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8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언덕의 주인 괴는 믿을 수 없었다. 백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점점 끊임없이 강해졌다. 무인들이나 가끔 외국에서 온 능력자라 칭해 받는 그들과 싸워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단연코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괴는 등골이 오싹했다. 찰나에 순간에 불과하지만 창현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 배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크아? 크아아아아악!”
괴의 비명이 대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츠츠츠, 소리를 내며 붉게 타오르던 혈마지기가 괴의 배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진탕 시키고 있었다.
종욱의 표정이 무척이나 굳어 버렸고, 수연은 물론 다른 사람들 역시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언덕의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인간, 죽여 버리겠다!”
내부를 휘젓고 있는 붉은 기운을 재빨리 오른팔로 모아 버린 괴가 그대로 자신의 팔을 뜯어 버렸다.
다시 나타난 창현은 그 자리에 있었다.
“육체 정도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는 창현의 예상이 빗나갔다.
“우욱!”
혜화가 가장 먼저 토악질을 해대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대길은 이미 경수를 데리고 튀어버린 뒤였다.
대길에게 생각이 미치자 창현은 피식 웃었다. 그 것을 괴는 조소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기고만장하는군 인간.”
불쑥불쑥 튀어나와버린 팔은 어느새 찐득한 액체를 흘리며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창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저 장면을 어디에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원 시절에도 없던 신체 재생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보았을까?
곧 의문은 풀렸다.
“피콜로다!”
“….”
무인들은 말을 잃었다. 도무지 짐작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화경에 이른 무인이 저토록 경박한 말투라니!
정부기관이나 문파들조차 쉽사리 건들지 않고 있었던 귀를 보고 피콜로라는 단순한 말을 뱉어낸 창현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했다.
‘점점 동화가 이뤄지고 있어. 녀석의 의식도 많이 약해지고 있고. 역시 그 동생을…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이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군.’
잠시 생각이 삼천포로 샜지만 창현은 다시 집중했다. 남자, 아니 언덕의 주인 괴는 크크크, 웃으며 땅을 향해 기운을 뿜었다.
미남자라 그런가? 붉은색 혈마지기와는 달리 하얀색 기운이 펑하고 터지면서 대지를 가르자 마치 창현이 악역이고 괴가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혈마를 제압해야 하는 정파의 수호신 같은 뭐 그런 것 말이다.
물론 창현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갈라진 바닥 사이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한 자루 도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오히려 괴가 뿜어내고 있는 기운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검명? 아니 도명인가?”
스스로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도를 보면서 창현은 중얼 거렸지만, 수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고, 그동안의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중얼댔다.
“어째서 요괴나 다른 괴들이 저 놈을 건드리지 않았는지 알 것 같군요.”
그들의 단체 역시 인간 단체와의 불화는 꺼리는 편이었다. 창현이 상대하고 있는 괴와 같이 사고를 치는 괴들을 자체적으로 징벌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동안 언덕의 주인은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의문이었는데 한 자루 도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창현님, 저건 일반 도가 아닙니다.”
“알아.”
“저건 요괴입니다.”
창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수연에게 돌렸다.
“계집, 나도 아니까 내 재미난 일에 그만 좀 끼어들어라.”
정부 요원들은 움찔했지만 아까처럼 바보같이 나서지는 않았다. 어느새 돌아 온 태극문파 비각의 각주와 종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수연이 직접 섭외를 하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한 발 늦었다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놈들 다 나와.”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괴의 말에 창현이 어쩐 일인지 동의를 표했다.
“본좌 역시 본자를 훔쳐 보는 걸 제일 싫어 하거든?”
그럼에도 추가되는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창현의 손에서 다시 한 번 혈마지기가 구슬 모양으로 뭉치고 곧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맨 처음 괴가 쏘아냈던 빛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곧 언덕 입구 부분에서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렸고, 으으 하는 신음 소리 역시 함께 들렸다.
“다른 문파 사람들인가봅니다. 전혀 기운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비각 각주의 말에 종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했고, 복장 역시 제각각이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제법 한가락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창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수연을 향해 싱긋 웃었다.
“자리가 마련이 되었군. 이제 이 놈만 잡으면 몸 값이 치솟는건 시간 문제인가?”
색목인도 보인다는 사실에 창현은 이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과학이 발전하고 무인은 전부 전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고 있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 이야기와 같은 일이 실존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중 손가락안에 드는 강자에 속했다.
그 때는 유일무이한 존재였고, 거대한 단체에 수장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방파를 세우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몇 명 부릴 놈만 데리고 다니면서 지금의 삶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창현은 다시 한 번 모습을 감추며 중얼댔다.
“일단 수희 대학부터 보내야 하니까!”
그 말에 한국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는 울리고 있었지만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 것은 딱히 은신술을 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너무 빠르기에 보이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런 강자가…수희라는 인물 대학 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니!
그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창창-!
아까와는 다른 소리가 나왔다. 괴는 창현의 공격을 제법 잘 막고 있었다.
도에서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키키키!”
창-!
다시 한 번 창현의 혈마지기와 괴의 도가 부딪혔다. 괴가 딱히 검법이나 도법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창현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권각술을 쓸 필요도 없었다.
괴와 창현은 속도와 속도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창-! 창-!
