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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49화 (49/170)

< -- 49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창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같잖은 심안을 가지고 멋대로 판단하지 마라.”

“!!!”

창현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붉은 혈마지기가 지풍처럼 쏟아져 나갔다. 미간을 향해 느릿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음이 분명하거만 종욱은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뱀처럼 기어오는 듯 한줄기의 지풍을 보면서 종욱이 눈을 부릅떴다.

“뭐, 뭐 하는…!!”

태극문파 비각의 각주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침을 꿀꺽 삼키며 종욱과 태극문파 사람들과 창현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었다. 끼어들 틈도 없었고, 사실 그렇게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소로 감추고 있지만 피를 여럿 봐 본 사람이야.’

수연은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종욱은 태극문파 차기 장문인이다. 그만큼 고수라는 말이었다. 이제 30대 초반에 벌써 일류 끝자락에 들었고, 곧 절정에 이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고수가 고꾸라진다면?

대문파인 태극문파 역시 종욱과 같은 입지적인 인물이 쓰러지는 것은 상당한 타격이다.

당연히 무인 협회에게는 좋은 점이었다.

종욱의 말 자체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믿지 않는 탓이다. 아무래도 도가 계열이다 보니 사술과 결계술 그리고 부적이 발달 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무공 이외의 것들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태극문파였다.

무인들은 그 종류 중 하나로 종욱이 창현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본좌를 네 사고에 집어넣지 마라.”

“….”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뱀처럼 서서히 기어오는 듯 쏟아져 나온 지풍임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다. 혈마지기가 번쩍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종욱은 알고 있었다.

어떠한 술법을 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향해 뿜어내고 있는 창현의 기세에 자신은 움직이지 조차 못하는 것이라고!

귀와의 전투에서 드러난 것 이상으로 창현이 강하다는 말이었다.

창현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다른 손에 있는 내단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수연이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내단은 본디 무척이나 약하다. 강한 기운을 담고 있기는 했지만, 그 것에 비해 너무나도 약하다.

물리적인 충격에 모여 있는 기운이 터질 수도 있었다.

“뭐 그리 놀라나 계집.”

“…내단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귀는 누가 잡았지?”

수연은 말을 잃었다. 건드리지 못하던 귀를 압도적인 힘으로 잡은 것은 창현이었다. 당연히 내단의 소유권은 창현에게 있었고, 그는 1차적으로 정제를 했다. 너무나도 가볍게! 그 정도로 강하고 혼탁한 귀력을 담고 있었던 내단을 사용하기 위해서 정제를 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창현은 단 한 순간에 그런 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반드시 끌어들여야 한다…가지지 못하면 죽이기라도 해야해!’

수연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곳에 창현이 소속되는 순간 힘의 균형은 급격하게 기울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혼란을 원하지 않았다.

수연은 진도파에 속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통제하기 힘들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것을 원하지도 않았고.

‘국제 대응을 봐야겠어…이 남자…몸 값을 올려도 너무 올려 버렸어.’

그래도 수연은 싱긋 웃었다. 내심을 숨기고 햇살을 입에 건것처럼 그렇게 싱그럽게 웃었다.

“간악한 계집이군.”

창현이 비릿한 조소를 베어 물었다. 아직도 이들은 자신이 힘만 강한 줄 알고 있었다. 뭐 딱히 상관없었다.

“내단의 가치가 제법 높은 것 같으니…네가 차기 장문인 쯤 되는 건가?”

창현이 그제야 지풍을 거둬들이며 종욱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직 내 질문에….”

“질문은 본좌만한다. 애송이.”

‘…중2병인가?’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머리에 동시에 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중2병라 할지라도 뭐 어쩌겠는가. 너무나도 강한데.

“그렇소.”

“아까 봤지?”

“…보았소.”

“말투가 왜 그래? 내가 아니라 네가 이 시대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고?”

“….”

창현의 가벼운 농담에 종욱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내가 거둔다. 원래 네놈들 소속이라고 데리고 가려고 해도 좋아. 능력이 된다면.”

대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종욱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거부 할 수 없었다. 그는 태극문파에 당장 입문을 한다하더라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이다. 장문인이나 자신보다 강했고, 최고 고수라 할 수 있는 전대 장문인이랑은 거의 호각이었다.

어쩌면 더 강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의 말을 거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참하게 버렸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자신처럼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어 인상이나 살짝 기억했던 제자 한 명 때문에 사문을 풍비박산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으니…그리고 상당히 많은 곳에서 모인 것 같은데…뒤에서 접근 하지 마라. 눈 먼 칼에 뒈져 버리면 내 책임 아니다. 내가 누군갈 죽인다 하더라도 여기 이 계집이 눈감아 줄 것 같군? 아주 그냥 탐욕이 눈빛에 으으!”

창현이 또다시 경박한 말투에 몸까지 부르르 떨자 수연의 낯빛이 굳어지고 있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그 말은 목구멍 속으로 힘껏 눌렀다.

츠츠츠츠-!

걸음을 옮기며 창현이 한 손에 들고 있는 도에 본격적으로 혈마지기를 불어 넣었다. 모두의 눈이 그제야 도로 보이고 있었다.

괴, 즉 요괴인 것 같기도 하고 귀인 것 같기도 한 도의 존재는 모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최상급이다.’

