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8 第 4 話 =========================================================================
第 4 話 “4일째”
“괜찮지 않나요? 수준 높은 던전이라 경험치도 상당한데다, 그곳에서 나오는 아이템도 획득할 수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투루와 상대한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겨준 모양이다. 그나저나 얼마나 수준이 높은 던전이기에 나를 고용하는 거지? 뭐, 보스까지 잡지 않더라도 50만 원이 생기는 일이다.
50만 원이라…….
‘으음, 그 정도로 수준이 높다면 아이템도 좋겠지?’
“어떠신가요?”
“잠깐 생각 좀 해볼게요.”
거기까지만 대답한 난 라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라즈를 보자, 그녀의 얼굴이 이상했다. 뭔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고 해야 되나? 아님 감탄? 아무튼 부담스러운 시선이 아닐 수 없었다.
“와, 대단하네.”
“뭐가 대단한데? 아니, 그보다 아까 돈 어쩌고 하던데 뭐야?”
“아, 그건…….”
내 질문에 라즈는 옆에 있는 로이나를 꺼림칙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오늘 홈페이지 봤어? 영상 게시판이라는 게 생겼거든. 거기서 1위를 하면 무려 300만 원이나 준다고 해.”
“영상 게시판이라면 나도 봤어.”
그리고 1위는 S랭크 스킬을 가진 멸살검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 그럼 이야기는 편하겠네. 나랑 같이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지 않을래? 만일 상금을 받으면 우리 둘이서 반씩 나눠가지는 거야.”
“…….”
뭔가 말은 쉽다. 너무 쉬워서 어딜 지적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말하기로 했다.
“무슨 영상으로 1위를 할 건데?”
“그거? 내가 던전을 찾은 뒤에 그 던전 보스를 너 혼자 잡는 거야. 보스와 1:1로 싸워 이기는 영상! 네가 가진 스킬을 사용하면 분명 1위도 할 수 있어!”
“…….”
아마 제이어의 수호방패와 환영이동을 말하는 거 같다. 분명 수호방패는 화려하기도 하니 찍으면 순위권에는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걸 찍으면 내가 가진 스킬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들을 가치조차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난 망설임도 없이 라즈의 시선을 외면했다.
“도와주면 50만 원이라고 했죠? 가죠.”
“야! 이건 진짜 대박이라니까? 그리고 내가 찾은 던전도 이용하게 해줄게! 너 탐색 스킬도 없잖아!”
“저 여자 분은 탐색 스킬을 가진 모양이네요.”
“예. D랭크라나?”
“그걸 왜 말해!”
버럭 소리치는 라즈를 가볍게 무시했다. 하지만 D랭크라는 말이 의외였던 걸까? 로이나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눈빛으로 라즈에게 말했다.
“혹시 저희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나요?”
“없어! 난 길드라면 지긋지긋해.”
“잘 생각해보세요. 좋은 대우에 모실게요.”
이젠 날 놔두고 서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던전을 도와주면 오늘 의뢰는 못하는 거 아닌가? 굳이 해야 될 이유는 없지만, 하루에 한 번밖에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후, 이놈의 명성은 대체 무슨 이득이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진짜 의뢰는 어떻게 해야 되지.’
오늘은 포기하고 50만 원이라도 챙길까? 그놈의 투루에게 죽은 탓에 떨어진 소지금만 20만 원 정도다. 그런데 그 손해를 메우고도 남을 50만 원이라는 금액은 상당히 끌렸던 것이다.
‘아님 지금 시간이 4시 정도니, 접속을 종료하면 10시가 되겠지? 그때 의뢰를 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각종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무튼 난 싫어. 알아보려면 다른 사람이나 알아봐.”
“예. 하지만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신다면 연락주세요.”
“연락할 일 없어.”
그 말을 끝으로 로이나의 시선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이제 생각이 끝나셨나요?”
“뭐, 돕도록 하죠. 보스까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주시는 것으로도 감사하죠. 아, 그보다 길드원을 모으려면 1시간은 기다려야 되는데, 1시간 뒤에 북쪽 성문에서 모이면 어떨까요?”
‘1시간 뒤?’
어? 그럼 의뢰를 해도 되겠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찬성했고, 그녀는 다시 한 번 1시간 뒤를 강조하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그럼 재빨리 의뢰나 해볼까.’
1시간이라면 여유를 가지고 의뢰를 해도 될 듯하다. 그 생각을 하며 의뢰 길드로 향하자, 라즈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대체 왜 안하겠다는 거야?”
“굳이 영상을 안 찍어도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래도 더 벌면 좋잖아.”
“또 어떻게 보스 몬스터를 혼자 상대해?”
