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민지네 호프는 학교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종환은 생각보다 창현이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만약 그 사이에 일이 벌어져 버린다면?
종환은 저절로 몸이 떨려옴을 느끼고 있었다. 차가웠던 그 눈빛이 스쳤고, 단 두 방에 온 몸이 비틀렸던 고통이 각인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창현보다 더욱 발걸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멀었나?”
창현 역시 내심 초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연하게 걷고는 있지만 가슴의 울림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종환과 녀석의 친구들을 보았을 때 맑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본래 그 나이라면 맑고 깨끗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야 정상이건만 무엇에 타락을 해 버렸는지 혼탁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수희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창현에게는 수희가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니까.
“다, 다 왔습니다.”
민지네 호프가 눈앞에 보이자 종환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입니다.”
창현이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가장 먼저 창현을 반기고 있었다.
“하, 하지 마!!”
그리고 수희의 날카로운 목소리 역시 함께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그래 하지 마.”
“….”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안에 있는 민식을 비롯한 민정 그리고 수희와 더불어 남학생 두 명의 귓가에는 아주 강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곧 그들이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씨익 웃고 있는 창현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민정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어머, 김수희 너희 오빠 아니야? 뭐야? 계속 같이 있었는데 언제 헬프라도 친 거야?”
우습다는 표정이 역력한 민정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비릿한 조소였다. 민식 역시 낄낄, 거리며 수희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손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건들지 못했던 그 풍만한 가슴으로 손을 옮기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창현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낡은 지갑을 그대로 던졌다.
퍼억-!
“커억!”
지갑 모서리에 손등을 그대로 맞은 민식이 비명을 질렀다. 분명 낡은 가죽 지갑이건만 마치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손등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남학생 둘이 몸을 움찔 떨었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종환은 서둘러 몸을 숨겼다.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결과는 뻔한 것이고, 상황이 정리가 돼서 용서를 빌면 자신은 이 자리에 없었으니 창현이 봐 줄 수 있다는 약삭빠른 계산이었다.
그리고 민정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민식의 손등을 때리고 절묘하게 테이블에 떨어진 지갑은 분명 낡은 가죽 지갑이었다.
하지만 지갑이 스친 뺨에는 칼에라도 베인 것처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릿한 느낌이 들었다.
더욱 더 표정이 굳는 이유는 여전히 히죽 웃고 있는 창현 때문이었다.
“냄새 나니까 꺼져라 젖비린내 나는 계집.”
창현은 민정에게 볼 일이 없다는 듯 그녀를 가볍게 지나치고 있었다. 테이블이 5개 밖에 없는 호프집이기에 동선이 무척이나 짧았지만 민정은 마치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가웠던 창현의 눈빛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사내새끼는 항상 손하고 사타구니가 문제이지.”
창현이 가볍게 민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이 개새끼가….”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민식은 부여잡고 있는 손등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지갑에 맞은 것뿐인데 아직도 고통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남학생 둘은 히죽 웃고 있는 창현의 모습에 한줄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민식 역시 어느 정도 들어간 알코올이 한 번에 깨는 것 같이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수희야?”
“…오…빠.”
어제부터 달라져 버렸다고 느꼈던 창현이었지만 수희는 눈물을 머금으며 아주 오랜만에 오빠라고 살며시 부르고 있었다. 징그러운 벌레가 온 몸을 기어가는 것을 느끼며, 깔깔 거리는 아이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 조롱 그리고 굴욕적인 성적 농담들까지 한 몸에 받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비워지는 술병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었고, 도망치려 해보았지만 오히려 무자비한 폭력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지독하게도 얼굴에 싸질러야 한다며 몸만을 때린 그들이었기에 교복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지만 부어 버린 몸과 여기저기 들어 있는 멍은 창현이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것은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오빠….”
절묘한 순간에 나타난 창현 덕분에 이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것은 일단 지연 됐지만 수희는 창현의 몸이 그리 썩 강하지 않은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지만 근력이 남자치고는 강한 편도 아니었고 성격 자체도 무척이나 온순한 편이었다.
단순히 지갑을 한 번 던진 것만으로 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지지는 않았다.
도리어 자신은 물론 창현까지 이 막나가는 인간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졌다.
“이리와.”
그들에게는 다른 목소리로 창현이 수희에게 말했다. 아, 하는 탄성이 수희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늘 들었던 그 부드러운 목소리. 자상하고 자신만을 위하던 그 목소리에 수희는 지금의 상황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민식을 지나치고는 창현에게로 다가갔다.
“오, 오빠!”
온갖 서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창현이 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지 없는 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그가 왔다는 사실만이 수희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여튼 공부 하라니까, 이런 인간 잡종들한테 끌려 댕겨?”
자연스레 안기는 구도였건만 콩, 하고 이마를 튕기는 창현의 손가락에 수희가 다시 탄성을 터뜨렸다.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 너희들 근친물 찍니?”
