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회: 프롤로그 -- >
“창현아 너 그러다 진짜 골병든다?”
경록의 말에 창현이 옅은 미소를 흘렸다.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순진하게 느껴지는 눈망울 덕분에 그 미소는 더욱 여린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 것만이 아니라 선이 유려하고 얇기에 무척이나 곱상하기까지 했다.
매일 같이 힘든 일을 하고 있음에도 마르게만 느껴지는 팔뚝과 몸은 그가 유약해 보인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다행인 것은 키가 꽤 크다는 정도? 그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허약한 느낌을 주는 창현이었다.
“친동생도 아닌데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경록은 창현이 무척이나 안쓰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한 달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가 하는 일이 굳이 밤일 웨이터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아홉시부터 아침 여섯시까지 술 취한 진상들을 상대하고, 그리고 퇴근을 하고 곧바로 신문을 돌린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문 배달을 최대한 빨리 하고 우유 배달까지 하는 놈이었다.
그 것만 한다면 진짜 독한 놈이라고…가난하니까 잘 살기 위해서라고, 어린 나이니까 나중에 더 잘되기 위해서라고 생각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퇴근을 하고 또 저녁 시간에는 틈틈이 파트타임 알바를 뛰고 있는 것이 강창현이라는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매일 저렇게 바보 같이 웃고 다니는.
그의 인상이 미소가 바보 같다고 느끼게 하는 점도 점이었지만, 정말 그가 사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지독하게 일을 하는 이유가 창현 그 스스로를 위해서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희 그 성깔만 더러운 계집애를 왜 굳이 대학까지 보내려고 그 지랄이냐고.”
자신의 말에 대답 없이 그저 웃고만 있는 창현을 보면서 경록이 연신 담배를 뿜어내었다. 오늘은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기에 사장 눈치를 슬쩍 보고 카운터에서 좀 졸기라도 하면 좋겠건만 녀석은 손님도 없는 거리에 나가서 삐끼까지 치려고 뛰어 다니고 이제야 가게로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창현의 입이 열렸다.
“그래도 제 동생이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가장 예민한 시기니까 그런거지 원래는 되게 착한 아이에요.”
“착하기는 개뿔 그리고 미친 새끼야 친동생도 아니잖아.”
답답한 마음에 결국 욕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티 없이 순수하게 웃던 창현의 얼굴에 약간의 씁쓸함이 번졌다. 경록은 괜스레 미안해졌다. 저 녀석의 머리에 자신 덕분에 떠오르고 싶어 하지 않은 기억이 스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맞았다.
털썩, 카운터 한쪽 의자에 주저앉은 창현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비록 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넉넉지 않은 삶이었지만 아버지는 무척이나 따뜻한 분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였지만, 따뜻한 아버지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들처럼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는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런 것들을 굳이 부러워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존재보다 아버지만큼이나 따뜻하게 웃어 주고 챙겨 주셨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존재도 무척이나 좋았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와 아버지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친어머니의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보다는 아버지가 이제는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먼저 느껴지는 것 역시 창현을 기쁘게 했다.
그 것만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생긴 여동생의 존재도 창현을 들뜨게 했다. 바로 앞집에 살았기에 초등학교 시절은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수희와도 제법 친하게 지냈기에 그녀와 가족이 된다는 것 역시 뛸 듯이 기뻤다.
거기까지였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창현의 아버지와 수희의 어머니는 모두 성실한 사람들이었고, 수희와 창현을 낳은 이후 처음으로 여유를 한 번 가지게 되었다.
창현은 두 분을 위해서 피해드린 것이고, 수희는 어쩐 일인지 툴툴대며 따라가지 않았다. 아마 수희 역시 두 분의 여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 창현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것은…지독하면서도 씁쓸하게 다행이었다.
사고가 났고, 창현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려운 살림은 높아져가는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했던 것 같았다. 남들 다 있는 그 흔한 보험 하나조차 없었으니까. 수희와 창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부모님들이 집을 합치기 위해서 살았던 낡은 아파트 두 채를 팔고 새로 산 또 다른 방 세 칸짜리 낡은 아파트가 전부였다.