한 번 부딪힐 때마다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는 둘 덕분에 다른 무인들은 점점 뒤로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수연은 물러나면서도 핸드폰을 확인했다.
‘작전 지역 부근 전면 통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 하는 한숨과 함께 빠르게 핸드폰 화면을 눌렀다.
‘미국인으로 보이는 능력자 한 명, 사무라이 두 명, 무당 인물 한 명도 작전 지역에 있음.’
어쩌면…앞으로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느낌과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눌러왔던 힘이 한 꺼번에 폭발하겠지만 그 것은 이미 대대로 내려 온 잠재적 위험요소이고 각국은 그 것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지금이 통치를 하기에 편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숨겨 온 것 뿐이지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었으니까.
“키키키킥!!!”
웃음소리였지만 이 번에는 무엇인가 달랐다. 자욱한 연기를 피워내고 있는 현장을 수연은 눈을 부릅뜨며 바라보았다. 아직 안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면 충돌을 하며 구름과 같은 먼지와 더불어 엄청난 기운을 주변에 뿜어 내었던 것으로 보아 한 번에 끝이난 듯 싶었다.
“재밌는 귀잖아?”
창현의 승리로.
지금부터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수연은 다시 보고를 빠르게 했다. 각 문파 사람들도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조금은 우스웠다. 능력자나, 무인들이나 전자기기를 쓰는 것은 현대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 살려…!”
울컥 피를 토해내고 있는 괴를 보면서 창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잡는 순간부터 발악하고 있는 도에게 혈마지기를 서서히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누가 죽인데?”
“…그럼?”
“내단 정도는 빼 먹어야지.”
“제, 제발!”
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단을 빼앗긴다고 꼭 죽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처음 괴가 되었을 그 당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살아난다면!
그렇다면 죽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더 이상 강하지 않은 자신을 숱한 문제를 일으켜왔지만 그 강함 때문에 참아왔던 인간들이나, 당장 꽤 피해를 보았던 요괴수장이 가만히 있지를 않을테니까.
“아아, 기다려봐. 너는 아주 쓸모가 많거든.”
창현은 곧바로 괴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힘을 주자 커억,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괴가 주저 앉았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어쨌든 사람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명치 부근의 살을 찢어 버리고 그대로 쑤욱 손이 들어가는 장면은…일반인이 보기에 그리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곧 피 묻은 창현이 푸욱 하고 손을 뽑아내었고, 손바닥만한 내단을 뽑아낼 수 있었다.
본디 영적 그릇은 순백의 색이다. 하지만 영력을 취하는 과정이 정통 수련 과정이 아니라면 당연히 그릇은 혼탁해진다. 그리고 인간이나 요괴, 그리고 괴들은 창현처럼 정제를 하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있기는 했지만 스스로 할 수는 없었다. 기계로 했지.
회색빛에 가까운 내단은 당장 쓸모가 없었다. 흡수를 해 버린 이후에 정제를 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그 것은 몸에 영향을 주었다. 어느 정도 정제를 한 이후에 써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창현은 곧바로 혈마지기를 뿜어 내었다.
츠츠츠츠-!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다. 도에 깃들어 있는 괴는 인간형 괴보다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고, 전혀 데이터에 없었기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창현이 들고 있었다. 그보다 더 내단을 향해 내공을 뿜어내고 있는 창현에게 더욱 관심이 갔다.
“저, 저게!”
“시, 실장님!”
“각주!”
“비주!”
“도, 도대체!”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회색이었던 내단이 혈마지기와 충돌하자 확실히 색이 옅어졌다. 창현은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괴를 제압한 것보다, 그보다 더 강한 도괴를 가볍게 쥐고 있는 것보다 내단이 정제 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하고 있는 모두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미소가 씨익 번졌다.
“호오…이 내단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정부가 무인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내단 덕분이었다. 그 것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니까! 비단 무인들에게만이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요괴와 귀가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인간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잡귀와 이제 막 태어난 요괴의 내단은 그 가치가 없지만 지금 창현의 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정제된 내단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고 한동안 눈에 불을 켜고 귀와 잡귀를 사냥했다. 가뜩이나 머릿수도 딸리는데다가 본디 그 힘이 인간보다 강해 개인 활동을 하던 그들은 결국 모일 수밖에 없었고, 적당히 인간과 타협을 하면서 살아왔다.
어쨌든, 창현은 한 가지 더 알 수 있었다.
“거기 계집!”
수연은 단 한 번에 10M도 넘게 도약하면서 창현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다른 사람들 역시 모두 창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도는 키키키, 거리며 다시 웃고 있었고, 창현의 손에 너덜너덜해져버린 괴는 이미 내단이 뽑혔기에 정신을 잃은 뒤였다. 자신의 기운으로 그의 소멸을 막고 있었던 창현 덕분이었다.
“창현님! 방금 전 내단을….”
“네 표정이 말을 해 주는 군.”
“….”
“색목인들은 물론…음 기억 속에 그림으로는 일본인이나 중국인들로 짐작되는 군.”
“….”
“저 것들도 지금 침을 삼키고 있는 것을 보아!”
창현은 진하게 히죽 웃었다.
“내 몸 값이 이거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겠나?”
수연보다 종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이 시대 사람이 아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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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날씨가 덥네요ㄷㄷ
소제목을 나눴습니다. 쭉 가려 하다 좀 더 이해가 쉽도록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