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1 第 25 話 =========================================================================
第 25 話 “37일째”
‘나머지 세 개는 어디서 구하지…….’
안타깝게도 황실 무구 창고에 있는 검푸른 수호자 세트는 총 세 개밖에 없었다. 투구와 장갑. 그리고 벨트였는데, 당연히 길드원에게 말해 그 모든 장비를 획득한 난 나머지 세 개의 장비를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물론 길드원에게 받은 장비는 네 개가 더 있었다.
내가 두 개의 장비를 얻고, 길드원에게 네 개의 장비를 받았으니 전부 여섯 개. 여기서 검푸른 세트를 제외하고 남은 세 개의 장비는 고민 끝에 레어급 장신구로 받기로 했다.
찾아보니 장신구 중에서도 세트 아이템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아이템을 받는 걸로 보스 때 있었던 일을 마무리하기로 한 나는 총 여섯 개…… 아니, 일곱 개의 레어급 장비를 얻을 수 있었다.
내게서 바무트 교황 벨트를 얻어야 했던 에리스가 자신의 물품 하나를 소모해 내게 아이템을 줬기 때문이다. 어차피 검푸른 수호자의 벨트를 챙긴 나로서는 아무런 손해도 없는 거래였다.
매직급 아이템으로 레어급 장비를 얻었으니 이득이 아니면 뭘까?
아무튼 레어 세트 장신구를 네 개가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신구조차 모든 세트를 모으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이 날 한숨짓게 만들었다.
‘레어급이라 그런지 세트 구하기가 쉽지 않네.’
심지어 그 장신구도 딱 한 개가 없어 모든 세트 효과를 받지 못했다.
‘레어 상자로 뽑는 것도 미친 짓인데.’
내가 원래 끼고 있던 망토까지 포함해 검푸른 수호자 세트를 전부 네 개까지 획득한 나는 결투장 승점으로 레어 상자를 하나 구매해 갑옷을 뽑으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만일 레어 아이템이 1천 개가 있다면 그 중 1개를 골라 뽑아야 된다는 뜻이니까.
즉, 1~1000번까지 있는 구슬 상자에서 정확히 내가 원하는 번호를 고르는 확률이랄까? 실제로 레어 아이템의 숫자는 모르겠지만 느낌상으로는 S랭크 스킬보다 더 어려운 거 같았다.
‘뭐, 여기서 고민해봐야 소용없지만.’
“여~ 기원아!”
때마침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친구 녀석인 재훈이가 보였다. 전에 전화로 만나자는 이야기도 했고, 마침 내일이 쉬는 날이기도 했기에 오늘 저녁에 이렇게 밖에서 나와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응?’
근데 옆에는 누구지?
난 재훈의 옆에서 같이 걸어오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눈과 얼굴형이 둥글어 예쁘다는 단어보다는 귀엽다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런 여성이었다.
“미안, 좀 늦었지?”
“엄청 늦었지. 그런데…….”
내 시선이 옆에 여자로 향하자 재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개해줬다.
“아, 내 여자 친구. 주연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여자 친구였나? 어쨌든 내게 인사하는 주연에게 나 또한 인사하는 사이, 재훈은 뭔가 기분 좋은 어조로 말했다.
“자자, 여기에 서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자.”
“어디로 가려고?”
“근처 고깃집. 왜? 다른 곳으로 갈까?”
“아니, 괜찮아.”
그리고는 재훈을 따라가니 애당초 고깃집으로 갈 생각이었는지 얼마 걷지도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를 이런 곳에 잡은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나? 이러나저러나 자리에 앉은 난 곧이어 세 명이라 말한 재훈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녀석들은?”
“그놈들은 이미 사줬으니 됐어.”
“…….”
난 안 사줘서 따로 불렀다는 건가? 어쨌든 명쾌한 대답에 할 말을 잃은 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주문을 시킨 뒤, 옆에 여자 친구와 투닥투닥 거리며 사이좋게 노는 모습에 이놈이 내 밥을 사주려고 만난 건지, 아님 지들 데이트나 하러 온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언제 사귄 거야?”
“응? 아, 보름쯤 됐나?”
보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았다.
“처음에는 게임에서 만났어.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리 집 근처에서 살고 있더라고. 이것도 인연이니 만나자고 부탁해 결국 사귀기로 했어.”
“아…… 그래.”
