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39. 굴 속으로 (2) >
좁고 어두운 통로.
임무를 받은 뒤로, 시안은 좁은 통로에서 더 쉽게 움직이기 위해 식사량을 줄였었다.
2kg 정도 살을 뺐고 체격도 날씬한 편이지만, 환기구 통로는 너무 좁았다.
‘예상했던 거니까.’
환기구 크기에 맞게 모형까지 만들어서 연습했었다.
슥- 슥-
연습한 대로 빠르게 통로 안을 기어갔다.
새까만 어둠.
머리에 쓴 헤드램프로 앞을 비추는데, 약 1미터 전방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뒤를 한번 돌아봤는데, 희미하게 보이던 바깥의 밝은 빛도 사라졌다.
마치 눈을 감고 꿈속을 기는 듯.
‘정신적으로 쉽지 않구나.’
육체적으로는 연습한 대로 하면 되는데, 빛 하나 보이지 않는 꽉 막힌 어둠 속을 기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안은 최대한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묵묵히 앞만 보고 나아갔다.
‘음?’
기어가던 중 팔꿈치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송곳?!’
새끼손가락 길이만 한 송곳이 통로 바닥에 수놓아져 있었다.
특수 제작된 옷 때문에 송곳이 파고들지 못하여 아프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통로는 더 좁아졌다.
‘살 빼길 잘했네.’
한참을 더 가자, 첫 갈림길이 나왔다.
모두 시뮬레이션했던 상황.
시안은 숙지한 대로 첫 번째 갈림길에서 두 번째 통로로 들어갔다.
슥- 슥-
통로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봤다. 시간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연습을 했었다.
‘곧 C 구역 진입.’
기어가는 속도는 일정하고, 통로의 길이는 설계도를 통해 정확히 알고 있기에.
출발한 지 몇 분이 되었는지 알면 이동한 거리를 알 수 있었다.
C 구역에 진입했으니, 10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곧 작전 장소에 진입할 거라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고, 시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후드득! 후드득!
통로 멀리서 바닥을 세차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막 달려오는 것 같았는데, 시안은 놀라서 눈앞을 집중했는데.
“찍! 찍!”
쥐 수십 마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윽!”
시안은 방검복과 헬멧까지 쓰고 있으므로 신체적인 타격은 받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쥐들이 지나갈 것 같지 않았다.
시안에게 계속 달려들었다.
스릉-
시안은 허리춤에 단검을 꺼내어 양손에 잡고.
얼굴이 천장을 향하도록 몸을 뒤집어 두 손을 자유롭게 한 뒤, 칼을 휘둘렀다.
사사삭-
“찍! 찍!”
좁은 통로 안에서 쥐 떼와 일대 사투가 벌어졌다.
쥐의 사체가 싸이면서, 남은 쥐들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시안은 헤드램프로 몸을 비추었는데, 다친 곳은 없으나 핏자국이 일부분 묻어 있었다.
“에이, 제기랄.”
[무슨 일이냐?]
이어폰으로 남 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쥐 떼가 있었습니다.”
[다친 데는 없고?]
“네, 괜찮습니다만, 옷에 핏자국이 좀 묻었습니다.”
[특수 제작된 옷이라 금방 닦인다. 물티슈로 문질러 봐.]
시안은 배낭에서 물티슈를 꺼내어 닦았다.
슥- 슥-
조금 더 기어가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확인했는데, 쥐 떼 때문에 약간 지체되었으나 얼추 맞다.
“단장님, 보고드립니다. C 구역 도착했습니다.”
[그래······.]
남 단장은 곧바로 지시했다.
[천지 작전 진행하라. 조심하고.]
***
‘아오, 눈부셔.’
천장에서 환기구 창살을 통해 아래를 보았는데,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어서 밝은 빛에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 분위기를 살피다가, 아무도 없을 때 내려왔다.
“탁!”
한참을 기었더니 서 있는 게 어색하여 순간 기우뚱했다.
시안은 허리를 펴고, 몸을 좌우로 돌리며 스트레칭한 후.
몸의 묻은 먼지를 털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는데······.
‘생각보다 괜찮잖아?’
식량난을 겪을 거라는 소문을 들었고, 혼란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청주 쉘터는 정숙하고 평화로웠다.
좀 특이한 게 있다면, 사람들이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 있었다.
‘평시에도 무장하나 보네.’
좀 더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임무 수행이 먼저였다.
사고 발생지를 찾아내기 어려운 곳을 연막탄 설치 장소로 정했다.
사전에 선정해 놓은 장소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무도 없지?’
장소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핀 뒤, 배낭을 내려놨는데.
“너 여기서 뭐 하냐?”
‘하아, 젠장.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등 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인 건 배낭에서 연막탄을 꺼내기 전이었다.
“뭐 하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안은 뒤로 홱 돌면서, 아이처럼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
체격이 좋은 남자는 석궁을 들고 있었다.
‘우리 쉘터의 경비 요원 같은 건가?’
남자는 시안을 위아래로 보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냐?”
“······.”
“집회 안 가냐?”
시안은 눈을 끔뻑였다.
‘집회?’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건 단체 행사 말고는 없었다.
시안은 눈알을 굴리다가,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아~ 하하. 내 정신 좀 봐. 제가 어제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웠더니, 정신이 몽롱해서. 하하.”
“······.”
“깜빡할 뻔했네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남자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어서 가봐.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네~”
“목자님 말씀 듣는 날만 기다리는데, 난 하필 오늘 당번이라.”
‘목자? 목사가 아니라 목자야?’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시안은 확인해보기 위해 말했다.
“아~ 목자님 말씀 말이죠. 목자님.”
