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第 3 話 =========================================================================
第 3 話 “3일째”
“강화하면 이런 옵션이 생기는군.”
천천히 살펴본다. 글쓴이는 강화 확률이 쓰레기라며 소리쳤지만 내게는 와닿지 않았다. 확률? 그 따위야 언제든지 씹어먹어줄 수 있다. 중요한 건 강화로 인해 변경된 옵션이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은데…….”
능력치와 공격력. 강화 옵션까지. 한 번의 강화로 이 모든 게 올라가니 분명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올라간 수치는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오크 족장이라면 보스 몬스터겠지?’
강화석을 얻고 싶으면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된다는 건가?
“…….”
‘아니, 역시 효율이 나빠.’
잠깐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
고작 강화석을 위해 보스 몬스터를 찾아다닐 수는 없었다. 또 그런 식으로 찾아다니더라도 보스 몬스터를 내가 잡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웬만한 지역에는 플레이어가 자리 잡고 있을 테고, 내가 있는 지역에는 보스가 얼마나 강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몬스터도 잡기 힘든 마당에 무슨 보스 몬스터를…….
‘차라리 사람들에게 구매하는 편이 좋겠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강화석에 대한 미련을 버리며 다음 글을 읽었다.
[아싸! 드디어 NPC 공략 성공!]
[내용:이 게임은 NPC도 공략이 가능하다! 완전 미연시 게임이랄까? 다들 미연시 알지? 아무튼 호감도 100까지 찍으면 니들이 원하는 것들도 할 수 있으니 다들 노력해봐라 ㅋㅋㅋㅋ. 난 다른 NPC나 공략하러 가야지~]
“……?”
뭐지? 이 글은?
하다못해 NPC를 공략하는 방법도 없다. 그래도 NPC를 공략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새롭다고 할까?
‘근데 NPC를 공략하면 뭐 좋은 거라도 있나?’
만일 집안의 가보 같은 것을 준다면 호감도를 올릴 용의가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레어급 아이템 같은 거 말이다. 그 정도 준다면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단순히 성행위를 위해 호감도를 올리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혹시 나만 이런 생각인가?
왠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나는 밑에 적힌 댓글을 읽어보았다.
[아놔! 부럽다 ㅠㅠ]
[호감도 대체 어떻게 올리나요? 30에서 안 올라갑니다. 제발 답변 좀 ㅠ]
[호감도를 올리면 뭐가 좋나요?]
[믿지 마세요. 호감도 진짜 안 올라요.]
[미친 새끼 ㅋㅋㅋ]
‘……대충 이런 반응이었군.’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 난 다음 글을 읽었다. 뭐, 이후에 글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내용인지라 시간만 날린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 날린 시간까지 포함해서 5시 30분이 되었다는 걸 확인한 나는 게시판을 닫았다.
‘쯧, 접속이나 하자.’
이번에도 할 일이 많았다. 장비도 구해야 되고, 레벨도 올려야 된다. 그럭저럭 바쁘게 움직일 거란 예상을 하며 황혼에 접속하기로 했다.
팟!-
[황혼이 비추는 거리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를…….]
‘몬스터는 없나?’
어두컴컴한 시야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둘러본다고 늑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주변에는 늑대가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음, 그럼 스킬 명령어부터 바꿔볼까.
“스킬 명령어 소환.”
이런 건 빨리 끝낼 수록 좋았다. 때문에 아까 게시판에서 봤던 명령어를 외쳤고, 그런 내 앞에는 어떤 창이 생겨났다.
어떤 창이란 내가 배운 스킬 목록이다.
그 중에서 주력 스킬 중 하나인 거신의 질주를 살펴보면 이런 식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습득한 스킬:거신의 질주]
[스킬 시전 명령어:스킬 사용]
[스킬 사용 명령어:거신의 질주]
“여기서 시전 명령어를 '거신의'로 바꾸고, 사용 명령어를 '질주'로 바꾸면…….”
스킬 사용이라는 단어는 제외한 채, 거신의 질주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 간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머지 스킬들도 모조리 바꿔버린 나는 느긋하게 앉아 지구력이 채워지길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위험한 상황 아닌가?’
지금처럼 쉬고 있는 사이, 기습이라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뜩이나 지구력도 없는 상황에서 적을 맞이하게 된다면 결과는 뻔했다.
