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第 35 話 =========================================================================
第 35 話 “49일째”
♪~
“으, 으…….”
평소와 다름없이 편안하게 자고 있었던 난 머리맡에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잠깐 뒤척이고는 그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핸드폰이야 머리맡에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아냈고, 가까스로 뜬 눈으로 확인해보니 유아에게서 온 전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아가 무슨 일이지?
의문도 잠시. 방금까지 자고 있었던 탓에 그 이상의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던 나는 일단 전화부터 받기로 했다. 또 전화를 받으면서 확인해보니 현재 시간은 10시였다.
“예, 유아 씨.”
-기원 씨. 혹시 홈페이지 보셨어요?
“아직 안 봤는데…… 왜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유아의 목소리가 어딘가 조심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린 난 그 이유부터 물어봤지만 명확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홈페이지에 루딘 님 이야기밖에 없어요.
“……?”
무슨 소리지? 내가 뭐라도 했나?
“뭐, 예. 일단 볼게요.”
어쨌든 뭔가 일이 일어났으니 유아가 직접 전화한 거라 생각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이제 막 일어나서 뭐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황혼 홈페이지로 들어가니 심상치 않은 제목의 기사들이 나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라져버린 공략 불가능의 레이드 보스들. 그 범인은 루딘?]
[레이드 보스가 있던 자리에 루딘이 나타났다는 제보가 잇달아…….]
[남은 레이드 보스는 로트란 산맥의 주인 호우론.]
[버그인가? 혼자서 레이드 보스를 잡은 경이로운 업적!]
[일반 플레이어의 상식을 벗어난 루딘.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빗발치는 문의. 해명을 요구하는 플레이어들.]
[엠페러 길드.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라는 공지가 내려와…….]
‘아, 씨발…….’
기사 제목만 봐도 정신이 드는 것과 동시에 욕이 절로 나오는 듯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잠깐 생각해보니 데로나크와 하이츠를 잡았을 때에는 각각 길드가 자리 잡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레이드 보스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날 의심하겠지만 일이 이 정도로 커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게시판도 이런가?”
궁금해 게시판을 클릭하니 대부분이 나와 관련된 글이었다. 또 그중 절반 이상이 버그가 아니냐는 의심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좋지가 않았다.
“이번에 접속하면 진짜 큰일 날 거 같은데.”
예전에 영웅이 됐다는 메시지 하나로 꽤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잠잠해진 상황이다. 그러나 그게 제대로 잊히기도 전에 이런 기사가 쏟아지니 있지도 않은 두통이 밀려오는 거 같았다.
‘며칠 접속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접속을 하지 않고 잠적한다면 오히려 내가 버그를 사용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지 않은가? 차라리 접속은 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게 여러모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내가 가진 장비를 다 팔아버리고 게임을 접는 방법도 있지만 말이다.
간단하게 검푸른 수호자, 꺼지지 않는 화염, 죽음의 향기가 묻은 장비를 포함해 자연을 담은 고귀한 장신구와 유니크 아이템까지 전부 팔아버린다면 몇 억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거기다 지금까지 내가 모은 돈을 합친다면 10억은 넘지 않을까 싶다. 또 그 정도라면 황혼을 시작한 보람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고작 2개월도 안 되는 시간에 그 정도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쉽지.’
아직 최대 레벨도 찍어보지 못한데다, 레전드 장비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황혼의 끝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 상태에서 돈 좀 벌었다고 접는다면 많은 아쉬움이 남을 거 같았다.
‘일단 접속하는 걸로 하자.’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일단 욕실로 들어가 씻은 뒤, 한숨을 내쉬며 황혼으로의 접속을 시도했다.
[황혼이 비추는 거리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를…….]
황혼으로 접속해 이동된 곳은 내 집. 아직 유아와 시나는 접속하지 않았으니 집에는 나밖에 없어야 되지만…….
“어?! 루딘!”
뜻밖에도 라즈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밖에 사람들은 뭐고?”
“밖에 사람들이라니?”
