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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7화 (7/170)

< -- 7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창현은 기억 속에 있는 ‘집’ 이란 곳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아직 육체와 전부 동화가 된 것이 아니었고, 본래 창현의 기억을 전부 찾은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마지막 술법은 성공을 거두었고, 다시 되살아났다.

이제는 살아가야 했다.

혈마 강세찬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지금은 무공도 없는 시대이고, 자신의 지식이 먹히는 시대도 아니니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창현은 많은 것을 판단하고 있었다. 미래의 계획을 거창하게 그리는 것보다는 당장 앞에 닥친 일부터 하나하나 해결 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면 일단 녀석이 살았던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잡귀들은 여전하군.”

한 여름의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산에는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큰 눈을 깜박이는 창현의 표정을 그가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섬뜩하고 놀랐을 수 있었다. 언제나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순진무구하게 웃던 표정이 아니라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릿하게 웃는 그의 표정은 분명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지루했던 혈마는 늘 그렇게 조소 어린 표정을 짓고 살았으니, 일종의 버릇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부 따분했고, 지겨웠다. 간혹 일어나는 정파와의 갈등이나, 천재라 불리는 인재들의 실력이 일취월장 하고 가끔 손속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면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교에서 그는 절대자였고, 따로 교를 관리하는 일도, 신도를 관리하는 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시끄러워.”

바람이 불어오자 창현의 표정이 이제는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는 각종 사술과 술법 그리고 무공에 능통했고, 그 것이 창현의 몸으로 빙의 했다 해서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것을 펼칠 육체적인 그릇이 아직은 그 전의 기억을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감각은 있었다.

“꺼져라.”

“….”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창현은 잠시 내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휘저었다. 창현의 뺨을 스치던 바람이 그 손짓에 갈라지고 있었다.

휘이익-!

“꺄아아악!”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은 오직 창현의 귀에만 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 산이기에 다른 사람이 들었을 리도 없었다. 아니, 이제는 경수를 만나 벌벌 떨고 있을 덩치들이나 경수는 들었을 수…그들 역시 들을 수 없었다.

“별 잡귀가 다 귀찮게 하네….”

창현이 고개를 까닥이자 목에서 부서질 것처럼 우드득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귀력이라고는 10년도 안 되는 잡귀 한 마리를 치우는데도 힘이 무척 드는군.”

창현이 하는 말을 지금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도, 그리고 설사 이해를 한다 하더라도 믿지도 못 할 것이 분명했다. 창현이 내려가고 있는 산에는 그가 말을 한 것처럼 소위 귀신이라 불리는 영혼들이 꽤 많았다.

성불 하지 못한…아직은 인세에 한(恨)이 많은 남은 영혼들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혹은 그러한 사연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 세계에서 여전히 인간들의 영력을 빨아 먹으며 그들 스스로의 귀력을 키우기 위해 인세를 떠도는 경우도 많았다.

“흐음….”

귀신만이 아니라 요괴도, 그리고 여러 가지 영혼들도 복합되어 살아가는 이 시대는 자신이 살아가던 그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고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혈마의 시절에는 그들도 나름대로 조직을 갖추며 살았지만 지금은 그저 혼탁한 기운 속에 묻어 나오는 잡스러운 혈향만이 가득했다.

“뭐 내가 정리 할 바가 아니니까.”

인간 중에 분명 이런 흐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소위 도력을 쌓는 사람들이 세상을 정화하려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짐작이 되었다. 영력이 뛰어난 인간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일단은 내 몸부터.”

산길이 끝이 나고, 뜨거운 태양 빛에 아지랑이가 피워 오르는 도로에 도착한 창현이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창현은 이곳이 어디인지부터 정확하게 기억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 역시 납치당한 상태로 끌려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식들을 그냥 보내지 말 걸 그랬나?”

상대 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을 했기에 가벼운 최면 정도만 걸고 그냥 보냈지만, 창현은 살짝 후회가 되고 있었다.

“멍청했을 것이 분명하군.”

희대의 천재라 평가받던 자신과는 다르게 이 녀석의 머리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이런 작은 변수까지도 모조리 계산을 할 수 있었다. 육체가 동화 되는 과정이고, 아직 창현의 영혼이 소멸까지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찬 역시 본래 창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뭐 날 뛰지는 않으니 다행이군.”