“그래~ 그분 얘기만 들으면 기운이 솟아서. 하하. 희망도 생기고.”
시안은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늦기 전에 어서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그래~ 어, 잠깐만.”
남자는 시안에게 가까이 다가와, 손으로 가슴팍을 가리켰다.
“이거 웬 피냐?”
‘아오, 덜 닦인 부분이 있었나 보네.’
쥐 떼와의 사투에서 생긴 핏자국이었다.
시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순발력을 발휘했다.
“어제 밤새 게임했다니까요~ 코피요.”
“얀마, 조그만 게 코피 쏟도록 게임을 하냐. 하하.”
“하하.”
시안은 멋쩍은 듯 웃었다.
“어서 가봐~”
“네~ 근데, 장소가 어디였더라~”
“은빛 광장이잖아~”
“아~ 맞다. 고마워요~ 수고하세요~”
시안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
은빛 광장.
시안은 당연히 이곳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몰랐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어서, 찾기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 중앙광장을 여긴 은빛 광장이라 부르는구나.’
[여러분은 선택받았습니다! 선택받은 종들입니다!]
단상 위에 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십 대로 보이는 앳된 외모에 화려한 붉은색 정장을 입고, 울프컷의 헤어스타일.
‘목자’라고 해서 장년의 거룩한 분위기를 보이는 남성을 기대했었기에, 시안은 많이 놀랐다.
‘이건, 뭐 아이돌 같은데?’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발라서 곱게 화장했으며, 입술도 빨갛다.
행색뿐이 아니라, 이목구비도 꽤 수려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삶에 대한 감사! 생존에 대한 감사! 우리들의 거름이 된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 이곳에 살아가기 위해, 우리 발밑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습니까!]
곱상한 외모와 달리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날카로운 쇳소리 같았다.
[우리는 특별합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말하다가 간혹 소리칠 때는 목소리가 날카로워서 소름이 돋았다.
‘이게······ 종교야, 뭐야?’
종교는 아닌 것 같은데, 분위기는 종교적이었다.
[선택받은 사람들로 세상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 옳습니다!
- 목자님! 사랑합니다!
은빛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은 광신도 같았다.
‘어째 쉘터민들이 우리 아빠한테 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선택받은 여러분. 이제 열심히 사랑하고, 아이를 낳으십시오. 순결한 피로 세상을 구할 것입니다.]
- 사랑하자!
- 아이를 낳자!
시안이 아이지만, 이 모습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
‘아이를 낳기 위해 사랑하라는 건가? 순서가 바뀐 것 같은데.’
사람을 마치 가축처럼, 번식하기 위해 사랑하라고 종용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 위협하는 모든 것들은 다 적입니다! 적들을 심판하는 손은 무자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위하는 길이며, 우리의 후손이 번성하는 길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어가더니, 목자는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적들은 물러가라아~!]
심장을 긁는 듯한 묘한 울림이 있는 외침이었다.
별말 아닌데도, 시안 또한 들으면서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물러가라아~!]
목자의 말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강해져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강해지고 더욱 강해져서, 사랑의 결속이 더욱 위대해져야 합니다!]
- 강해지자!
- 사랑으로 하나 되자!
목자의 기괴한 목소리라 울렸다.
[물러가라아~!]
시안은 영 듣기 불편해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옷깃에 달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단장님, 듣고 계십니까?”
[듣고 있다.]
“여기 사람들 좀 이상합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다 내쫓을 거니까. 어서 작전 마치고 나와라.]
“알겠습니다.”
시안은 조용히 군중들 뒤로 빠졌다.
***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 있으니, 시안은 작전을 펼치기가 쉬웠다.
B 구역과 C 구역에 먼저 연막탄을 설치했다.
‘B-72 연막탄.’
이번 작전을 위해 개발되었다.
무선에 의해 작동되며, 피부 발진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CS(최루제)에 가까운 포탄이다.
화재 발생과 비슷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연기가 많이 나도록 만들어졌다. 발화성은 크지 않아, 기물에 손상을 입히진 않는다.
다만, 일반적인 CS 탄은 비치사성이지만, B-72 연막탄은 연기를 오래 쐬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후로 A 구역과 D 구역도 무난히 설치를 완료했다.
청주 쉘터의 CCTV 위치는 알고 있었고, 사각지대로 이동하면서 작전수행 했기에 딱히 방해 요소는 없었다.
“설치 완료 보고드립니다.”
[확인했다.]
“은빛 광장에서 점거자들 반응을 좀 더 살필까요?”
[아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임무 완료했으니, 지금 바로 복귀하라.]
“네, 알겠습니다.”
시안은 가방에서 봉 두 개를 꺼내어 연결한 뒤, 환풍구를 조준했다.
버튼만 누르면 봉이 사다리 모양이 되어 길어지며, 환풍구와 연결해 올라가면 되는데.
“이번엔 여기서 뭐 하냐?”
시안은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아직 버튼을 누르기 전이었다.
청주 쉘터에 처음 진입했을 때 만났던 그 남성이었다.
“집회 참가는 안 하고, 혼자 자꾸 중얼거리고.”
남성은 석궁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었다.
“꼬마 애가 좀 이상하구나?”
“아저씨 자주 뵙네요.”
시안은 억지로 웃었다.
나름대로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이나 인기척을 못 느꼈다.
이건 훈련 부족보다는, 상대방이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아저씨, 혼자세요?”
시안은 뒤돌아섰다.
이미 의심을 샀으며, 격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남성은 시안의 달라진 분위기에 살짝 놀랐고.
“그건 왜 물어? 너 혹시 불신자니?”
시안은 남성의 눈빛을 읽었다.
‘막다른 길이야.’
주변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시안은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돌진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