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 현대 재림기-52화 (52/170)

< -- 52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각주의 말을 듣자하니 제 멋대로 나갔더구나.”

태극문파는 문도를 엄하게 관리하는 편이었다. 힘을 가지면 쓰고 싶은 법이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 달콤한 충동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문파에서 후기지수들이라 불리는 십대들이나 이십대 초반, 많게는 이십대 후반의 문도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이유였다. 정부와 문파의 관계가 비록 평형이라 하더라도 불문율이 있는 법이었다.

정부는 무공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고, 그 것을 위해 문파가 철저하게 협조하기를 원했다. 간혹 그런 관리를 피해 사고를 치는 문도들이 발생한 문파는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정말로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하나의 문파를 멸문 시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종욱은 그런 관리를 받는 문도도 아니었고, 가장 강력한 차기 장문인 후보였기에 사회에 잠시 나간다고 타박을 받을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음성은 매서웠다.

“시기적절하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본파에서 나온 분이 상당히 노하셨을 것이다.”

“알고있습니다. 사숙.”

눈앞의 노인은 장문인의 사제였다. 쭉 찢어진 눈이 뱁새를 연상케 했다. 백발이 성성한 것이 분명이 보임에도 피부는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매끈했다. 곱게 차려 입은 장삼 사이로 보이는 손목은 무척이나 두꺼웠고, 뱀처럼 힘줄이 돋아 있었다.

장정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탁-!

노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타박을 이어갔다.

“이 번엔 운이 좋았지만…그리고 네가 혜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지만 본파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해라.”

“….”

종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일으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사질!”

노인은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이 매우 불쾌한 모양이었다. 일갈이 터지자 방 안이 뒤흔들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찻잔만이 아니라 후끈하게 데워져 있는 공기까지 요동쳤다. 종욱의 등뒤로 쏟아져 나가는 그 기세가 무척이나 날카로웠지만 종욱은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쾅!

이미 방을 나간 뒤였기에 마당에 서 있던 종욱의 주변에서 자욱한 먼지가 피워 오르고 있었다.

등을 돌린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무척이나 비겁한 행위이다. 더구나 사질에게 그런 악질적인 일을 하다니!

그럼에도 노인의 안색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겨우 이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많은 힘을 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힘은 분명히 준 상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세를 끌어 올린 것만으로 방 안이 뒤틀리지 않았을 테니까.

자욱한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자 노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사숙.”

“…사, 사질?”

은은한 빛!

그 것은 절정고수만이 뿜어낼 수 있다는 호신강기(護身罡氣)!

일류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다는 희대에 천재라 불리는 종욱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벌써 절정에 들었을줄이야?

간신히 몸을 보호할 정도의 강기 정도는 노인도 얼마든지 뿜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에서 1M는 족히 떨어진 곳에 온 몸을 은은한 막으로 가릴 수 있을정도로 강기를 뿜어낼 수는 없었다.

“사, 사질 대, 대성을?”

종욱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순식간에 은색의 막이 종욱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노인은 산문을 내려가고 있는 종욱의 뒷모습을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든 종욱은 걸음을 서둘렀다.

“쿠우욱!”

결국 무리한 대가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무리한 내공운용으로 내부가 진탕되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운기조식을 할 시간은 없었다. 아직 산문을 전부 벗어나지 못했고,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강한 기운…그리고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강한기운이 동시에 몸을 찌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앞에서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여문도들의 지극한 시중을 받으며 산문을 오르는 기름진 돼지 같은 무당파 도사의 모습에 종욱은 필사적으로 내부를 진정 시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말 끝 사이로 핏줄기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진선도인은 주름진 얼굴을 활짝 폈다.

“마침 있었군. 오늘 서울을 둘러 볼 예정이었어. 그런데 문득 자네에게 생각이 미치더군.”

통역이 이뤄졌고, 종욱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무슨 일로….”

“아, 한국 무인 협회에 갔다 오는 길이야. 거기서 괜찮은 후기지수를 만났어. 미색도 반반하고…어리고…자네와 경지가 무척이나 비슷했어. 그 여아에게 안내를 받기로 했는데, 자네도 함께 갔으면 싶어서 말이야. 젊은 후기지수들끼리 무에 대해 논하고 도에 대해 논하고…내 한국 무인협회와 문파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나로 인해 그 간극이 조금이라도 좁아진다면 이 얼머나 멋진일인가?”

종욱은 진정시키고 있는 내부가 다시 뒤틀릴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그래서 친히 자네와 함께 가려 여기까지 왔지. 원래 지금쯤 호텔에서 쉬고 있을 시간이기는 한데…지난 번 여기서 만났던 여아도 제법 괜찮은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장문인에게 그 말도 전할 겸 겸사겸사.”

더러운 악취미!

종욱은 더 이상 굳어지는 안색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진선도인은 본파인 무당파에서 한국으로 가장 자주 오는 도사였다. 절정이라는 경지가 믿을 수 없을만큼 경박하고, 도사라는 사실 역시 믿을 수 없을 만큼 색은 물론 피를 밝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올 때마다 여문도들이 하나 둘 그의 침실로 사라지는 것은 물론, 제법 괜찮다싶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 남문도들은 어김없이 그의 가르침이라는 명목하에 죽어 나가거나 폐인이 되었다.

여문도의 일도 치를 떨만 하지만 문파의 미래인 후기지수를 그런 식으로 죽이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종욱은 딱딱하게 안색을 굳혔다.

증거는 없지만 늘 비무 형식이었다. 그에게 여지껏 따지지 못한 것은…바로 그와 비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도끼리 비무를 시키는 형식이었고, 그가 언제나 참관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돼지는 그런 탐욕의 가면을 쓰고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태극문파에도 절정고수가 존재했다. 물론, 단 한 명뿐이기는 했지만 전대 장문인 역시 그 비무를 함께 한 적이 있기에 그의 눈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그런 상태!