그때 옆에 있던 주연은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핀잔을 줬지만 재훈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덧붙여 나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사귀었는지 들어서 뭐하겠는가?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다 익은 고기와 소주 한잔을 마시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재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님 너도 같이 할래? 황혼이라는 게임인데…….”
“이미 하고 있어.”
아까 녀석이 말한 게임이 황혼이었던 거 같았다. 뭐, 게임이라는 시점에서 예상은 했지만 말이다. 가상현실이 나온 탓에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이 망하고 있는 추세라 게임이라 하면 황혼밖에 없었다.
“어? 진짜? 근데 왜 연락을 안 했어?”
“연락은 너도 안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대답에 잠깐 당황한 녀석은 이내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주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싫은 듯했다.
“그래, 넌 어디서 하고 있는데?”
“무슨 말이야? 지역?”
“응, 난 이오트 왕국에 있거든.”
이오트 왕국?
이오트 왕국이라면 지금 크라켄 하나 못 잡아서 사냥터가 전부 막혀버린 그곳 아닌가? 듣자하니 크라켄이 플레이어를 사냥해 레벨이라도 올리고 있는지 가면 갈수록 강해진다는 소문도 들은 적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을 떠올린 난 곧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꺼냈다.
“거기 망했잖아?”
“…….”
초원과 숲이 적은 이오트 왕국에는 대신 작디작은 섬이 많아 그곳으로 가서 사냥을 한다. 혹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던전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지금은 크라켄으로 인해 그 모든 게 불가능해진 상태.
망했다는 내 말도 그리 틀리지는 않았다.
“아직 안 망했어. 이오트 왕국에 모든 길드에서 연합하기로 했거든. 거기다 실력 있는 플레이어까지 고용하기로 했어. 그때 패배한다면 진짜 망하지 않을까?”
“실력 있는 플레이어?”
뭔가 새로운 정보가 나오는 듯하다. 하긴, 그렇게라도 크라켄을 잡아야지. 크라켄을 잡아야 사냥도 갈 거 아닌가? 어떻게 보면 크라켄은 이오트 왕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했다.
“응, 아이젠, 루딘, 데드릭, 카이츠, 아크와 같은 유명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고용하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야.”
‘데드릭?’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누구였지?
아이젠과 루딘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친구 녀석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 뿐이다. 또 뒤에 카이츠와 아크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유명한 플레이어라는 사실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300만 원에 고용한다고 했나?”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대단하지 않아? 300만 원이나 주고 고용하려고 하다니? 이야~ 나였다면 바로 승낙했을 텐데. 따지고 보면 내 월급보다 많잖아.”
‘이게 미쳤나.’
300만 원? 내가 죽어서 뇌룡의 포효를 떨어뜨리면 억 단위의 돈이 사라진다. 아니,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젠은 그 돈을 받고 하려고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았다.
‘뭐지? 이오트 왕국의 플레이어들은 진짜 그 돈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작은 돈은 아니다. 레어 아이템도 점차 풀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좀 질이 낮은 레어 아이템 하나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내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았다.
‘아님 나도 모르게 내 눈이 높아진 건가?’
내심 날 고용하려면 몇천만 원은 줘야 돼!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확실한 건 300만 원에 참가하려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거라는 사실 정도겠지만 말이다.
“그, 만일 전부 거절하면 어쩌려고?”
“거절하면?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 일단 크라켄 토벌에 참여하기로 한 인원만 1만 명이거든. 어떻게든 잡겠지.”
‘1만 명? 뭐, 그 정도라면…….’
한 명당 데미지 1씩 들어간다고 쳐도 총 1만의 데미지가 들어가는 셈이다. 그 정도라면 크라켄도 순식간에 잡을 거라 생각한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 더 물어보기로 했다.
“너도 참여하는 건 아니지?”
“나? 당연히 참여하지. 이제 얼마 뒤에 홈페이지 영상에 내 모습이 나올 걸?”
“……응원은 해줄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녀석이 활약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직장으로 인해 저녁에만 접속할 수 있는 녀석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일단 황혼에서 강해지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그보다 나도 말했으니 너도 말해야지. 어느 지역이야?”
“하르페 제국.”
“아, 던전이라는 던전은 엠페러 길드가 전부 독차지하고 있다는 그곳? 소문으로는 거의 100명이 넘는 인원이 돌아다니며 던전을 찾는다던데…….”
