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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88화 (288/301)

< 외전30. 들켜버린 관계 (2) >

구미쉘터.

손정진은 천천히 눈을 떴는데.

그의 눈 앞에 여러 얼굴들이 보였다.

웅성웅성.

처음엔 눈 앞이 뿌옜고 그들의 말 소리도 정확히 안 들렸는데.

- 손 팀장님!

- 정신이 드십니까?!

- 아! 다행이야. 눈 뜨셨어!

사람들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하여, 무심결에 상체를 일으켰는데.

“으윽!”

옆에 있던 간호사가 손정진을 부축하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여기가 어딥니까?”

응급실 문이 열리며, 남 팀장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손 팀장님!”

“아, 네. 남 팀장님.”

그는 손정진의 손을 꼭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다행입니다. 휴우~ 살아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손정진은 속리산 캠핑장에서 정신없이 싸웠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이후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멍한 얼굴로 생각하다가.

‘아, 맞다. 화살.’

자신이 어쩌다가 다쳤는지 순간 떠올랐고.

“회장님! 회장님은요?! 괜찮으세요?”

손정진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혁이 무사한지부터가 걱정되었다.

남 팀장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무사하시고요. 작전도 완벽하게 종료됐습니다. 추 이사도 신병도 확보했고요.”

휴우-

손정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남 팀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전화 연결 좀 해주세요. 저 멀쩡하다고 보고드려야 해요.”

남 팀장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방금 죽다 살아난 사람이········· 충성심 뭐야?!’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손정진에게 위성폰을 건네주었다.

[네, 오지혁입니다.]

“회장님, 저 손정진입니다.”

지혁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퉁명스럽게 말했다.

[살았냐?]

“네, 무사합니다.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다음부턴 죄송할 짓 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래. 고맙다. 과천에서 보자.]

뚝.

전화가 끊긴 뒤, 손정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혁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건, 그의 기억에 처음이었다.

***

“너무 오래 걸리시는 거 아니야?”

심우민은 초조한 얼굴로 텐트 밖에서 기다렸다.

꽤 긴 시간, 추 이사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고, 간간이 지혁의 웃음도 섞여서 들렸다.

그러다가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니까 이상하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겠지. 들어가 볼까.’

지혁이 절대로 방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에, 감히 텐트를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회장님 말 들어야지. 큰일 난다.’

이번 작전에서 지혁을 처음 실제로 만나봤는데,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질려버렸다.

심우민도 보통은 아니지만, 지혁은 인간 자체가 다른 레벨이었으니까.

벌컥!

텐트 천을 거칠게 걷으며 지혁이 밖으로 나왔다.

“회장님, 괜찮으십······.”

괜찮냐고 물어보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안에서 뭘 했기에?!’

웃통을 벗은 몸에 흉터 자국이 가득하고, 그 위로 피칠을 하고 있었는데.

“혹시 다치셨습니까?”

흉터 자국 위에 피가 묻어있으니, 마치 다친 것처럼 보였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닦을 거 아무거나 줘봐.”

심우민은 뛰어가, 배낭에서 수건 하나를 꺼내어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지혁은 무심한 얼굴로 몸에 묻은 피를 닦았고.

심우민은 옆에서 이를 지켜보다가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습니까?”

“그냥, 할 얘기가 많았어.”

“······.”

심우민은 생각했다.

‘이상하다. 말소리는 거의 안 들렸는데.’

비명 말고는 거의 들은 게 없었다.

“추 이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다.”

“아, 네.”

예상했던 일이라,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심우민은 자연스럽게 텐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뭐하냐?”

지혁의 물음에 심우민은 대답했다.

“묻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회사 선배인데.”

“그럴 필요 없어. 여기가 사람 사는 곳도 아니니까, 썩게 내버려 두면 돼.”

“······.”

“쓸데없이 에너지 소모하지 마라.”

땅에 묻을 필요도 없었지만, 지혁은 심우민이 추 이사의 몰골을 보지 않길 바랐다.