그렇지만 진선도인이 올 때마다 태극문파의 유망한 후기지수가 변을 당하는 것은 끊이지 않았다.

‘한국 무인 협회라면 내 나이 대는…이수연? 하!’

종욱은 진선도인의 목적을 바로 간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자신은 한 문파 소속이지만 이수연은 국가 기관 소속이다. 추후 협회장이 유력한 그녀를 진선도인에게 말 그대로 바쳤다는 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종욱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썩은 곳 뿐이었다.

“더럽지?”

“!!!”

“!!!”

“!!!”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의 근원지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진선도인의 표정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굳어 있었다. 그 뒤룩뒤룩 살이 찐 얼굴 속에 감춰왔던 차가운 눈빛 한 줄기가 서늘하게 창현의 몸을 갈랐다.

“아 이거 왜 이렇게 가려워?”

창현은 덥다는 듯 땀을 훔치고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컥!”

진선도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대체 이게…!”

콰아아앙-!

그냥 밀려난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전각 하나를 뚫고 지나가버렸다! 가벼운 손놀림 하나에!

“계집 빨리 빨리 안 기어와?”

그리고 한 명의 인영이 다시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사고를 치셨군요.”

긴 한숨을 내뱉고 있는 것은 이수연이었다.

“부탁을 한 것은 너야 계집.”

“태극문파 장내에서 일을 벌여달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종욱은 둘의 대화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벌써 소란을 느끼고 모두가 장경당 앞으로 모이고 있는 중이었다. 장경당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산문 입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전각이었고, 태극문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거쳐가야 할 곳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창현!

시시껄렁하게 건들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 때문에 산문은 물론 나무들까지 함께 휘청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너도 저 번에 봤던 그 놈이군.”

종욱은 고개를 숙였다. 나이는 어리지만…사실 눈에 보이는 외모를 종욱은 믿고 있지 않았다.

스물 초반처럼 보이는 나이는…환골탈태를 거쳐 그렇게…아! 그제야 종욱은 한 가지 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 처음으로 재능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환골탈태는 꼭 절정으로 가는 끝자락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삼류에서 이류로…말 그대로 단전이 커질 때 그 그릇을 크게 하기 위하여 육체가 재구성되는 과정 역시 환골탈태라 불렀다. 진정한 의미의 환골탈태는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갈 때 하는 환골탈태, 즉 진정한 의미에서 하는 환골탈태는 단전을 크게 하는 것은 물론 몸 속의 노폐물, 혈맥 속에 숨어 있는 사이한 기운들은 물론 막혀버린 혈도까지 뚫어줌과 동시에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재구성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피부가 벗겨지고, 새로운 세포들이 솟아나기에 좀 더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갖추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외모를 상당히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주안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종욱이 진정 놀라는 이유는…그런 진정한 의미의 환골탈태를…창현의 외모로 미루어 보아 최소 이십대 초반에 했다는 것이었다.

‘이십대 초반에…일류를 넘어서 화경에 이르렀다…나 역시 천재였지만 이제야 그 실마리가 보일까말까이고 그 것은 이수연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대체 이 남자는 어디서?’

종욱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못했다.

먼지가 피어오르던 전각에서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진선도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줄을 재촉 하는 군. 그리고 계집!!”

무슨 말인지는 통역이 없어도 수연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닥쳐 이 발정난 돼지 새끼야, 나한테 계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창현씨 뿐이야.”

“….”

이 상황에서 창현씨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는 수연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잠시 넋을 잃었다.

창현씨 뿐이야…창현씨 뿐이야…

귓가에 맴도는 그 말에 종욱은 둘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진선도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방금 전 타격은 제법 심대했다. 그리고 아직도 몸 속에는 녀석의 내공으로 추정되는 붉은 색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런 하찮은 반도 따위에 어째서 저토록 강한 인물이….’

창현은 씨익 웃었다.

“거드름 피우면서 대가리 굴리지 마라 돼지. 날씨도 더우니 노릇노릇하게 구워주도록 하지. 기름이 좔좔 흐르고 더러워서 맛은 없을 것 같지만.”

그리고 그 순간 땅이 갈라졌다. 그 때 언덕에서의 일과 비슷했다.

“키키킥! 키키킥! 주인의 기운이 날뛰고 있다! 키키킥! 피다! 피!”

도에 깃든 귀의 괴기한 웃음 소리에 창현은 진정 고민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 미친 도 이름을 뭘로 짓지?”

“킥킥킥! 근데 주인!! 킥킥! 키키킥! 설마 먹어야 할 피가 저 돼지 피는 아니겠지?”

“맞는데?”

도가 순간 강하게 도명을 뿜어 내었다. 웅웅 거리는 진정한 도명이었다. 내공이 약한 다른 태극문파의 제자들은 순간적으로 내부에 타격을 입을 정도였다.

“킥킥! 주인…저 돼지는…킥킥! 내가 본 어떤 돼지보다 뚱뚱하다! 키킥킥! 인간 맞나?”

창현이 피식 웃었다.

“돼지라며 이 멍청한 새끼야.”

“쿡!”

수연을 필두로 여기저기서 쿡쿡, 소리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진선도인의 눈이 시뻘개 졌고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창현의 미소가 진해졌다.

진득한 살기가 맺힌 목소리가 진선도인에게서 터져 나왔다.

“죽인다, 애송이.”

“내가 애송이라고?”

창현이 가볍게 도를 움켜쥐었다.

============================ 작품 후기 ============================

3연참

오늘 우리 두령이 안 만나러 가면 4연참 도전 해 보겠습니다.

근데 당장 첫 차 타고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후후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