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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86화 (286/301)

< 외전28. 기다려온 시간 >

추 이사는 기겁한 얼굴로 말했다.

“미친 거 아니야? 이봐! 심우민! 당신이 보기엔 오지혁이 정상인으로 보여?”

겁에 질린 얼굴로 계속 떠들었다.

“포로를 죽이는 게 어딨어? 말이 되냐고. 먼저 잘 구슬려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게 순서 아닌가? 청주 쉘터는 아직 우리 손에······.”

지혁은 칼을 그의 얼굴 옆으로 가져가더니.

싹둑.

귀 한쪽을 잘라버렸다.

“으아악~!”

추 이사는 귀가 없어진 자리를 손으로 막고,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댔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말이 많아. 넌 그냥 마지막까지 나랑 있다가 가면 돼.”

“으아악! 허억! 아악!”

추 이사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옆에서 심우민도 기겁한 얼굴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즐기시는 거 같은데?’

지혁의 얼굴은 정말로 신나 보였다.

“밸런스를 맞춰야겠지? 떨어진 걸 붙일 순 없는 거고.”

곧바로 칼을 반대쪽 귀로 가져가자.

“하지 마! 하지······.”

털썩.

추 이사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기절해 버렸다.

지혁은 실망한 얼굴로 축 처져서 바닥에 널브러진 추 이사를 바라봤다.

“실망인데? 담력 좀 있을 줄 알았는데.”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누구나 고통 앞에선 정직해진단 말이야.’

온갖 허세를 떨며, 강한 척하던 추 이사. 귀 한번 잘라주니 아주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심우민은 난감한 표정으로 추 이사의 귀가 있던 자리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보았다.

“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지혈부터 시킬까요?”

“지혈을 왜 해? 어차피 죽일 건데.”

심우민은 약간 우려가 되었다.

‘이렇게 해도 되나.’

지혁이 말했다.

“텐트에 넣어놔.”

“정말로 죽이실 겁니까?”

“죽여야지.”

지혁은 피 묻은 칼을 추 이사의 옷에 닦으며 말했다.

“몇 가지 궁금한 것 좀 물어보고.”

그는 텐트를 향해 걸어가다가, 심우민을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가 들리든, 절대 방해하지 마라.”

***

남 팀장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구미 쉘터에 도착했다.

“문 열어요! 어서요!”

손정진의 맥박은 캠핑장에서 출발하기 전보다 더 약해져 있었고.

남 팀장은 마음이 급했다.

“빨리 열라고!”

[누구십니까?]

구미 쉘터는 입주를 끝낸 상황이라, 밖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특임대 2팀, 남규혁 팀장이라고 합니다.”

[······.]

구미 쉘터는 남 팀장을 잘 모르는 듯, 바로 대꾸가 없었다.

잠시 후.

[화성 쉘터에 계셔야 하는 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속리산 작전’은 비밀 작전이었기에 각 쉘터 지휘부는 몰랐다.

“오 회장님 특별 작전 때문에 나왔습니다! 작전 중에 위급한 환자가 생겨서 온 거예요. 매우 급합니다!”

남 팀장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엎어져 있는 손정진을 가리켰고.

정문의 CCTV가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다치신 분이 누구십니까?]

“선도물산 상품기획팀 손정진 팀장입니다!”

구미 쉘터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손정진 팀장님?!]

“누군지 아시죠? 회장님 최측근이고, 직속 후배십니다!”

위이잉-

더 질문은 없었으며, 바로 문이 열렸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의료진 대기 시키겠습니다.]

손정진 본인은 아직 잘 못 느끼지만.

그는 그룹에서 꽤 유명했다.

지혁의 최측근으로 직원들에게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그날’ 이후로 손정진은 ‘세기말 결혼식’, ‘처가댁 구출 작전’ 등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할 만한 일들을 벌이며 명성을 얻었다.

입구 바로 안쪽에서 대기 중인 들것에 옮겨탔고.

이동하는 손정진을 보며 직원들은 수군거렸다.

- 손 팀장님이래.

- 어머, 어쩌다가 저렇게 되셨을까.

- 위험한 일 많이 하시더니, 결국엔······.

응급실에 도착한 뒤, 의사는 바로 바이털 체크를 했다.

“생명에 지장이 갈만한 부상은 아닌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선생님, 꼭 살려주십시오. 회장님이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못 살리면 큰일 납니다.”

“······.”

“반드시 살리라는 회장님 특별지시입니다.”

의사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선도그룹에서 지혁의 존재감이야 원래 대단했지만, ‘그날’이 온 이후로는 신격화되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엄청났다.

‘회장님의 특별지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야 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신이 와도 못 살렸을 겁니다.”

가까운 구미 쉘터로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하니,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남 팀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주지시켰다.

“회장님께서 꼭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의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쫙-!

“어푸!”

끼얹진 물에 추 이사는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여기가 어디지?’

어두컴컴한 텐트 안에 노란 촛불 하나 켜져 있고.

‘욱.’

두 손은 줄로 묶여 천장에 연결되어, 줄에 의지해 매달린 듯 서 있었다.

‘내 옷?!’

홀딱 벗겨진 채, 속옷 한 장 입고 있지 않았는데, 도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해놓은 건지.

당혹스러움보다도 공포심이 앞섰다.

“언제까지 잘 거야? 할 얘기가 많아.”

어둠 속에서 음침한 목소리와 함께 지혁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히익.”

추 이사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짐승 같은 소리를 내었고.

줄. 줄.

소변이 나왔다.

정확히는 스스로 나와버렸다.

뜨거운 소변 줄기가 발에 닿은 후에야 느낄 정도로, 추 이사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생리적 현상이었다.

“왜 이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혁은 웃통을 벗고 다가갔는데.

