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黃昏). 직감의 소유자-95화 (95/211)

00095  第 18 話  =========================================================================

第 18 話 “23일째”

‘그보다 이미 전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마을에서 주저 없이 덤벼든 녀석들을 보니 전쟁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아마 엠페러 길드가 보이는 대로 죽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장 갈만한 장소도 없었다.

‘아님 마을이나 돌아다녀?’

마을을 돌아다니다 눈에 보이는 적대 길드만 처리해도 내 몫은 충분히 하는 셈이다. 또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나중에 내가 돕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 판단한 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왜 안 보이지?”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이상하게 적대 길드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서로 웃고 떠들며 걸어가는 사람들 뿐. 그런 사람들 속에 섞인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며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했다.

설마 도망간 건가?

아니라면 어디 숨어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러다 기습처럼 튀어나오면 재미있을 텐데.’

만일 숨어있다고 가정한다면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길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거기까지 간다면 녀석들도 튀어나올 테지.

“앗?! 부길마님!”

“……?”

부길마? 갑작스레 들려온 부길마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본 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가슴 쪽에 그려진 문양을 보고 같은 엠페러 길드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얌전히 그들을 기다렸다.

“부길마님! 지, 지금 길드성에 몇백 명의 적들이 몰려오고 있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몇백 명이요?”

이것들이 길드성을 공격하기로 했나? 분명 많은 숫자였지만 지금처럼 당황한 정도는 아니었다.

“길드성에도 사람이 있잖아요? 아니, 아이젠은요?”

“이미 다른 길드원을 데리고 던전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접속하지 않은 길드원도 많은데다 던전을 공격하는 적들의 숫자도 상당해서 저희 쪽 인원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태입니다.”

‘인원이 부족하다고? 아, 오전이라 그런가.’

아무래도 오전에는 접속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이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생긴 문제이기도 했는데, 지금 일어나는 이 일도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어차피 게임에서의 일이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럴 게 아니라 당장 도와주러 가야 됩니다. 자칫 잘못하다 길드성을 뺏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이 인원으로?’

현재 내 곁에 있는 길드원은 10여 명도 되지 않았다. 길드성에 몇백 명이 온다면서 이 인원으로 돕자고 하는 건가? 최소 100명 정도는 있어야 돕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쯧, 진짜 가야 되나.’

하필이면 같은 길드원에게 걸리다니. 만일 싫다고 대답하면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 같은 대우는 받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던 난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가죠.”

“예!”

다행스러운 건 길드성이 가깝게 있다는 정도였다. 따라서 몇 분 걸리지 않아 길드성 근처에 도착한 난 적대 표시를 띄운 4~500명의 플레이어를 볼 수 있었다.

쾅!- 콰콰쾅!!-

“으하하핫! 이 길드성만 먹으면 우리들의 승리다! 자, 빨리빨리 밀어내지 않고 뭐해?!”

‘장관이 따로 없군.’

“막아! 뚫리면 안 돼!”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쳐들어오다니!”

길드성 입구에는 엠페러 길드원이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고, 적대 길드는 그 입구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각종 마법은 물론, 하늘을 날아다니는 정령이나 소환수를 앞세워 쉬지 않고 공격을 해대는 모습은 분명 쉽게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잘 막고 있긴 하네.’

“부길마님. 저 길드성만큼은 무조건 지켜야 됩니다.”

“아까부터 길드성 이야기를 하는데…… 왜요?”

“길드성이 점령당하면 그곳에 부활하는 길드원이 접속하자마자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부활 지점을 길드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나?’

한마디로 부활 지점을 길드성으로 바꾼 길드원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길드성을 뺏기면 다시 접속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난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 정도면 어떻게 되겠군.’

“천천히 따라오세요.”

그 말을 남기며 곧장 정면에 위치한 적대 길드를 향해 달렸다.

“제이어의 수호방패!”

파밧!-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활성화됩니다.]

그리고 일순간 치솟는 빛. 이 빛기둥을 눈치채지 못할 적들이 아니다. 갑작스레 빛이 올라오는 탓에 모두의 시선을 끈 나였지만 달리는 발을 멈추지 않았고, 그런 날 알아챈 녀석들은 소리를 치며 모두에게 알렸다.

