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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44화 (44/170)

< -- 44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휘몰아치는 광포한 기운은 공간 자체를 일렁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시리게 웃고 있는 창현의 미소에 수연은 물론, 수희까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창현이 기운을 수연에게 집중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강해서 수희까지 느낄 수 있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수희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런!”

창현은 실수를 깨닫고는 기운을 곧바로 거둬들였다. 수연의 눈이 또다시 크게 찢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현은 수희의 등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내공을 뿜어내었다. 스스로 혈마지기라 이름 붙인 붉은 색 내공!

수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경지를 갖춘 수연의 눈에는 뚜렷이 보이고 있었다.

너울거리는 붉은 색이 수희의 혈맥을 타고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수희는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저절로 아, 하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갑자기 달라지니 창현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가 다른 사람이 된 것일까? 이런 능력은 대체 뭐지? 무인 협회? 갑작스레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괜찮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희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오…빠.”

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걸고 자신을 바라봐 주었다. 아주 어렸을 적 처음 기억에 남은 그 순간부터 변하지 않는 미소는 그대로였다. 수희는 옅은 미소를 살며시 지었다.

“저녁…준비할게. 그…나중에 이야기 해 줄 거지?”

“같이 저녁 먹으면서.”

곧바로 대답을 해주는 창현의 목소리에 수희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수희의 뒷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창현이 시선을 돌렸다. 손님이 왔으니 아마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준비할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있다는 말이었고, 수희가 남기고 간 음료수 잔에 입을 대며 창현이 가볍게 목을 축였다.

“이름이 뭐지?”

“…이수연…입니다.”

수연은 아직도 등줄기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솟아졌던 그 기운은 무척이나 광포했고, 무자비했다. 하지만 수희의 몸을 타고 흐르던 기운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두 개의 기운이 한 사람이 똑같이 낸 기운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도 그 사실에 너무나 놀랐다.

그토록 내공 운용을 자유자재로 그 것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조차 이 사람보다 높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녀가 추후 협회장의 자리를 자치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녀의 할아버지 이광길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녀가 태어날 때 쯤 이미 일류 끝자락이었던 그는 결국 절정으로 진입했고, 이제는 그 경기자 완숙에 이르렀다.

어쩌면 정부 인원 최초로 초절정의 경지를 이룰지도 모른다는 말이 많았다.

한국에는 단 한 명만이 초절정을 이뤘고, 그는 한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문파사람이었다. 정부 인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수의 숫자로 따진다면 수많은 문파들의 문하들과 정부 조직의 인원들과 그 수가 그리 차이나지 않았다. 어쨌든 국가기관이라는 것은 굉장한 매력을 지니고 있고, 대대로 혜택을 받아 누린다는 것은 고수 위주로 돌아가는 문파와는 약간 다르기 때문에 좀 더 폭 넓은 인재들을 정부 기관은 차출 할 수 있었다.

따지고보면 정부 기관은 단일 단체로써 최대의 고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파들이 서로서로 협력을 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정부기관처럼 하나의 단체가 아니었으니까.

그 것이 문파협회와 한국 무인협회가 균형을 이루는 것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었다.

무게의 추는 초절정 고수를 보유하고 있는 문파협회에 기울어져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광길이라는 존재가 절정의 벽을 뚫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정부 기관 역시 힘을 더욱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최강국이라 불리는 미국 그리고 무공의 근원지라 스스로 자부하는 중국 역시 초절정 고수는 채 5명을 넘지 않았다.

현경의 경지!

자연의 섭리를 통달하고 인간사를 꿰뚫으며 세상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꿈의 경지!

그 경지에 거의 다다른 이광길의 손녀가 이수연이었고, 그녀는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으면서 오히려 이광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이광길도 20살에는 일류 고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누군가에게 압도를 당하는 것은 그녀의 할아버지 이후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대통령 앞에서도 그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수연이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왔지?”

“강창현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날?”

“네.”

“무슨 이유로?”

