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0 第 31 話 =========================================================================
第 31 話 “45일째”
“아, 혹시 오늘 경매장이 열리는 거 아세요?”
“알긴 알죠.”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12시에 물품 순위가 발표된대요.”
‘발표 시간이 12시였나?’
난 시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접속한 시간이 11시였으니 이제 조금만 있으면 결과가 발표될 듯하다. 다르게 말하면 12시가 마감이라는 뜻이지만 이미 올릴 물품은 다 올렸으니 거기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내가 올린 물품이…….’
베크샤의 갑옷 세트와 공포의 일격. 바무트 교주의 단검. 거친 방랑자의 가죽 신발. 악마의 권능. 투루의 장신구였으니 이 모든 걸 판다면 오늘 생각했던 그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 빨리 순위가 발표돼야 하는데.”
잠깐 실시간 경매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이, 시나는 기대 어린 말투로 경매장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올린 물품이 있나 봐요?”
“예, 레어 포션 다섯 개를 올렸거든요. 그거 구한다고 고생했어요.”
“레어 포션이요?”
“레어 포션이요. 혹시나 돈 벌게 되면 밥이라도 사드릴게요.”
“뭐, 예.”
레어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중에 레어급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걸 시나 혼자서 구하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 유아와 같이 구했을 거라 생각한 난 최근까지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레어 재료를 구하고 있었나?’
뭐, 솔직히 대단하긴 했다. 레어 재료라니? 비록 장비보다는 값어치가 낮았지만 아직까지도 구하기 힘든 물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레어 재료는 어디서 구하셨는데요?”
“퀘스트로 구했죠. 제가 던전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그러고 보니 요즘 라즈 님에게 연락이 없네요.”
“……바쁜가 보죠.”
“시간 내서 도와줘요. 던전 찾는 것도 엄청 힘든 일이라던데.”
말하지 않아도 라즈의 던전에서 신세진 것도 있으니 도와주고는 싶지만 그녀가 원치 않을 듯했다.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이내 현금 거래창을 열었다.
“현금 거래창 소환.”
“뭐 구매하실 거라도 있으세요?”
“원거리 스킬이 필요해서요.”
그래도 어제 살펴본 결과로는 그리 쓸만한 스킬이 없었다. 아마 현금 거래창에 올려진 쓸만한 물품을 빼내어 실시간 경매장으로 등록시킨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실시간 경매장도 좋은 건 아니란 말이지.’
어쨌든 투척 스킬이 없다면 마법 스킬이라도 배울 생각으로 현금 거래창을 살펴보는 사이, 뒤쪽에서는 뭔가의 빛이 번쩍였다.
“아, 유아가 온 모양……이 아니네요.”
“어? 시나 님이네요. 오랜만이에요.”
“……?”
돌아보니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 이곳에 온 인물은 라즈였다. 그때 본 이후로 처음인가? 내가 그런 라즈를 쳐다보고 있으니 라즈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겨 근처 소파에 앉았다.
“하아, 조금만 쉴게요.”
“예, 그보다 지금까지 뭐하셨어요?”
“던전도 찾고, 퀘스트도 하고, 조금 바쁘게 움직였어요. 아, 맞다. 길드 퀘스트에서 엄청 활약했다면서?”
갑자기 내게 말을 돌리는 라즈. 난 그런 라즈를 바라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활약까지는 아니야.”
“그래? 듣기로는 너 없이는 못 깼을 거라던데.”
“뭐…….”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때 내가 죽인 숫자만 해도 1천 명이 넘어갔을 정도였으니까. 단순하게 죽인 숫자만 따져도 내가 활약했다는 사실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빚진 게 있었으니 도와준 거뿐이야. 앞으로는 절대 안 할 거고.”
대답하며 라즈를 바라본 나는 그녀가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한 거였나? 어찌 됐든 그런 라즈의 모습을 보니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이번만은 예외였다는 말이네.”
“그렇지.”
그리고는 다시 현금 거래창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투척 스킬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F~E 랭크의 스킬은 있었지만 굳이 그런 스킬에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마법이라도 배워야 되나.’