‘왜 이렇게 흉터가 많아?’

사십 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군살 없는 근육질 몸매 위에, 여기저기 흉터가 가득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대화를 나눠볼 건데.”

“······.”

“대화가 잘 풀리면 빨리 죽을 거고, 그렇지 않으면 늦게 죽게 될 거야.”

추 이사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추 이사, 당신 똑똑하잖아? 이쯤 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알 것 같은데.”

추 이사는 지혁의 돌은 눈빛을 보고, 기겁하여 다급히 말했다.

“궁금한 거 물어봐! 다 얘기해줄 테니까! 완전히 협조적으로 할 테니······.”

스걱-

지혁은 그의 갈빗대의 결을 따라서, 살점을 베어냈다.

“으악-!”

추 이사는 거품을 물며 비명을 질렀고.

지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은 내가 허락할 때만 하라고. 전에 내가 통화하면서 했던 말 기억하나? 겁주려고 한 말인 줄 알았지?”

“제발! 제발······.”

마신 것도 없는데, 추 이사는 계속 소변을 지렸다.

“살려······ 아니, 죽여줘. 제발. 하지 마.”

추 이사는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되어,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사람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 알아? 신장 하나 정도는 떨어져도 꽤 살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정말 눈 뜨고 자기 몸속 탐험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추 이사는 소리쳤다.

“질문할 거라며! 질문을 해야 답변하지! 질문도 안 하면서 이러면······ 으악-!”

지혁의 칼은 또 움직였고.

“기절하면 더 늦게 죽일 거야. 꾹 참아.”

“우에엑.”

추 이사는 구토하기 시작했다.

고통이 위를 자극한 것이다.

‘정신 차리자.’

힘들지만 버텨야 했다.

지혁은 정말 말을 뱉은 대로 할 것 같았고, 추 이사는 이 짓을 오래 견디고 싶지 않았다.

“자~ 가장 궁금했던 거부터 물어볼게.”

지혁은 이제야 질문을 시작했다.

“제발 물어봐. 제발······.”

“끄나풀이 누구야?”

“······.”

“선도그룹에 있잖아. 정보제공자가 누구냐고.”

“······.”

지혁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칼을 들었으며, 추 이사는 기겁하여 소리쳤다.

“지, 지금! 대답하려고 하잖아!’

“천천히 해도 돼.”

“한다고! 지금 말해!”

지혁은 추 이사의 몸에 칼을 대려다가 멈추었다.

“헉. 헉.”

추 이사는 숨을 몰아쉰 후에 말했다.

“고승윤 전무야.”

***

지혁은 물끄러미 추 이사를 바라보다가.

“못 믿겠어.”

스걱-

지혁은 추 이사의 몸에 칼질을 했고.

추 이사는 괴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으악-! 야 이 미친놈아! 그럴 거면 왜 물어봐!”

“진실을 듣고 싶은 거지.”

추 이사는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정말이라고! 내가 지금 왜 거짓말을 하겠어!”

“······.”

“고 전무가 맞아!”

지혁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 라인이었고, 세크 위원인 고 전무가······ 배신?! 아니야. 믿을 수 없어.’

고 전무는 투박하긴 해도, 꽤 진실된 사람이었다.

이마의 색을 살펴본 지는 꽤 오래되긴 했지만, 절대 배신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야. 그 사람일 리 없어.”

다시 칼날을 들이대려는데.

“불륜!”

꿈틀.

지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추 이사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불륜이라고! 불륜!”

얼마 전에 위성폰 불시 검사했을 때, 고 전무의 폰에서 불륜의 흔적을 발견했던 게 떠올랐다.

‘추 이사가······ 그걸 알아?’

추 이사는 술술 말했다.

“고 전무는 장남일 이사 와이프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오래됐어! 너가 비서실장일 때부터 ······.”

장남일 이사.

지혁이 선도그룹 비서실로 발령받았을 때, 의전팀장이었으며 반목하는 사이였으나.

선도물산 대표직을 맡을 때, 장 이사를 비서실장으로 데려갈 정도로 지혁의 사람이 된 인물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마지막까지 지혁의 곁에서 최선을 다했다.

‘불륜을 저질러도, 왜 하필 장 이사 아내일까 싶었는데.’

“같이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꽤 친해졌다고. 넌 비서실장 하느라 몰랐겠지만, 우리끼리 모여서 술도 한잔하고 그랬어. 특히, 장 이사 집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는데, 아내가 미인인데다가 띠동갑이라며 자랑이 대단했거든.”

추 이사는 턱을 덜덜 떨면서 필사적으로 말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앞뒤가 맞았다.

지혁의 눈으로 직접 불륜 증거를 목격했었으니까.

“내가······ 고 전무 위성폰을 검사했었거든?”

추 이사는 침을 삼키고, 지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왜 고 전무와 너가 나눈 기록을 못 봤을까?”

“고 전무 위성폰이 두 개야.”

“두 개라······ 좋아. 그럼 고 전무는 일을 열심히 해줬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어.”

선도그룹에서 세크 위원이라면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 거였다.

“뭐가 아쉽다고 고 전무가 네 말을 따랐을까?”

“그야, 내가 협박했으니까!”

추 이사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전무는 장 이사 와이프한테 진심이거든. 불행해지길 바라지 않더라고.”

“······.”

“까발리겠다고 하니까, 말 잘 듣던데?”

‘하아······.’

지혁은 한숨을 쉬었다.

“좋아. 믿어줄게.”

“······.”

“언제부터 만나기 시작해서, 어떻게 정보를 주고 받고, 무슨 첩보를 공유했는지 등.”

칼날을 들어, 추 이사 한쪽 눈동자 바로 앞에 두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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