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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91화 (291/301)

< 외전33. 자질은 내가 본다 >

지혁은 고 전무를 내보낸 후, 바로 큰집부터 찾아갔다.

최근 급박한 작전을 여럿 치렀었고, 이제 정비를 할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어~ 지혁아. 왔니?”

큰어머니는 지혁을 반갑게 맞았다.

실종되었던 딸과 손주를 구해준 덕분일까?

지혁을 대할 때 떨떠름하던 예전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아침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혜빈 누나 있죠?”

“어~ 방에 있다.”

지혁은 오혜빈의 방으로 가려다가.

“큰어머니.”

“응?”

“혜빈 누나 돌아오고 나서 어때요?”

큰어머니는 잠시 수심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방에만 꼼짝하지 않고 있었는데,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 시간이 필요하겠지.”

“네······.”

“혹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겠지?”

큰어머니는 오혜빈이 돌아왔을 때 입고 있던, 허술한 옷차림을 떠올렸다.

“네. 아무 일 없었어요.”

휴우-

큰어머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 있었는지는 당사자만 안다.

다만, 심우민으로부터 정황상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은 걸로 보고 받았기에, 지혁은 그렇게 대답했다.

“저 누나 방에 가볼게요.”

“그래.”

지혁이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큰어머니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똑똑.

지혁은 오혜빈의 방을 노크했다.

“누나, 지혁이에요.”

[들어와.]

지혁은 안으로 들어갔는데.

“삼촌~!”

정아윤이 뛰어와서 안겼다.

“아윤이도 있었구나?”

“응~ 엄마가 혼자 있는 거 싫어해서.”

오혜빈은 정아윤에게 핀잔을 주었다.

“얘가 반대로 얘기하네? 혼자 있는 거 싫어하는 건 아윤이잖아.”

“아니거든요~”

두 여자는 서로를 보며 밝게 웃었다.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네.’

‘그 세계’에서, 험한 일을 당한 여성들이 꽤 오랜 시간 힘들어하는 걸 봤다.

끔찍한 일들을 목격했으니 아무래도 후유증은 좀 남았겠지만, 강압에 의한 폭행 같은 불상사는 없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이네요.”

“응? 뭐가?”

오혜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는데.

지혁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잘 지내는 거 같아서요.”

“어~ 그럼. 나 괜찮아.”

지혁은 곧바로 방문을 다시 열었다.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가볼게요.”

“뭐야? 오자마자 바로 가니?”

정아윤도 지혁의 옷자락을 잡았다.

“삼촌! 방에 들어온 지 1분도 안 됐거든!”

지혁은 정아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삼촌 지금 근무 중이야. 나중에 놀자.”

“칫.”

쾅!

지혁은 뒤도 보지 않고 나가버렸고.

오혜빈은 닫힌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고맙다는 인사는 듣고 가지.”

***

지혁은 큰어머니 집을 나온 뒤, 바로 손정진의 룸으로 향했다.

쉘터에 모여 사니까, 가까워서 이동하기는 참 편했다.

딩동!

[어머!]

도어카메라를 확인 후, 누군지 묻지도 않고 바로 문을 열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지혁은 꽃바구니를 손정진 아내에게 건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불쑥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이거 받으세요.”

“와······ 이쁘다. 웬 꽃을······.”

“다 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 회장이잖아요.”

제수씨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미소 지었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환자 방문하는데, 꽃바구니가 있어야죠.”

“호호. 그이 너무 멀쩡한데.”

손정진은 어젯밤에 도착했고.

환자임이 무색할 정도로, 밤새 아내와 방어전을 치렀다.

“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잠깐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어머, 내 정신 좀. 어서 들어오세요.”

지혁은 제수씨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며, 장난스럽게 외쳤다.

“손 팀장님~ 무사하십니까~”

누워있던 손정진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고, 지혁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일어났다.

“회, 회장님!”

지혁은 웃으며 누우라고 손짓했다.

“됐어. 됐어. 안 일어나도 돼.”

“아니요. 어떻게.”

지혁은 다가가 손정진을 누우라며, 억지로 손으로 눌러버렸다.

