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레이저처럼 쏟아져 나간 광선은 지박잡귀의 벌어진 가슴을 강타하고 있었다. 붉은 색 영력이 지박잡귀의 온 몸에 번지기 시작했다.
“크아…크아아앗!”
쇠를 긁는 것처럼 걸걸한 비명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넘쳐흐르는 힘으로 지박잡귀를 제압했던 오소리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현의 이마에 또르르 땀이 한 방울 흘렀고, 지박잡귀의 온 몸을 덮었던 붉은 빛의 영력이 마치 폭발 하는 것처럼 번쩍였다.
“윽!”
시야를 잃은 오소리가 가볍게 신음을 내질렀지만, 생각보다 오래가지는 않았는지 다시 입을 벌리고 멍하니 지박잡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대, 체 어떻게….”
소멸!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괴로워 하던 지박잡귀의 표정은 더 이상 없었다. 그저 연기로 흩어지고 있는 지박잡귀의 존재는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소멸이지. 성불도 아니고, 다른 상위 개체로 나아가는 것도 아닌 진정한 의미의 소멸.”
“….”
오소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표정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그대로 손으로 갈라버리고 있는 창현의 모습을 보면서 한 조각의 두려움이 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은 인간이 맞나?”
“그 누구보다 인간이고 싶었지. 그래서 끝내 인간으로 남았지만 그런 인간에게 배신을 당했던 것이고.”
한줄기의 씁쓸함이 창현의 입에 걸렸다. 깊어지는 창현의 눈빛에 오소리는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지는 이제 더 이상 썩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오소리의 영력은 창현의 영력을 근본으로 커지고 있는 중이고, 창현이 죽는 그 순간까지 오소리는 창현과의 주종 관계를 파기 할 수 없다.
“나쁘지 않군…오히려 행운일지도.”
한 존재의 소멸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키는 창현이었지만, 오소리는 그가 적어도 다른 속물 같은 인간하고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발정 난 것만 빼면.”
오소리의 혼잣말에 창현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나가서 계집이나 데리고 와. 제법 힘들군.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그러지.”
오소리는 몸집이 커지고, 두 발을 걸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네 발로 기는 것이 편한 듯 평소대로 네 발로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창현이 웬일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업이 쌓이지 않았어. 그 때와는 경지가 다르니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 놈이 어지간히 많이도 잡아먹었나 보군.”
사실 소멸까지 시킬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박잡귀에게 묻어 있던 영력의 근원은 너무나 혼탁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잡아먹었다는 뜻이었다. 수련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그들 영력이 인간으로부터 흡수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섭리라는 것이 있었다.
만약 무자비하게 잡아먹는다고 순도 높은 영력을 흡수 할 수 있었다면 근본적으로 여러모로 전투력이 강한 요괴들이나 잡귀들이 인간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사리사욕이 많은 인간들은 그들보다 영력을 깨우치는 경우도 훨씬 적었으니까.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인간은 진즉에 멸망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무자비한 살생과 영력 섭취는 업을 쌓게 되고 그 업이 한계를 넘는다면 창현이 지박잡귀를 소멸 시켰던 것처럼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그…주인.”
“알고 있어. 업은 쌓이지 않았다.”
“…어지간히 많이 잡아먹은 모양이군.”
오소리도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존재 자체를 소멸 시켜 버린다면 그 업이 얼마나 쌓일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주 많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창현에 대한 걱정을 한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창현이 주인이니까.
“주인이 오히려 선한 일을 한 것인가?”
“글쎄…소멸을 시키는 것이 선하다, 악하다를 구분 할 수는 없지. 그건 오로지 옥황이 정해 놓은 법칙대로 행해져야 하는 것이니까.”
“…옥황?”
“신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멍청한 인간들이 제 멋대로 정해 놓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 뿐. 하지만 그 밑의 상위의 존재들은 분명 실존하지. 가령 신선들이나, 염라 또는 옥황까지.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때 소멸을 주관한 것은 분명 옥황이었고.”
“….”