지금 내 마법 공격력이라면 그럭저럭 높은 데미지를 낼 수 있었다. 여기서 번개 속성의 마법만 배워도 25% 속성 데미지까지 추가되니 나름대로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루딘, 하나 물어봐도 돼?”
“물어보다니?”
“영웅은 어떻게 해서 된 거야?”
영웅이라…….
“소용없어요. 저도 물어봤는데 안 가르쳐주던데요?”
대답은 옆에 있던 시나가 대신했다. 그런 시나의 대답에 라즈는 정말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난 간단하게 한번 끄덕이는 걸로 끝냈다.
“우와, 치사해.”
치사하다고 해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이런 내 행동에 시나와 라즈는 서로 투덜거리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올라오는 메시지의 의해 그 투덜거림도 중단되었다.
[실시간 경매장의 물품 등록 마감이 끝났습니다.]
[루딘 님께서 등록하신 물품의 순위입니다.]
‘벌써 12시가 됐나?’
어차피 이제 곧 12시가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으니 놀랍지는 않았다.
[공포를 부르는 가죽 세트와 B랭크 스킬북…… 1위.]
[축하드립니다. 실시간 경매장에 등록된 물품 순위 1위를 차지하셨습니다.]
[보상으로 VIP 입장석(1위)을 획득하셨습니다.]
[거친 방랑자의 가죽 신발…… 49위.]
[B랭크 스킬북 '악마의 권능(암흑 폭발)'…… 22위.]
[순위권에 등록되지 못한 물품은 자동으로 물품 보관창으로 이동됩니다.]
메시지를 보니 바무트 교주의 단검과 투루의 장신구가 다시 내 아이템 창에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걸 강화라도 했어야 했나? 그래도 이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물품은 등록됐으니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레어 신발은 진짜 아슬아슬했네.’
49위라니? 아마 이것도 강화를 하지 않았다면 등록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1강이라도 강화했으니 망정이지.
“등록됐다!”
덧붙여 옆에 시나도 레어급 물약을 등록시킨 모양이었다.
“몇 위에요?”
“43위요. 역시 다섯 개나 올린 게 결정적이었던 거 같아요. 루딘 님은 어때요?”
“아…… 22위랑 49위요.”
나는 대충 말해도 상관이 없을 거라 판단한 물품 두 개를 말했다. 하지만 시나는 22위라는 순위에 놀랐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22위요? 어떤 아이템이기에 22위나 한 거예요?”
“B랭크 스킬북이요. 전에 길드원과 의뢰하면서 얻었거든요.”
“와, 축하드려요.”
그때 라즈를 보니 그녀는 뭔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실시간 경매장에 물품을 등록했나? 하지만 내 레어 신발이 겨우 등록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50위에 있는 모든 물품은 레어급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 달 결투장 승률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응? 결투장?’
라즈에게 뭐라 말하기도 전에 생겨난 메시지 내용. 이번 달 결투장이라는 단어를 보니 아마 결투장이 생긴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듯하다. 또한 지금 내 결투장 승률은 패배가 없었기에 조금은 기대를 하며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지만…….
[루딘 님의 개인전 전적은…… 5274승 0패 0무.]
[결과…… 243위입니다.]
[루딘 님의 단체전 전적은…….]
“…….”
보상은 없는 건가? 단체전 전적이야 다섯 자리를 넘어섰고, 실력전은 하지도 않았기에 전적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전과 단체전을 보니 승리한 횟수를 바탕으로 순위를 집계한 거 같았다.
“어? 결투장 순위다. 루딘, 넌 몇 위야?”
“243위.”
“역시 높네. 보상은?”
“없어.”
“그럼 100위 안에 들어가야 보상을 주는 건가?”
아마 결투장의 보상은 칭호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나? 결투장은 어느 정도만 하고 입장조차 하지 않았기에 이런 순위가 나왔다고 생각한 난 내심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튼 난 이만 가볼게. 수고해.”