“아······ 이거 참.”

손정진은 지혁 앞에 누워있는 게 불편했다.

“몸은 좀 어떠냐?”

“멀쩡합니다. 무리해서 움직이는 것만 아니면, 일상생활에 지장 없습니다.”

“그래? 석궁 맞고 바로 거동하는 게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나 봅니다. 깊이 박히지도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뭐? 그럼 너 엄살 부렸던 거야?”

“네?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손정진은 당혹스러워했는데.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농담한 거잖아~”

“하하. 그런 거죠?”

제수씨는 옆에서 두 남자의 대화를 웃으며 지켜봤다.

“아, 제수씨 옆에 계시는데, 제가 말을 너무 편하게 했나요? 정진이 신입사원 때부터 알던 사이라.”

“호호. 저 신경 쓰지 마세요. 친해 보여서 보기 좋아요.”

지혁은 미소 짓고는 제수씨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남편 다치게 해드려서.”

“어머! 무슨 말씀을요!”

제수씨는 손사랫짓하며 말했다.

“일하다가 그런 거잖아요. 괜찮아요. 살아났으면 됐죠.”

지혁은 이 말에 싱긋 웃었다.

‘어린데도 당차네?’

지혁은 손정진을 친동생처럼 생각한다.

처음엔 띠동갑 아내를 얻었다고 해서, 철부지가 아닐까 약간 염려했는데.

당찬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럼 두 분 대화 나누세요~ 전 과일 좀 내올게요.”

제수씨가 나간 뒤.

지혁은 웃으며 손정진에게 말했다.

“어젯밤 늦게 왔다고?”

“네, 너무 늦어서 아침에 보고드리려 했는데, 먼저 오셨네요.”

손정진은 책상 위에 놓인 꽃바구니를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내 목숨을 빚졌는데.”

전투 중에 손정진은 지혁을 살리려다가 석궁을 맞았다.

“저는 회장님께 여러 번 빚졌습니다. 빚진 게 아니라, 일부분 갚은 거로 생각해 주십시오.”

지혁은 손정진의 한결같은 태도가 참 좋았다.

“제수씨가 그러더라? 남편이 너무 멀쩡하다고.”

“네? 아 하하. 그거야 뭐······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손정진은 멋쩍게 웃었고.

지혁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멀쩡한 거 같으니, 이따 세크 위원회 회의 때 참석해라.”

“세크 위원회요?”

손정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회장님과 세크 위원들만 참석하는 자리에 부르는 게 의아했다.

“16시야. 올 수 있지?”

“네, 알겠습니다.”

영문은 모르지만, 지혁의 지시니 손정진은 일단 알겠다고 했다.

***

지혁을 기다리는 세크 위원들.

오진원 부회장

윤현성 사장

허용호 부사장

황성준 전무

원래는 6명이었으나, 4명만 남았다.

무기 생산을 책임졌던 류승재 상무는 ‘그날’이 터지기 전에 은퇴했고.

고승윤 전무는 오늘 쉘터 밖으로 추방됐다.

-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 그러게요. 한 명 빠지니까 아주 이상하네요.

- 에휴······.

고 전무의 일이 안타까웠지만.

지혁의 최측근인 세크 위원들은 이번 일로 인해 경각심이 생겼다.

위잉-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지혁이 들어왔다.

“다 모이셨어요?”

세크 위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혁을 맞이했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 안녕하십니까.

- 처음 뵙겠습니다.

- 자주 인사드리네요.

지혁을 따라서 세 명이 함께 들어왔다.

손정진 팀장

남규혁 팀장

심우민 대리

세크 위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세크 위원회에 외부인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무슨 생각이시지?’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지혁을 바로 뒤따라 들어왔으니, 분명 뜻이 있을 거로 보았다.

“눈에 거슬리던 위협은 모두 제거됐죠.”

지혁은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를 시작했고, 뒤따라온 세 사람은 지혁의 뒤에 섰다.

“국군이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 하며, 아직 보이지 않는 적도 있겠지만.”

지혁은 세크 위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최종 정비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쉘터 폐쇄’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거든요.”

“······.”

