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94화 (294/301)

< 외전36. 적임자 (1) >

윤 사장이 특임단장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남 단장과 심우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윤 사장을 맞았고.

그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은 후 물었다.

“왜 불렀어?”

작전계획 때문이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윤 사장은 심우민이 불편했다.

그는 오랜 선임이자, 마지막에 안 좋게 헤어진 심 부장의 아들이다.

임무를 잘 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쉘터 설계와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어서 모셨습니다.”

“설계?”

쉘터 설계자의 신원은 극비로 되어있다.

세크 위원들조차도 모르며, 오로지 윤 사장과 지혁만 알고 있다.

“지금 나한테 설계자가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건가? 이거 물어보면 안 되는 거 모르는 거 아니지?”

심우민을 안 좋게 생각해서인지, 윤 사장은 말끝마다 날이 서 있었는데.

“하하. 아닙니다. 설계자가 궁금한 게 아니고요. 사장님께 여쭤보려고 합니다. 웬만한 건 다 아시지 않을까 싶어서요.”

윤 사장 또한 쉘터 설계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2년간 설계자와 함께하며,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쉘터 건설에 집중했다.

전문적인 건축 기술만 모를 뿐, 쉘터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

“뭐가 궁금한데? 미리 얘기하는데, 다 말해줄 거라 생각하진 마. 쉘터 설계와 관련해서는 극비사항이 많아.”

“알겠습니다.”

본격적인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분위기는 팽팽했으며.

남 단장은 옆에서 두 사람의 묘한 신경전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심우민은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청주 쉘터에 관한 얘기인데요······.”

“야, 심 대리.”

윤 사장은 심우민이 말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끊어버렸다.

“내가 그 작전 반대한다는 걸 모르나? 나한테 청주 쉘터 탈환 작전을 도와달라는 거야?”

“······.”

“장난해?”

심우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건 이미 지난 얘기 아닙니까?”

“뭐?”

“회장님께서 작전 진행하는 걸로, 결정하신 걸로 압니다만.”

피식.

윤 사장은 비열한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회장님께서 적절하지 못한 판단을 하실 땐, 맞는 방향으로 유도할 줄도 알아야지. 결정했다고 끝나냐?”

“······.”

“미래가 어떨지 몰라서 위험을 무릅쓴다고? 그렇지, 미래는 어떨지 모르지. 좋아질지 나빠질지 어떻게 알고, 왜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건데?”

“······.”

“재앙이 덮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탈환 작전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개죽음 아니야? 안 그래?”

후우-

심우민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 말씀은 이 얘기가 논의되었던 자리에서 하셔야 했다고 봅니다.”

“뭐, 어째?”

“어쨌든 방향은 결정됐고.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임무 수행 하는 방법을 찾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윤 사장님께서 협조를 안 해주시면,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작전이 될 겁니다.”

남 단장은 놀라서 심우민을 바라봤다.

‘이건 협박 같은데?’

선도그룹의 실질적인 이인자.

오진원 부회장이 있으나, 실무자 측면에서 봤을 때는 윤 사장이 이인자였다.

이 대단한 사람에게 심우민은 협박을 하고 있었다.

“너 진짜 당돌하구나?”

윤 사장이 이를 모를 리 없었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꿀꺽.

남 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차라리 나가 있을까. 불편해 죽겠네. 신구 대결이야, 뭐야.’

지혁의 오랜 최측근인 윤 사장.

최근 지혁의 엄청난 신임을 받는 심우민.

두 사람의 기 싸움은 엄청났다.

심우민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윤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전 그저 회장님께서 주신 임무를 잘 해내고 싶을 뿐입니다.”

“······.”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

‘지향하는 게 다를 뿐, 거짓말 같진 않다.’

윤 사장은 아집이 강하지 않으며,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심우민이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며, 그의 진심 어린 표정도 거짓으로 보이진 않았다.

‘일단 들어나 보자.’

