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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31화 (31/170)

< -- 31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일주일은 금방이었다. 여전히 창현은 집에서 노는 것처럼 보였다. 수희도 마냥 어린 것만은 아니었다. 창현이 누구 때문에 그 많은 일을 했는지, 그러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묵묵히 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차갑게 그를 대했던 것은 마음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예전처럼 살갑게, 가깝게 지내고 싶었지만 차가운 말이 먼저 나갔다. 그리고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섭섭함이 밀려 들어왔다. 그 것은 짜증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돌이키기 힘든 지경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창현이 갑작스럽게 변하고, 민정과의 일이 있은 이후 수희는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모의고사 일주일 남았어.”

“응.”

배를 벅벅 긁으며 대답하는 창현의 모습에 수희가 울컥했다.

“우씨, 기억은 나? 나랑 약속 한 거?”

“계집, 툴툴대지 말고 잘하기나 해. 본좌는 기억력이 좋아서 잊지 않는다. 그리고 약속 역시 칼 같이 지키는 것이고.”

심드렁한 창현의 목소리에 수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계집 소리 좀 그만 해.”

이상하게 말투가 변했다는 것은 진즉 느끼고 있었지만, 계집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창현이 그런 것을 신경 쓸 위인은 애초에 아니었다.

“계집을 계집이라 그러지 그럼 사내새끼라고 할까?”

“….”

딱히 반박할 말은 없기에 수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고집도 괜스레 강해진 것 같았다. 예전이었다면 자신의 말 한 마디에 껌벅 죽었다. 그렇지만 그런 창현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아닌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좀 더 당당해지고, 강해진 모습은 듬직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 했을 때 마법처럼 나타나서 구해주었으니까.

폭력적인 모습인 머릿속을 다시 한 번 스쳤지만, 수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 것조차도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했고, 또 그 것이 사실이었기에 도리어 멋지게 느껴지고 있었다.

저절로 얼굴이 뜨거워졌고, 볼이 붉게 물들었다.

“…오, 오빠!”

간드러지는 수희의 목소리에도 창현은 여전히 배만 긁고 있었다.

“왜?”

“….”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오빠라고 불러주는데도 여전히 감흥이 없는 창현의 모습에 수희는 다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오빠라는 단어에 그가 국한 되는 것이 싫어 여태껏 일부러 외면해 왔고, 그와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더더욱 반말을 하고 오빠라는 단어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아…무슨 생각을!”

망측하다는 느낌에 수희가 황급히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야, 저녁 차려!”

여전히 심드렁한 창현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혼자 용건을 말하고, 혼자 툴툴 대고 결국은 주방으로 향하는 수희의 모습에 창현이 피식 미소를 터뜨렸다. 단 한 번도 가족이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던 창현이었기에 수희의 존재는 분명 새로웠다.

의식 깊숙이 숨어 있는 영혼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수희는 창현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지켜줘야 할 존재이고, 아껴줘야 할 존재였다. 말을 거칠게 한다고 꼭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창현 스스로의 사고방식에서 그는 최대한으로 수희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창현은 몸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았다. 일주일 동안 지현과의 섹스를 꽤 많이 했다. 그녀에게 더 이상 혼탁한 영력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혼탁한 영력의 상당부분을 지박잡귀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소멸을 하면서 자연히 지현의 몸에 남아 있는 그의 영력까지 사라진 것이다.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그의 영력이 아니라, 저절로 쌓이는 혼탁한 영력에 지박잡귀가 일종의 영향력을 불어 넣은 것이고 그건 맨 처음 불어 넣은 사람이 아니라면 흡수를 할 수가 없다.

창현이 지현에게서 흡수를 했던 것은 그 이외의 영력이었다.

어쨌든, 지박잡귀의 소멸과 함께 지현의 영력 역시 상당부분 사라졌다. 본연의 선천지기에 혼탁함이 쌓여 있었지만 창현이 흡수를 했고, 지박잡귀가 소멸을 하면서 남은 영력마저 씻겨 나갔다.

지현이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진 것은 굳이 언급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몸에 불순물이 사라지면서 일차적으로 피부가 곱고 윤택해졌고, 건강한 머릿결과 몸 곳곳에 남아 있었던 사내들의 흔적-멍 자국이나, 필연적으로 성관계를 많이 하면 변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조차 말끔해졌다.

