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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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치와의 거래를 끝마친 후에, 가장 먼저 시리우스의 동선을 살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볼 수록 의심이 커지기만 했다.
1시간에 한 번씩은 꼭 물을 마신다거나, 박쥐처럼 붙어다닌다며 죽음을 먹는 자들을 혐오한다는 걸 제외하고서라도, 수많은 증거가 시리우스 블랙의 뒤에 붙어다녔다. 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 후로 크라우치 2세를 대면하는 걸 피했다. 볼 때마다 마법 주문을 외우고 싶은 충동 탓이다. 어쩌면 시리우스를 구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탓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이유에서건 이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초대받은 사람이 몇 명 더 있는 거야?"
"우리 밖에 없을걸."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해리를 뚫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해리 옆의 남자를 말이다.
남자는 턱을 벅벅 긁어대면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태생적으로 뻔뻔한 눈매가 순하게 휘어진다. 강아지라면 꼬리가 붕붕 흔들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에…. 화 났냐?"
"하지만 장난은 서프라이즈가-"
"-재밌다고 말하기만 해봐."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파티에 참석해서 학생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교수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자의 눈망울이 오만하게 반짝였다. 확신을 섞은 말투는 시리우스 블랙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장난기 그득한 목소리도 말이다. 남자는 연기 쪽으로 재능이 있었다.
"솔직히 시리우스가 할 말은 아닌 거 알죠?"
"하하!"
시리우스가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정확히는, 시리우스의 모습을 한 크라우치 2세가.
"웃음으로 얼버무리지 마요. 솔직히 시리우스는 학창시절에 모든 안전 수칙을 어겼잖아요."
"그게 바로 마루더즈 아니겠냐!"
"교칙을 어기는 게 마루더즈란 소리예요?"
"뭐, 그런 셈이지."
크라우치 2세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고, 나도 낚았다는 생각에 웃었다. 바보처럼 웃는 두 얼굴 사이로 해리의 날카로운 지적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대부. 저번에 마루더즈는 장난이 핵심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보고 장난은 서프라이즈일 때가 가장 좋다고 했잖아요."
"교칙도 어기며 장난을 치는 게 마루더즈지!"
놀고 있네. 나는 당장이라도 지팡이를 휘두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기절 마법과 속박 마법을 쓴 채 1시간 정도 기다리면 본모습이 드러날 거다. 그럼 시리우스는 구출될 거고, 크라우치 2세는 아즈카반의 품으로 돌아가고, 호그와트에 침입자가 더는-
"그런데 해리, 괜찮은거야? 6월 24일이 시합이잖아."
"대부, 그 얘긴 꺼내지도 말아요…."
"조심해서 나쁜 건 없어. 마법 연습하는 거 도와줄까?"
"교수가 도와주는 건 시합 규칙 위반 아녜요?"
나는 해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다급하게 말을 받아쳤다.
어쨌건 참아야 했다. 지금 크라우치 2세를 납치하는 순간, 크라우치의 장관행은 꿈도 못 꿀 테고, 죽음을 먹는 자의 대부분을 소탕한다는 계획도 소멸할 게 뻔했다. 나는 꾹꾹 답답함을 눌러담으면서 무표정을 고수했다.
"교수한테 도움받는 게 대수래? 빅터 크룸하고 플로리아 델라쿠르는 그냥 일대일 개인 교습인 것 같더만."
크라우치 2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플뢰르 델라쿠르예요." 해리가 재빨리 정정했다. "지금 보바통 초대로 가는 거잖아요, 대부. 챔피언 이름 정도는 알아야죠."
해리가 헤르미온느와 놀랍도록 똑같이 말했다. 해리의 잔소리 기질은 대부를 만나면서 생긴 듯했다. 나는 도움을 구하는 크라우치 2세의 눈빛을 모른 척하며 보폭을 넓혔다.
해리가 크라우치 2세의 실체를 안다면 어떻게 될까? 시리우스가 캐비닛 속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어야 하는 거지? 덤블도어가 영웅을 키우는 짓거리랑 이게 다를 게 뭐야?
'아니, 그래도 몇 주간 참는다면 더 확실한 효과가….'
나는 합리화하려는 생각을 지워냈다. 피해를 받은 건 시리우스인데, 내가 몇주간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미친 거 아니냐. 나는 지팡이를 꾹 쥐었다. 나뭇가지 특유의 거슬한 느낌이 살갖에 닿았다. 조금 머리가 진정되는 기분이다.