“어? 어? 루딘이다!”

“엠페러 길드의 부길마다!”

“부길마가 나타났다!”

소리만 치면 뭐 되는 줄 아나? 하지만 내가 나타났다는 것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들 중 일부분이 내게 마법을 날렸다.

‘마법이라…….’

피식 웃는다. 불, 얼음, 번개 등등의 각종 속성 마법이 날아왔으나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팡!- 파팡!-

예상대로 내게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마법들.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가진 힘이다. 제이어의 수호방패는 내 방어력 이하의 마법 공격을 무시하는 효과가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제이어의 수호방패를 쓰면 속성 방어력까지 올라간다. 즉, 마법으로 날 죽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다.

또 어느 정도 접근한 나는 주저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거신의 질주!”

콰아아앙!!-

“온다!”

“피, 피해!”

[스킬 데미지! 3,918.]

[스킬 데미지! 4,005.]

순식간에 두 배 이상 빨라진 내 몸은 일직선상에 있는 적들을 모조리 날려버린다. 못해도 20명 이상 죽이지 않았을까? 녀석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지금 데미지 이상의 생명력은 거의 없는 듯했다.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를…….]

[적대 세력의…….]

[보상 경험…….]

[보상 금액…….]

[생명력이…….]

어쨌든 이번 거신의 질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메시지 창을 띄운 난 다시 몸을 돌려 내 주위에 있는 적대 플레이어를 훑어보았다.

“저, 저 녀석이 루딘이다! 잡아!”

“우리 '블랙 크로스' 길드의 힘을 보여주마!”

“죽여!”

‘흠, 역시.’

수많은 적들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딱히 긴장되지 않았다. 과장을 보태 그냥 허수아비들만 서 있는 느낌이다.

“죽은 녀석을 빨리 부활시켜!”

“입구 공략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루딘을 맡는다!”

“거신의 질주!”

분주한 적들을 무시하며 대충 인원이 많아 보이는 곳을 찾아 거신의 질주를 사용했지만 이번만은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막아!”

“보호의 장벽!”

“보호 방패!”

“대지의 성벽!”

콰아아앙!!-

‘오?’

놀랍게도 이번 거신의 질주로 죽은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솟아오른 벽에 의해 그 누구도 맞지 않았다. 사람이 이 정도로 모이면 이런 일도 가능하군.

“됐다! 공격을 막았어!”

“공격만 막아내면 저 따위 녀석은 별거 아니지!”

또한 내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은 적들은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지의 성벽이라고 했나? 그게 저기서 튀어나왔으니까…….’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다시 거신의 질주를 사용해도 막힐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다른 방향으로 공격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난 성벽을 사용한 플레이어 뒤로 이동해 거신의 질주를 시전했다.

“거신의 질주!”

콰콰콰쾅!!-

“뭐, 뭐야?! 왜 뒤에서 나타나?!”

“어? 이 자식이 두 명으로 늘었잖아!”

[스킬 데미지! 3,981.]

[스킬 데미지…….]

‘이걸로 됐겠…….’

촤악!-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863.]

“……!?”

그때 내 등에서는 뭔가에 베인 감촉이 느껴지더니 믿기지 않은 데미지가 떴다. 이건 관통 데미지인가? 그 데미지에 놀란 난 곧장 뒤쪽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뭔가 걸리는 건 없었다.

‘저 녀석이 공격했나?’

하지만 날 향해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플레이어 한 명은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색 후드로 얼굴을 가린 플레이어. 체구를 보니 여자 같은데다 특이하게도 양손에 카타르를 들고 있는 녀석을 보니 뭔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S랭크 플레이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S랭크 플레이어가 뭐가 아쉬워 이 전쟁에 참여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부정하는 순간, 그 플레이어는 꽤 빠른 속도로 내게 접근했다.

‘일단 상대해주지.’

민첩이 나보다 높은 건 확실하다. 다만 반응하지 못할 속도는 아닌지라 침착하게 방패를 들어 올려 내 몸을 가렸고, 플레이어는 방패를 쥔 왼쪽으로 돌아 내 빈틈을 노렸다.

