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1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대길은 가게 앞이 아니라 사거리 앞까지 나와 창현을 맞이하고 있었다.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우회적으로 그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지 않느냐, 라는 물음이었다. 대길로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강한 무위를 보였는데 아무런 오퍼도 없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를 않았다. 언덕 앞에서 보았던 종욱과 비각의 각주 그리고 얼굴은 모르지만 자신의 사숙뻘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도 본 상태였다.
창현이 자신을 지켜 준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그럴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태극문파의 눈길을 피해 잘 살고 있었지만, 그 날…자신과 창현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그들이 보았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접촉을 해 올 것이 분명했다.
“없어. 네 놈의 뿌리로 보이던 인간들 역시.”
“….”
대길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대길 할 때 대길은 대길(大吉)인가?”
“…그렇습니다.”
“고아라 했나?”
여전히 창현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있었고, 대길은 말을 높이고 있었다. 외모만 보면 덩치까지 적당히 커 보이는 대길이 훨씬 많아 보였다. 굳이 덩치가 아니더라도 세월의 흔적이 대길에게는 짙게 묻어 있었다.
일류 고수라고는 하지만 환골탈태를 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다른 40대 보다는 매끈한 피부와 깔끔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40대는 40대이다.
다른 무인들처럼 지속적으로 수련을 한 것도 아니었고, 밤 생활을 하다보니 일류라는 경지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창현은 그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부모를 원망했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살만큼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대길은 쓰게 웃었다. 창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어린 시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때의 자신은 이미 자신이 아니다. 그래도 문득 회상이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긴 수염을 휘날리며 순백의 빛을 뿜어내고 있던 노인에게 속아 배교로 가지 않았다면?
아마 여느 양민들의 고아들처럼 굶어 죽었겠지.
“좋군.”
무엇이 좋다는 것일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창현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쪽 거리와 창현의 집은 애매한 거리였다. 하긴, 한 걸음에 10M도 넘게 도약 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속도를 낼 수 있는 창현에게 거리는 무의미한 것이었지만, 그 날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레 자신을 찾은 것에 대길은 기대 반 걱정 반을 하고 있었다.
끝까지 보지는 못했기에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정확하게 몰랐다.
“네 이름이 값을 할 것 같아서.”
창현은 씨익 웃었다.
****
“그래서요!!”
수연의 목소리가 차갑게 회의실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소리와는 다르게 흥분으로 붉게 타고 있는 얼굴이었다. 탁, 하고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탁자의 일부분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이제 갓 20살!
더구나 여자의 몸으로 벌써 일류 중간 경지까지 올랐다는 증거였다.
곱게 정장을 빼 입은 중년의 남자들은 신음성을 삼켰지만, 애초에 했던 말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정리해야 하네.”
수연은 하, 하고 헛웃음을 삼키며 비꼬듯 말했다.
“도대체 생각이….”
남자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지만 곧 은색의 철제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년인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일어날 것 없습니다.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땀이 무척이나 많은 모양인지 손수건으로 가볍게 이마를 훔친 중년인은 셔츠를 뚫고 나올 것 같은 불룩한 배를 자랑하며 수연에게 다가갔다. 수연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미 언덕 앞에서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음흉한 무당파 도사의 눈길을 느낄 수 있었고, 그가 어떤 경지에 다다른 고수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들을 보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런 멍청한 돼지 새끼들! 무당파 도사를 끌어들여서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말을 끝내 억누르며 수연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에는 좋은 인재들이 정말 많군요. 속가문파에도 인재상이 여럿 보이던데…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 무인 협회에도 그에 못지않은 인재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구나 모두 어린 여아들이라는 것도 특이하고요! 어쨌든 한국의 미래는 무척이나 밝은 것 같습니다.”
중년인과 함께 들어온 큰 덩치의 남자가 통역을 했고, 수연은 느끼한 웃음에 애써 미소로 화답하고 있었다.
중년인은 의자에 자리를 잡았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곳에는 수연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무인 협회 사람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일은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였고, 각국의 정상들이 재빠르게 의견을 모아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체제를 뒤흔들기로 암묵적인 동의를 한 상태였다.
자,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무인과 무인이 아닌 사람들.
고위층이 무인들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아니, 한국이나 각국은 무인들이 권력을 움켜쥐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지금까지 잘 통제 해 왔다.
