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0 第 39 話 =========================================================================
第 39 話 “55일째”
“제길, 밀려도 너무 밀리잖아.”
연합 길드와 악마왕의 전투를 지켜보며 투덜거리는 흑신이었다. 남의 전투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어렵게 생각할 거 없었다. 자신들이 악마왕을 잡아야 되니까. 또 그러기 위해서는 연합 길드가 악마왕의 생명력을 최소 50% 이하로 떨어뜨리고 전멸하는 게 가장 좋았다.
“촉수 따위는 무시하고 공격하면 좋을 텐데.”
‘그냥 대놓고 죽으라고 해라.’
어쨌든 지금처럼 변변찮은 공격 한 번 못한다면 이후 용감무쌍 길드가 힘들어질 게 뻔했다. 그러니 저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거겠지만 같은 연합 길드 소속인 내가 듣기에는 별로 좋지가 않았다.
“야, 생명력이 얼마 남았는지 다시 체크해봐.”
“예. 대상 관찰!”
대상 관찰 스킬로 악마왕의 생명력을 확인한 그 플레이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79% 남았습니다.”
“역시 한참 남았잖아.”
줄어드는 속도를 생각하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방금 전에 비해 4%나 감소된 수치였기 때문이다.
‘아르넬라 때문이겠지?’
촉수 공격에 허둥지둥거리는 연합 길드와는 다르게, 아르넬라만은 꿋꿋이 악마왕을 공격하고 있었다. 덧붙여 그 공격은 상당한 데미지를 주고 있는지 악마왕의 생명력도 깎여나가고 있는 듯했다.
다만 아르넬라가 사라지면 그때부터 힘겨운 전투가 되지 않을까?
“이봐, 루딘.”
그렇게 잠깐 아르넬라를 쳐다보는 사이, 흑신은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내게 다가왔다.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지팡이를 빌려다오.”
“빌려달라고?”
“그래, 내가 전력에 도움이 된다면 네게도 이득일 테니까.”
“…….”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뭐가 이리 당당해?
빌려달라고 말하는 흑신의 태도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의 죽음 소환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막말로 해골 기사 같은 걸 몇 마리 뽑더라도 악마왕의 스킬 한 번이면 그대로 소멸할 거 같았다.
“생각 좀 해보고.”
“생각? 이래 봬도 내가 S랭크 스킬의 소유자다! 지팡이만 있으면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어!”
‘고작 한 개 가지고.’
비록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난 그 S랭크 스킬을 7개나 습득한 상태다. 아무튼 옆에서 뭐라 떠드는 흑신의 말을 무시한 채 악마왕을 주시하니 연합 길드가 솟아오른 촉수를 이리저리 처리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역시 처음보다는 힘겹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희미한 불꽃이 아른거리는 복장의 여성이 지팡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화르르륵!!-
‘화염 폭풍?’
화련의 A랭크 스킬. 악마왕이 만들어낸 검은 회오리보다는 작았지만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크기를 지닌 불꽃의 회오리는 근처에 있는 모든 촉수를 태워버렸다.
“우와, 저 스킬은 뭐지?”
“화염 폭풍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A랭크 스킬인데…… 위력은 S랭크라고 해도 믿겠다.”
떠드는 용감무쌍 길드원의 말대로 화염 폭풍의 데미지는 무시할 수 없었는지 근처에 있는 촉수들을 대부분 태워버렸다. 게다가 화련은 그 화염 폭풍으로 끝내지 않으며 새로운 스킬마저 사용했다.
쿠쿵, 쿵!-
‘골렘?’
온몸이 짙은 화염으로 뒤덮인 골렘. 그 골렘을 보자마자 어떤 스킬인지 알 수 있었다. 데로나크 장비에 붙어 있는 세트 효과. 화염 폭풍과 마찬가지로 A랭크 스킬인 수호의 화염 골렘을 소환한 것이다.
“오, 골렘까지?”
화염 골렘은 3미터가 조금 넘어서는 크기였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크기지만 덩치가 상당한 탓에 높이만 높은 악마왕과 비교해 그리 밀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외형만.
어떻게 보면 아르넬라의 얼음 골렘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하나 틀린 점이 있다면 한 마리밖에 소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뭐, 아르넬라야 냉기 광선도 세 개씩 쏘아대니 얼음 골렘도 세 마리 뽑아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말이다.