‘아직은 감당 안 될 거야.’

시체를 고깃덩어리로 볼 수 있는 수준이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죽이는 것과 해체하는 건 다른 얘기니까.

“그래도 제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마.”

“······ 알겠습니다.”

지혁은 윗도리를 입은 후 말했다.

“과천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지혁은 먼저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갔고, 심우민은 그의 뒤를 쫓아가다가.

‘아씨, 도저히 궁금해서 안 되겠어.’

지혁의 뒷모습을 본 후.

심우민은 텐트를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다.

“우웩-!”

텐트 천장에 걸려 있는 건, 도저히 사람의 형체라고 볼 수 없었다.

“우우욱-”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속에 있는 걸 게워냈고.

지혁은 그가 텐트 안 상황을 살폈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척했다.

‘호기심이 많네. 보지 말라면, 보지 말지.’

잠시 후, 심우민이 오토바이로 왔다.

“하아······ 죄송합니다.”

“속이 안 좋았어?”

“네? 아, 네.”

부릉-!

시동을 켠 뒤.

지혁은 시계를 보았다.

‘18시.’

잠시 생각하다가.

‘과천까지 3시간······ 아무래도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지혁은 평소에 고 전무를 높게 평가했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심 대리.”

“네.”

“통화 한 번만 하고 가자.”

“알겠습니다.”

“자리 좀 피해줄래.”

“네. 알겠습니다.”

심우민이 수풀 뒤로 사라진 뒤, 지혁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아빠! 게임 좀 그만하고 빨리 와서 밥 먹어!

작전도 이상 없이 완료된 걸로 확인했고, 칼퇴하여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지혁이 없을 때가 윤 사장에겐 곧 휴가니까.

위이잉-

윤 사장은 신나게 게임기를 두들기다가, 발신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회장님.’

웬만해서는 저녁 시간에 지혁이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 어떻게 된 게, 우리 아빠는 연세를 드셔도 저렇게 게임을······.

“야야, 조용히 해봐. 회장님 전화!”

회장님 전화라는 말에 온 가족이 조용해졌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어디세요?]

뜨끔.

윤 사장은 퇴근 시간 이후에 집에 왔지만, 지혁이 외근 중이라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집입니다.”

[아, 집이시구나.]

현재 시각 오후 6시 10분.

[10분 늦게 연락드렸는데, 벌써 집이시구나.]

“너무 그러지 마세요. 내일모레 은퇴할 나이인데.”

윤 사장은 눈치 보는 게 싫어서 볼멘소리했고.

[하하. 누가 뭐라고 했어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지혁은 이유 없이 전화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윤 사장은 바로 물었다.

오랜 시간 가까이서 일해서,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주변에 사람 있나요?]

“가까이에는 없습니다만, 보안이 필요한 얘기입니까?”

[네.]

“잠시만요.”

윤 사장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가볍게 전화했어도, 상대는 선도그룹의 회장이다.

지혁의 말 한마디가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알기에, 윤 사장은 지혁과 대화할 때는 항상 조심했다.

“회장님, 이제 말씀하십시오.”

[추 이사 잡았다는 소식 들었죠?]

“네, 심 대리에게 보고 받았습니다.”

[죽이기 전에 심도 깊은 대화를 하다가, 들은 얘기가 있는데요.]

‘죽었어?’

윤 사장은 예상했던 일이기에, 매우 놀라진 않았다.

[제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비서실 직원들끼리 장 이사 댁 자주 갔던 거 사실인가요?]

“네, 그때는 그랬었습니다. 장 이사님이 집에 데려가는 걸 좋아했어요. 당시 비서실장님께 같이 가자고 말씀 못 드렸던 이유는······ 아시죠?”

아무리 같은 라인이라도 지혁은 직속상관이다. 퇴근 후 시간까지 함께 하는 건 불편했다.

[사실이구나······.]