군대도 있었고, 무인들 역시 인간이기에 먹고 자고 싸야 했기 때문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인들이란 나라가 주는 혜택을 받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만큼 귀나 요괴 또는 적국의 무인들로부터 자신들의 고위층을 보호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 헛기침을 하며 무당파 도사를 극진하게 모시고 있는 남자들은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자신들의 권위와 혜택!
그런 의미에서 창현은 위험한 존재였다. 특정 단체에 속한다면 지금껏 잘 유지되어 왔던 한국 무인들간의 균형이 깨져 버릴 수가 있고, 그 것은 곧 독주체제를 의미했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절정 고수가 갖는 무서움을!
특히 창현은 초절정 직전이라고 했고, 한국에도 단 한 명밖에 없는 그런 고수가 또다시 탄생하는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이기적인 돼지 새끼들.’
수연은 온 몸에 혐오감이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만약 무황이 은거하지 않았다면 무황도 다른 나라 고수를 동원해 제거했을 인간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벌써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고위층이라는 것들이 나라를 가장 먼저 팔아먹다니…차라리 문파의 무인들이 훨씬 낫지.’
그들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수연은 무력감에 떨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날 현장에 계셨다면서요?”
무당파 도사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 노인의 말에 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랜만에 보는 고수의 존재감 덕분에 몸이 떨릴 정도였습니다.”
“허허! 무당파에서 손꼽히는 고수분답게 아직도 호승심을 가지고 계시군요?”
한동안 아부를 이어나갔다. 수연은 주먹을 움켜쥐며 결국 참았던 인내를 폭발 시켰다.
“지금 이 자리…이것이 정부의 결론입니까?”
얼굴에 기름기를 닦는 것일까? 노인이 무당파 도사처럼 이마를 닦으며 쯧쯧, 혀를 찼다.
“이실장, 그럼 그 무지렁이 고수를 제압할 수 있는 인원이 무인협회에 있는가?”
그들로서는 그 협회자체도 눈에 가시였다. 드러나지도 않고,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주제에 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상상을 초월했고, 또 그 예산을 자신들이 쓸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강창현을 제거해야…!”
노인은 수연의 말을 끊었다.
“어째서라니? 몰라서 묻는가? 지금 정부와 문파들 사이는 균형을 이루고 있어. 그건 하찮은 귀들이나 요괴들과도 마찬가지이고. 만약 그 무지렁이가 어느 한 편으로 붙어 버리면? 힘의 균형은 깨지고 가뜩이나 국제사회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는 판에 혼란은 더욱더 커질 수 있네. 아무 것도 모르던 국민들이 가질 불안을 더 생각 해야지.”
수연은 결국 어이없다는 듯 허, 하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 그 표정…무엇을 의미하는가?”
노인의 말에 수연이 결국 부들부들 떨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 때 무당파 도사는 여전히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가볍게 털털 웃었다.
“커어억!”
“이런, 이런, 죄송합니다.”
수연이 곧바로 피를 토하자 남자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서늘한 수연이 기세를 감당하는 것도 늘 곤욕스러운 일이었지만 기고만장하던 그런 수연이 단 한 번의 웃음소리에 피를 토하고 있자 새삼 눈앞에 도사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편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안심이 되었다.
“한국에 미래를 밝힐 후기지수를…제가 원래 가려운 것은 잘 참지 못해서.”
도사의 말에 쿨럭, 쿨럭 피를 토하고 있는 수연이 있음에도 남자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뭐 어쨌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날 보니 충분히 제압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 군데서 비슷한 말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머, 멍청이들!’
“그리고….”
“이실장은 괜찮은 것이지요?”
자신의 말에 끼어들었지만 도사는 너그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뒤룩뒤룩 살이 찐 것은 배만이 아니라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 얼굴에 달려 있는 긴 수염이 무척이나 탐욕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도사가 가볍게 몸을 일으켰고, 남자들도 몸을 일으켰다. 몇 마디만 하고 빠져 나갔지만, 그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았다.
“이실장 진선도인이 오후에 휴식을 취하시고 저녁에는 서울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시니 자네가 직접 안내하게.”
“…!!”
간신히 내부를 추스르고 있던 수연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은…도사에게 주기로 한 대가가 단순히 돈 따위가 아니라…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계신 건지…”
“협회장께서도 동의 하신 결정이네.”
수연의 눈에 경악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 할아버지가요?”
“공석에서 그런 호칭은 삼가도록 하세요, 이수연 실장.”
그리고 한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고수의 이광길이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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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