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6 第 39 話 =========================================================================
第 39 話 “55일째”
‘그래도 남은 촉수가 많은데.’
극대파멸로 주변에 나타난 촉수들은 없애버렸지만 아직도 많은 촉수가 성기사를 공격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놈의 성기사들은 어떻게 된 게 촉수가 공격하고 있는데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보여줘 내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촉수는 없애고 싸워야 될 거 아닌가?
보니까 오로지 악마왕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칼질을 하는 듯한데, 의지만은 높게 사고 싶지만 그것과 별개로 죽어가는 성기사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괜히 극대파멸을 썼나?’
[당신은 악명 높은 파괴자의 기술. 볼렉크의 극대파멸을 재현하셨습니다. 적군을 포함해 아군까지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볼렉크의 파괴 기술. 일명 파괴자라 불리며 떨쳤던 그때의 악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칭호 '파괴의 화신'을 획득하셨습니다. 장착하시겠습니까?]
‘예상대로 칭호는 주는군.’
지금은 볼 겨를도 없지만.
어쨌든 촉수를 없애는 게 급선무다. 난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성기사를 공격하고 있는 촉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몇백이나 되는 숫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서 내가 촉수를 없애는 게 빠를까, 아님 성기사가 전멸하는 게 빠를까.
화르르륵!!-
“……!?”
어? 화염 폭풍?
‘지금 최상급 악마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사정이 어떤지는 몰라도 화련의 화염 폭풍으로 몇십 개의 촉수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S랭크 스킬이니 뭐니 해도 다수를 상대할 때에는 마법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화르르륵!!-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겨난 화염 폭풍이 남은 촉수를 태워버리고 있을 때, 내 앞에서는 믿기 힘든 메시지가 생겨났다.
[장비를 대여한 플레이어 '화련' 님이 죽으셨습니다.]
[플레이어 '화련' 님이 대여한 장비가 다시 루딘 님에게 돌아옵니다.]
[아이템 '꺼지지 않는 화염의 지팡이'를…….]
“…….”
설마 도와주다 죽은 건가?
잠깐 죽은 화련에 대해 떠올렸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부활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다면 화련을 되살려줄 테니까. 그보다 화련의 목숨 건 도움으로 촉수의 숫자는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고, 그에 따라 성기사들의 공격도 점차 힘이 실리고 있었다.
‘남은 성기사가…… 40~50명?’
거의 절반 정도 죽은 거 같지만 그럼에도 희망이 보이는 이유는 악마왕의 생명력이 꽤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 직감으로 느껴지는 악마왕의 생명력은 17%.
‘이제 성기사들이 12%만 깎아준다면…….’
그때 기원의 구슬을 사용할 수 있다. 난 그 생각 하나로 눈에 보이는 촉수를 하나씩 처리하고 있던 도중, 누군가의 낯선 외침이 들려왔다.
“크하핫! 여기에도 인간 놈이 있었군!”
“……씨발.”
하필이면 이럴 때 최상급 악마라니.
소리가 들려온 그곳에는 오른쪽 팔만 괴기한 모습의 악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청색의 털로 뒤덮인 커다란 짐승 형태의 팔. 솔직히 말해 팔이 어떤 모양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상급 악마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지.
“죽어라!”
“헛소리!”
콰앙!-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최상급 악마의 팔을 방패로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뇌룡의 포효로 녀석의 몸통을 때렸다.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2,094.]
[적중 데미지! 1,185.]
한순간에 일어난 공방은 내가 불리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대로 치고 박고 싸우면 누가 먼저 죽을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회피를 해야 되는데, 무식하게 큰 짐승 팔을 보니 그 또한 쉽지 않을 듯했다.
‘스킬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크하하핫! 인간 주제에 제법이군! 어디 이것도 막아보아라!”
쾅!- 콰쾅!-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최상급 악마는 짐승의 팔을 가지고만 공격한다는 점. 조금 전에 싸웠던 최상급 악마는 손발 다 사용하는 탓에 예상외로 힘들었지만 이 녀석의 공격 패턴은 비교적 단순한 편에 속했다.
“잘도 피해 다니는구나!”
네놈이 못 맞추는 거지, 뭐가 잘 피해?
물론 두 번째 직감으로 인해 녀석의 공격을 한발 먼저 인식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지잉-
‘뒤쪽?’
순간, 최상급 악마를 상대하던 사이, 직감을 통해 어떤 사실을 깨달은 난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그리고는 내 투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간 촉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어느새 악마왕이 다시 소환한 모양이었다.
‘최상급 악마도 상대하기 힘든 이때 촉수까지 소환되다니.’
짜증나는 상황이긴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난 직감으로 인식되는 모든 촉수의 공격과 최상급 악마의 공격을 예측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뒤쪽과 왼쪽. 그리고 정면에서의 최상급 악마.
난 비어 있는 오른쪽 방향으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이동하고는 곧장 내 뒤를 노리고 날아온 촉수를 쳐냈고, 이어 내게 방향을 바꿔 내게 짐승의 팔을 휘두르는 최상급 악마의 팔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피해냈다.