‘그렇다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크어엉-
“응?”
문득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왜 멀리서 들려오는 거지? 혹시나 냄새 때문에 나를 발견한 거라면 이대로 앉아 쉴 수는 없었다. 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으로 달려올 늑대를 기다렸지만, 예상외로 기다리던 늑대는 오지 않았다.
“이놈은 왜 안 와?”
오다가 사고라도 당한 건가?
‘……가보자.’
어차피 지구력도 거의 채워진 상태였고, 늑대를 잡아야 되는 내 입장에선 아무런 손해도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빨리 늑대를 잡아야 장비도 획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오늘 안에 세트 아이템을 다 모으고 싶었다.
하지만 던전 앞에 있는 건…….
“어?”
“……?”
플레이어?
도착한 곳에는 늑대 대신, 웬 여자 한 명만 우뚝하니 서 있었다. 설마 저 여자 혼자서 사냥하고 있었던 건가? 나 이외에 여기서 사냥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어의 시선 또한 나를 향했다.
“너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왠지 모르게 플레이어의 목소리에는 날이 선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넌?”
“여긴 내가 발견한 던전이야. 그러니 내가 있는 건 당연한 게 아냐?”
“나도 내가 직접 발견한 던전인데.”
“직접 발견? 이런 미친.”
그때 그 플레이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곧 손에 든 활로 나를 겨냥했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태도에 나 또한 검과 방패를 고쳐들었다. 저런 활 공격에 죽을 내가 아니었으니 긴장되지도 않았다.
차라리 늑대가 더 무섭지.
“좋은 말로 할 때 나가. 죽이고 싶진 않으니까.”
“쏘면 네가 죽을 걸?”
“어디서 헛소리를…….”
“크어엉!!”
늑대?!
뒤쪽에서 리젠이 됐는지, 늑대는 등 뒤에서 울부짖었다. 어쩔 수 없나? 눈앞에 플레이어보다 뒤쪽에 늑대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래도 뒤에서 기습이나 하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겠지.’
휙-
생각과 동시에 늑대의 공격을 피해낸다. 음? 그런데 늑대 공격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 왠지 모르게 피하기가 쉬워진 듯했다.
‘설마 민첩이 오른 영향인가?’
거신의 질주로 6. 교체한 투구로 8. 도합 14의 민첩이 올라간 탓에 이런 형상이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지금처럼 늑대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크엉!”
한쪽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채 밑으로 내리찍는 늑대의 팔. 그 공격 궤적을 읽은 난 옆으로 몸을 날렸고, 순간 등에서 어떤 타격 같은 게 느껴졌다.
퍽!-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라즈'에게서 공격을 받았습니다!]
[정당방위가 성립됩니다.]
“……?”
뭐야?
생각하며 라즈라는 플레이어를 바라본다. 라즈는 당황한 눈빛으로 나와 늑대를 번갈아보더니 이내 안쪽으로 도망갔고, 어찌 됐든 그런 식으로 고개를 돌린 난 검은 늑대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콰앙!-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168.]
큭, 이 미친 늑대가!
“제이어의 수호방패! 거신의 질주!”
파밧!-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활성화…….]
시간을 끌 생각 따윈 없다. 또 내 예상대로라면 지금의 이 상태에서 거신의 질주를 두 번 사용하면 저 늑대는 죽을 거라 믿었다.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486.]
“크헝!”
“거신의 질주!”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480.]
[전투 경험치 400 획득!]
“역시 생명력이 800~900 정도였군.”
처음 늑대와의 전투에서 내가 줬던 데미지를 떠올린 나는 늑대의 생명력이 800~900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내 지구력은 절반 가까이 소모했지만, 이 방식대로 싸우면 연속으로 두 번까지도 싸울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그 여자인데.’
어둠으로 인해 시야가 좁은 이곳에서 도망쳤으니 어떻게 찾기는 힘들 거 같았다. 일단 놔두는 수밖에 없나? 뭐, 생각이 있다면 그쪽에서 먼저 덤비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방어력을 보고 다시 덤빈다면 정말 미친 거겠지.’
대체 그 정도 데미지로 어떻게 사냥했을까?
그건 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물어봐도 알려줄 거 같지가 않았기에 무시하기로 하며 먼저 지구력부터 회복하기로 했다.