지현은 멀뚱이 창현의 옆에서 듣기만 했다. 애초에 끼어드는 것을 포기했다. 오소리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창현니임…!”
“보채지 마 계집. 혼탁한 영력이 빠져 나가면서 점점 안기 좋은 육체가 되어가고 있으니 당분간은 널 계속 안을 생각이다.”
“…그럼 그 이후에는?”
“첫 번째인 것을 행운으로 알아.”
지현이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창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여체의 향기가 또다시 욕정을 자극하고 있었지만 창현은 앞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할 오소리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것을 우선시 했다.
“그 시절 난 신선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 것은 선계에서 굉장한 충격이었지. 지들 멋대로 후대의 옥황을 나로 정했거든.”
“…주인은 대체 어떤 존재이지?”
“이 근처에 가장 오래 산 잡귀나 요괴는 몇 년이나 살았지?”
“인간 기준으로 100년 정도로라고 들었다.”
창현은 오소리의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간만에 그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그 시절의 나는 100년을 살아 온 요괴가 아니라 100년의 영력을 가지고 있는 요괴조차 소멸 시킬 수 있었다.”
“!!!”
“오로지 무공으로.”
“…설마 주인은 빙의?”
“뭐 비슷하다. 이혼대법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니까. 하지만 빙의는 아니야. 나 역시 이제는 강창현이라고 할 수 있으니.”
“….”
“계집 물 좀 가져와라. 좀 떨어지고.”
“네, 창현님.”
지현이 냉장고로 향했다.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드는 것에 창현이 잠시 침을 삼켰지만 이제는 큰 개보다 약간 더 몸집이 커진 오소리에게 말을 이었다.
“잠시 이야기가 새었지만, 나는 업이 쌓이지 않았어. 지금의 시대가 혼탁한 시대이고, 자연의 기운이 거의 사라졌기에 새로운 옥황이나 아니면 그 시절의 옥황이 소멸이라는 것 자체를 선과 악으로 구분 해 놓은 것 같군. 그 지박잡귀는 멍청했기에 무리 할 정도로 인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 것은 오히려 혼탁한 영력만을 취하고 몸을 점점 더 붕괴 시키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흡수 할 때의 쾌감을 잊지 못했겠지.”
“…멍청하군.”
“그렇게 업이 많이 쌓였기에 지박잡귀를 소멸 시킨 것은 오히려 선이라는 규정을 받았다. 그래서 난 업이 쌓이지 않았고.”
“업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맞아. 그 것은 염라가 만든 법칙이지.”
창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비릿한 조소를 더욱 짙게 피워 올렸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은 상관없어. 나 역시 인간이니까. 신선이 될 마음은 그 시절도 지금도 없다.”
“…그렇군.”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하는 것이 상위 개체로의 진화이지만 넌 뭐지?”
오소리 역시 영력을 깨달았기에 동물에서 요괴가 되었고, 후에 영력이 더욱 쌓이고 깨달음을 얻으면 상위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아직 모른다.”
“하긴, 요괴들 중에 이무기만이 용이 되어 승천을 했고 그 이외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놈들을 나도 보지 못했으니.”
“….”
“뭐 나랑 있으면 다른 놈들보단 훨씬 더 빨리 영력은 쌓일 것이다. 그 것도 엄청나게 맑고 깨끗한 영력이.”
“붉은색이 맑고 깨끗한 것은 처음 보았다.”
“네 주인은 그 어떤 존재보다 강하니까.”
“….”
오소리는 반박하지 않았다. 아직은 불폼 없는, 조금은 신기한 능력을 쓸 줄 아는 인간에 불과 하지만 그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질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강해지는 것에 자신 역시 일조를 할 것이고 일조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오소리는 느끼고 있었다.
“일단 이 주변에 결계를 친다. 인간의 성미는 급한 법이야. 특히 파락호 같은 놈들은.”
“…그렇다면 내가….”
“업을 쌓고 싶어? 아무리 악한 짓을 한다하더라도 요괴나 잡귀가 인간을 물리적으로 건드리게 된다면 업은 자동적으로 쌓인다. 그건 옥황이나 염라보다 더 상위의 존재가 인간을 사랑하기에 만든 ‘절대 법칙’ 이지.”