"이러다가 진짜 덤블도어 2세가 될 지도."
"응? 뭐라고?"
"보바통 마차 다 온 것 같다고."
나는 집 채 만한 마차를 지팡이로 가리켰다. 보바통 학생들 몇 명이 온 건지는 몰라도, 호그와트 학생들을 다 태우고도 남을 만한 크기였다.
크라우치 2세가 다리를 휘적휘적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뒤에 있어라. 뭔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는 목소리를 착 깔며 오러인 양 지팡이를 휘둘렀다. "파티라고 해도 음식 같은 거 함부로 먹지 말고."
"설마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나는 조소를 지어보이며 지팡이를 쥐었다. 뭔 수작인지 몰라서 나온 행동이었다. 해리를 뒷편으로 떠밀면서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속으로는 숫자를 셌다. 오, 사, 삼….
"혹시 모르니까 뒤로 물러나 있을게요."
"아니, 위험할지 모르니까 나와 붙어있는 편이-"
"드레이코 말포이 군! 애리 포터 군! 어서오세용!"
쿵!
가브리엘이 마차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고, 크라우치 2세는 문짝의 일부분이 되었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악 물며 애써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대부! 해리의 소리침이 어쩐지 시원하게 들렸다.
"가브리엘, 오랜만이네."
"마법으로 신호를 주셔성 뭉을 열었는데, 잘못한 겅가요?"
"아니, 잘했어."
나는 가브리엘과 웃으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가브리엘은 기쁘게 활짝 웃으면서도 뒷켠의 해리를 흘끔거리며 눈여겨보았다. 뺨이 복숭아빛으로 물드는 게, 끙끙거리는 크라우치 2세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드레이고는 플뢰르를 따라가면 돼용. 플뢰르가 구경시켜 줄 거예용!"
"알았어."
거기 투분 괜찮나요? 발음을 최대한 살린 말을 끝으로, 나는 가브리엘에게서 벗어났다. 뒤쪽에서 장기자랑하는 자식을 보는 것 마냥 흐뭇하게 웃던 플뢰르 델라크루를 마주했다. 델라크루는 눈꼬리를 휘며 더 환하게 웃었다.
"네가 드레이고 말포이닝? 가브리엘에게 말 많이 들어썽."
"나도."
델라크루와 손을 마주잡고 흔들었다. 나는 가늘게 뻗은 손가락 사이에서 반지를 발견했다. 푸른색 보석을 은빛 링이 감싸는 형태의 반지는, 델라크루의 머리와 눈색을 떠오르게 했다.
덤으로 인어하고 가브리엘도. 저 반지를 얻으려 고군분투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델라크루가 반지를 끼운 손을 보란 듯이 흔들었다. 푸른 보석의 빛이 산란했다. 은색 링도 함께 빛났다.
"이 반지는 네가 찾아중 거 아니양? 인어와 대결을 펼쳤다고 하던뎅."
"가브리엘이 인어한테 주라고 말한 건데. 나는 별로 한 거 없어."
"그래도 도와중 건 병함없는 사실이징."
"가브리엘한테 감사 인사 받았으니 됐어."
"너 진짜 가브리엘 말대로구나!"
델라크루의 눈매가 더더욱 곡선을 그렸다. 은발보다 더 밝은 미소를 짓는 게, 내 말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듯했다. 델라크루는 확연히 부드러워진 말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보바통보다는 아니지만, 이 마차도 보바통의 자랑이야. 네가 마음에 들어쓰면 조켔엉."
델라크루는 관광객을 안내하기라도 하듯 보이는 모든 것을 설명했다.
"벽지 좀 볼랭? 반짱이는 게 보이니? 그건 전부 보석이양. 맥심 교수님께서 보석 하나하나에 마법을 넣었공. 저쪽은 화염 마법이 걸려있고, 저쪽은 빙결 마법이 걸려있엉."
"보석에도 마법을 걸 수 있는거야?"
"맥심 교수님은 보바통 출신이양!"
델라크루가 그것만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된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녀는 드물게 찾아온 자랑할 기회에 그 어느 때보다 신난 것 같았다.
"우리 보바통은 학생들에게 다양항 기회를 제공해. 배우고 싶은 모든 걸 배울 수 있게 도와주징. 보석 마법은 정말로 별 거 아냐. 보바통에 오면 상상한 것 그 이상을 보게 될 거양."