“이를 위해 먼저 공석부터 채우고, 필요한 직책도 만들 생각인데.”

지혁은 말을 끝맺은 뒤, 뒤에 선 심우민을 가리켰다.

“심우민 대리는 앞으로 제 수행원입니다. 앞으로 근거리에서 저를 보좌할 겁니다. 잠자는 시간만 제외하고 저와 붙어있다고 보시면 돼요.”

세크 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은 의아했다.

‘회장님은 수행원을 두는 스타일이 아니신데.’

‘더 중요하게 쓸 줄 알았는데, 의외인걸?’

심 대리는 대혼란 속에서 지혁 못지않은 대활약을 했고, 구미 쉘터에서는 영웅으로 불린다.

그런 인재를 수행원으로 쓴다는 건, 선뜻 이해되는 처우는 아니었다.

“대부분 시간을 저와 함께 할거기에, 세크 위원회에도 참석하게 되겠죠?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제야 세크 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테스트할 게 있으신가 보네.’

‘중히 쓸 사람이 아니면, 세크 위원회에 참석시키지 않겠지.’

그다음으로 지혁은 남 팀장을 가리켰다.

“남규혁 팀장은 특임단장으로 임명될 겁니다.”

세크 위원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천뿐이 아니라, 전국 쉘터의 특임대 총괄 지휘를 맡습니다.”

세크 위원뿐이 아니라, 남 단장도 놀랐다.

‘이러려고 부르신 거였나? 나 겨우 31살인데.’

과분한 직책에 남 단장은 얼떨떨했다.

더욱이 특임단장은 지혁이 임시직으로 맡고 있던 자리였다.

‘회장님이 하시던 걸 내가······.’

지혁은 사람들 반응은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특임단장은 세크 위원회 소속입니다. 그 의미는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세크 위원에 준하는 대우를 한다는 것.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저······ 회장님. 제가 아직······.”

남 단장이 더듬거리며 뭔가 말하려 했는데, 지혁이 먼저 말했다.

“남 단장, 내가 자네보고 80점이라고 했던 말 기억하나?”

“네? 아, 네. 기억합니다.”

“이게 80점의 의미야. 자질은 내가 본다. 자네는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돼.”

꿀꺽.

남 단장은 마른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파격적인 인사로 얼떨떨한 지휘통제실 분위기 속에.

아직 호명되지 않은.

잔뜩 긴장 중인 한 사람이 있었다.

“손정진 팀장.”

“네!”

지혁은 싱긋 웃고는 말했다.

“넌 오늘부터 세크 위원이다.”

***

지휘통제실 모든 사람의 입이 벌어졌다.

‘세크라고?’

‘손정진이 세크?’

‘파격도 너무 파격 아니야?’

세크 위원.

선도그룹의 핵심 중의 핵심 요직.

원래도 대단한 자리였지만 ‘그날’ 터지고 그들이 준비한 일들이 밝혀지면서, 선도그룹 내에서 ‘세크 위원’은 전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직책에 맞게, 직급은 이사로 승진하게 될 거야.”

“제, 제가 어떻게 감히······.”

“남 단장에게 말한 것과 같은 이유야. 자질은 내가 본다.”

“······.”

“손 이사는 최선을 다해주기만 하면 돼.”

지혁은 기존 세크 위원들을 보며 말했다.

“본인은 못 느꼈겠지만, 제 나름으로 여러 테스트를 했고요. 손 이사에게서 좋은 모습을 봤습니다.”

파격적인 인사 명령으로 인해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원래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무조건 능력과 자질 위주의 인사 조치를 할 겁니다. 경력과 나이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

“지금은 그래야 하는 시기거든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지혁은 싱긋 웃으며 손정진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세크 위원들에게 말했다.

“막내가 들어와서 좋지 않습니까? 환영 좀 해주세요.”

짝짝짝.

그제야 세크 위원들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고.

손정진은 황송해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지혁은 고 전무가 앉았던 빈자리를 가리켰다.

“손 이사, 저기 앉아라.”

“네, 회장님.”

손정진이 앉은 후, 지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 그럼 즐거운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

“이제 심각한 얘기 좀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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