“…영력으로 괴롭히는 방법 역시….”
“수행과 수련을 위해서 인간들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내뿜는 영력, 그리고 영력을 인지하지 못한 인간들에게 조금씩 갉아 먹는 혼탁한 영력.”
“…이외로 무엇인가를 한다면 그 역시 업이 쌓이는 군. 그래서 지금까지….”
“그래 맞아. 이무기는 스스로 도를 쌓았다. 그래서 용으로 승천을 한 것이고.”
“…그 것도 단 한 마리뿐이었지.”
창현은 씨익 웃었다. 인간은 정말로 많은 혜택을 받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은 신을 원망하면서 산다. 우스웠지만, 자신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니 생각을 접고 몸을 일으켰다.
오소리에게 해준 말 역시 굉장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인간의 것 이외로 영력을 쌓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고, 또 그 것이 은연중 업을 쌓는 일이라고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니까.
“너 역시 첫 번째 부하의 자격이기에 행운인 줄 알아.”
“고맙다 주인.”
오소리는 고개를 숙였다.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결계를 친다.”
“어떻게?”
“힘은 네 것으로 친다. 나는 아직 부족 하니까. 이 계집의 혼탁한 영력이 제법 많은 양이기는 하지만, 그 것 역시 지박잡귀가 심어둔 것이기에 그 놈이 소멸을 하면서 그 영력도 함께 흩어져 버리고 말았어.”
“….”
지현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갸웃 거렸다. 두 번의 밤을 창현과 보내기는 했지만 그 두 번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몸이 가벼워졌고, 가슴 밑에 있었던 멍울도 사라졌다. 그리고 눈에 보일 정도로 머릿결은 찰랑 거렸다.
곳곳에 붙어 있던 지방들 역시 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살이 어느 정도 빠져 있었다.
단 이틀 동안!
신기해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창현과의 관계 이후, 그리고 그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몸 안의 무엇인가를 빼간다는 느낌 이후에 몸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령 그 것이 자신에게 나쁘게 작용한다 하더라도 지현은 상관 없었다.
오소리처럼 지현에게 창현 역시 주인이니까.
“네 몸에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집으로써 더욱 윤기가 흐르겠지.”
“…고마워요 창현님.”
“재능은 없어. 만약 재능이 있었다면 혼탁한 영력을 흡수 할 때 쾌감과 빠져나간다는 느낌 이외에 영력을 느꼈어야 했으니까.”
“…그 영력이라는 것을요?”
“그래. 근데 계집 넌 오줌만 지리잖아.”
지현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확실히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 나가는 느낌과 지독한 쾌감 밖에 느낄 수 없었다.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며 창현의 몸을 강하게 붙잡기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저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래. 인간 중에는 흔치 않으니 요괴를 찾아 보면 그만이야.”
“인간의 몸에 깃든 요괴는 이 주위에 흔치 않다 주인.”
“모르는 소리. 이제 강해졌으니 다시 나가 봐라. 아마 눈에 밟힐거다.”
“…아!”
오소리가 깨달았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말이 길어지고 있군. 일단 결계부터 치자. 오소리 넌 내가 부적을 그려 줄 테니 이 오피스텔 근처에 영력으로 보이지 않게 심어 놔.”
“알겠다. 주인.”
창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경수인지 뭔지 하는 놈부터 대충 막아 놓고 나는 오늘 수희를 데리러 가야겠어.”
여자의 이름이 나오자 지현이 움찔 몸을 떨었다.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창현은 분명 많은 여자를 거둬 들일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입으로 들으니 조금 섭섭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제가 첫 번째에요 주인님.”
“수희는 내 동생이다 계집.”
“….”
지현이 볼을 다시 붉게 물들였다. 홍조가 핀 얼굴을 보면서 창현이 즐거운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네 말이 많다. 원래 첩은 정실이 관리하는 법이니 너 역시 그런 부분을 잘 배워두도록 해.”
21세기에 정실부인의 소양을 가르치고 있는 창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