델라크루는 시계를 흘끔거리다가, 나를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보바통은 편입제도가 있엉. 너 꽤 마음에 드는뎅, 보바통으로 전학 오지 않을랭?"
"난 호그와트가 더 좋아."
"아쉽넹."
델라크루가 전혀 아쉽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 뒤로 둘의 대화도 끊겼다. 델라쿠르는 길을 찾는 양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나를 끌고다녔다. 종종 농담을 던져댔지만, 그냥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인 듯했다. 델라쿠르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어딘가를 찾는 것 같았다.
"여기야."
사람도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드디어 델라쿠르가 멈췄다. 그녀는 후, 하는 한숨을 뱉으며 말 없이 지팡이를 마사지하듯 움켜쥐었다.
"지팡이는 왜 든 거야? 마법 쓸 일도 없잖아."
"너도 도와줘, 망포이."
"뭘?"
"저것 좀 파괴해줭."
"저 벽에 얽힌 전설 같은 게 있는 거야?"
소설에서는 모두 그랬다. 내가 지팡이로 벽을 대충 가리키자, 델라쿠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앙, 어떵게 알았어?"
"……."
"저 벽을 파괴하능 자에게 승리가 오리라! 프랑스의 예엉자가 항 말이양."
나는 거대한 벽을 응시했다. 두껍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벽에서는 거미줄처럼 촘촘히 짜여진 마력이 느껴졌다. 마법으로 뚫기는 어려워 보인단 소리였다.
"우선 마법을 쓰면 튕겨져 나갈 것 같은데."
"그거라명 어제 작업을 끝마쳐썽. 저기 보석 보이니? 저기 안에 폭발 마법을 달아놓았거등. 우리는 저 보석만 깨면 됑."
"그럼 왜 굳이 나를…?"
"네가 제일 마법 잘하자낭. 난 저 먼 보석까지 지팡이를 못 조준하거등. 도와줘."
그러니까, 왜 굳이 나를? 빈약한 설명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 싫다명 거절해도 됑! 델라쿠르가 다급하게 덧붙였다.
델라쿠르는 손가락으로 은빛 머리칼을 배배 꼬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듯보였다. 어쩐지 가브리엘이 생각난다. 나는 묘한 데자뷰를 느끼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네가 마법을 쏘면 괜찮은 거지?"
"응."
"보바통 마차를 부숴도 괜찮은 거야?"
"응, 이미 맥심 교수님께는 허락을 받아놨엉."
"그럼 내가 지팡이를 보석 쪽으로 조준해줄게. 네가 마법을 부려."
"고마웡. 정말로 가브리엘 말대로구낭!"
델라쿠르가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델라쿠르가 쥔 지팡이를 움직여서 보석에 겨냥했다. 속으로 폭발 마법 주문을 외우기도 하면서 조용히 팔을 뻗던 델라쿠르에게 신호를 보냈다.
"붐바르다!"
빨간색 광선은 보석의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델라쿠르가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다시 델라쿠르의 팔을 보석 쪽으로 조준했다. 눈살까지 찌푸리며 확인한 목표물이다. 마법은 지팡이로 조준하는 실력도 중요하니, 빗나갈 리가 없었다.
"한 번 더."
"붐바르다!"
'붐바르다.'
속으로 주문을 따라 외웠다. 무언가가 간질이듯 손 끝을 타고 빠져나왔다. 델라쿠르도 그걸 느꼈는지 잠시 휘청인다. 빨간색 빛무리가 아닌, 새하얀 색의 광선이 벽으로 직행했다. 쩍, 쩌적…. 벽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반짝이 가루가 난데없이 천장에서 휘날렸다.
"드레이코, 생일 축하해!"
"도움을 주신 플뢰르 델라쿠르 양에게 박수!"
"자, 빨리 촛불 불어. 깜짝 파티 계획하느라 힘들었다고."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나는 벽의 윗부분을 주시했다. 보석은 깨지지 않은 상태로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이 폭발 마법은 플뢰르 델라쿠르가 부린 거라는 소리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건….
얼떨떨한 기분으로 델라쿠르를 바라보았다. 델라쿠르도 나를 마주했다. 우리 둘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크게 소리쳤다.
"뭐야?"
그건 델라쿠르의 마법이었다. '내 마력을 쓴' 델라쿠르의 마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