창혀의 물음에 수연은 잠시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 창현이 자신에게 주는 압박감, 그리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절대자의 기운과 더불어 처음으로 느껴보는 그런 감정들에 대한 혼란은 뒷전이었다.

목적이 있어 온 것이고, 그 목적은 반드시 이뤄내야 했다.

“한국 무인 협회에 들어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무인 협회? 그 놈이 말하던 정부기관인가?”

그 놈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연은 창현의 반응에서 그가 일반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상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누군가로부터 정부기관, 그리고 문파에 대해서 들은 것이 틀림 없다고 판단했다.

작게 던지는 한 마디에 빠른 판단을 내리고 있는 수연은 분명 명석해 보였다.

‘악의는 없어 보여. 일단 다행이다.’

수연은 숨을 골랐다.

“그렇습니다. 정부에 정식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기관이고 그 어떤 기관보다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강창현씨는 저희 기관에서도 손 꼽히는 강자이시고, 그만큼 많은 혜택을 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그렇군.”

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언뜻 흘렸던 기운조차 없어. 하지만 어떻게 날 찾았지? 내가 썼던 사술 정도는 삼류나 이류 역시 한 줌의 내공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딱히 직접적인 무력을 쓴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대길의 부하들을 손 봐줄 때도 내공은 거의 쓰지 않았다. 여자와 진한 섹스를 나누기 전 영력을 뿜어낸 것이 가장 크게 힘을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것만으로 자신을 찾을 이유는 없었다.

그 때는 막 혼단공을 이루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럼 무엇일까? 창현은 고민했다. 눈앞의 수연이야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어느 정도 맛보았지만 수연은 자신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오빠!”

그 때 들려오는 수희의 목소리에 창현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먹으면서 이야기 하지. 오늘 여러 가지 일이 많아서 제법 힘이 들었거든.”

“…네.”

여전히 자연스러운 하대와 자연스러운 존대였다.

“죄송해요, 차린 것이 없어서.”

“아니…아닙니다. 설마 저녁까지 대접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창현이 수저를 들자 수희 역시 가볍게 웃으며 수저를 들었고, 수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침묵 속의 식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국가가 나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은 무엇이지?”

갑작스런 창현의 목소리에 생각보다 맛있는 밥 맛에 집중을 하고 있었던 수연이 깜짝 놀라며 켁켁, 거렸다.

‘일류 맞아?’

피식 웃는 창현을 보면서 수희가 옅은 미소를 짓고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수연에게 건넸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수연이 재빨리 물을 한 모금 삼키고는 빠르게 대답했다.

“평생직장이 생겼다고 생각하시면 편하십니다. 더구나 창현님의 경지는 절정 이상! 요구하시는 모든 점을 수용해 드리겠습니다. 창현님만이 아니라 옆에 계신 수희 아가씨, 그리고 추후에 창현님이 가정을 이루시면 가족들은 물론, 후대까지 그 혜택이 이어질겁니다.”

엄청난 것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은 드는 군. 그 돈은 어디서 나는지.”

공짜로 돈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었다. 절정 고수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고수에게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이었다. 엄청난 돈을 그들에게 안겨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상류층이라 표현 될 만큼 제공되는 금전적 보장과 더불어 여러 가지 법에서도 그들은 자유로웠다.

“귀와 요괴들…”

창현은 알겠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아아, 말 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창현이 살던 시절과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생각보다 영적 능력자들이 많은 모양이지?”

“…무인들 대부분이 영적 능력자들입니다.”

“호오?”

그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었다. 창현은 그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수연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설명을 이었다.

창현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 역시 호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힘으로 제압하기에는…엄청난 출혈이 생길거야. 더구나 그 과정에서 문파들이 눈치라도 채버리면….’

“선천지기의 강화는 모든 문파들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과학은 발전했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것들이 달라졌죠. 가장 큰 예로 정부기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슈퍼 컴퍼터가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슈퍼 컴퓨터?”

