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7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둥근 원기둥은 구름을 갈랐다. 스무 쌍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있었다. 또는 눈을 비비는 사람도 보였다.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현실인건가?
모두의 머리에 들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런 광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 창현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붉은 혈마지기가 몸을 감싸고 있었고, 선천지기를 마치 내공처럼 일주천 시키며 본디 가진 내공을 폭발 시키고 있음에도 그의 몸에는 땀 한 방울 흐르고 있지 않았다.
놀라운 일이다.
마치 신이 하늘에서 재림하는 것과 같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원기둥을 하늘 끝까지 만들어내어 몸에 두르고 있는 것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 모두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이유였다.
“아직도 안 나와?”
창현은 언덕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모두의 귓가에 또렷이 들리고 있었다.
창현이 말을 건넨 그 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 당장…연락해!”
“뭐라고 할까요?”
“이 일 자체는 우리가 수습 한다고 해. 국민들이나 알아서 안심시키라고!”
수연은 정부 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종욱 역시 비각의 각주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이라 속삭였다.
지금 붉은색과 흰색이 절묘하게 어울려져 사선으로 말려 하늘까지 치솟고 있는 원기둥은 자신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강력한 기운이기에 어디까지 보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이 소식이 중국이나 일본, 해외로 알려진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것이 분명했다.
각국의 정상이 은밀하게 모여 무인들과 서양의 능력자들의 존재를 숨겨 왔는데 창현의 혈마지기는 그 비밀에 균열을 낼 아주 중대한 사건이었다.
“저기 창현님!”
“끼어들지 마라 계집.”
“….”
그 어느 때보다 스산한 목소리였다. 수연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종욱의 몸이 움찔 떨렸다.
수연이 쓰러진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다행이었다. 이미 버티지 못하고 속을 게워 내고 있는 요원들이나, 종욱이 보호해 주고 있다하더라도 그 스스로도 힘이 들었기에 미처 모든 기운을 막아내지 못하고 받아내고 있는 혜화 역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연과 수연의 직속 부하 중 한 명인 병길은 일종의 보호장구를 차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것마저 뚫고 들어오는 혈마지기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오는군!”
다시 한 번 섬광이 번쩍였다. 창현에게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는 일직선으로 공간을 가르고 있었다. 언덕 근처는 흙바닥이었기에 그 빛줄기를 따라 선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타앙-!
원기둥에 부딪친 빛이 그대로 소멸이 되었다. 연기와 같이 흩어지는 빛줄기를 보면서 창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숲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한 명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창현이 뿜어내고 있던 혈마지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원기둥은 마치 창현의 몸 속으로 숨는 것처럼 빨려들어가버렸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연 재해라도 일어난 것처럼 갈라졌던 구름들은 다시 태양빛을 가리기 시작했다. 흰색 뭉게구름들이 천천히 창현과 남자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내리쬐기 시작한 태양빛을 가리며 그늘을 만드는 동안 남자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근 100년만에 보는 인간이군. 낯 익은 기운을 가진 놈도 있고.”
괴기한 목소리였다. 차가우면서도 날카롭지는 않은, 딱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재밌어.”
그렇지만 창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피부를 긁어내는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찌릿찌릿한 것이 괴상한 느낌이었다.
창현이 손을 휘저었다.
가볍게 휘저은 것에 불과했고.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한 여름…언덕 아래라고는 하지만 미풍은 언제든지 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다시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 창현이 혈마지기를 뿜어내면서 강력한 기운을 드러낼 때 타격을 받았던 내부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창현이 가볍게 손을 휘저은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연의 움직임이 바빠졌고, 정부 요원 몇이 자리를 빠르게 뜨고 있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공무원들이 바보처럼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요원들은 그들을 막으러 간 것 같았다.
곧 이 곳은…엄청난 기운이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바보 같이 흘리고 다니니 남이 꿀꺽 하지. 아니면 그 정도는 상관 없다는 건가?”
귀로 짐작되는 남자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창현이 대길을 슬쩍 바라보았다.
“하긴…내단이 영약이기는 하지만 그 기운에 따라 달라지니까. 저정도 밖에 오르지 못한 것을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정제한 내단이 아니거나 멍청한 방법으로 정제를 하니까 그렇지.”