“몰랐어? 지금 밖에 사람들이 깔렸어. 나오자마자 나보고 루딘 너하고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던데? 그래서 다시 이 집으로 도망쳤어.”
“…….”
이것들이 내 집은 어떻게 알아낸 거지?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라즈 덕분에 집밖에 사람들이 있다는 정보 하나는 입수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라즈는 밖에 사람들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여기에 있었다는 건가? 귀환 스크롤로 손해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황혼 홈페이지 안 봤지?”
“홈페이지? 응, 안 봤는데?”
“나가서 보고 와.”
“무슨 소리야? 네가 가르쳐주면 되잖아.”
쉽게 가르쳐줄 정도로 간단했으면 내가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지. 난 속으로 그런 말을 하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집에 있어도 해결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야, 지금 어디가?!”
“밖으로 나가보려고.”
“내 말 못 들었어? 지금 밖에 사람들이 깔렸다니까?”
“상관없어.”
난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고, 이내 내 집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적어도 100여 명이 넘는 인원. 오늘이 평일일 텐데도 이렇게 모인 걸 보면 어지간히 할 짓이 없었나 보다.
“어? 루딘이 나왔다!”
“루딘 님! 레이드 보스를 잡으신 게 루딘 님이신가요?”
“개자식아! 버그 사용하니까 좋냐?! 나도 버그 좀 알자!”
“호우론은 언제 잡으러 가실 건가요?”
‘후, 정신없네.’
실제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떠들어대니 뭐라고 외치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아무런 말없이 인상만 찡그리고 있던 그때, 어떤 놈이 나를 향해 뭔가 던지는 행동을 취했다.
‘구슬?’
가만히 보고 있으니 던진 그것은 검은색 구슬이었고, 그 구슬은 내 몸에 닿자마자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압도적인 방어력!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조르노'에게서 공격을 받았습니다!]
[정당방위가 성립됩니다.]
“이야!~ 방어력 존나 높네! 역시 버그가 사실인가 봐!”
저 새끼가 미쳤나.
난 버그가 확실하다며 외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떠들다 말고 내가 다가오는 걸 확인하자 뭐 어쩔 거냐는 표정으로 바라봤고, 난 그 녀석의 멱살을 잡아 내 뒤로 집어던졌다.
“악! 이 버그 자식이 사람 친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쓰러진 채 계속해서 소리치는 그 녀석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본 나는 아이템 창에서 수리를 끝낸 뇌룡의 포효를 꺼내 그대로 녀석의 머리에다 내리찍었다.
파치칙!-
[적중 데미지! 6,078.]
[플레이어 '조르노'를 죽였습니다.]
[정당방위 경험치…….]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회색으로 변한 녀석. 게다가 스킬도 없이 일격에 죽여 버린 내 모습이 충격적이었는지, 아님 망설임도 없이 죽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떠드는 소리가 확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를 둘러보고는 이내 한 명을 지목했다.
“어이, 너.”
“예? 아뇨, 전 공격 안 했습니다.”
“누가 뭐래? 그렇게 궁금하면 질문이나 해봐. 대신 쓸데없는 질문이면 죽는다.”
“아, 그…… 버그 아니죠?”
“버그면 회사에서 제지했겠지. 아냐. 다음.”
간단하게 대답한 나는 다른 사람을 지목했고, 내게 지목된 사람은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버그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지셨는지…….”
“장비. 강화. 스킬. 다음.”
그리고 또 다음 사람을 쳐다보니 웬 자신을 지목해달라는 듯이 웃고 있는 플레이어가 보였다. 대놓고 저렇게 지목해달라는 표정을 보니 부담스럽다고 할까? 그래서 시선을 옮기니 그 플레이어는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만요! 왜 저는 건너뛰는 거예요?!”
“후, 그래. 그러면…….”
[엠페러 길드의 '아이젠'님께서 길드 채팅에 초대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아, 잠깐.”
뭔가 질문하려는 플레이어를 제지한 채 아이젠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서 문득 엠페러 길드도 어떤 피해를 입었을 거란 생각이 스쳤다.