“저희는 셀린이라 부릅니다. 경지를 숨기고 계셨지만 셀린이 창현님을 포착했고…또 근처에 강력한 귀가 창현님의 기운을 느껴서 증언을 해주었죠. 그래서 저희가 문파들보다 먼저 창현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계가 내 경지를 파악했다고?”

귀의 존재보다 창현은 그 것이 더 놀라웠다. 생활편의가 극도로 발달했다는 것은 이미 이 곳에서 살면서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무공을 파악하는 기계라니!

“셀린의 역할은 그 것만이 아닙니다. 선천지기의 크기, 발전 가능성, 무공에 대한 재능, 그리고 혈맥의 크기와 더불어 근골까지 모두 파악 합니다.”

“…그게 가능한가?”

“한국은 누구나 일정 나이가 되면 신분증이라는 것을 발급 받죠. 단 하나의 지문에 불과하지만 셀린은 그 것을 토대로 후대의 능력까지 측정할 수 있는 인공지능입니다. 한국이 초절정 고수가 한 명에 불과하지만 세계에서 강대국으로 손꼽히는 것은 셀린의 존재 덕분입니다.”

“뭐 그렇군.”

수희는 전혀 알아들을 순 없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아버지가 굉장한 능력자였는데 왜 일찍 찾지 않았지?”

“…그건….”

수연이 당황해서 말끝을 흐렸다. 창현 아버지의 선천지기의 크기는 엄청났다. 그가 남긴 의념이 직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셀린은 파악하지 못했다. 정부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여러 가지 장점들을 드러내려 했던 수연은 미숙함만 드러낸 꼴이 되었다.

“아, 뭐 그건 상관없어. 그래서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금전적인 것들 뿐인가? 하긴 그 것이 전부이지.”

“….”

“재밌는 세상이야.”

창현은 말과 함께 수저를 내려 놓았다. 옅게 웃었다.

“근데 있잖아 계집.”

“!!!”

수연은 몸을 떨었다. 이내 얼굴을 붉혔다. 여느 여자들처럼 창현의 잘생긴 얼굴 때문이 아니었다.

애써 억누르려 했지만 창현의 목소리가 먼저였다.

“실력을 숨기지 않으면 문파 뭐시기들도 알 것 아니야?”

“….”

“초절정 고수가 하나도 한 명도 없나? 아니지, 아주 멀리서 희미하지만 분명 현경의 고수가 흘리는 기운이 느껴지니까. 그리고 그에 근접한 사람도 한 명 느껴지고.”

“!!!”

수연이 그 어느 때보다 눈을 찢어지도록 크게 치켜뜨고 있었다.

“기억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아. 상식에는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 아주아주 기본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내 몸 값이 상당할 것 같지 않아?”

“저희는 창현님이 요구하시는 그 어떤 것들도….”

수연은 말을 맺지 못했다. 위에서 내려 온 지시, 정확히는 할아버지로부터 내려 온 지시는 일단 창현을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창현이 오란다고 올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곧바로 섭외를 시도한 것인데 일이 꼬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예감은 적중했다.

“그래서 난 일단 튕기고? 수희야 맞아?”

“응? 뭐가?”

“이럴 때 거절하는 걸 튕긴다고 하는 거.”

“…응 맞아.”

수희는 알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부드러운 창현의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창현도 마찬가지였다.

“맞다네. 결론은 일단 한 번 튕기고, 혼일공까지 영력의 경지마저 끌어올리면 그 때는 누구나 다 알지 않겠어? 네가 말하는 문파 뭐시기들도.”

“혼일공? 설마 영력의 단계를 수련한다는 것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근처에 제법 강한 귀가 살거든. 네가 말을 했던.”

“…그 귀는….”

“몸 값 올리기야. 고수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 것 같으니…그게 딱히 범죄도 아니잖아?”

창현은 차가운 조소를 베어 물었다.

============================ 작품 후기 ============================

바로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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