의식 저 끝, 어둠 한 가운데에 숨죽이고 있는 창현의 영혼을 혈마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딱히 그 영혼을 소멸 시킬 생각은 없었다. 잠이 들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아직 육체의 동화가 끝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 영혼을 소멸 시킨다면 생각지 않았던 문제들을 초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본래 창현의 영혼을 그냥 두기로 결정한 지금의 창현은 쭉 뻗어 있는 도로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인적이 드문 길이기는 했지만,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국도 한 부근에서 걷고 있는 창현이 신기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저 별 상관없는 창현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단지, 창현만이 이제는 흐르고 있는 땀을 닦으며 허약한 육체를 원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잡귀 하나 흩어 버리는데 왜 그렇게 힘이 많이 들었는지 알만 해!”

육체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할 수도 있었고, 기억이 있었기에 혈마는 그 것이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남들 같으면 처음부터 무공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허탈함에 이어 두려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창현은 달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허탈함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 자신의 천재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꼭 그 것만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다.

“기운이 혼탁해서 그런가? 요괴나 잡귀가 유난히 많아.”

다행인 점은 창현은 그들의 내뿜는 스산한 한기를 느끼고, 그들의 존재 역시 쉽게 구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창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본래 창현의 영혼이 영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지천에 널려 신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도사들의 냄새 역시 창현에게는 묻어 나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는 산 속에 앉아 도를 닦을 여력이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썩어가고 있는 시대군.”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걸으면서 창현은 혀를 찼다. 잡귀와 요괴들의 기운이 아니어도 이 시대는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충분히 혼탁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고 느끼는 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고금제일인이었다 하더라도 이토록 혼탁한 기운을 가진 곳에서 무공을 수련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몇 가지 대법 이후 잡귀들이의 영력 정도를 흡수해야겠어.”

그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 생각했다. 창현은 그런 생각에 즐거워졌다. 배교 장로들에 대한 복수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후손들이 없는 법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으니까.’

행여 몰랐다. 그들의 피는 진하고 진해서 웬만한 사람들과 그 냄새가 전혀 다르니까. 몇 십대에 걸친 세월이 지났다 하더라도 그 피의 향은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 번쯤은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일은 그 때가서 생각하면 되니까.

터벅-터벅!

태양은 여전히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창현은 이미 꽤 많이 걸은 뒤였다. 그리고 본래 육체 주인이 가지고 있던 기억에 드디어 아는 곳이 등장했다. 와 본 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이곳이 어디인지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고, 본래 집까지는 상당한 거리라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뭐 상관은 없어!”

딱히 할 일도 있는 것이 아니고 창현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땀이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이 무척 불쾌하게 느껴질 법 하지만, 생각에 잠긴 창현은 땀을 닦지도 않고 있었다.

부웅-!

여전히 창현의 곁을 스치고 있는 자동차들은 그를 당연하다는 듯 외면하며 지나갔다.

“흥미로운 세상이야.”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은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 창현은 생각했다. 더구나 예전처럼 강한 무공을 지닌 것도 아니고, 사술 역시 여러 가지 제한을 가지고 있었다. 또 교주로 살면서 부에 관한 모든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만큼 차고 넘쳤지만 이 몸은 그렇게 살지도 못한다.

“일반 교도나 다름이 없어!”

어쩌면 전부 잃었다고 표현 할 수 있는 창현의 상황이었지만 그는 도리어 즐거워 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루하고 따분했다.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곳은 온통 흥미로운 것 투성이다. 그리고 그 흥미로운 것들을 마음대로 가질 수도 없는 곳이고, 지금의 육체이다.

하나, 하나 천천히 익숙해져 나가야 한다는 것을 큰 즐거움이었다.

“일단 무리를 해서 경공을 사용해봐야겠군.”

그 옛날 초상비라 부르던 궁극의 경공술이 21세기 현대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의 몸에서 발휘…되지 못했다.

“젠장, 역시 안 되는군.”

기본적으로 풀을 밟고 달린다는 그 초상비는 몸을 가볍게 해야겠다. 사람의 몸무게가 가벼워지는 무공은 없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며 살짝 살짝 공중에 몸을 띄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초상비를 펼치는 사람의 몸은 마치 몸무게가 없는 것 같이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법이었다.

그런 초상비는 혈마 시절의 시대에서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았다.

“걸어가야지.”

생각보다 창현은 천재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몸으로 부딪혀 보아야 깨닫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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