쿵!- 쿵!- 쿵!-
그리고 화염 골렘은 곧장 악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그 박력 있는 모습에 다들 감탄하는 듯했다. 더군다나 악마왕 자체는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했기에 달려드는 화염 골렘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콰아앙!!-
“오오! 잘한다!”
“그대로 쓸어버려!”
확실히 악마왕에게 달려가 주먹질을 하는 화염 골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을 다들 반기며 화염 골렘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고작 A랭크에 불과한 화염 골렘이 악마왕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저때 공격하면 될 텐데.’
가만히 지켜보는 걸 보니 지구력이 멀쩡한 녀석이 없는 모양이었다.
콰득- 콰득-
예상대로 화염 골렘 주위로 몇 개의 촉수가 솟아올랐다. 대략 7~8개의 촉수가 바닥에서 솟아오르더니 이내 화염 골렘의 몸을 찔렀고, 그 촉수에 관통당한 화염 골렘의 몸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느려졌다.
‘죽지 않은 게 대단하네.’
분명 관통 데미지로 적용됐을 텐데 죽지 않은 화염 골렘을 보니 생명력도 남다른 듯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화염 폭풍!”
화르르륵!!-
화련은 공격받는 자신의 골렘을 보며 급하게 화염 폭풍을 사용해 주위에 있는 촉수를 없애버렸으나 이미 수차례의 공격을 받은 골렘은 사라졌고, 촉수 또한 불길에 휩싸이며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흐음.’
분명 화련의 활약은 대단했다. 화염 폭풍을 사용하더라도 모든 촉수를 날려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화염 폭풍은 공격까지도 겸하고 있으니 나름 악마왕에게 데미지를 줬을 거라 생각되었다.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절망을 이끄는 노래를 사용합니다.]
[초당 100의 생명력이…….]
“노래다!”
“뒤로 물러나!”
하지만 노래만은 어쩔 수 없었는지 화련을 비롯한 모두가 공격을 중단하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와 용감무쌍 길드 역시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물러선 연합 길드는 나와 같이 있는 용감무쌍 길드를 발견하고는 이것들은 뭐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뭐야? 저 녀석들은?”
“악마왕을 잡으러 온 거 같은데?”
“우리가 실패하면 저 녀석들이 잡을 생각인가?”
“아놔, 싸울 마음 사라지네.”
마치 헐뜯는 게 취미로 느껴질 만큼 이번에는 용감무쌍 길드를 향해 헐뜯는 연합 길드였다. 그러나 정작 싸울 생각은 없었는지 말만 하고 별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았지만 용감무쌍 길드. 그중에서 흑신만은 기분이 별로였는지 짜증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무슨 지랄이 이리 심해?”
“뭐? 지랄?!”
“이대로 너희들이 잡으면 아무 문제도 없잖아. 우린 네 녀석들이 전멸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이건 뭐……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너희는 싸워라. 우린 나중에 이어서 싸우겠다. 라고 말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흑신의 말대로 악마왕을 잡는다면 별로 문제될 것도 없겠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그마저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길마님! 저대로 놔둘 겁니까?!”
연합 길드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 숫자로는 용감무쌍 길드가 훨씬 많지만 연합 길드는 각자 실력에 자신 있는 인원으로 구성됐으니 실제로 붙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아이젠 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
문득, 아이젠이란 아이디에 고개를 돌린 난 멀쩡하게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녀석 안 죽었나?’
분명 가시 공격으로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젠이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의아한 나였지만 일단 조용히 기다려 의견을 물어보는 아이젠의 대답을 기다렸다.
“포기하고 저쪽 분들께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용감무쌍 길드와 같은 짓을 하겠다는 거로군.’
포기한 채 용감무쌍 길드가 싸우다 실패하면 그때 나서겠다는 말이다. 흑신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닌지 떫은 표정으로 아이젠을 바라봤지만 그런 흑신과 용감무쌍 길드를 제외한 연합 길드는 괜찮다는 듯이 끄덕였다.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이제 저놈들이 실패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하, 미친 소리가 따로 없군. 우리가 따를 거라 생각하나?”
‘……어? 이러면 나만 손해잖아?’