“거신의 질주!”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481.]
[전투 경험치 400 획득!]
[레벨이 올랐습니다.]
[띠링!~ '검은 늑대 신발'을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A랭크 스킬 '거신의 질주'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능력치 근력 6, 민첩 6 증가합니다.]
“후, 이제 한 개 떴네.”
덩달아 거신의 질주의 레벨도 올랐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지금까지 잡은 늑대들만 10여 마리가 됐는데, 이는 거신의 질주를 최소 20번은 사용했다는 뜻이다. 또 녀석들의 경험치도 상당한 수준인지라 현재 내 레벨은 14로 올라가 있었다.
20레벨까지 딱 6레벨만 남은 상황.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늘 안에 20레벨도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보다 신발인가?”
난 아이템 창을 열어 획득한 신발을 꺼냈다.
[검은 야수의 신발] (Magic)
설명:검은 갈기 전사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 기존의 다른 가죽보다도 질긴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야수의 마력 또한 잠들어있다.
<근력(4), 민첩(9)>
방어력:30 마법 방어력:20
내구력:60/60
*이동 속도 10 상승.
*세트 효과(1/5)
-2부위 장착 효과:생명력 50 증가.
-3부위 장착 효과:공격력 20 증가.
-4부위 장착 효과:민첩 20 증가.
-5부위 장착 효과:지구력 소모 10% 감소.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아이템이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신발보다 월등히 좋은 아이템이기에 곧장 바꿔 신는다. 개인적으로 근력과 체력을 올려주는 장비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민첩도 나쁘진 않았다.
[세트 효과가 발동됩니다.]
[생명력 50 증가.]
“상태 정보창.”
[이름:루딘]
[칭호:수호의 방패]
[레벨:14]
[명성:84]
[생명력:2068/2068]
[마나력:2/460]
[지구력:51.8%]
[공격력:214] [마법 공격력:24]
[방어력:265] [마법 방어력:190]
[능력치]
근력(116) 지능(24) 민첩(67)
체력(54) 마력(17) 기술(17)
[습득한 스킬:11/30]
‘민첩이 체력보다 더 높아졌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체력은 민첩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민첩 수치가 체력을 뛰어넘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스킬과 더불어 교체한 장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나쁠 건 없지만.’
아마 이 민첩이라면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늑대와 싸울 수 있을 듯했다. 민첩이라는 게 원래 그런 역할이다. 민첩은 동체시력, 공격 속도, 이동 속도.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한 수치였으니 말이다.
예상이지만 지금의 내 움직임은 늑대를 따라잡지 않을까?
‘뭐, 한번 붙어보고 안 되면 스킬이나 써야지.’
라는 느긋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무렵.
저벅-
‘저건?’
내 앞을 가로막은 한 명의 플레이어.
아까 내게 화살을 날리고 도망쳤던 그 플레이어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조용히 숨어있을 것이지.”
“미안하지만 역시 쫓아내야겠어.”
“쫓아낸다고?”
내 물음에 플레이어…… 라즈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긴 내 던전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시위에 걸린 화살이 내게 날아왔다. 결국 이런 식인가? 날아오는 화살의 속도는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지만, 어차피 저 화살이 맞더라도 내겐 피해가…….
푸욱!-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194.]
‘관통 데미지?’
어이없게도 화살은 내 갑옷을 뚫고 들어왔다. 관통 데미지가 적용된 것이다. 고통이야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질적인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몸에 꽂힌 화살이 사라지기도 전에 플레이어는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집중 사격.”
“거신의 질주!”
콰콰콰콱!!-
화살 따윈 무시하며 달린다. 날리는 화살이 죄다 관통 데미지로 적용되더라도 난 죽지 않는다. 그 자신감으로 난 거신의 질주를 사용한 채 달렸고, 플레이어는 재빨리 활시위를 놓으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거신의 질주는 플레이어의 발을 스치는 정도에서 끝났다.
[스킬 경감 데미지! 89.]
‘제대로 맞질 않으니 데미지도 이따위가 되는군.’
더불어 거신의 질주로 상승된 내 속도를 피했다는 게 놀라웠다. 모르긴 몰라도 기존의 내 민첩보다 높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패배할 내가 아니지만.
“은신.”
몸을 돌려보니 가까스로 내 공격을 피해낸 플레이어의 몸이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