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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12화 (12/170)

< -- 12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지현의 낯빛이 화장기조차 지워 버릴 정도로 새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아침에 그런 일이 있은 이후 지현의 마음이 편했던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수의 말을 듣지 않기에는 지현은 그저 일을 하는 아가씨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경수는 그 아가씨들이나 이 거리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당연히 그의 말에 토를 달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현 역시 창현을 좋게 보고 있었다. 이성으로 좋아하기에는 듬직한 면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짜증을 내고, 가끔 말도 안 되는 일로 투정을 부려도 늘 웃으며 받아 주었기에 기본적인 인간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경수가 창현을 꾀어 오라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불안한 마음과 미안함 마음을 동시에 느꼈다. 그가 창현에게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아침에 스타렉스에 실려 마치 납치당하는 것처럼 끌려가는 것은 목격한 뒤였으니까.

내내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늘도 당장 출근을 해야 했다. 경수가 특히 오늘은 꼭 출근을 하라고 미리 못을 박아 두었던 것도 복잡한 심정에도 출근을 하게 만들었던 이유중 하나였다.

“창현아…?”

지현만이 아니라 룸 안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창현의 거친 말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분 내가 진동을 하는 군. 그 때보다 훨씬 심해졌어. 기형적인 방법으로 고친 년들이 대부분이고.”

“….”

모두가 말을 잃고 있었다. 그 순진해 보이는 큰 눈망울을 껌뻑 거리며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욕까지 섞어가며 말을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 표정 자체가 그녀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창현은 늘 웃었다.

“머리가 어지러우니 나와라 계집.”

“…차, 창현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말과 함께 창현은 몸을 돌렸다.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여자들을 보면서 룸을 나섰다. 지현은 낯빛이 여전히 질린 채 몸을 떨며 일어났다. 거의 본능적으로 창현을 따라가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무슨 일이냐, 묻지도 못했다.

그만큼 순둥이 창현이 방금 보여 준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야, 너 어디 가냐?”

귓가를 때리는 목소리에 창현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늘 친절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속에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 것은 창현 역시 마찬가지였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지금 말을 걸고 있는 종욱은 그나마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잠깐 할 말이 있소.”

“…뭐냐 그 무협지 말투는?”

살짝 본래의 말투가 나왔지만 창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수습했다.

“이 여자랑 할 말이 있습니다. 내일 다시 출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현이랑?”

“네. 풀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아가씨와 일을 하는 직원이 얽히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종욱이 창현을 오랫동안 그리고 기본급도 남들보다 더 많이 줘가며 쓰는 이유는 첫 번째는 너무나 성실 했기 때문이었고, 싹싹한 맛은 없지만 늘 예의를 갖추는 성격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유흥의 일을 하면서도 수줍음을 가지고 있어 여자들과 잘 엮이지 못하는 것도 한 몫 했다.

그런 창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가며 지현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종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에 두 번 밖에 휴일이 없는 웨이터이지만 그나마 창현은 그 정해진 날짜도 쉬지 않고 출근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하루 정도 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같아서는 며 칠 휴가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까.

새하얗게 질린 지현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종욱은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현 역시 다른 룸 아가씨들처럼 약은 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창현을 아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다른 남자들에게처럼 쉽게 등 쳐 먹으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갔다 와라. 이지현 너도 쉬는 거지?”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대답은 창현에게서 흘러 나왔고, 지현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래 가 봐.”

“네.”

처음으로 창현은 누군가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았다.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따라 와.”

앞서 계단을 올라가는 창현의 뒷모습에서 지현은 거역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느끼며 몸을 떨곤 발을 내딛고 있었다. 짧은 치마가 위태로울 정도로 그녀의 매끈한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있었고,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가슴이 훤히 보일 정도로 패인 나시티도 창현의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려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꼭 창현에게 찔리고 미안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쏟아지는 창현의 눈빛에 지현은 저항과 거부라는 것 자체를 잊은 것 같았다.

“어머 창현씨 안녕?”

“오, 강창현이 너 아가씨랑 둘이 어디가는 거 처음 본다?”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 왔지만, 창현은 어색한 미소라만 대답했다. 기억을 전부 가다듬은 것도 아니었고, 지금은 지현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흡정대법이라는 것도 기본적인 내공이 있어야 운용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몸은 내공이 한 줌도 없으니…그렇다고 자연의 기를 끌어다 쓰기엔 그릇은 충분하지만 주변에 자연의 기운 자체가 거의 없고, 총제적 난국이군.’

비릿한 조소가 창현의 입가에 스쳤다. 그 모습에 지현이 또다시 살짝 몸을 떨었다. 룸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남자들이 귀엽다고 환장을 하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곤 하지만 창현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좋군. 이물질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

지현의 젖꼭지를 꾹 누르는 창현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도리어 지현이 놀랄 정도로. 가끔 누군가가 손만 잡아도 얼굴을 붉히던 그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간단한 사술 정도는 매개체가 있으면 되는데…피를 이용해야 하는 건가?’

