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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21화 (21/170)

< -- 21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아, 미친 새끼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보다 더 느끼해.”

민정의 말에 다시 아이들이 깔깔 거리고 있었다. 수희는 여전히 몸을 떨었다. 민식의 손을 놓고 싶었다. 징그러운 지렁이가 손에서부터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나도 나름 달달하다고.”

민식의 얼굴은 달달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수희와는 조금 다른 면으로 고등학생답지 않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190CM에 달하는 키 그리고 몸에 털이 조금 많은 편인지 매일 같이 면도를 해도 거뭇거뭇하게 자라는 수염과 더불어 그에 비해 찢어진 눈이나 주걱턱은 그가 그리 썩 잘생긴 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민식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건 그가 체격답게 무척이나 힘이 좋았고, 중학교 시절부터 싸움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소문과 함께 실제로 몇 번이나 아이들을 병원에 보낸 적이 있는 화려한 경력 때문이었다.

가끔 길거리를 다니면서 조폭 같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민식이 살갑게 인사를 하는 것 역시 아이들은 물론 선생들까지 그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됐어.”

“쿡쿡! 배고프니 뭐라도 먹으러 가자.”

민식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식과 함께 다니는 아이들은 민정까지 총 네 명이었다. 그리고 민식과 수희를 포함하면 여섯 명이었고, 그 여섯 명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민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교복을 입고 담배를 꺼내 물었지만 그 것을 제지하거나 또는 한 마디 하는 어른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리어 그들이 가는 길을 급급히 피하기 마련이었다.

“후우!”

“미친년 너 때문에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하나 줘?”

민정의 되물음에 민식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담배를 받아들고는 수희에게 라이터를 내밀었다.

정말 사소한 것 하나까지 꼭 수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벗어 날 수 없고, 자신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온 몸에 새기고 있는 것 같았다.

굴욕적인 일들을 시키면서.

치익-!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대항하기에는 수희는 가녀린 여학생에 불과했다. 창현에게 표독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그 대상이 창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그에게만 할 수 있는 일종의 투정이라 볼 수 있었다.

“후우!”

연기를 뿜어내는 민식을 보면서 수희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3학년에 올라 와서 3개월이 넘게 이들에게 끌려 다녔다.

2학년 때까지는 창현에 대한 소문이 학교에 좀 이상하게 퍼졌기에 수희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지만 3학년 때 전학을 온 민식이 어느 정도 창현에 대해 알아보고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수희를 끌고 다녔다.

그런 민식을 필두로 다른 아이들까지 엉켜 붙었고 창현에 대한 소문은 수희에 대한 소문으로 바뀌어 아이들의 입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좋지 않은 소문이었다.

가뜩이나 불량한 학생들이 넘쳐나는 학교에 그 중 리더나 마찬가지인 민식과 엮이게 되면서 심심치 않게 던져내는 민정에 말이나 민식에 동조가 이어지면서 그 것은 어느 덧 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소문대로라면 수희는 벌써 임신을 세 번이나 했고, 민식에 의해 남학생들에 소위 돌려졌으며 민정과 레즈플레이까지 하는 문란함을 넘어서 ‘더러운 년’ 으로 통하고 있었다.

제대로 공부가 될 턱이 없었다.

나쁘지 않았던 성적은 자꾸만 떨어졌고, 소문은 선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반쯤 포기한 선생들이 그나마 끌고 가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던 수희였지만 그런 소문을 몸에 달고 사니 좋게 볼 까닭이 없었다.

심지어 젊은 남선생들은 종종 수희에게 추파를 던질 정도였다.

여러모로 꼴통 중의 꼴통인 학교였지만 수희는 그런 것들을 창현에게 말 하지도 못했다.

그 누구보다 바보 같이 착하고 자신만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답답하면서도 무척이나 미웠다.

그리고…자신으로 그가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힘들어 하는데….”

어제 갑작스레 달라졌던 창현의 모습이 생각났다. 괜시리 눈물이 차올랐다. 따뜻함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더욱 거리를 두는 모습 같았기 때문이었다. 창현의 얼굴을 보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억눌렀던 이슬이 수희의 눈가에 맺혔다.

“어 걸레 울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걸레로 부르는 민정의 말에 수희가 참아왔던 것을 폭발 시켰다.

“걸레? 내가 너처럼 몸 굴리고 다니는 줄 알아? 누구보고 걸레래?”

“하!”

민정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곧바로 수희의 뺨을 향해 손을 날렸다.

짜악-!

“…나민정!”

“닥쳐 김민식.”

“….”

민식이 나서려 했지만 차가운 민정의 눈빛에 도리어 수희의 손을 놓고 있었다. 분명 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리더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시 지껄여봐 김수희.”

또르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지만 수희 역시 민정의 눈빛 못지않게 차가운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피식 조소를 피워 올렸다.

“왜? 맞는 말이잖아? 니들이 말 하는 대로 하면 난 여전히 아다인데 넌 여기저기 돌림빵도 당했던 걸레잖아?”

“이 미친년이….”

민정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뺨이고 머리고 수희의 온 몸을 향해 날려대고 있었다. 그 것만이 아니었다. 길 한복판에 고통에 겨워 결국 쓰러진 수희를 구둣발로 그대로 밟고 있었다.

“오냐 오냐 해 주니까 아주 만만하지?”

사람들은 오히려 눈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어째서 이 동네의 집값이 그토록 싼지, 그리고 소문이 왜 이렇게 안 좋게 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상식 이상의 일이 벌어져도 모두가 몸을 사리는 곳이 수희와 창현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퍽퍽퍽-!

“쌍년이 진짜 뒤질라고? 어디서 걸레 같은 게!! 뭐 돌림빵? 이 개 같은 년 내가 오늘 그게 뭔지 알려줄게!”

