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66화 (66/211)

00066  第 10 話  =========================================================================

第 10 話 “12일째”

‘좀 늦었나?’

철컥-

이미 길을 알고 있기에 헤매지는 않았다. 다만 마을까지 걸어오는데 시간을 허비한 난 그런 생각을 했고, 또 길드 아지트로 들어가자 그런 내 생각대로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루딘 님.”

“아, 응. 근데 꽤 많네?”

둘러보니 대략 20명 정도 보였다. 그들은 각각 소파에 앉아 있거나, 혹은 테이블 의자. 그것도 아니면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내가 아는 얼굴도 몇몇 섞여 있었다.

“많진 않습니다. 아직 접속하지 않은 분도 계시니까요.”

“…….”

여기 인원이 끝이 아닌가?

‘……하긴, 길드 인원이 워낙 많으니까.’

나름 엠페러 길드가 지닌 저력을 인정하며 대충 자리를 찾아 앉는다. 웬만한 자리는 다른 길드원이 앉아 있었기에 바닥에 앉았는데, 아이젠은 그런 나를 제지시켰다.

“루딘 님의 자리는 이곳입니다.”

“아, 그래?”

고개를 돌려보니 현관의 끝. 정중앙 부분에는 고풍스런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설마 저 자리가 내 자리인가? 아이젠을 보니 자연스레 그곳 의자에 착석했고, 나 역시 아이젠 옆에 비어있는 자리로 앉았다.

“모두가 모인듯하니 토벌 의뢰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근데 왜 회의를 하는 거지?’

그냥 우르르 몰려가서 때려잡으면 되지 않나? 엠페러 길드는 그 정도로 많은 길드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설사 바무트 교황이 레이드용 보스라고 해도 상관없다. 몇천 명이 달려드는데 지가 어쩔 텐가?

“일단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누군가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의견을 냈다.

“어째서죠?”

“들어보니 교황 주변에는 몇백 명의 사제가 있다고 해요. 또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마물까지 합치면 1천 이상이고요. 싸운다면 길드 퀘스트처럼 전쟁 구도가 될 텐데, 하물며 저흰 다음 길드 퀘스트도 준비해야 되잖아요.”

‘그런가?’

내용을 들어보니 길드 퀘스트는 전쟁 개념으로 치러지는 모양이었다. 또 죽음에 대한 패널티를 잘 알고 있는 난 그 의견이 타당하다고 느껴졌다.

“아아, 그건 아니지. 길드 퀘스트야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 그에 비해 바무트는 지금밖에 못하는 이벤트야. 당연히 바무트를 잡아야지!”

“저희가 잡는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우리가 아님 누가 잡는데?”

“다른 수많은 길드 중에서 잡겠죠.”

“그거야 네 말대로 지켜볼 때 이야기지!”

탕-

서로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려는 그때, 아이젠은 테이블을 두들겼다. 그리고 그 소리는 길드원의 대화를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나지막한 그 물음에 대다수가 잡아야 된다는 쪽을 선택했다. 솔직히 내가 볼 때는 다들 레어 아이템에 눈이 먼 거 같았다. 지금까지 경매장에 올라온 레어 아이템은 단 한 개. 그 한 개조차 내가 올린 것뿐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었다.

차라리 투루나 잡을 것이지.

“그럼 바무트 교단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거 같군요. 혹시 바무트 교단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십니까?”

‘방금 발생한 퀘스트에 정보를 찾다니…….’

황당했지만, 그보다 더 황당한 사실은 손을 든 길드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무트 사제를 잡으니 공적치를 줬습니다. 아마 나중에 교황을 잡고 나서 공적치로 인한 보상이 따로 적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황의 위치는 동남쪽 평원에 있습니다.”

“지배된 몬스터는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강하지만 사제는 약하더군요.”

꽤 많은 의견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이 비슷했다. 정면에서 싸울 거라면 몬스터는 놔둔 채 사제만 집중 공격해야 된다는 건데, 나 또한 그 의견에는 찬성이었다.

세 배로 강해진 몬스터를 어떻게 싸울까? 만일 리자드맨이 세 배로 강해진다면 공격력만 1천이 넘는다.

“루딘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 좋지 않아? 사제를 죽여서 숫자를 줄인 뒤에 교황까지 처리하면 되잖아. 레이드용 보스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 녀석은 레이드 시스템을 모르나?