-수희 잘 부탁해 창현아.
-…네, 어…머니.
-동생 잘 보살펴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색한 어머니라는 칭호가 떠오르자 창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늘 따뜻하시던 아버지의 당부 역시 함께 떠올랐다.
부모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야 했기에 창현은 고등학교도 그만두고 곧바로 사회에 뛰어 들었다. 나라에서 도와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것으로 남매가 생활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자신이 대학까지 다니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수희가 변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두 분이 결혼 소식을 알릴 때부터였지만.
“착한 아이에요.”
“지랄한다.”
눈시울이 붉어진 창현 때문에 더욱 미안함이 드는 모양인지 경록이 시선을 돌리고 담배 연기를 뿜었다. 어렸을 때는 함께 손을 붙잡고 등하교도 했다. 자신이 중학교로 진학한 이후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려면 2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기도 했었다.
물론 정작 그녀가 중학교에 진학 할 때에 뛸 듯이 기뻐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무척이나 친한 오빠 동생이었다. 여전히 잘 따랐고, 별로 되지도 않는 용돈으로 생일 선물까지 챙겨 줄 정도였으니까.
비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는 것을 자신들에게 말을 한 이후로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독하게 차가워져 버렸지만. 물론 동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부모님들이 자신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수희를 잘 돌봐 달라는 것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라.”
1번 룸에서 나온 사장의 말에 경록이 반색했다.
“진짜요?”
“너 말고 창현이.”
“…괜찮습니다.”
“됐어. 뻔지르르하게 삥끼 칠 생각이나 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넌 쉬는 날에도 쉬지도 않고 나오잖아. 오늘 더 이상 손님도 없을 것 같은데 넌 일단 들어가 봐. 김경록이는 남아서 마감치고.”
“…들어가 봐.”
무척이나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경록은 창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리지만 21살의 창현이 사는 것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였고, 오늘은 괜히 그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네 사장님.”
창현은 오히려 자신이 가면 더 일을 해야 할 경록에게 미안한 모양인지 그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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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야겠다.”
모처럼 일찍 끝이 났지만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동네를 도는 것이었기 때문에 집에 조금만 일찍 도착하면 쪽잠이라도 청할 수 있었다.
“아니지, 수희 요즘 아침 잘 안 먹던데 뭐라도 해 먹어야겠다.”
매일 같이 퇴근을 하면 수희가 등교를 할 시간이었다. 가끔 룸살롱에서 손님이 늦게 나가는 경우에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거의 매일 아침 수희의 아침밥을 차려 놓는 것이 사실이었다. 단 한 수저도 뜨지 않고 그대로 등교하는 경우가 100%였지만. 창현은 그래도 오늘은 수희가 먹을 수도 있으니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한참 많이 먹을 19살이었고, 또 공부 역시 체력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아침밥을 먹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새벽 공기가 제법 상쾌했지만 밤새 길거리에서 손님을 데려가려 호객 행위를 한 창현에게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은 냉장고에 무엇이 남았나 하는 것 밖에 없었다.
“수희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더라?”
고민을 하며 걷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웁! 웁!”
“…응?”
잘못 들었나,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다시 한 번 욱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소리가 분명하건만 어디에서 들리는지 잘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 해가 뜬 것도 아니었고, 가로등이 썩 밝은 것도 아니었다.
“뭐지….”
괜스레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혹시나 누가 쓰려져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창현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푸욱-!
이번에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창현이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푸욱-! 푸욱-! 푸욱!
“커컥!”
이제는 선명하게 들렸다. 사람의 신음소리가!
“어…어…어?”
분명 보이지 않았는데!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창현은 이제 확실히 보고 듣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마구 찌르고 있었다.
“…강창현?”
누군가를 칼로 찌르고 있음에도 인기척이 느껴졌던 것일까? 남자는 시선을 돌리며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현 역시 알고 있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