스스로의 변화가 신기한 지현은 창현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변화는 창현을 만난 이후에 생긴 것이고 그와의 관계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쾌락도 동시에 많은 선물을 주었으니까.

혼탁한 영력이야 자연의 기가 약해진 지금 빠르게 그리고 상당히 많이 씩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현은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다.

지현의 선천지기는 자연의 기가 약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계속 혼탁해질 것이고 그 때마다 자신이 관계를 통해 흡수를 한다면 자신의 영력도 늘고, 그녀에게도 좋은 것이었으니까.

“후우우우!”

깊게 숨을 몰아쉰 창현이 영력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흔히들 가부좌를 틀 것이라 착각 하는데, 창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 것은 영력을 수련하는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였다.

영력은 내공과는 다르게 자신의 몸에 일부나 마찬가지이다. 어디에 따로 저장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릇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것은 영력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지칭하는 것일 뿐 단전처럼 특정 부위에 모든 사람들이 영력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부분 단전 바로 윗부분에 가지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굳이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 할 필요가 없었다. 육체는 비롯하여 따라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창현은 그 시절의 경지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고, 두 개의 영혼이 합쳐지면서 그 시절보다 영혼의 강함은 오히려 좀 더 강할 정도였다.

창현의 몸 주위에서 붉은 빛이 맴돌았지만, 주방에서 요리에 열중하고 있는 수희가 알 턱이 없었다.

곧 창현의 몸이 공중에 그대로 뜨고 있었다. 누워 있는 그대로!

우우웅-!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 소리가 거실에서 강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수희가 놀라 거실로 나왔을 땐, 창현은 다시 소파에 누워 배를 긁고 있는 중이었다.

“오빠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밥 다 했냐?”

“….”

천연덕스러운 창현의 대꾸에 수희가 순간 말을 잃고는 멍하니 창현을 바라보았다. 창현은 곧 몸을 일으키고 수희의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얹고는 그녀의 몸을 돌렸다.

“밥 먹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오!”

“….”

자신의 차려놓은 식탁에 순수하게 감탄을 하고 있는 창현을 보면서 수희가 다시 볼을 붉혔다. 곧 창현에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수저를 들었다.

한참 밥을 먹을 때 쯤 지나가는 듯 창현의 목소리가 수희의 귓가를 때렸다.

“고 싸가지 없는 계집하고 사타구니 터진 놈은 안 괴롭히든?”

“…응, 그냥 신경도 안 쓰고 있어.”

사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소문도 안 좋고, 또 그 것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창현이 걱정까지 되었다. 그 날 그토록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고, 그들 친구들까지 우르르 몰려온다면 창현이라도 힘들 수 있다고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민식은 그저 자신만 보면 덜덜 떨고, 민정 역시 별다른 말없이 냉랭하게 구는 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민정이 냉랭하게 구는 것이 더 편했기에 수희는 요즘 확실히 다시 학교생활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좋지 않은 소문 때문에 친구는 없지만 창현의 바람대로 학업에는 확실히 다시 집중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내일 모의고사로 나올 것이 분명했다.

‘고 싸가지 없는 년이 수상한데.’

그런 아이들의 습성을 참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 창현이기에 민정이 조용히 있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다. 다시 한 번 학교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직접 보고 기운을 느끼다 보면 어느 정도 의도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기억 속에도 모의고사가 끝이나면 수희의 담임이라는 여자와 학부모 상담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정말 재밌어.”

“뭐가?”

“아…아니다. 손목 으스러진 자식은 괜찮나?”

“깁스 하고 댕겨.”

아마 치료를 하는 것에 꽤 오래 걸릴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창현은 민식에게 일종의 가벼운 사술까지 걸었기에 절대로 수희를 괴롭힐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덩치만 크고, 허세만 강했지 정신력은 약해 빠진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이 자신의 사술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굳센 성격만 가지고 있어도 마음가짐을 달리 먹는 것만으로 밀어낼 수 있는 사술이었지만 민식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창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너만 봐도 슬금슬금 피하지?”

“…응!”