윤 사장은 그의 한숨 섞인 혼잣말을 듣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말씀을 좀 해주시면······.”

지혁은 추 이사에게 들은 ‘고 전무 불륜’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고.

“정말요?!”

윤 사장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부자가 고 전무였다고?! 그리고 장 이사님 아내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아······ 이상하네요. 형수님이 미인인 건 사실이지만, 고 전무와 그런 낌새는 전혀 못 느꼈었는데.”

[티 나게 하면 불륜이겠어요.]

“티 나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건 정신 나간 거고요.]

“아, 네. 그렇죠.”

윤 사장은 불안했다.

지혁의 성향상, 너무 과격하게 이 일을 처리할까 봐 염려되었다.

‘고 전무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회사에 기여한 바가 큰데······.’

[지금 당장 특임대 소집해서, 고 전무 잡아들이세요.]

예상대로였다. 지혁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추 이사가 연락 안 되는 거 알면, 눈치챌 수도 있으니. 지금 바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오래된 동료를 잡아야 하는 게 윤 사장은 영 불편했지만, 지혁의 지시는 따라야 했다.

[고 전무 어떤 사람인지 아시죠? 불시에, 한 번에 덮치셔야 해요.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사안은 비밀로 합니다.]

지혁은 윤 사장의 실력을 믿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주의를 주었다.

“네, 완료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뚝.

지혁은 전화를 끊었고.

윤 사장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여보~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회사 일~”

***

윤 사장은 특임대원 20명을 지휘통제실 앞으로 소집했다.

세크 위원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고 전무 체포 작전’을 말하지 않았다.

“······.”

소집된 특임대원들에게도 윤 사장은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작전 하달하지 않는 게 이상하여 선임 대원이 물었다.

“사장님, 저희 집결 다 했는데 명령 하달을······.”

“모두 저 따라오세요.”

윤 사장은 작전 목표는 설명하지 않고, 특임대원들을 이끌고 고 전무 집으로 향했다.

고 전무의 집 현관 앞에 도착하여, 윤 사장은 위성폰을 들었다.

“형님~ 저 현성입니다. 집에 계세요?”

윤 사장이 고 전무보다 직급은 높지만, 나이는 고 전무가 더 많다.

[네. 윤 사장님. 집에 있습니다.]

세크 위원들은 모두 사이가 좋다.

사적인 자리에서 윤 사장은 고 전무를 ‘형님’이라 칭하지만, 고 전무는 직급이 높은 그에게 깍듯이 존대했다.

“아, 네. 집에 있으시군요. 퇴근길에 맥주나 한잔했으면 하는데, 집에 들러도 괜찮을까요?”

[아유~ 좋죠. 어디신데요?]

“집 앞입니다.”

[잠시만요.]

특임대원들은 고 전무 룸의 모든 출입구를 막아섰고.

윤 사장이 기다리는 룸 현관 양옆에는 특임대원 6명이 은폐하여 대기했다.

“내가 신호 주면 바로 체포하세요.”

“알겠습니다.”

타닥. 타닥.

문 안에서 발소리가 가까이 들리자, 윤 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오랜 동료를 잡아들여야 하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덜컹.

고 전무는 문을 활짝 열고, 웃으며 말했다.

“윤 사장님, 뭘 전화를 하세요? 그냥 문 두드리고 들어오면 되지.”

“······.”

“어서 들어오세요.”

윤 사장은 입을 꾹 다물고 심각한 얼굴로 서 있었고.

고 전무는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하아······.”

윤 사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쉰 후,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형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네? 뭐가?”

윤 사장은 특임대원에게 지시했다.

“체포하세요.”

문 양옆에 숨어있던 특임대들이 우르르 나와서, 고 전무의 양팔을 거칠게 잡았다.

“뭐, 뭐야?! 왜 이래!”

윤 사장은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고승윤 전무. 당신을 쉘터 규칙에 의거, 간통죄 및 기밀누설죄로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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