“만일 교황이 레이드용 보스라면 기여도 시스템이 적용되거든. 그 기여도에서 1등을 차지하려면 최대한 데미지를 주는 쪽으로 집중하는 게 좋아.”

단순히 내 생각이었다.

터무니없는 확률로 레어 상자를 노리는 것보단, 최대한 높은 데미지를 줘서 기여도 1등을 차지하는 것이다. 기여도 1등을 차지하면 교황이 주는 아이템 몇 개는 건질 수 있을 테고, 또 거기서 레어급 아이템도 나올 거라 믿었다.

“…….”

아무튼 이런 내 대답에 아이젠은 잠깐 침묵을 유지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루딘 님은 레어 상자보다 기여도 1등이 낫다는 거군요.”

“막타(마지막 타격)를 쳐서 얻는 거라면 다른 누가 얻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반대로 기여도는 데미지를 최대한 많이 주는 쪽이 유리하니 레어 상자보단 훨씬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의뢰 내용에는 교황을 처치하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 막타일 가능성이 컸다. 덧붙여 엠페러 길드만 교황을 공격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누가 얻어도 엠페러 길드에서 얻는 거고, 또 그렇게 되면 아이젠이 본인 사비를 털어 바로 구매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다른 길드가 잠자코 보고 있을까? 교황을 공격할 때라면 주변 사제들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도 미친 듯이 달려들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교황이 진짜 레이드용 보스라면…….’

방법은 두 가지인가?

죽음을 각오하고 계속해서 교황을 공격하는 방법. 혹은 다른 누군가 교황을 공격할 때 끼어들어 마무리만 하는 방법.

장단점이 각각 존재한다.

교황을 공격하면 분명 피해가 생길 테고, 그 피해는 이후 길드 퀘스트에 지장을 줄 것이다. 반대로 공격할 때 끼어들면 피해는 줄일 수 있지만 기여도는 포기해야 된다. 운이 좋다면 레어 상자를 얻지만, 그 운조차 없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방법인 것이다.

‘후.’

“다른 길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저희도 가야 됩니다.”

“헛소리. 지금은 지켜보는 게 맞아. 교황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잖아!”

“공적치는 모으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필드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타나면 그들이 모조리 잡아버릴 걸?”

근데 이 회의는 언제 끝나지?

듣고 있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하는 것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왜 여기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 시간 아까워.’

“이봐, 길드장. 지금 주제와 좀 별개의 말을 해도 되나?”

“하십시오.”

“처음에 부길드장은 실력을 우선적으로 뽑는다고 들었는데…… 난 저 녀석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내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 나를 도전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군요.”

“대놓고 말하자면 그렇지. 난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하루 15시간 이상 사냥했어. 길드 퀘스트에서도 나름 활약했다고 자부하고 있고. 아마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반박하지 못할 걸?”

“예, 인정합니다.”

“……인정한다니 다행이군. 어쨌든 다른 길드원에게 물어보니 부길드장의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 태반이었어. 길드 퀘스트에도 참여하지 않고, 던전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알 리가 있나. 그런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라면 최소한 실력이라도 증명해야 되는 거 아닌가?”

주변 반응을 보니 대부분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뭐, 해석하면 별로 유명하지도, 활약하지도 않은 내가 갑작스레 부길드장이 됐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건가?

“알겠습니다. 루딘 님은 어쩌시겠습니까?”

“나더러 뭘 어쩌라고?”

“원하신다면 실력을 보여주셔도 됩니다. 근처 훈련소로 가신다면 서로 대련할 수 있을 테니 그곳에서 해결해도 괜찮겠군요.”

“…….”

‘젠장.’

결국 훈련소로 오게 되었다. 날 훈련소로 끌고 온 인물은 뭔가 자신의 계획대로 됐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저 미소로 인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재수가 없다는 거였다.

‘미친 자식.’

단숨에 없애주마.

“이봐, 부길드장. 그냥 붙기도 심심하니 내기 한번 해보는 게 어때?”

“내기?”

“내가 이기면 부길드장 자리를 내놓는 거지. 어차피 부길드장은 실력 있는 사람이 올라가야 되잖아?”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질 생각도 없었기에 뭐라고 지껄이든 관심조차 없었다. 설마 S랭크 스킬을 3개나 지닌 내가 지겠는가? 같은 S랭크 스킬을 습득하고 있는 아이젠만 아니라면 누구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반대로 내가 이기면?”