“뭔데? 빨리 물어봐.”

“청주 쉘터에 몰래 진입할 수 있는 통로 같은 게 있습니까?”

남 단장이 청주 쉘터 정문을 화면에 연결해 놓고 고민할 때, 심우민은 또한 유심히 관찰했다.

‘생체인식.’

청주 쉘터 점거자 중에 기술자가 있는 건지, 그들은 지문을 활용하여 출입 검색을 했다.

위장하여 정문으로 진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만 아는 통로로 진입하는 것 외에 방법은 없어.’

심우민은 쉘터가 워낙 크기에 분명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건 없다.”

심우민의 기대와 달리, 윤 사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정식 통로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됩니다.”

“······.”

“사람 사는 곳인데 어떻게 바깥과 연결된 곳이 전혀 없겠습니까. 환기구라던가······.”

윤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쉘터의 목적을 생각해 봐. 바깥과 차단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오염 물질 들어오면 어쩌려고 왜 연결을 시키겠······.”

윤 사장은 말을 하다가 멈춘 후.

“아, 아직 쉘터 폐쇄 안 했지.”

심우민은 눈을 번쩍 뜨고, 윤 사장의 말에 집중했고.

윤 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쉘터의 양 끝과 중앙라인을 따라서 14개의 환기 통로가 있어. 통로는 상당히 길고 꼬불꼬불하게 만들어졌고. 길이만 700미터 정도 될 거야.”

“······.”

“폐쇄 전까지는 환기 통로로 공기가 유입되고, 폐쇄 후엔 내부의 산소 융합장치가 가동돼. 아직 쉘터 폐쇄되지 않았고, 그놈들은 폐쇄하는 방법도 모를 테니. 환기구 통로는 열려 있겠네.”

이 얘기에, 심우민과 남 단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됐다. 몰래 진입시켜서 내부 혼란을 만들면 돼.”

윤 사장은 두 사람의 얼굴을 힐끔 본 후 말했다.

“좋아하긴 아직 일러.”

“······.”

“설계할 때 외부의 적들이 진입할 생각 안 했겠냐? 얼마나 고심해서 만든 쉘터인데.”

심우민의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만들었는데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아니야.”

“······.”

“좁고, 그 안에 장애물도 있어.”

남 단장이 말했다.

“사람이 못 들어갈 정도면, 환기구 통해서 밖에서 안으로 유해한 연기가 들어가게 해도 되잖아요?”

심우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시적인 효과는 얻을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할 겁니다. 환기구를 막아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심우민은 심각한 얼굴로 윤 사장에게 물었다.

“절대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입니까?”

“못 들어가.”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한소리로 윤 사장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체구가 작은 어린 아이라면 들어갈 수 있으려나.”

이 말에, 심우민의 눈이 번쩍 떠졌다.

***

아침 식사 중에 지혁은 시안을 힐끔 보았다.

‘자식, 얼굴이 밝아졌네. 그렇게 답답했었나.’

시안은 학교에 갈 때도 회색 군복을 입고갈 정도로 특임대원인 걸 자랑스러워했다.

“시안아 특임대원 된 게 그렇게 좋냐?”

“네, 너무 좋아요.”

시안이 조숙한 편이라도,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지혁이 운을 떼자, 신나서 재잘거렸다.

“거기서 전투 기술 배우는 게 너무 재밌어요. 학교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는걸요. “

“으이구. 쪼그만 게.”

수아가 혀를 차며 식탁 앞에 앉았다.

엄마가 도끼 눈을 뜨니, 시안을 입을 꾹 다물었다.

수아는 처음에 시안이 특임대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자(父子)가 쌍으로 미쳤다고 난리를 쳤었다.

‘명예야. 명예. 작전 투입 안 해.’

시안은 모르게 지혁이 귀띔해준 뒤에야, 수아는 흥분을 가라앉혔었고.

