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37. 적임자 (2) >
이틀 전.
단장실에서 윤 사장이 나간 뒤.
남 단장은 고민에 빠졌다.
“작전 철회를 말씀드려야 하나.”
윤 사장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해 봤을 때, 도저히 청주 쉘터로 몰래 진입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구간이 길며,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통로라고 했다.
위장 진입 또한 불가능했다.
청주 쉘터 점거자 한 명을 잡아다가, 손가락 잘라서 지문 검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출입구로 정해진 소수만 다니기에, 외모에서부터 걸릴 게 뻔했다.
“단장님, 저는 윤 사장님 얘기 들으니까, 바로 방법이 떠오르던데요.”
“정말요?”
남 단장은 반색하며 얼굴이 환해졌다.
심우민은 ‘그날’ 이후 어려운 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뭔데요? 어서 얘기해 봐요.”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며 생각하고 있었기에, 남 단장은 잔뜩 기대하며 심우민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에게 체구가 작은 특임대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
남 단장은 심우민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애들이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통로가 좁다고 하셨으니까······.”
흡!
이 말에, 남 단장은 한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고.
눈을 부릅뜨고 심우민을 바라봤다.
“미쳤어요?”
심우민은 대꾸하지 않았고,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 사람이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설마, 회장님과 비서실장님의 아들을······.’
“아니죠?”
입에 담기도 부담스러워서, 남 단장은 주어는 빼고 물었는데.
“달리 방법이 있습니까?”
“······.”
“특별 작전에 특임대원을 쓰는 건데요.”
“심우민 대리! 어디 큰일 날 소릴!”
남 단장은 당황하여 소리를 버럭 질렀다.
심우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 상황에서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관두면 그만이지. 그런 위험을 감수하자고요?!”
“다른 특임대원은 위험을 감수해도 되고, 누군가의 아들은 위험을 감수하면 안 되는 겁니까?”
“······.”
남 단장은 묘한 눈길로 심우민을 바라봤다.
‘혹시, 다른 의도가 있나?’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심우민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봐요, 심 대리. 금기라는 게 있죠. 그걸 꼭 설명해야 압니까?”
심우민은 고개를 저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
“우리는 단지 허용 가능한 자원으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작전을 성공시킬 생각만 하면 되는 겁니다.”
“······.”
“오시안과 황한결한테 특임대원 지원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요. 제 말이 틀립니까?”
남 단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틀리진 않지만, 이건 아니잖아.’
심우민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최종 승인은 회장님이 하십니다.”
‘최종 승인은 회장님’
남 단장은 이 말에 살짝 흔들렸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보고 하고, 결정은 회장님이 하시는 거죠.”
“······.”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하지 말라고 지시하시면, 안 하면 그만인 거고요.”
‘아주······ 따박따박 옳은 말만 하는구나.’
남 단장은 심우민과 대화하면서,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자, 그럼 전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심우민은 시계를 보더니 일어났다.
“회장님께서 자리 오래 비우지 말라고 하셔서요. 수행원 아닙니까. 먼저 가보겠습니다.”
남 단장은 멀어져가는 심우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엄청난 숙제가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
결국, 남 단장은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결정은 지혁에게 맡기기로 했다.
“무슨 임무입니까?”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물어보는 시안을 바라봤다.
‘하아······ 이래도 되나 몰라.”
다시 또 고민이 되었으나.
‘결정했잖아. 가자.’
“대원들.”
“네!”
남 단장이 부름에 두 아이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위험한 일인데, 괜찮겠나? 지금이라도 원치 않는다면 관둬도 좋다.”
황한결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선도그룹의 영광을 위해! 이 한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아니, 뭘 목숨씩이나······.”
이번엔 시안이 말했다.
“특임대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뒤부터, 50만 선도그룹 직원과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꿀꺽.
불타오르는 두 아이의 눈빛을 보며, 남 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죄짓는 기분이야.’
세뇌라도 된 듯, 로얄티로 중무장한 아이들 모습을 보니 가슴이 콕콕 찔렸지만.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되지, 장황하게 말할 필요 없다.”
“네!”
두 아이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남 단장은 줄자를 들었다.
‘딱 봐도 시안이 체구가 더 작긴 한데.’
둘 다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길 바랐다.
누군 들어가고 누군 안 들어가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
“이리 와서 서봐라. 어깨 넓이 좀 재게.”
“알겠습니다!”
남 단장은 줄 자로 어깨를 펼친 상태와 오므린 상태의 길이를 재었다.
“하아······ 젠장.”
남 단장의 한숨을 듣고.
시안과 황한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왜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임무 수행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에, 두 아이는 불안한 얼굴로 남 단장을 바라봤다.
남 단장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길로 황한결을 바라봤다.
“황한결.”
“네!”
“나이도 어린 게 왜 이렇게 덩치가 큰 거냐?”
“네?”
공교롭게도 선도그룹의 회장의 아들이 투입 작전에 딱 맞는 체격을 가졌다.
특임대원 선발전을 떠올려보면, 전투력도 시안이 조금 더 뛰어났었다.
‘아주 적격자네. 적격자야. 어휴.’
누가 투입 작전에 맞는지.
답은 명확하게 나왔다.
“오시안.”
“네!”
남 단장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네가 임무 수행 대상자다. 날짜와 계획 완료되면 부를 테니 대기하고 있어.”
옆에 황한결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그런 게 어딨어요? 저는요? 왜 저만 빼요?!”
“체격 때문에 그런 거니까, 억울해할 거 없다. 나도 짜증 나니까.”
시안은 좋지만 입만 씰룩일 뿐, 옆에 황한결 때문에 대놓고 내색은 못 했다.
“안 돼요! 저도 임무수행 할래요!”