-안녕하십니까, 루딘 님.
“……넌 이런 상황에서도 안녕이 나와?”
-실은 길드성에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곤란한 일? 처음 아이젠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부터 뭔가 피해가 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런 내 예상이 적중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아이젠의 말을 잠자코 듣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일단 장소부터 옮기기로 했다.
“알았어. 길드성으로 갈게.”
-그럼 4층 루딘 님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길드 채팅을 종료합니다.]
간단하게 대화를 나눈 이후에 귀환 스크롤을 꺼내드니 다음 질문 상대로 지목했던 플레이어의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거죠?”
“길드성. 미안하지만 질문은 다음에 해.”
[귀환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파밧!-
거기까지만 말한 나는 귀환 스크롤을 찢어 길드성으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귀환 스크롤을 통해 이동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길드성으로 올 수 있었다.
‘후, 그나저나 일이 진짜 복잡하게 꼬였네.’
고작 레이드 보스 세 마리 잡은 거 가지고…….
하긴, 그 레이드 보스도 공략이 불가능한 보스였고, 또 혼자서 잡았다고 하면 나라도 의심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의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아르넬라와 같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잡았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후.”
철커덕-
어찌 됐든 방문을 열고 나가자, 그곳에는 아이젠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아아, 응. 근데 곤란한 일이라는 게 뭐야?”
“음, 일단 밖을 보십시오.”
“……?”
밖을 보라는 말이 의아했지만 아이젠은 옆으로 한걸음 비켜 창문을 가리켰다. 저 창문으로 보라는 말이겠지? 어쨌거나 아이젠의 말대로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대략 200명? 그 정도의 인원이 길드성 밖에서 뭔가 외치고 있었다.
“버그를 사용한 루딘은 물러가라!”
“루딘의 도움으로 길드를 키운 엠페러 길드는 반성하라!”
“황혼을 어지럽히는 루딘은 사라져야 된다!”
“……뭐야? 저거?”
외치는 소리를 듣자하니 어이가 없다. 저럴 시간에 몬스터나 잡을 것이지 뭐하는 거야? 아무튼 이런 내 황당한 질문에 아이젠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루딘 님을 시기하는 것일 겁니다. 버그가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 레이드를 잡았는지 가르쳐달라는 뜻이죠.”
“아, 그래?”
이해하기 쉬운 대답이라 좋았다. 그렇다고 얌전히 가르쳐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또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레이드를 잡았다는 증거 있어?”
“없습니다만 목격자가 많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목격자가 많다라…….”
그 목격자 중에서는 용감무쌍 길드도 있다고 생각하니 어제 그냥 돌아온 것이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이드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때려 부술 걸 그랬나? 난 나중이라도 그 길드를 박살낼 생각을 하며 다시 시위하는 플레이어들을 보았다.
‘황혼에서 이런 광경도 보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 원인이 나라니.
보고 있자니 짜증이 솟구쳤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떤 길드원…… 정확하게는 간부가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길마님! 아, 부길마님도 계셨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홈페이지에 공지가 떴습니다. 분석해본 결과, 부길마님에게서 어떤 버그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요.”
‘누군가 내가 버그가 아니냐는 글을 올렸나?’
하긴, 저렇게 외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글을 올리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또 그에 비해 비교적 빨리 답장이 온 거 같아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더 놀란 사실은 버그가 아니라는 것.
직감으로 습득한 S랭크 스킬이나, 유니크, 레어 아이템을 생각하면 의심할 것도 같았는데 어쨌든 버그가 아니라고 하니 나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잘 됐네. 그럼 버그가 아니라고 하고 저들 좀 보내면 끝인 거 아니야?”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해 레이드 보스를 잡았는지가 궁금할 뿐이니까요.”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내 질문에 아이젠은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이런 말을 꺼냈다.
“음, 간단하게 설명하는 건 어떻습니까?”
“무슨 설명? 홈페이지에 글이라도 올릴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