“그거야…….”
내 말에 라즈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자신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상을 찍는다면 내가 S랭크 스킬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들킬지도 몰랐다.
뭐, 솔직히 들켜도 상관없다. 뭐 어쩔 건가? 내게서 S랭크 스킬을 뺏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귀찮을 수는 있지만.’
그 귀찮음 때문에 싫다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 어딜 가?”
“의뢰 길드. 오늘 의뢰를 못했거든.”
“의뢰? 그러고 보니 나도 의뢰를 해야 되는데.”
“……같이 하려고?”
“나 생각보다 공격력도 높아. 웬만한 한사람 몫은 해.”
“그거야 네 생각이지.”
라즈의 공격력이 아무리 높아봐야 내 방어력보다 낮을 것이다. 뭐, 지금의 나도 공격력보다 방어력이 높은 상태긴 하지만.
“와~ 치사하다. 어젠 내 던전에서 잘도 사냥했으면서.”
“…….”
던전 이야기가 나오니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멋대로 그녀의 던전에서 사냥해서 세트 아이템까지 챙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던전이라는 단어에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근데 던전은 팔았어?”
“당연히 팔았지. 구매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그 던전에서 사냥하는 건 힘들겠군.’
어차피 내 던전도 아니지만 레벨을 올릴 장소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나중에 로이나에게 부탁해야 되나? 그 던전에서 사냥해도 되냐고?
‘음, 안 되겠지?’
내가 그녀의 길드로 들어가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던전을 이용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후.”
“응? 웬 한숨이야?”
“아냐.”
이러나저러나 난 라즈와 함께 의뢰 길드로 도착했다.
의뢰 길드로 도착한 난 안내원에게 다가가 D랭크 의뢰 목록을 보여 달라고 했다. 떨어진 레벨도 복구해야 되고, 도르겐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E랭크 의뢰는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D랭크? 좀 위험하지 않아?”
“적당한 걸로 하면 돼.”
같은 D랭크라도 난이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라즈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잠자코 있었고, 난 안내원이 보여주는 의뢰 목록을 살펴보았다.
[숲의 마물을 처리하라.] (D랭크)
내용:최근 하르페 제국 북서쪽에 위치한 푸른 딸기 숲에서는 심상치 않은 마물이 튀어나와 인근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외진 곳이라 병력을 파견하기도 어려운 이곳에 어느 순간 서식하고 있는 마물 10마리를 처리하라.
*자동으로 푸른 딸기 숲으로 이동.
보상:명성(45), 금화(2골드), 푸른 딸기 30개.
적정 인원:3명
[포식자 '호베'를 처리하라.] (D랭크)
내용:아니스 왕국에 위치한 어느 산맥에는 포식자로 군림한 독수리가 있다. 그 독수리의 이름은 호베. 호베는 웬만한 마물조차 싸워 이길 정도로 강한데다, 하루에 몇 마리나 되는 동물을 잡아먹기 때문에 그 인근에 살고 있는 사냥꾼들이 생활에 곤란함을 느끼고 있다. 그저 최대한 빨리 호베를 처치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자동으로 산맥으로 이동.
보상:명성(60), 금화(4골드), 아이템(거센 바람의 가죽 방어구 중 1개)
적정 인원:6명
“음.”
말은 적당한 걸 한다고 했지만, 포식자 의뢰는 왠지 힘들 거 같았다. 독수리를 잡으라니? 그 날아다니는 걸 어떻게 잡아? 참고로 내겐 원거리 스킬이 없다. 때문에 호베는 패스하려고 했지만, 내 옆에서 같이 종이를 읽고 있던 라즈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여기 봐봐. 4골드나 줘.”
“안 할 거니까 꿈 깨.”
“하긴, 좀 어려워 보이네. 사람 좀 모으면 되지 않을까?”
“그럴 시간 없어.”
어제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계속 외치던 사람들을 떠올린 난 곧장 반대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마물 퇴치 밖에 없었다.
“숲의 마물을 처리하는 의뢰로 할게요.”
“예. 1골드입니다.”
‘쩝, 비싸네.’
[1골드가 소모되었습니다.]
[D랭크 의뢰. '숲의 마물을 처리하라'를 받으셨습니다.]
“그럼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안내원의 말을 흘려들으며 라즈를 보았다. 이 여자를 데려가야 되나? 잠깐의 고민이 있었지만, 어제 던전에서 신세진 것도 있으니 데려가기로 했다.
“파티 신청.”
“나도 데려가려고?”
“어제 신세진 것도 있으니까.”
내 말에 나를 빤히 바라보던 라즈는 이내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파티가 맺어집니다.]