황한결은 남 단장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떼를 쓰기 시작했고.
남 단장은 짜증 섞인 얼굴로 한숨만 쉬었다.
***
“뭐?! 네가 뭘 어쩐다고?!”
수아는 시안의 얘기를 듣고, 눈을 부릅떴다.
“저 특임대원으로 임무 수행해요~ 밖에 나갈 수도 있다고요~”
시안은 완전히 상기되어, 집에 오자마자 자랑했고.
찰싹!
수아는 시안의 등짝을 때렸다.
“얘가 아주 미쳤어!”
“엄마, 아파요.”
“명예라며?! 어!”
분명 수아는 지혁에게 명예 특임대원이며, 작전 수행할 일은 없을 거라고 들었었다.
“내가 이 인간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게 잘못이지.”
이 집안의 진정한 일인자가 누군지 알기에, 시안은 입을 꾹 다물고 눈치만 보았다.
수아는 곧바로 지혁에게 전화했다.
“빨리 안 튀어 와?”
잠시 후.
지혁이 집으로 들어왔다.
“왜? 무슨 일인데?”
수아의 긴급 호출에 지혁은 근무 중임에도 바로 집으로 왔다.
“어? 시안아. 오늘 일찍 왔네? 지금 훈련하는 시간 아니냐?”
“야!”
‘훈련’이라는 말에 발끈하여 수아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지혁은 놀란 눈으로 수아를 바라봤다.
“이제 하다 하다. 아들한테까지 위험한 일을 시켜?”
“어?”
“그룹 회장이라는 사람이 목숨 걸고 바깥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참아줬는데.”
“······.”
“이건 아니잖아. 야만인이야, 뭐야? 세상이 무너질 날을 기다린 사람처럼! 좀 있으면 나도 내보낼 셈이야?!”
수아는 그동안 쌓여온 게 폭발하여, 쏟아부었다.
“당신 몸에 칼빵 생기는 거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마음 졸이는 줄 알아?”
“······.”
“왜 아들한테까지 이 지랄이냐고!”
아무리 지혁이라도 수아가 난리 치면 꼼짝 못 한다.
대꾸할 엄두도 못 내고, 옆에 시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저러시냐?”
“모르겠어요. 임무 수행한다니까, 저렇게······.”
“뭐?!”
수아가 또 불을 뿜었다.
“명예 특임대원이라며! 왜 임무 수행이야! 저 꼬맹이한테 무슨 일을 시키려고! 쉘터에 사람이 그렇게 없어?! 어?!”
“잠깐, 잠깐.”
지혁은 이제야 수아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시안아, 아빠한테 자세하게 말해봐.”
“네······ 그게요. 남 단장님이 저랑 한결이를 불러서요. 어깨 길이를 쟀는데요······.”
지혁은 시안의 얘기를 다 들은 후.
‘장난이 아닌데?’
어깨 길이를 재가며 인원을 선정했다는 건, 계획이 수립되어 그에 맞는 인원을 찾은 거였다.
지혁의 눈이 무섭게 변했다.
“아빠······ 왜요? 저 뭐 잘못한 거예요?”
지혁도 사람이다.
‘당장 찾아갈까.’
심히 불쾌했으나, 회장이라는 직책이 불쾌한 감정을 눌렀다.
‘어차피 나한테 보고할 거 아니야. 기다려 보자.’
직원들 앞에서 항상 ‘공정’을 보이려고 노력했으며, 고위 임원들에게도 이를 지키라고 강조했었다.
‘무슨 일인지는 먼저 알아보자.’
***
뒷조사는 지혁의 전문 분야 중에 하나다.
시안의 일에 대해 아무도 모르게 뒷조사하였고, 이 일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회장님, 보고드립니다.”
이틀 뒤.
남 단장은 바싹 긴장한 얼굴로 ‘청주 쉘터 탈환 작전 계획 안’을 보고했다.
“청주 쉘터 내부에 위기 상황을 만들어, 점거자들을 내쫓는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진입 방법을 알아내었고, 체격이 작은 특임대원을 척후조로 먼저 진입시킬 계획입니다. 그 이후······.”
남 단장은 작전 계획을 보고 하였는데.
지혁은 미동도 없이 듣기만 했다.
단장으로서 첫 임무라 꼼꼼히 준비했고, 작전 수립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심우민이 함께해서일까.
작전 계획 자체는 훌륭했다.
“이상 보고 마칩니다.”
후유-
남 단장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척후조 특임대원의 이름을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진 못했다. 다만, 제출한 보고서 안에는 명시가 되어 있다.
촤락- 촤락-
정적 속에 지혁이 보고서 넘기는 소리만 들렸고.
남 단장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심우민 또한 수행원으로서 근거리에 있었는데, 지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지혁이 말했다.
“보고서 잘 봤고.”
“······.”
“나한테 더 할 말 없나?”
지혁은 남 단장을 바라봤는데.
꿀꺽.
남 단장은 지혁의 눈빛에서 얼음송곳이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어떡하지. 시안이 얘기를 해야 하나.’
남 단장은 순간 고민했는데.
피식.
지혁은 입꼬리만 올리며 웃은 뒤, 남 단장에게 말했다.
“더 할 말 없으면 나가 봐.”
“아, 네 알겠습니다.”
남 단장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시안이 얘기는 못 하고 나갔다.
덜컹.
문이 닫힌 후.
회장실에 심우민과 지혁 둘만 남았다.
지혁은 남 단장이 보고한 후,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 대리.”
“네, 회장님.”
“너 무슨 수작이냐?”
심우민은 지혁을 바라봤다가, 놀라서 숨이 턱 막혔다.
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등등했다.
“니가 내 아들을 건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