“피하지 마라!”
‘이놈이 막말하네.’
콰앙!-
그 외침과 함께 휘두르는 최상급 악마의 팔을 위로 쳐내며 옆으로 몸을 날린 나는 또 다른 촉수를 없애버렸다. 지금껏 몇 번이나 최상급 악마의 공격을 쳐낸 탓에 내구력이 걱정되긴 했지만 뇌룡의 포효가 지닌 최대 내구력은 210.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을 거라 믿었다.
‘이제 악마왕의 생명력이…….’
지잉-
14%. 잠시 최상급 악마를 상대하는 동안 3%의 생명력이 깎였다. 아마도 성기사만 무사하다면 10분 이내에 악마왕도 끝날 듯했지만 언뜻 보이는 촉수의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엠페러 길드의 '아이젠'님께서 길드 채팅에 초대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응?’
이 미친 자식이 이때 채팅을 요청하다니.
“수락.”
계속해 날아오는 촉수의 공격과 최상급 악마로 정신없이 움직인 난 재빨리 채팅을 수락했다. 아이젠도 지금의 내 상황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런데도 연락을 취한 걸 보면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 듯했다.
“왜? 무슨 일인데?”
-현재 악마왕의 생명력은 14%입니다.
“…….”
씨발, 누가 그걸 몰라?!
상황이 급급하다 보니 욕마저 튀어나온다. 만일 이야기가 거기서 끝이었다면 진짜 화가 났을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이젠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와 나머지 길드원이 전력으로 공격한다면 5~6% 정도의 생명력은 깎을 수 있을 거라 추측됩니다.
“그래서?”
-소환하신 기사들도 거의 죽은 마당에 루딘 님께서 계속 싸우시는 걸 보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뭔 말이야?!”
좀 알아듣게 말해!
그나저나 성기사가 벌써 다 죽었나? 직감을 통해 공격을 피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젠의 말대로 남아 있는 성기사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5~6명? 대신 수많은 촉수들이 죽은 성기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성기사 소환으로 악마왕의 생명력을 9% 깎은 건가?
마나력도, 지구력도 안 드는 1회용 스킬을 한 번 사용한 성과치고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남은 생명력이 문제였다. 아르넬라만 있었어도 남은 생명력은 문제조차 되지 않을 텐데. 어쨌든 남은 극소수의 성기사를 확인하는 내게 다시 아이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일 저희들의 도움으로 악마왕을 잡을 수 있다면 최상급 악마는 내버려두고 공격 하겠습니다.
“…….”
바쁜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아이젠과 엠페러 길드원이 전력으로 공격해 5~6%의 생명력을 깎으면 악마왕을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듯한데, 거기에 대해 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길드원 전부 개죽음을 당하게 만드는 셈이니 말이다.
‘……아니,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이대로 나 혼자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악마왕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아이젠과 길드원이 어떻게든 길을 뚫고 악마왕의 생명력까지 깎아낸다면 어떻게든 해볼 가능성이 생겨날지도 몰랐다.
“알았어. 무슨 수를 쓰든 잡아볼게.”
-알겠습니다.
[길드 채팅을 종료합니다.]
길드 채팅은 끝났지만 내게 행해지는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난 촉수는 뇌룡의 포효로 쳐내고, 최상급 악마의 공격은 되도록 회피하면서 시간을 끌었는데, 그러던 중에 한쪽에서 어떤 광경이 보였다.
콰쾅!- 콰아앙!!-
‘벌써 왔나?’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이 엠페러 길드원일 듯하다. 그렇게 아이젠과 길드원은 먼저 마법 스킬을 난사해 촉수를 없애고는 근접 계열의 인원이 진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진입하는 제일 선두에는 아이젠이 있는 거 같았다.
“멸살검.”
파밧!-
내게 날아오는 촉수 하나를 없애며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멸살검을 시전하고 있는 아이젠이 있었다. 근데 저 멸살검을 사용하면 30초간 다른 스킬은 사용을 못하지 않나? 그런데도 멸살검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시작부터 최대한 데미지를 줄 생각인 듯했다.
촤아악!-
전에 길드 퀘스트 때와 마찬가지로 악마왕을 두 번 베어내는 아이젠의 멸살검. 그 멸살검에 이어 길드원의 공격이 쏟아졌고, 악마왕의 생명력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콰득- 콰득-
“촉수다!”
“빨리 촉수부터 없애!”
주변에 나타난 촉수를 향해 맹공격을 퍼붓는 엠페러 길드원이었지만 이미 악마왕에게 접근하기 위해 많은 지구력을 썼는지 공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졌고, 거기에 맞춰 한 명씩 쓰러지는 엠페러 길드원을 볼 수 있었다.
일단 촉수의 숫자도 많은데다 관통되면 모든 스킬이 봉인되며 느려지기까지 하니 이미 예정된 결과일지도 몰랐다.
“길마님을 최우선으로 보호해!”
“앞으로 10초만 버티면 된다!”
‘10초라…….’