태권도 학원 보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혁은 시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고 싶니?”

“짜릿하잖아요. 그리고 아빠 보면 너무 멋있거든요.”

“······.”

“아빠처럼 되고 싶어요.”

시안은 지혁을 아버지 이상으로 숭배했다.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 하고 싶었다.

“녀석, 참.”

아들이 이렇게 말하면, 아빠로서 당연히 기분 좋을 수밖에 없다.

“하하.”

시안도 말을 해놓고 부끄러운지, 일부러 크게 웃었고.

지혁은 그런 시안을 물끄러미 보다가.

“시안아, 넌 안 그래도 돼.”

“네?”

“위험한 일 안 해도 된다고.”

“······.”

“아빠가 대신 많이 하잖아. 위험한 일 쫓지 마라.”

냉혈한인 지혁도 아버지였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아들에게만은 생각과 기준이 달랐다.

애초에 미래를 준비하겠다며, 마음이 바꾼 게 시안 때문이다.

“어서 먹어. 많이 먹어.”

작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시안을 보면서, 지혁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고.

수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시안은 부담스러웠는지, 결국 식사를 멈추고 살짝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빠, 죄송한데. 좀 느끼해요.”

***

시안은 여느 때처럼 학교를 마치고, 황한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결아~”

“오~ 시안!”

두 아이는 웃으며 어깨동무했다.

시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가야지?”

“가야지!”

오늘은 특임대원 정규 훈련이 없는 날이지만, 두 아이는 훈련소로 향했다.

안 가는 날이 없다.

학교 마치면 훈련소로 가서 전투 기술을 배우고, 겨루기하는데 푹 빠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훈련소에 도착하여 시안이 큰 소리로 인사하자.

- 아······ 또 왔네.

- 대단하다. 어린 애들이.

- 힘들지도 않나 봐?

- 안녕~ 어서 와.

훈련소에 있던 특임대원들은 시안과 황한결이 나타나자 절로 공손해졌다.

선도그룹의 회장과 비서실장의 아들.

아이라도 어려웠다.

“저 여기 껴서 해도 돼요?”

시안은 타격 기본자세를 훈련 중인 그룹으로 다가가 물었고.

질문을 받은 특임대원은 당황하여 대답했다.

“그, 그럼요. 헛! 내가 왜 존댓말을. 그럼~ 해도 되지.”

두 아이 중에서도 시안은 더욱 특별한 시선을 받았는데, 선도그룹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지도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지혁은 선도그룹에서 회장 이상의 존재가 되었고, 그의 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쉘터민들이 느끼는 존재감은 엄청났다.

또 다른 이유는.

“앞에서 할래?”

“늦게 왔는데, 뒤에서 해야죠. 껴줘서 고마워요.”

“하하. 뭘~”

시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특임대원은 좋아서 얼굴을 붉혔다.

‘시안이가 나한테 고맙대.’

지혁은 시안을 임신하면서부터 쉘터를 준비했고, 그 덕분에 선도그룹 직원들은 ‘그날’에 죽지 않고 대부분 살아남았다.

‘시안이 때문에 우리가 살았어.’

이 소문은 은연중에 돌았고, 그래서 쉘터민들은 시안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합! 합!

두 아이가 어른들 틈에 껴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던 중.

멀찍이 남 단장이 나타났다.

그는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시안과 황한결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너희들 왔구나?”

“단장님! 안녕하십니까!”

두 아이는 훈련을 멈추고, 남 단장을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남 단장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고, 표정 또한 굉장히 어두웠다.

시안은 그의 안색을 살피다가 물었다.

“단장님,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

남 단장은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결심한 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너희들에게 임무가 생겼다.”

“임무?!”

두 아이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우와아~!”

“임무다!”

“하하.”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 애들한테 임무라고?

- 진짜?

주변 특임대원들은 놀랐고, 남 단장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좋았어!”

“와싸!”

두 아이는 마냥 좋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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