덩치들에게 걸었던 최면 정도는 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정신력 소모가 꽤 클 것 같았다. 더불어 체력 소모까지. 역시 지금의 자신은 그 때와 많이 달랐다. 무심한 눈빛으로 지현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떨리는 그녀의 몸짓을 보면서 남자로써의 욕망이 한층 불타오르고 있었다.

“쿡쿡, 나쁘지 않아!”

이런 생소한 경험도 창현은 좋다고 생각했다. 성욕에 휘둘리는 자신이라니!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가슴이 들끓는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집에는 수희가 있으니 안 되고 아!”

기억은 많은 것을 말 해주고 있었다. 고개만 숙인 채 이제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지현을 보면서 창현은 천천히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앞까지 다가가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네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

“…차, 창현아 난 그냥 그게…겨, 경수 오빠가 시켜서….”

울먹이는 그녀를 보면서 창현은 살짝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도 잘 못한 것은 잘 못한 것이잖아? 안 그래?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날 죽이려 했다고. 난 정말로 죽다 살아 나왔고.”

“…끅!”

많이 놀란 듯 지현이 울먹이다 결국 딸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쿡쿡, 웃는 창현은 지현의 손을 움켜쥐었다.

“계집의 손은 늘 부드러웠지.”

“…끅!”

“기억 속에는 너 혼자 산다고 되어 있군. 가자.”

가끔 술에 취한 그녀를 업어다 준 것도 한 두 번이 아닌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는 길 역시 알고 있다는 것이지만 창현은 지현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려움, 복잡함, 놀라움…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지현의 머릿속을 스치게 하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깔린 것은 역시 미안함이었다.

늘 툴툴대며 짜증이 많은 그녀이지만 경수가 창현을 분명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눈으로 목격을 했고, 자신이 거기에 일조를 했다는 것 역시 창현의 말처럼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터벅-터벅-!

“가로등이라는 건가?”

뜨거운 열이 느껴졌다. 주황색 불빛을 보면서 창현은 괜스레 생각이 잠겼다. 여전히 지현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들끓던 욕정은 조금은 가라 앉아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이, 이제 들어가면 돼.”

‘그래, 한 번 주는 걸로 다 끝나는 거야.’

지현은 현관문을 열면서 굳게 마음을 먹었다. 몸을 파는 일을 한다고 남자랑 자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만큼 지현은 오래도록 일을 해왔다.

아무리 창현이 갑작스레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이미지는 숙맥이었다. 모두가 창현이 동정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의외로 창현과 한 번 뒹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 그 숙맥이 보통이 아니라 너무 심해서 흥미를 잃은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유혹을 한다면 오늘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경수로부터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한 창현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 했다. 자신의 가슴을 찔러 보는 대담함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늘 단 하루였다.

창현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은.

“차, 창현아!”

나시티를 끌어 올리며 창현에게 유혹의 눈빛을 보내려는 순간 지현은 놀라 그대로 주저 앉고 말았다. 원룸 형식이었기에 당연히 싱크대가 붙어 있었고, 그 곳에서 창현은 칼을 꺼내들고 있었다.

엄청난 공포가 밀어 닥쳤다.

순진했던 미소는 창현의 얼굴에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비릿한 조소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과일을 깎는 과도에 불과 했지만 지현은 이미 그 것이 자신의 몸 속에 박히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겁먹지 마 계집. 널 찌를 생각은 없어.”

“…아, 아, 창현아!”

지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부 알겠다는 듯 창현은 쿡쿡, 웃음을 흘리며 상의를 걷어 올렸다. 이곳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역시 지박잡귀가 살고 있었다. 자신의 행위를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눈에 불을 켜려면 일단 눈을 떠야 하는데 기운만 느껴질 뿐 찾아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어디 물건에라도 붙어 잠에 빠져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제물은 내 피지.”

손목 위 부분을 살짝 세로로 긋자 붉은 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종이를 가져와.”

“…어? 응?”

“종이 가져 오라고.”

지현이 서둘러 침대 옆에 있는 탁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곧 연습장 하나를 통째로 창현에게 들려 주었다.

창현이 흘러 나오는 피로 재빨리 종위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현은 알아 볼 수 없는, 지금의 중국인들도 알아 볼 수 없는 한자 비슷한 글자를 써 내려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

그 곳에서 빛이 흘러 나오자 지현의 입이 벌어졌다. 빛은 피처럼 붉었다.

“날 봐.”

그 거역할 수 없는 창현의 목소리에 지현이 말아 올라간 나시티를 내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종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슷한 색깔의 빛이 창현의 눈빛에서도 흘러 나오고 있었다.

“잔망스러운 계집, 넌 벌을 받아야 해.”‘

“….”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는 지현을 보면서 창현이 천천히 미소를 그렸다. 찌익, 소리를 내며 종이가 찢겼고, 창현이 그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 손바닥보다 더 잡게 접혔을 때 지현의 입에 살짝 먹여 주었다.

“먹어라 계집.”

“…아, 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현을 보면서 창현은 다시 불끈 솟아오르는 분신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자와 동침을 한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지금은 동정이었다.

정신은 아니지만!

“다른 것도 많이 먹여 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창현이 천천히 구결을 외기 시작했다.

“아, 아 뜨, 뜨거워…!”

지현의 입에서 짙은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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