들려오는 대화를 추측해보면 아이젠이 다시 멸살검을 쓸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길드원이 퍼붓는 공격보다 아이젠의 멸살검이 더 높은 데미지가 뜰 테니 저런 선택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멸살검!”
그렇게 10초가 지나 아이젠은 다시 멸살검을 사용해 악마왕을 베어냈다. 다만 남아 있는 길드원의 숫자는 다섯 명. 20명 넘게 달려와 절반 이상이 죽었으니 이 뒤에 있을 촉수 공격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럼 악마왕의 생명력은 어디까지 깎였지?’
살펴보니 8%. 아이젠의 멸살검 네 번으로 6%의 생명력을 깎은 셈이다. 물론 그 공격을 끝으로 촉수에게 전멸당한 아이젠과 길드원이었지만 남은 생명력이 8%라면 승산이 있을 듯했다.
그러니 이제 3%만 깎으면 된다.
“크아아! 피하지 말고 제대로 싸워라!”
뭐래? 이놈은?
촉수 공격만으로 정신없는데 피하지 말고 싸우라니. 게다가 지금의 난 제이어의 수호방패까지 풀린 상태라 민첩이 낮아졌기 때문에 반격하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스킬, 스킬만 쓸 수 있다면…….’
지잉-
어?
“제이어의 수호방패!”
볼렉크의 극대파멸을 사용하면 300초간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 300초가 지났는지 직감은 스킬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줬고, 난 그 직감대로 즉각 제이어의 수호방패를 사용했다.
[S랭크 스킬. 제이어의 수호방패가 활성화됩니다.]
‘됐다!’
무사히 수호방패를 사용한 내 시선은 그대로 악마왕을 향했다. 남은 생명력이 3%밖에 없는 시점에서 최상급 악마와 노닥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악마왕의 생명력을 3% 정도 깎을만한 스킬을 떠올렸는데, 아이젠처럼 단번에 깎을 스킬은 내게 없었다.
“칭호 교체. 빛의 수호자!”
[칭호 '빛의 수호자'로 교체…….]
결국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줄 수밖에 없다. 또 거기에 가장 부합되는 스킬이 거신의 질주라는 것을 떠올린 난 데미지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칭호까지 교체한 뒤, 그대로 악마왕을 향해 달렸다.
“수호의 갑옷! 거신의 질주!”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6,083.]
제이어의 수호방패와 방어지배로 방패 계열의 데미지가 늘어난 거신의 질주.
이 데미지면 가능하다!
데미지를 확인한 난 자신감을 되찾고 주변의 모든 공격들을 무시한 채 거신의 질주만을 썼다. 하지만 어느새 내 주위를 둘러싼 촉수와 최상급 악마의 공격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스킬 데미지…….]
[수호의 갑옷이 충격을 대신해서…….]
[데미지를 입었…….]
“젠장, 수호의 갑옷!”
불과 3초도 버티지 못하고 깨지는 수호의 갑옷을 다시 사용하고, 거신의 질주마저 사용했지만 이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푹!-
[수호의 갑옷이 충격을…….]
[민첩이 90% 하락합니다.]
[모든 스킬이 봉인됩니다.]
“제…기랄!”
뒤쪽에서 왼쪽 어깨를 관통한 거 같았다. 촉수에게 관통 당하자마자 민첩 하락과 스킬 봉인에 걸린 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뇌룡의 포효를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콰아앙!-
[뇌룡의 포효 발동!]
[모든 마나력이 소모됩니다.]
‘아이템으로 쓰는 건 스킬에 해당되지 않는 건가?’
쿠오오오오!!-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내 주위로 생겨난 황금색 전격이 모든 걸 휩쓸었다. 당연히 내 어깨를 관통한 촉수마저 사라진 상태. 반대로 최상급 악마는 없애지 못했지만 애당초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놈이었다.
[띠링!~ 기원의 구슬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원의 구슬? 메시지가 뜨는 거였다니.
“물품 보관창!”
생각과는 달리, 그 메시지를 확인한 내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물품 보관창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내가 아이템 창을 열어 기원의 구슬을 꺼내자 그 구슬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지잉-
……그래, 가만히 있을 틈도 없다 이거지?
직감으로 사용 방법에 대해 알아낸 난 주저 없이 기원의 구슬을 악마왕의 몸에다 갖다 댔다.
파밧!-
순간, 악마왕의 몸에서는 기원의 구슬이 내뿜은 빛과 같은 밝고 새하얀 빛이 생겨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촉수와 함께 최상급 악마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악마왕의 몸은 빛으로 형태조차 보이지 않았고, 또 그렇게 변한 빛은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끝난…… 거겠지?’
그런 내 생각대로 작아진 빛은 점차 사라졌다. 게다가 빛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며칠 전에 봤던 네이라가 있었다.
“아…… 루딘 님.”
바닥에 누운 채 시선만은 내게 향하는 네이라.
“도와……주셨네요.”
“뭐,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비록 다음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 대답에 네이라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메시지 창에서는 수십 개의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