“그건 그쪽에서 말해봐.”

“흐음, 10골드 어때?”

10골드. 현금으로 따지면 100만 원이다. 딱히 원하는 것도 없었지만 오늘 구매한 도발 스킬북의 지출을 메꾸기 위해 10골드를 제시하자, 그는 잠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진다면 10골드는 내지.”

“오.”

설마 저렇게 흔쾌히 승낙할 줄이야.

망설일 거 없이 대련장으로 올라선다. 훈련소에는 서로 대련할 수 있는 대련장이 펼쳐져 있었고, 이 대련장에서는 죽어도 아무런 패널티도 없었다.

서로 안심하고 싸울 수 있는 장소.

“대련 시작.”

“대련 시작.”

[대련이 시작됩니다.]

파밧!-

그 장소에서 대련 시작을 외치자, 대련장 외각에서는 빛이 솟아올랐다. 다른 이가 끼어들지 못하게 막아주는 빛. 동시에 내게 싸움을 걸었던 길드원은 즉각 달려들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말투를 들어보니 이미 이긴 거 같다. 난 달려오는 길드원을 향해 방패를 내밀었다. 네르타스를 잡고 얻은 이 방패의 크기는 내 상반신을 가릴 정도였기에 무리 없이 첫 번째 공격은 막을 수 있었다.

카앙!-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24.]

“칫, 어디서 방패 하나는 좋은 걸 주웠나보군.”

‘뭔 헛소리야?’

그래도 스킬도 사용하지 않은 일격에 데미지가 들어온다는 건 놀라웠다. 실력에 자신이 있을 만도 한데? 하지만 난 녀석의 실력을 봐주기 위해 대련에 참여한 건 아니다.

“거신의 질주!”

제자리에서 무릎을 굽혀 튕기듯이 쏘아진다. 이때만큼은 민첩이 400을 넘긴 상태. 알고 있다면 모를까, 모른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다.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909.]

“크악!”

그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튕겨나간 길드원. 난 그 길드원이 바닥에 닿기 전에 다시 한 번 거신의 질주를 사용했다.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901.]

‘이거 잼나네.’

속으로 생각하며 길드원을 바라본다. 길드원은 거신의 질주로 다시 튕겨나가더니 대련장 외각. 빛의 벽에 부딪치며 천천히 쓰러지고 있었다. 공중에서 움직일 방도가 없는 만큼 녀석은 이미 끝났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거신의 질주!”

콰아아앙!!-

[대련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간단하군.’

승리했다는 메시지. 동시에 대련장 외각의 빛은 사라졌다. 또 지금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길드원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설마하니 이렇게 압도적으로 이길 줄은 몰랐겠지.

단순히 거신의 질주 하나만으로 이긴 승부다. 만약 S랭크 스킬까지 썼다면 더욱 더 압도적으로 이기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녀석은 이미 내 상대가 아니었다.

“이, 이건 인정할 수 없어! 다시 붙어!”

“인정할 수 없다고? 뭐, 상관없긴 한데…….”

“정말인가?”

“일단 10골드 먼저 줘.”

10골드라는 단어에 녀석의 인상은 왕창 구겨졌다. 그럼에도 10골드를 주는 걸 보니 어지간히 다시 붙고 싶은 듯했다.

‘덕분에 10골드 벌었군.’

“자, 다시 붙자!”

“이번에도 내가 이기면 10골드 받겠어.”

“…….”

이런 말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건가?

녀석은 어이가 없는, 혹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왜 저런 표정으로 보는 거지? 반대로 이번 승부에서 내가 진다면 부길드장에서 내려오라고 소리치지 않겠는가? 그걸 생각하면 10골드는 당연한 요구였다.

“또 10골드를 내라고?”

“이번에 내가 지면? 부길드장에서 내려와야 되잖아. 그러니 10골드는 당연한 거지.”

으득.

“좋다! 이번에도 지면 10골드 더 내주마!”

난 이를 갈며 승낙한 길드원을 보며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거신의 질주 3방에 뻗은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그걸 승낙해? 조금 전의 공방으로 내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힐 거 같은 녀석이 승낙하니 나도 조금 떨떠름했다.

“대련 시작!”

……어지간히 급한 거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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