그 것이 못내 기쁘기는 한 모양이었다.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한 민식의 눈길은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는데,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었다. 자신만 보아도 크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였으니까.

민식만이 아니었다. 종환도 마찬가지였다.

“저기 오빠….”

“왜 그러냐 계집?”

“또 그 계…후우! 아니다. 김종환은 어떻게 된 거야?”

“그 놈은 누구냐?”

종환은 창현의 심복이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심부름을 도맡아 처리 했으니까. 민식이 있는 곳도 알려주어 수희가 위기에 빠진 것을 구해주는 것에 역할도 했고, 완전히 걸레가 되어버린 민식을 병원에 옮기고 어차피 포기했지만, 그래도 일의 경과를 묻는 민식의 부모에게도 대충 얼버무리는 것에 성공을 했다.

이쯤이면 뒤처리를 도맡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창현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냥, 걔가 자꾸 학교에서 인사하잖아.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이러면서.”

“쿡쿡 재밋는 놈이네?”

그제야 창현은 약간 기억이 났다. 약삭빠르게 눈알을 굴리던 모습이 선했다.

“몸종으로 삼아서 데리고 다녀. 제법 근골이 튼튼한 놈이라 내가 없을 때 시간 정도는 끌어 줄거니까.”

창현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자가 아름답다면 파리들이 꼬인다는 것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느꼈다, 수희는 지나치게 예뻤고, 그녀의 배경이 그리 썩 좋지 못했기에-아직은 창현의 존재가 미미하기에 그렇다-날파리들과 똥개들이 많이 꼬일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실제로 등학교 때 수희에게 찝적대는 어른들도 꽤 많았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종환을 붙여 놓으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오히려 민식보다 근골이 튼튼했고, 기본정도만 잡아 주어도 이 시대의 무도가라 하는 놈들보다 더 강하게 키울 수 있었다.

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 났다.

“몸종?”

“등하교 할 때 괴롭히는 놈들이나, 학교 내에서도 많을 거 아니야. 졸업 할 때까지만 데리고 댕겨. 내가 그 자식한테 따로 말을 해 놓지.”

“…그냥 오빠가….”

오빠가 지켜주면 되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수희는 얼굴을 푹 숙인 채 꺼내지 못했다.

“나도 슬슬 일 하면 시간이 없다.”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창현의 말에 수희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누, 누가 뭐 래?”

“난 다 먹었다. 치우고 공부하고 자.”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이미 먹고 있었던 창현이었기에 배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신은 한 수저도 제대로 뜨지 못했는데 이미 잔뜩 담아 놓은 밥 한 그릇을 전부 비운 창현을 보면서 수희가 입을 벌렸다.

요즘 들어 정말 잘 먹는 것 같았다.

그 전에는 자신은 늘 받아 먹었고, 또 창현과 식사를 하지 않았기에 몰랐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기억 속 창현보다는 두 배는 많이 먹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느 정도 살이 불어 난 것 같았다.

뚱뚱한 것은 아니고 본래 지나치게 말랐기에 보기 좋을 정도로 살이 적당하게 붙어 있었다. 물론 그 것이 전부 근육이 아니기에 균형잡힌 몸매가 아닌, 운동하면 꽤 괜찮을 것 같은 몸매 정도로 볼 수 있었다.

“오빠 요새 많이 먹는 것 같아.”

“이제 몸을 만들거야.”

“….”

창현이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한 일주일 걸릴걸?”

“응?”

“음…기억 속에는 몸짱이라고 되어 있네?”

“…몸짱이 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고?”

수희가 풋, 하고 웃어 버렸다. 영력의 존재를 모르는 수희는 당연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창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어깨를 으쓱하고는 욕실로 향했다.

“대충 치우고 설거지는 내가 하지.”‘

“…응.”

“그리고 욕실 훔쳐 볼 생각 하지 말아라 계집.”

“미친 소리 그만하고 씻고 잠이나 때려!”

간만에 험한 말이 나왔지만 수희는 볼을 붉힌 채 밥을 마저 먹고 있었다.

창현은 욕실에서 거울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혼단공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자연의 기운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무공도 어느 정도 회복을 해야겠어. 절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류정도면 충분하겠지.”

간만에 혼자 지껄이는 창현이 쿡쿡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휴가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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