그때 라즈는 그 말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만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아, 응.”
“수고하세요. 자주 연락하고요.”
“예, 그럴게요.”
그렇게 라즈가 나가자마자 시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껏 궁금했던 것을 내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루딘 님. 혹시 라즈 님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그건 왜요?”
“음, 라즈 님을 대하는 루딘 님의 태도가 미묘하게 어색했거든요.”
“…….”
역시나 눈치 하나는 빨랐다.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겠지? 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유아와 사귄다는 걸 말했거든요.”
눈치가 빠른 시나라면 여기까지만 말해도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했고, 이런 내 대답에 시나는 대충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루딘 님 반응이 미묘했네요.”
‘근데 내 태도가 미묘했나?’
내심 아무렇지도 않게 라즈를 대한 거 같았는데도 시나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잘 하셨어요. 괜히 어중간한 태도를 보였다간 양쪽 모두 상처 입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충고 고맙네요.”
대답이야 이렇게 했지만 나도 시나와 비슷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기도 하다. 그 뒤로 난 뭐라고 떠드는 시나를 무시한 채 현금 거래창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뒤쪽에서는 방금 전에 느꼈던 빛이 다시 번쩍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유아가 접속한 모양이네요.”
뒤를 돌아보니 그런 시나의 말대로 유아가 접속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아는 그런 나와 시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놀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기원 씨? 여긴 어떻게…….”
애초에 내 집인데 어떻게는 무슨.
“시나가 보자고 해서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나 하자는 말에 저택으로 오게 된 거지만 유아의 반응을 보니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은 듯했다. 어쨌거나 이런 내 대답에 놀란 듯 나를 바라보던 유아는 이윽고 화사한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아무튼 여기서는 오랜만이네요.”
“근데 왜 이리 늦은 거야?”
“아, 부모님이랑 통화가 길어져서.”
‘통화?’
그러고 보니 유아는 본인의 의지대로 이곳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말하지도 않고 독단으로. 거기에 대한 문제가 아직도 안 풀린 건가? 괜히 내가 죄를 짓는 기분인지라 딱히 좋지만은 않았다.
“이야기는 잘 됐어?”
“응, 아마도 잘 된 거 같아.”
정말로 잘 됐는지 미소를 거두지 않으며 대답하는 유아. 난 잠시간 그런 유아를 바라보다 이내 정신 차리고는 현금 거래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시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금 거래창을 보고 있어요?”
“……설마요.”
생각해보면 현금 거래창에는 볼 것도 없었고, 유아가 온 시점에 이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난 곧바로 현금 거래창을 닫았다.
“그보다 오늘 실시간 경매장이라며? 어땠어?”
“당연히 43위로 물품에 등록했지.”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자랑스러워하는 시나와 축하해주는 유아. 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느 누구보다도 친한 거 같았다. 그때 유아의 축하한다는 말을 들은 시나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유아에게 말했다.
“참고로 루딘 님도 물품 등록에 성공했어. 괜찮다면 같이 가는 게 어때?”
“같이?”
‘같이?’
한순간 유아와 똑같이 생각한 나. 현금 거래가 진행되는 그곳에 유아와 같이 가라고? 나는 몰라도 유아에게는 별다른 재미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아는 시나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될까?”
‘응?’
“안 될 건 뭐야? 루딘 님도 괜찮죠?”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나. 시나의 말대로 안 될 건 없었다.
“그런데 입장석으로 같이 이동할 수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입장석은 경매장에서 1골드를 주고 구매하는 입장석이 아니라 물품을 등록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입장석을 말하는 거였다.
“제가 알기로는 파티를 맺으면 같이 이동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요.”
“…….”
만일 안 되면 유아만 홀로 남겨지는 셈인가? 의외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니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라온 내용을 읽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찌 됐든 그런 유아와 시나의 모습을 본 나는 오늘 하루만큼은 레어 상자. 혹은 랜덤 스킬북과 같은 작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모처럼 모였으니.’
적어도 경매장이 열리는 저녁 8시까지 함께할 생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