팡!- 파파팡!- 퍼억!-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젠장! 통하는 공격이 하나도 없어!”

“대체 방어력이 얼마나 높은 거야?!”

“아니, 방어력보다는 속성 저항력이 엄청 높아!”

카앙!-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흐음.’

방패로 몸을 가리긴 했으나 플레이어는 자세를 낮춰 내 발등을 때렸다. 관통 데미지가 800 정도니 일반 공격은 데미지를 받지 않아야 정상이기도 했다.

‘그냥 민첩만 높은 캐릭일 뿐인가?’

좀 더 상대하면 알 것도 같았다.

“방패 치기!”

휙-

“회전 치기!”

방패를 휘두르고 검은 내 주변을 베어낸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여유롭게 피해내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다.

‘은신?’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에 은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그보다 먼저 내 등으로 몇 차례의 타격이 느껴졌다.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859.]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큭! 역동! 방패 치기!”

콰앙!-

[스킬 데미지! 0.]

[스킬 데미지! 2,457.]

상대방이 내 뒤에 있다는 사실에 대지의 역동으로 발을 묶은 뒤, 방패로 후려친다. 이번만큼은 헛손질을 하지 않았는지 데미지 표시가 떴고, 덕분에 플레이어는 은신이 풀린 채 뒤로 날아갔다. 다만 대지의 역동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아마 보호의 갑옷 비슷한 스킬이 사용된 모양이었다.

‘덕분에 죽지는 않았지만.’

상관은 없다. 이제 이대로 끝내버릴 테니까!

“거신의 질주!”

콰콰콰콱!!-

붉은 폭풍과 함께 달리는 내 몸. 그리고 방패를 맞고 쓰러진 플레이어 또한 뭔가를 사용했다.

“……가속.”

파앗-

“……!?”

사라졌다?

거신의 질주로 700 넘게 올라간 내 민첩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그 플레이어는 순식간에 내 뒤를 점령해 칼질을 했고, 그러자 내 앞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메시지가 생겨났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860.]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압도적인…….]

“역동!”

콰아앙!-

‘뭐?’

어쩔 수 없이 달리는 발을 멈추고 대지의 역동을 사용했지만 데미지는 뜨지 않았다. 데미지가 뜨지 않았다는 말은 그 사이에 피했다는 뜻이다. 대체 어떻게 피한 거지? 물론 대지의 역동을 피할 방법은 존재한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면 대지의 역동을 피할 수 있지만 벌써 그걸 깨달았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아니면 범위에서 벗어난 건가?’

어찌 됐든 지금 내가 입은 데미지는 5천에 가깝다. 일반 플레이어라면 그냥 죽었을 정도의 데미지. 이대로는 불리하다고 느낀 난 소모된 생명력부터 채우기로 했다.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거신의 질주!”

환영을 남기고 이동한다. 그렇게 이동하자마자 남은 적대 길드를 향해 거신의 질주를 사용한다.

콰콰콰쾅!!-

[적대 세력의…….]

[생명력이…….]

“엘시크의 환영이동.”

팟-

계속해서 환영이동과 거신의 질주를 연달아 사용하니 환영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3명, 4명을 넘어 5명째 환영을 만들어낸 나는 대충이나마 생명력과 지구력. 덤으로 전장까지 정리됐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그 의문을 플레이어를 찾았다.

“길마님! 우리 쪽 피해가 상당합니다! 도망쳐야 됩니다!”

“벌써 절반이 죽었습니다!”

“젠장, 젠장!! 저 새끼만 없었어도!”

하지만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고, 나를 향해 욕을 내뱉는 적대 길드만 보였다. 다시 은신으로 숨어버렸나? 딱히 문제는 없다. 다시 기습을 하더라도 내 생명력이라면 버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러난다.”

“예. 모두 후퇴해라!”

‘후퇴?’

언뜻 후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몇몇 인원은 귀환 스크롤을 썼고, 남은 인원은 각자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걸 지켜만 보고 있을 엠페러 길드도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