[현재 파티원 2명. (루딘, 라즈)]
“헤헤, 잘 부탁해.”
“…….”
그렇게 좋을까?
라즈의 실력이나 외모, 성별이라면 의뢰 파티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차마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의뢰를 시작했다.
“의뢰 시작.”
[의뢰를 시작하셨습니다. 의뢰 장소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예.”
[의뢰 장소로 이동합니다.]
파밧!-
이동한 장소는 숲.
이곳이 의뢰에 적혀 있던 푸른 딸기 숲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물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마물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나를 뒤따라온 라즈의 모습만 보였을 뿐이다.
“그럼 갈까?”
D랭크 의뢰임에도 태평한 라즈에 태도에 아주 잠깐이나마 감탄한 나는 슬슬 그녀의 말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위험하면 뒤로 빠져.”
“그래도 돼?”
“괜히 나서다 죽는 것보다 낫지.”
죽음에 대한 패널티는 그 정도로 심하다.
라즈도 내 실력에 관해서는 이해하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놈의 마물은 어디가야 만날 수 있지? 그전에 어떤 마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돌아다니면 알겠지만.’
여긴 의뢰를 받아 온 장소니, 마물을 제외한 다른 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또 그런 내 생각대로 몇 분 정도 돌아다니니 한 마리의 마물을 만날 수 있었다.
“취익!”
“저건…….”
“멧돼지네.”
아니, 멧돼지는 멧돼지인데…….
눈앞에 있는 멧돼지는 지금까지 TV에서 봤던 것과 달랐다. 덩치만 하더라도 나보다 훨씬 컸고, 입 주변에 있는 송곳니는 못해도 1미터는 되는 듯했다.
‘저기에 찔리면 그냥 관통 데미지로 뜨겠는데?’
[흉포한 야생 멧돼지]
“취이익!”
‘온다.’
자세를 낮춘 채 돌진하는 멧돼지의 속도는 꽤 빨랐다. 그러나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래 봬도 내 민첩은 상당히 높은 상태. 달려오는 멧돼지에 대응하기 위해 나 또한 스킬을 시전했다.
“거신의 질주!”
콰콰콰콱!!-
멧돼지의 돌진과 내 거신의 질주. 저 멧돼지의 공격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 거신의 질주가 이길 거라 믿었다.
콰아아앙!!-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43.]
[스킬 데미지! 398.]
“꾸엑!”
덩치가 무색하게 뒤로 날아가는 멧돼지. 거신의 질주를 사용한 나보다 근력이 낮은 모양이었다. 비록 레벨이 떨어졌다지만 내가 거신의 질주를 사용하면 근력이 300에 가까울 정도다.
저딴 멧돼지 따위에게 밀릴 리가 없지.
“집중 사격.”
팟!-
그리고 뒤로 날아간 멧돼지를 향해 라즈가 화살을 쐈다. 저게 데미지는 줄 수 있을까? 잠자코 지켜보고 있으니, 내 예상대로 화살은 멧돼지에게 명중했으나 죽이진 못했다.
‘그럼 그렇지.’
“집중 사격.”
내가 나서야 되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라즈는 다시 한 번 스킬을 시전해 화살을 쏘았다.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의외로 그 화살은 멧돼지의 가죽을 뚫고 들어갔다.
처음 가죽을 맞추고 튕겨나간 화살과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관통 데미지?’
그러고 보니 나랑 싸웠을 때도 관통 데미지가 떴었지? 무슨 관통 데미지가 저리 잘 뜨지? 스킬인가?
“왜 이렇게 안 죽어! 집중 사격!”
“취익!”
어쨌거나 관통 데미지고 나발이고, 멧돼지를 죽일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멧돼지는 다시 돌진을 준비하는지 자세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라즈를 도와야 되는지 고민하던 나는 문득 뭔가를 준비하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불꽃 함정 설치.”
파밧!-
동시에 라즈의 앞에서는 붉은색 마법진이 바닥에 새겨졌다. 함정 계열 스킬인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라즈를 향해 돌진하는 멧돼지는 여지없이 마법진을 밟아버렸다.
콰앙!-
[전투 경험치 228 획득.]
솟구치는 불꽃과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메시지. 그것으로 보아 난 멧돼지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참 아슬아슬하게도 잡네.’
다음부터는 그냥 내가 잡을까? 들어오는 데미지를 생각하면 그리 강한 몬스터도 아닌 거 같은데.
“어때? 내 실력 봤지?”
“…….”
대답할 가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절로 나오는 한숨을 숨기지 않으며 나머지 9마리의 멧돼지를 찾아 나섰다.
“야! 지금 그 의미는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