“100명? 엄청 많네.”
“응, 더군다나 전에 있었던 길드전으로 다른 길드가 보유한 던전까지 뺏었잖아. 하르페 제국에서 한다면 무조건 엠페러 길드에 들어가야 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니 말 다 했지.”
흐음, 다른 이가 생각하는 엠페러 길드는 그 정도였나?
“혹시 너도 엠페러 길드에 가입했어?”
“나?”
갑자기 들어온 그 질문에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젓고 말았다. 친구 녀석이 알고 있는 내 모습은 혼자 자취하며 직장에 다니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혼을 해도 취미로만 하는 정도로 말하는 게 맞을 듯했다.
“아니면 너도 이오트 왕국으로 와. 거긴 엠페러 길드에 가입을 안 하면 힘들기만 해.”
“그래요. 저희 같이 다녀요.”
가만히 있던 주연까지 나서 나를 이오트 왕국으로 오라고 권유하고 있었다.
“미안, 공간이동 비용도 비싸고, 거기서 사귄 친구들도 있거든.”
“그래? 아쉽네. 게임에서라도 같이 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도록 해볼게.”
이런 내 대답에 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참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시계를 보고는 재훈에게 뭔가 말하는 주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빠, 미안한데 나 먼저 가볼게.”
“아, 데려다줘?”
“아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 분이라며. 나 혼자 갈게.”
“응, 미안해.”
‘데려다주는 게 좋지 않나?’
어쨌든 주연이 자리를 떠나도 나서도 난 녀석과 실없는 대화만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대화 주제는 끊이질 않았지만 이후 다시 돌아온 주제는 황혼이었다.
재훈은 지금껏 마신 술로 인해 취기가 잔뜩 오른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카르젠 왕국에서도 난리가 났던데.”
“무슨 난리?”
“응? 너 몰라? 거기도 길드전이 한참이잖아. 용감무쌍 길드 마스터가 어떤 여자에게 찝쩍댔는데 그게 붉은 태양 길드 마스터의 여자였나? 때문에 그 두 개의 길드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어.”
“두 개의 길드에서 싸우고 있는 게 난리라고?”
“지금은 달라. 둘 다 다른 길드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거의 몇십 개의 길드 싸움으로 번졌거든. 문제는 용감무쌍 길드가 유리하다는 정도? 보니까 붉은 태양 길드에서는 절대 항복할 생각이 없는 거 같더라.”
‘자칫 잘못하면 접속도 못할 수 있는데…….’
황혼에서의 전쟁은 시작 지점에 인원만 배치하면 끝나버리는 식이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길드성을 지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시작 지점이 아닌 길드성을 함락시켜야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 지점과 다르게 길드성을 함락시키는 건 만만치가 않았다.
길드성에 배치된 각종 장식이 보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지만…… 문제는 그 길드성을 짓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근데 왜 항복을 안 한대?”
“소문으로는 항복하는 대가로 그 여자를 하루만 빌려달라고 했나? 나도 잘 모르지만 그렇게 들었어.”
“……미쳤네.”
친구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긍정했다.
“아무튼 지금 붉은 태양 길드가 밀리고 있으니 게임을 접든가 항복하든가 하겠지. 근데 생각보다 그것과 비슷한 일들이 황혼에는 많아.”
“많다고?”
“응. 황혼에는 성행위 시스템이 있잖아. 그걸로 돈을 버는 여자들도 있더라고. 한번에 2~3골드 정도? 현금으로 따지면 15만 원인가?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나름대로 돈이 되나봐.”
‘돈이 된다라…….’
난 잠시 2~3골드라는 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어제 개고생을 하며 황제가 잡으라고 한 보스를 잡아 얻은 돈이 3골드 66실버. 지금까지는 거의 나 혼자 보스를 잡거나, 혹은 소수의 인원으로만 보스를 잡아 많은 돈을 벌었지만 원래는 그 정도 돈이 기존 플레이어들이 얻는 평균적인 액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 말고 보스를 혼자서 잡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또 그거 때문에 황혼이 인기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인터넷에 보니까 40~50대 아저씨들도 많이 한다더라고. 뭐, 그런 아저씨들이야 게임에는 관심도 없겠지만 말야.”
‘그보다 이야기가 왜 이런 쪽으로 흘러갔지?’
덕분에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래도 친구 녀석의 이야기를 흘러 듣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