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기운이 혼탁하니 잡귀들의 형태나 요괴들의 식습관도 많이 바뀐 것 같군.”
한적한 공원을 가로지르면서 창현은 혀를 차고 있었다. 창현이 포근했던 기운을 담고 있는 집을 나서고, 기억 속의 길을 더듬으며 걷고 있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역시 이 세상의 기운은 너무나 혼탁하다는 것이었다.
자연의 기운은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과학이라는 것이 발전을 하면서 자연스레 무공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인간의 탐욕이 끊임없는 파괴를 불러일으키자 자연의 기운은 점점 더 약해진 것이군.”
창현은 아주 오래 전의 살던 사람이지만 거의 정답에 가까운 추측을 하고 있었다.
“거슬리기는 하는군.”
자연의 기운이 혼탁해지자 그가 표현하는 잡귀들과 요괴들 그리고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좀 더 인간 본연의 영력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것은 인간들은 알지 못하지만 좀 더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다.
“재밌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균형한 것 같으면서도 그 불균형이 균형을 맞추고 있으니.”
창현의 얼굴에 조소가 흘렀다. 비릿하게 입 꼬리를 말아 올리는 그는 손을 휘휘 내어 젓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 올 때처럼 잡귀 한 마리를 쫓은 것이 아니라, 마치 나는 너희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 정도를 표현하는 행위 같았다.
그런데 그 것만으로 귀력이 거의 약한 잡귀들과 이제 막 성숙하기 시작한 요괴들은 창현에게서 시선을 아예 돌리고 있었다. 그게 안전을 추구하는 것 같았지만 도리어 위험했다. 조금만 더 귀력이 높거나, 인간 영력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요괴들에게 걸린다면 창현의 영력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맑고, 또 높다는 것을 알 테니까.
“규칙이 없어. 근데 또 규칙이 있고.”
창현은 연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잡귀들이 인간의 영력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살던 시절과는 다르게 아예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로 빨아들일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그들은 필요한 양만 빨아들였고, 그 행위를 통해 살인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칭 도사들과 중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배교나 천마교가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 하면 배교 역시 종교였어. 양민들의.”
자신이 피로 물들이는 하나의 방파로 키워내기는 했었다.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창현의 무공을 이용해 기득권 세력들이 늘 탄압 받던 시절을 벗어나 권력의 단 맛에 취해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종교라는 색채를 아예 잃어버린 것이었지만, 창현 역시 그 것을 알고도 방종 했으니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는 교주였으니까.
“이미 지난 가버린 일이고.”
배교를 이 땅에 다시 세우겠다! 그들의 후손이라도 찾아서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
그러한 생각들이 창현은 들지 않았다. 배교에도 그리 애착이 없었고, 이미 본인들은 흙이 되어 바람으로 사라진지 오래 되었는데 그들의 후손에게 화풀이를 해 보았자 심력소모 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 신선조차 죽일 수 있었다고 믿던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들에게 대한 약간의 고마움까지도 있었다.
너무나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게 했고, 고통이라는 생소한 것을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을 끝나게 했다. 마지막 대법을 펼친 것은 그들의 대한 복수를 한다는 목표보다는 자연의 섭리조차 통달했던 인간이 아니라, 좀 더 평범한 인간의 삶에 대한 욕구가 더욱 컸다고 했을 수도 있었다.
“뭐 정확한 것은 나도 모르지. 그 땐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당장 무공을 포기 할 생각은 없었다. 그 때처럼 절정으로 익힐 것도 아니었지만. 이 세계에서 무공이나 자신의 술법들이 꽤 써먹음직 하다는 것은 창현의 기억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확신이 서고 있었다.
“사기가 아니라 나의 능력이지.”
피식 웃음을 흘린 창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적한 공원을 가로지르고 기억 속 사거리를 지나자 화려한 조명들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여긴가?”
“야 강창현!!”
창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 안에 자신을 경수라는 인간에게 데려다 주었던 여자의 얼굴만을 천천히 떠올려 보고 있었다.
툭-!
경록은 멍하니 가게 앞에 서 있는 창현을 보면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 그렇게 보고 있냐? 근데 어쩐 일이야? 너 옷 보니까 지금 출근 했지?”
“그래.”
“…응?”
경록이 순간적으로 벙찐 얼굴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은 물론, 나이가 많건 적건 말을 높이던 창현의 입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래, 라는 반말이 흘러 나왔기 때문이었다.