수연은 이미 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저렇게 무기에 깃드는 괴들이나 귀들의 존재는 곧바로 최상급으로 분류 되었다. 일단 그 무기를 사용할 수만 있어도 현재의 경지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괴나 귀가 깃든 무기였다.

그들도 이성이 있는 존재이기에 무생물에는 거의 깃들지 않는다.

“킥킥킥!킥킥킥!”

저렇게 간혹 완전히 미쳐 버린 괴나 귀가 무기에 깃들고 그 것은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언덕의 주인이 강했던 이유 역시 8할은 저 도가 차지하고 있었다.

츠츠츠츠츠!

도가 붉은 혈마지기에 휩싸이면서 뜨거운 불기를 잠시 쏟아내고 있었다.

“킥!!!”

“…말도 안 돼.”

수연의 허탈한 중얼거림에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무기에 깃든 괴나 귀를 종속 시킬 수 있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보아야했다. 힘으로 제압을 한다고 종속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창현은 모종의 방법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그냥 힘으로 제압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도에서는 곧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 징그러!”

혜화가 깜짝 놀라며 종욱의 뒤로 숨었다. 아직은 어린 여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킥! 웃기다! 킥킥! 주인!! 킥킥킥! 주인은 정말!! 킥킥킥! 그 귀력을 조금만 더! 킥킥킥!”

창현은 곧바로 양 손으로 도날을 그대로 잡아 버렸다. 휘어버리겠다는 듯 힘을 주자 도에서 나타난 눈동자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작은 날들이 있는 이빨에서 두려움의 목소리가 황급히 새어져 나왔다.

“킥킥! 주인, 알았다!!”

“닥치고 들어가 있어라. 내가 말 할 때나 나와.”

눈동자와 그 큰 입이 도날에 스며들 듯 사라져 버렸다.

“또 보자고 계집. 그리고…너도.”

기억 속에 있는, 이것은 육체의 기억이 아니라 창현 영혼의 기억 속에 있는 도사놈과 아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인을 향해 창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때라면 아무리 체면을 중시하는 도사라해도 손속을 나눴을 텐데.’

그의 얼굴에 덕지덕지 낀 탐욕의 그림자와 혜화가 깜짝 놀랐을 때 일렁였던 음욕의 기운은 그 때 자신이 알고 있던 도사들과 지금의 도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도 그 시절에 저정도 경지의 도사는 그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버리고 그 정도 경지에 올랐건만 지금의 도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상관 할 바가 아니지.’

몸값을 제대로 올렸고, 앞으로 자신으로 인해 세상이 급변한다는 것도 창현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맨 처음 혈마지기를 강하게 뿜어내 하늘까지 원기둥을 치솟게 만든 것이니까.

혼란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와는 또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절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수희가 편안하게 대학도 가야 하니까.’

그로인해 수희가 받을 수 있는 혜택 역시 무지막지하게 늘어날 것이고, 재밌는 일 또한 많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더욱 허탈해 할 생각이지만 창현은 애초에 그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몸을 혹사하고 싶은 마음에 전혀 없었다.

그 것을 이용할 생각은 있었지.

“그럼 그 자식 무공 좀 봐주고…이 놈이 문제인데.”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언덕의 주인은 창현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을 가르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창현의 모습에 그저 복잡한 표정을 짓느라 잠시 그의 존재를 잊은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창현이었지 힘을 잃은 귀 따위가 아니었다.

귀에게 희생을 당한 유족들이야 그를 원망하고 있겠지만 애초에 무인들 중 희생자가 나오는 경우는 많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인.”

땅이 불쑥 솟구치면 오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땅 속에서 모든 것을 보았기에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창현이 영혼의 그릇을 두들겼기에 나온 것이고.

“피콜로좀 데리고 가 있어.”

넝마가 되어 버린 언덕의 주인 귀를 보면서 오소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충만한 느낌의 귀력은 모두 창현 덕분이었고, 그가 얼마나 강한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지. 정신을 차리면?”

“이젠 너도 가지고 놀 수 있으니 그 피콜로 보여 달라고 해. 아주 재밌어.”

팔이 불쑥 재생되는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자 창현은 다시금 웃었다.

‘상급, 최상급…뭔가 정해진 것들이 있어. 내단 역시 마찬가지이고…얼마의 가치를 지녔는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으로 정했다.’

창현은 대길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운명일까?

배교 시절 유일하게 믿음을 주었던 놈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너로 정했다, 파이리!”

“….”

창현은 그저 기억 속 한줄기 대사를 해 본 것이지만 오소리는 무척이나 복잡한 눈으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은 미친 걸까?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강할 리가.’

오소리는 나왔던 곳으로 넝마가 된 언덕의 주인을 끌고 들어가 버렸고, 혼자 집으로 향하는 창현은 일의 순서를 정해보고 있었다.

‘수희 친구라는 계집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그 요망한 계집도 완벽하게 종속 시켜야지. 도가 있다하더라도 그 놈과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던 계집에다 사술도 알고 있으니 제법 쓸 만한 구석이 많겠어. 그리고 대길인가 뭔가 하는 그놈과 닮은 놈도 절정으로 올려주고.’

틀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딱히 큰 방파를 차릴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부리는’ 사람은 많이 만들고 싶은 창현이었다.

“개 한 마리, 심부름꾼 한 놈 여자는…쿡쿡!”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아 지현이나 민지네 호프집 주인 이외에도 제한이 없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제한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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