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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46화 (46/170)

< -- 46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대길은 흠칫 몸을 떨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은 하나 같이 고수들이었다. 스산한 느낌을 주는 언덕은 낮은 바람임에도 나무 위가 살살 흔들리고 있었다. 대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인생을 바꾸게 해준 곳!

바로 그 언덕이었다.

“형님, 이거 냄새가 좀 안 좋은데요?”

경수의 불안한 목소리에 대길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가 냄새가 좋지 않다는 것은 경찰이나 검찰 등 하여간 자신들과는 상극에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뜻이었다. 무인은 아니었지만, 경수는 이 바닥에서 무척이나 오래 굴렀고 그만큼 경험이 많았다.

하긴 꼭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언덕 주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뿐이었다.

“글세, 오늘 공무원 나리들이 많이 온 것 같기는 하다.”

그저 이상한 기분에 말을 한 것뿐인데, 대길이 정말로 누군가 와 있는 것처럼 말을 하자 경수는 괜스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형님은….’

대길이 특별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경수는 반갑지만은 않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어? 여기는 어쩐 일이야?”

지현에게 맞은 사타구니가 아직도 시린 느낌이었다. 부하들처럼 터지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경수는 지현이 두고두고 갚아주려 일부러 힘을 조절 했다는 것은 아직 알지 못했다.

사타구니를 벅벅 긁고 있는 경수를 뒤로하고 대길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 곳으로 강한 기가 많이 몰렸기에….”

“숨어지내는 것 아니었어?”

“오실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대길의 짐작은 맞아 떨어졌고, 사실 어느 정도 노리기도 했다.

태극문파의 인원들도 있을 수 있기에 대길은 어떤 면에서 굉장한 모험을 한 것이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그 악질 사숙들이 가장 일선에 있기에 변화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파견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날 기다렸어?”

“…많은 인원들이 보고 있습니다.”

“알아.”

창현은 대길을 속물이라 비난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만남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며 마치 자신을 위하는 척 했던 수연보다는 대길이 훨씬 솔직하고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언덕 아래 공터로 검은색 승용차가 매끄럽게 들어왔다.

그리고 수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번 창현의 집에는 혼자 왔지만 이번에는 아닌 것 같았다. 두 명의 수행원이 붙어 있었다. 물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한국 무인 협회 인원들 역시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들 모두 수연과 창현의 만남 덕분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다.

유일한 일반인(?)이라 할 수 있는 경수가 느꼈던 스산함에 정체는 언덕의 주인인 귀에게도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무인들이 뿜어내는 투기 역시 한 몫 하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수연을 보면서 창현이 피식 웃었다.

“계집, 밝은 것처럼 입고 다녀라. 피부는 창백한데 그렇게 입고 다니니 꼭 저승사자 같군.”

수연이 채 말릴 새도 없이 옆에 있던 남자가 창현에게 달려들었다. 스륵, 잔상이 남으면서 남자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만 알리고 있었다.

터억!

“!!!”

남자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며 씨익 미소를 짓고 있는 창현의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연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보다는, 절정 고수와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껴보고 싶었기에 나선 것이다.

최근 들어 일류 초입 이상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고, 답답한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류에 올랐기에 떵떵 거리며 살 수 있었지만 남자는 야망이 있었다.

“기억 속에 재밌는 말이 있네.”

“…크으으윽!”

남자의 필사적으로 비명을 참으려 했지만 입술을 뚫고 나오는 그 신음소리를 참아낼 수 없었다. 온 몸이 뜨겁게 타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 말리지도 못하고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수연과 남자의 눈에는 경악이 서렸다.

그 것은 어딘가에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정부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크악!”

“똥인지 된장인지 꼭 맛을 봐야 아는 새끼들이 있다고.”

창현의 몸에서 붉은 오로라가 강하게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창현의 몸을 중심으로 혈마지기가 폭발을 하면서 강한 흙먼지가 원의 형태로 물결치며 퍼져 나가고 있었다.

“컥!”

직접 혈마지기를 감당하고 있는 남자만이 아니라 수연은 물론, 수연 옆에 있던 남자 그리고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정부 인원들과 멀리서 다가오고 있던 종욱과 태극문파 비각의 비주, 혜화까지 단 번에 몸이 밀려나고 있었다.

그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혈마지기를 폭발 시켰다고 하지만 창현은 딱히 살상의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기세를 뿜어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기세를 뿜어낸 것에 많은 고수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커어억-!”

일반인인 경수는 몸의 내부가 진탕이 되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대길이 재빨리 경수의 등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창현처럼 내공을 이용해서 몸 전체를 안정 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공을 어느 정도 돌려 주는 것만 해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경수의 창백한 얼굴이 혈색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것과는 다르게 창현에게 멋 모르고 덤볐던 남자의 얼굴은 점점 질려가고 있었다. 온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뿜어지는 기세를 간적접으로 느낀 것이지만 남자는 직접적으로 온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창현이 잡고 있는 손을 가볍게 놓았다.

“쿠어어어억!”

결국 남자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 움큼이나 되는 선혈을 토해 내었다.

이 곳에서 창현을 제외하고는 수연이 가장 고수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복잡했다. 이미 은신이 드러난 인원들을 향해 말했다.

“데리고 가세요.”

말과 함께 수연은 눈빛으로 창현의 동의를 구했다. 창현은 관심 없다는 듯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호오?!”

수연보다 더 강자가 나타났다. 짙은 눈썹은 송충이처럼 꿈틀 거렸고 오똑한 코와 더불어 조금은 다부진 입술, 그리고 각진 턱과 안광이 쏟아져 나오는 눈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인상은 상당히 강인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잠시 대길을 알아보고 움찔 몸을 떨었지만, 곧 창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람 말은 항상 양쪽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 같은데 그 말이 맞는 모양이군.”

창현은 남자가 아니라 대길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니, 사실 당연한 것이지. 사문이 같으니 같은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는 것은. 그런데 네가 익힌 것은 확실히 조잡하긴 조잡한 모양이군. 일주천을 할 때 힘을 주는 부분을 변형 시킨 것 같은데…이거 쓰레기 새끼들이잖아?”

“!!!”

무슨 말을 하는 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태극문파의 비각의 비주와 종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단 한 번 바라본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경지와 더불어 뿌리 끝까지 모두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사질.”

“오랜만입니다 사숙.”

대길은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창현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어렸을 적 거두고 먹여주고 재워 주었던 사문에 대한 일말의 고마움까지 완전히 버릴 수 있었다.

“제가 살아서 만난 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오늘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질 난….”

“아, 사숙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대길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경수의 내부를 진정 시켜주는 것에 힘썼다.

창현이 피식 웃었다.

“그럼 몸 값 올리기 좀 해 볼까?”

============================ 작품 후기 ============================

몸 값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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