경록은 눈을 비비고 창현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이상해졌다? 달라졌다고 느꼈다. 해맑은 웃음과 함께 해피 바이러스라도 가지고 있는 놈처럼 주변을 밝게 만드는 기운을 가진 것이 그동안의 창현이었고,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예의가 바르고 싹삭한 면도 있고 더불어 순수한 면까지 있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출근…이라는 건 이 곳에서 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군. 전부 다 출근 했나?”
경록의 대한 기억이 쌓여 가기 시작했고, 창현은 그 기억 속에서 눈앞의 남자가 자신에게 어떤 인물이었는지 가늠해 보고 있었다.
“속물 같기는 한데 멍청한 면이 있네.”
“…뭐, 뭐라는 거야 너? 어디 아파?”
“근데 도리어 나를 멍청이 취급했고. 근데 그 것이 딱히 악의가 있지는 않았군.”
창현은 비릿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그 웃음이 경록은 너무나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히 창현이겄만, 말투도, 표정도 그리고 그가 풍기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까지도 전혀 창현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위험하군. 아직은 아닌가? 이 자식이 이 정도면 수희는…아니지, 그 계집애는 엄청 당황했으니 곰곰이 생각 해 보지는 않았겠지. 그 정도로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고.”
“야, 야….”
중얼거리는 말들을 경록은 하나도 이해 할 수 없었다. 창현은 그런 경록의 어깨를 한 번 툭 쳐주고 가게 안으로 향했다.
매캐한 냄새가 코 끝을 찌르면서 창현의 얼굴 역시 일그러지고 있었다.
“담배…라는 건가?”
그 시절에도 담배는 있었다. 단지 가공 방법과 그 안에 들어가는 것들이 너무나 달랐으니 창현 역시 담배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처음 느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때도 썩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창현이기에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좀 더 연하기는 하지만 다른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나 보군. 정말 신기한 세상이야.”
하나, 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은 언제나 창현을 흥분 시켰다. 지적인 호기심은 없었다. 궁금하지 않았기에 먼저 배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알아가고 깨닫는 것이 그를 즐겁게 하기 보다는 그의 생각대로 흥분 시켰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고 나니 지루 했지.”
자연의 섭리와 인간사의 흐름까지 꿰뚫고 나자 더 이상 창현을 흥분시키는 것은 없었다. 물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성욕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제어 할 수 있었다. 일상이 따분해지고 삶이 지루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모든 것을 예상 할 수 있었고, 그 것은 빗나가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달라.”
계단을 내려가면서 창현은 자신이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성욕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까지 들끓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기분은 그에게 무척이나 새로운 것이었다.
딸랑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어머 오늘은 어쩐 일로 지각이야?”
곧바로 품에 안겨드는 여자를 보면서 창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대로 떼어 냈다.
“창현아?”
“분 냄새인가? 다른 것들도 섞인 냄새인가? 정말 불쾌한 세상이야. 기운도 더러운 주제에. 하긴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많겠지.”
화장품과 향수 그리고 술 냄새까지.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았건만 가볍게 맥주를 한 잔 마신 지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창현의 코끝을 찌르게하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예민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혼이 깃들면서 확실히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꼭 세찬이 창현의 육체에만 물이 드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와.”
“…차, 창현아?”
뒤따라 들어오고 있는 경록에게 지윤이 물었다.
“창현이 오늘 왜 저래? 뭔가 이상한데?”
평소라면 자신이 안기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지던 창현이 너무나 덤덤하게, 그 것도 태연하게 반말을 하면서 떼어내는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경록은 자신은 물론 지윤에게조차 평소처럼 대하지 않는 창현을 보면서 약간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간단하게 생각했다.
“이제는 만만히 보이기 싫은가 봐!”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건 창현은 1번 룸이라고 쓰여 있는 문을 열었다. 수많은 짐작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이 그 덩치들을 그렇게 보낸 이후 변하게 될 상황들이나, 만약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다면 기억 속의 경수라는 인간이 추후에 하게 될 행동들이나 움직임들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아직 이 시대의 맞는 사상과 법칙이라 표현 할 수 있는 인간들의 일정한 반응들, 그리고 또 밤 세계에 대한 창현의 무지함과 더불어 그 때의 그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조금씩 밖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용감하게 출근이라는 걸 했네?”
창현의 비릿한 미소에 지현의 손에서 화장품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차, 창현아?”
“잔망스러운 계집, 우리 해결해야 할 것이 있지 않아?”
후후, 웃는 창현의 웃음소리가 대기실에 있는 모든 아가씨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