이대로 서로 싸우지 않겠다고 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나밖에 없었다. 퀘스트에 실패하니까. 그러니 오늘 악마왕을 잡지 못한다면 난 남은 시간 동안 악마왕 근처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잡기를 기다려야 되는데, 그 또한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아니면 서로 번갈아가며 싸우시겠습니까? 노래가 시작될 때마다 바꾸면 되겠군요.”
“그건 들어줄 만한 말이지만…… 보상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잡은 사람이 모두 가지기로 하죠.”
그 대답에 흑신 옆에 있는 누군가가 귓속말로 뭔가를 말했다. 왠지 듣지 않아도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마 악마왕의 생명력이 일정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몸을 사리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악마왕 아그라네스가 죽은 시체로 악마를 소환합니다.]
‘노래도 끝난 거 같은데…….’
노래 공격이 끝나자마자 소환된 악마들. 그 숫자는 고작 20~30마리밖에 없어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지했는지 거기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해서 아이젠이 한 제의에 불만을 지닌 몇몇 사람들이 외쳤다.
“아이젠 님! 자신 있습니까?”
“그딴 제의에 응하지 않아도 저희에게는 레이드 보스가 있습니다!”
‘이놈들 봐라?’
아르넬라를 마치 자기들 것처럼 말하는 놈들이었다.
‘확실히 아르넬라는 지금도 공격하고 있으니…… 응?’
순간, 고개를 돌리니 촉수에 찔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르넬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르넬라를 향해 달려가는 악마들까지. 이대로 놔두면 아르넬라가 역소환이 될 게 분명하다고 판단한 난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가 마탄 폭격기를 쐈다.
쾅쾅쾅쾅쾅!!-
[마탄 폭격기의 저장된 모든 마나가…….]
‘제길.’
아르넬라의 몸을 관통한 촉수는 세 개. 거기서 두 개의 촉수는 없애버렸지만 남은 한 개가 문제였다. 아니, 아르넬라의 생명력을 생각하면 문제될 게 없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새 접근한 악마들이 아르넬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콰쾅!-
[마탄 폭격기의 마나가 채워졌습니다.]
‘늦었네.’
아쉽게도 마탄 폭격기의 마나가 채워지는 사이, 악마들은 아르넬라 곁을 둘러싸 미친 듯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악마들로 인해 촉수는 보이지도 않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직접 달려가 처리하려고 했지만 불꽃의 회오리가 아르넬라 주위로 솟아올랐다.
화르르륵!!-
아, 화련이 있었군.
화련의 화염 폭풍 이후로 아르넬라의 있던 곳에서는 냉기 공격이 쏟아지며 남은 악마들을 처리하는 것이 보였다.
[전투 경험치…….]
[띠링!~ 하급 악마의 징표를…….]
저벅-
“……?”
올라오는 경험치, 아이템, 공적치 메시지 창을 확인하기도 전에 내 옆으로는 아이젠이 다가왔다.
갑자기 왜 다가오는 거지?
“협상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저쪽을 보시면 알 겁니다.”
아이젠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다시 한 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을에서 봤던 수많은 플레이어가 죄다 몰려왔다고 착각할 만큼 엄청난 인원이었는데, 확실히 저런 인원이 몰려온다면 번갈아 싸우는 짓은 의미가 없을지도 몰랐다.
악마왕의 생명력이 줄어들면 보나마나 미친 듯이 달려들 테니 말이다.
“그보다 루딘 님. 아르넬라는 언제까지 소환이 가능하십니까?”
“글쎄? 아마도 10분 정도?”
원래 아르넬라의 소환 시간은 16분이다. 하지만 칭호 영혼의 계약으로 지속 시간이 50% 더 늘어났기에 총 24분. 여기서 지금까지 싸운 시간을 계산하면 10분 정도 남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럼 다시 소환하시는 건…….”
“아니, 소환 해제되면 몇 시간은 소환이 안 돼.”
일반 몬스터야 그냥 소환이 가능할지 몰라도 아르넬라는 아니었다. 이건 예전에 내가 사용한 우스트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 레이드 보스였기에 적용된 시스템 같았다.
“응? 왜 안 싸우고 있지?”
“알게 뭐야!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지!”
“달려!”
새롭게 나타난 그들은 악마왕을 발견하자마자 겁 없이 달려들었다. 길드 인원이 아니라 여기저기 모아온 플레이어였는지 작전이고 뭐고 무작정 달려들기만 할 뿐인데, 보통 악마왕과 한 번이라도 붙어본 플레이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