생명을 뺏거나, 더는 전투를 벌일 수 없도록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심우민은 그와 함께 싸우던 중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회장님, 근데 왜 둘이 오셨습니까? 더 오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좀 있으면 올 거야. 그래서 내가 총 안 쓰잖아.”

지혁은 계속 공격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선도그룹! 모두 내 주변으로 모여!”

뿔뿔이 흩어져서 싸우던 직원들이 지혁을 중심으로 모였다.

등을 맞댄 네 사람.

괴한들은 점점 좁혀왔다.

심우민이 말했다.

“회장님, 우리 숫자가 너무 적은데, 지연시키려면 벌려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해. 생각이 있어.”

짧게 뱉은 한마디에, 심우민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화면으로 봤던 것과 아주 달랐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카리스마였다.

지혁은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조금만 더 버텨!”

개미 떼 사이에 초콜릿 하나가 떨어진 형국.

사방에서 괴한들이 지혁의 무리를 향해 점점 좁히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공방을 주고받던 중.

피융-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고.

“회장님!”

손정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려 지혁을 막았다.

푹!

손정진의 등에 화살이 꽂혔다.

“큭!”

멀리 한 남자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석궁을 들고 있었고.

“정진아!”

손정진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정진! 정신 차려봐! 정진아!”

쓰러진 손정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지혁은 눈이 돌았다.

“이 새끼가.”

갑자기 지혁은 석궁을 쏜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 막아! 막아!

- 윽!

- 니가 막아봐.

- 이 사람이 진짜 선도그룹 회장 맞아?

괴한들 사이로 미친놈처럼 돌진하는 지혁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석궁을 쏜 남자는 다시 장전하려는데, 지혁의 기세에 눌려서 손이 떨렸고.

꽉!

어느새 다가온 지혁의 손에 멱살이 잡혔다.

“네가 한 행동에 책임은 져야지?”

눈빛이 돌아있는 지혁의 눈을 마주하고, 남자는 소변을 지렸다.

지혁은 칼자루를 반대로 잡고.

날카로운 면이 아닌, 뭉툭한 면으로 남자의 이마를 내리쳤다.

“으악!”

뭉툭한 면으로 내려치니, 이마가 배지는 게 아니라 움푹 들어갔다.

빡!

빡!

빡!

지혁은 남자의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같은 곳만 내려쳤고.

쫙-

수박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혁은 흰자위만 보이는 남자를 바닥에 내팽개친 뒤.

바지가 젖어 있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개새끼가, 냄새 존나 나네.”

모두 얼어붙어서 지혁의 짐승 같은 행동을 보았다.

‘진짜, 회장 맞지?’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회장보다는 조폭에 가까운 거 같은데.’

“뭐해! 어서 공격해!”

멀리서 추 이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안 그러면 너희들 다 죽는다. 죽기 싫으면 공격해!”

괴한들은 지혁과 눈이 마주쳤고.

공포심은 곧 생존 의지로 바뀌었다.

“우와아~!”

이젠 죽을힘을 다해 달려들었고.

지혁, 심우민, 특임대원 세 사람은 한데 뭉쳐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심우민이 물었다.

“회장님,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남 팀장 올 때까지.”

“빨리 치료 못하면 손 팀장님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쓰러져 있는 손정진이 신경 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올 때가 됐는데.’

탕!

아주 멀리서 총소리 비슷한 게 들렸고, 지혁은 미소 지었다.

곧바로 심우민과 특임대원에게 말했다.

“내가 신호 주면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

“네?”

흐읍-

지혁은 캠핑장 전체가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선도그룹! 발사!”

그리고 멍하니 있는 심우민과 특임대원을 손으로 누르며 소리쳤다.

“엎드려!”

세 사람은 싸우다가 말고, 갑자기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 뭐야?

- 왜 저래?

- 항복인가?

괴한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다! 다! 다! 다!

캠핑장 주변에서 화력이 쏟아졌다.

초콜릿을 둘러싼 개미 떼 무리.

피할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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