이제는 조금 정신을 차린 민정이 창현에게 이죽 거렸다. 민식 역시 손등의 아픔이 다 가셨는지 몸을 일으키며 험악한 말을 내뱉었다.
“너 이 새끼 미쳤구나? 야, 거기 짱 박혀 있는 이종환 문 잠가.”
구석에 쳐 박혀 있던 종환이 얼굴을 찌푸렸다. 한 대 쳐 맞고도 민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끼어들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민식의 말을 듣는다는 사실을 창현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종환에게 한줄기 구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맹아 문 잠가라.”
창현의 말에 종환이 번개 같이 문을 잠갔고, 민식과 민정이 하,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남학생 둘도 어느 정도 상황 정리가 된 모양인지 몸을 일으켰다. 작은 호프집이 꽉 찬 느낌이었다.
앞에는 민식의 무리들이 그리고 뒤에는 한 성격 해 보이는 민정이 있었지만 창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팔짱을 꼬옥 끼고 있는 수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잠깐 저기로 가 있어.”
주방을 가리키며 창현이 말을 이었다.
“계집 훔쳐보는 건 그만하고 수희 좀 데리고 있어.”
“….”
민지네 호프 주인인 민지 엄마는 움찔 몸을 떨었다. 거친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는 뜻도 되었고 제법 강단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쏘아보는 창현의 눈빛에는 대항하지 못하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오빠….”
“아, 금방 끝나.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니까 그래.”
하루 만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희는 자신 역시 예전으로…돌아가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 이후처럼 차갑게 굴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으응….”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똥오줌….”
민정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쫘악-!
그대로 몸을 돌린 창현의 손이 민정의 뺨을 강타했다. 얼마나 강하게 때렸는지 그 소리에 민식의 눈치를 보며 주방으로 향하던 수희조차 움찔 몸을 떨었고, 민정은 옆에 있는 테이블과 부딪히며 우당쾅 소리와 함께 넘어지고 있었다.
“…이 미친….”
“꼬맹아 그만 주둥아리 털고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어.”
“하!”
민식은 더 이상 상대 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그대로 창현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민정이 한심해 보였다. 겨우 뺨을 한 대 맞았다고 저렇게 되다니!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종환은 아주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오는 주먹을 보면서도 창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게 파락호조차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어린 고등학생의 주먹질은 우스울 뿐이었다.
아무리 육체가 그 전과 같지 않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고, 민식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중심을 순간적으로 잡지 못하는 민식의 발을 창현이 살짝 걸었다.
우당쾅-!
좁은 탓에 넘어질 때마다 테이블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쿡쿡, 주둥아리에 비해서 생각보다 별로네?”
머리를 찧은 민식이 이마에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짜증 섞인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술을 많이 먹어서 그랬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민식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창현이 가볍게 발을 내질렀다. 역시 종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의 광경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퍼억-!
곧 민식은 술과 함께 먹은 안주들을 게워 내야 했다.
“쿠에엑!”
남학생 둘과 어느새 정신을 차린 민정은 말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창현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원래 너희 같은 것들은 대가리가 나빠서 금방 잊는 법이거든. 그래서 뼛속까지 각인을 시켜 줘야해.”
“쿠엑, 커어억!”
연신 더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민식의 모습에 모두가 말을 잃고 있었다. 키는 비슷했지만 덩치도 훨씬 작은 창현이 단 두 방에 민식을 아작 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민정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아직도 얼얼한 뺨을 만져보고 있었다. 곧 그녀의 눈이 표독스럽게 변하는 것을 창현은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넘어가고 있었다.
수희를 더듬으려 했었던 민식의 손을 창현이 그대로 밟았다.
퍽-!
우두둑-!
“끄아악!”
모두가 몸을 떨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밟았다고 손등 뼈가 조각이 나 버리다니! 하지만 그 것이 아니면 방금 그 소리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까 말 했지 손하고 사타구니가 문제라고.”
“아악! 자, 잘…”
“시끄러.”
창현이 몸을 숙이고는 가볍게 손을 내질렀다.
퍼억-!
민식의 주둥아리에 그대로 창현의 손이 꽂혔고, 곧 토사물이 묻은 민식의 얼굴이 뒤로 젖힌 채 몸까지 함께 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이 싸기지 없는 새끼들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던 수희조차 입을 벌린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정이 치맛자락에서 날카로운 잭나이프를 꺼내 들고 있었다.
“이 개새끼가 죽여 버리겠어.”
창현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스치고 있었다.
“전화기 내려 놔 계집.”
오히려 주방에서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민지 엄마에게 말을 걸고 있는 여유까지 보였다. 민정이 이를 악물고 창현에게 달려들었다.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그 시절 비무는 자유롭게 허용했고, 그 누구도 막지 않았다. 그래서 간혹 아니, 아주 많이 정파의 철부지들이 자신을 찾아오고는 했었다.
죽이지는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철저하게 밟았지. 계집이건 사내새끼건 상관없이.”
창현이 비릿한 미소를 더욱 진하게 피워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