“왜, 왜, 가만히 있는데 나한테만 그래!”

수희가 밟히는 와중에 손을 내저으며 한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6개월의 괴롭힘! 수희 역시 쌓일 대로 쌓여 있었다. 그녀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늘 헌신하는 창현에 대한 미안함과 알 수 없는 원망…그와 더 이상 예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이상한 분노는 물론 부모님의 빈자리까지!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꼴통 학교를 다니면서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자신에게 환심을 사려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집에 일찍 가서 창현을 한순간이라도 더 많이 보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것이 아이들과 점점 벌어지는 일이었다는 것을 수희는 잘 몰랐다.

민정이 자신을 괴롭히는 이유 역시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수희도 그리고 민정도 잘 몰랐다. 그저 자신보다 예쁘고 관심도 많이 받는 수희가 도도하다는 것이 민정의 마음을 긁었을 뿐이었다.

민정 스스로 역시 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김민식 애들 불러.”

“야 그만해.”

민식이 말려 보았지만 민정이 차갑게 웃었다.

“왜? 이 년 먹고 싶어서 안달이었잖아?”

얼굴은 물론 온 몸이 엉망이 되어버린 수희를 민정이 잡아 일으켰다.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던 남자 아이들을 향해 민정이 말을 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이 년 좀 들어 봐.”

입술이 전부 터지고, 그 예쁜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붙어 있었고, 피 역시 함께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희는 몸을 떨며 남학생들의 손길을 뿌리치려했다.

그만 힘이 전부 빠져 다시 쓰러지고 말았지만.

“킥킥! 그러게 미친년아 어디서 지랄이야? 넌 오늘 제대로 걸렸어.”

표독스러운 민정의 말투에 민식이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이 잘 치기는 하지만 민정은 이 곳 토박이었고 그만큼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아주 잘 이용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어른들이 자신을 눈 여겨 본다는 것도 알았고, 요새는 이곳을 주시하는 공무원들의 눈이 날카롭기에 자제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예전처럼 자신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 것은 민정이나 민식과 같은 19살 양아치들에게는 굉장한 메리트였다.

마치 그 것이 ‘인맥’ 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민정이 담배를 물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고, 쓰러져 있는 수희를 두 명의 남학생이 끌고 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이 종종 다니기는 했지만 그들은 그저 혀만 차며 신고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얽히기 싫기에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야 너 진짜 돌릴 거야?”

“넌 첫 번째로 해 줄게. 특별하게.”

민식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끌려 가고 있는 수희를 보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교복이 살짝 찢어져 있는 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좋냐 병신아?”

“뭐…한 번 먹고 싶었어.”

민정이 낄낄 웃음을 흘렸다.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는 표정이었다.

“저 새끼 오빠 병신인거 확실하지?”

“어 그냥 병신이래. 내가 그동안 눈치 보여서 못 물어 봤는데 확실해.”

민식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민정 역시 미소를 이었다. 그들에게 몸을 줄 때 그들은 종종 많은 돈을 주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창현에 관해 은근슬쩍 물어 보았을 때도 그저 착한 녀석 정도라고 밖에 말 하지 않았다.

그 때는 그들이 창현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수희를 건드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창현이 소문대로 성실하기만 한 바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뒤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가뜩이나 말 한 마디 하지 않지만 거슬렸던 수희를 괴롭히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딸랑딸랑-!

민지네 호프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반짝이지도 않았지만 문에 달려 있는 종은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크게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30 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오늘은 저녁도 안 먹고 왔나봐?”

“아, 뭐 일이 있어서.”

“응? 쟤는 뭐야? 또 누구 때렸어?”

“언니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여기 대충 술하고 먹을 것 좀 줘.”

“뭐 그래?”

여자가 눈웃음을 치며 슬쩍 민식에게 상체를 숙였다. 많은 여자를 접해본 민식이었고 오늘 수희 역시 가질 생각이었지만 그런 여자의 유혹에는 약한 듯 싶었다.

“병신 하여튼 좆 달린 새끼들은 가슴 큰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한다니까.”

민정의 말 그대로였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주방으로 향하는 여자의 모습은 색기가 넘쳤다. 지금은 보이지 않았지만 슬쩍 가슴골을 보일 때는 그 눈빛 역시 가히 뇌쇄적이라 할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농염함을 그대로 뿜어내는 여자였다.

테이블이 5개도 안되는 민지네 호프집은 이들의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 교복을 입고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였고, 여자의 섹시함에 남학생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사복을 입는다면야 이 동네에서 술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살 수는 있었지만 이 곳은 여자의 존재 덕분에 조금은 특별했다.

나름 안주도 제법 맛있게 하는 편이었고.

“야 저년 좀 구석에다 짱 박아놔.”

민지의 목소리에 수희는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탐욕에 이글거리는 민식의 눈빛…그리고 늘 따라만 다녔던 남학생 둘 역시 그들 역시 자신의 몸을 탐 할 수 있다고 믿는 지 그 어느 순간보다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을 즐겁다는 듯 바라보는 민정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준비하고 있어 수희야. 아다는 민식이가 깨줄거고…네가 말했던 돌림이 무엇인지 알려줄게. 그리고 너랑 나랑 이상한 소문났잖아? 뭐 틀린 말은 아니야. 나도 여자랑 하는 거 좀 좋아하기는 하거든. 그리고 네 말대로 걸레라서 여러 명이랑 하는 것도 썩 재밌어.”

수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오, 오빠…!’

부모님이 결혼을 알리는 그 때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았던 오빠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 나오는 것만 같았다.

창현의 얼굴이 수희의 머릿속을 스치면서 부어 버린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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