창현과 대길 그리고 경수, 혜화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인간, 제법 강한 것은 안다만….”
“오래도 살았군. 아! 이 시대의 기준은 아직 잘 모르니까…그리고 많이도 잡아 쳐 잡수셨네요.”
도무지 짐작을 할 수 없는,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말들에 귀의 표정이 짜증스럽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긴 머리칼이 잠시 미풍에 휘날렸다.
굉장한 미남이었다. 피부도 깨끗했고, 윤기가 흘렀다. 창현보다 좀 더 커 보이는 신장과 더불어 높은 콧대 그리고 살짝 붉은 입술은 미남자 중에서도 약간은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고 있었다.
찡그린 얼굴마저 긴 머리칼과 더불어 예쁘다…! 라고 느껴졌다.
“계집처럼 고운 얼굴은 계집들만 처 먹어서 그런가?”
“…비천한 인간이 입을 함부로 놀리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수연이 끼어들었지만 창현은 대꾸해주지 않았다.
귀가 뿜어내고 있는 영력은 무척이나 혼탁했고, 색스러웠다. 지난 번 호프집에서 만난 여자보다 더욱 색정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쾌락을 좇는 시대…의 영향인가?’
귀는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인간의 영력을 탈취하길 원했을 것이고 자신이 살던 시대와는 다르게 인간을 말라 죽이는 것 역시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기에 바보처럼 넘어간 인간 여자들이 모든 선천지기를 흡수당하고 말라 죽었을 것이라 짐작 되었다.
무척이나 오랜 세월을 산만큼 짐작이 되는 인원수 역시 상당했다.
“호오! 최근에도 한 명 잡수셨구먼?”
수연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눈앞의 귀는 상급에 속하는 귀이다. 인간형이기에 상대하기 좀 더 까다로웠다. 데이터에는 상급이지만 인간형이라는 이유로 자체적인 분류는 최상급으로 해 놓은 상태였다.
진정한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인간형으로 변할 수 있는 요괴가가 아니라 귀는 흔치가 않았으니까.
그런데 창현의 말에 의하면 그가 정부와 문파들의 눈을 피해 인간들을 ‘잡아’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과 요괴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그들 역시 인간과 같이 단체를 만들었다. 예전에 비해 그 본신의 힘이 많이 약해진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과학은 발전했고, 그들 역시 물리적인 타격을 받는 이상 압도적으로 인원수부터 많은 인간들을 당해낼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귀는 그런 단체에 속하는 귀가 아니었다.
각국으 정부나 문파들은 귀나 요괴들과 정면 대결을 벌인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와 사회에 극도의 혼란을 초래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행위를 어느 정도 묵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 것 역시 지금 창현과 대치하고 있는 귀들과 같은 존재 때문에 서서히 깨지고 있는 중이었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심증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수연은 그 것을 한국 정부 요원인 자신이 최초로 확인했다고 생각했고, 이건 정부 차원을 넘어 국제적으로 심도 있게 검토를 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상기하고 있었다.
일단 지금 창현과 귀의 대결에 집중을 한 뒤에!
“인간, 무공이 제법 뛰어난 것은 안다만 너무 건방진 것 아닌가? 영력의 그릇은 쥐꼬리만도 못하다.”
수연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귀와 요괴들과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유였다. 무인들은 대부분 영력을 다룰 수 있지만 귀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영력만을 수련한다. 그리고 영력은 선처지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내공보다는 몇 배의 힘을 발휘한다.
끊임없이 영력 수련에 대한 방법을 검토했지만 거듭된 실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창현의 말에 귀의 표정이 굳었고, 종욱은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화경에 이른 무공은 물론, 영적 경지 역시 3단계라고 들었다.
과연 그 실력은 어떨까?
“저 멍청이들과 나를 똑같이 생각 하지 마.”
창현은 말과 함께 손바닥에 붉은 혈마지기를 뿜어내었다. 마치 구슬처럼 모이는 혈마지기는 츠츠츠, 소리를 내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
창현의 몸이 그 자리에서 불쑥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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