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3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차갑게 웃는 창현의 주위에서 혈마지기가 한줄기가 몸을 감싸는 듯 빙빙 돌고 있었다. 내공을 단순히 뿜어내는 수준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으로 둘러 호신강기를 만들어낸 것도 아닌, 정말 보이는 것 그대로 그냥 내공을 유형화 시켜 그 기세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에 애송이라 창현을 비웃었던 진선도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봐 돼지.”
“….”
진선도인은 방금 전처럼 강하게 기세를 뿜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소용돌이처럼 돌고 있는 혈마지기들이 이제는 어제 뿜어져 나 올 것인지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크음, 하고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 내부를 살펴보았다.
‘장풍도 아니었어. 그저 내공을 뿜어낸 것에 불과했는데….’
딱히 어떠한 무공 초식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저 힘만을 그대로 드러낸 것에 자신이 전각 끝까지 밀려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진선도인은 문득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호오”
기세가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창현은 비릿한 조소를 베어 물었다.
“돼지가 그래도 상황파악은 빠르군?”
창현이 하는 말은 통역을 통해 여전히 진선도인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통역은 돼지라는 말은 뺐지만, 진선도인은 창현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진선도인은 무당파에서도 손꼽히는 고수 중 한 명이었다.
배분도 높았고, 경지 역시 화경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뒤룩뒤룩 살이 삐져 나와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얼굴과 자신의 발은 절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볼록하게 튀어 나온 배, 그리고 특유의 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 뚱뚱한 몸매로 그를 평가한다면 그건 너무나 큰 오산이었다.
화경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진선도인 역시 환골탈태를 경험했었다.
단지…탐욕이 그 모든 것을 뛰어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를 쉽게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당장 태극문파와 견주어 본다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전대 장문인 단 한 명뿐이었다. 그건 한국 무인 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일류 고수 이상의 경지를 이룬 무인의 수는 너무나도 적었다.
대륙의 스케일이라 자랑하는 중국이나, 서양의 능력자들 역시 절정에 해당하는-그들은 무인들과 경지를 나누는 기준이 조금 달랐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힘도 약간 다른 방향이다-사람들은 나라마다 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보다 위인 초절정의 경지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보유한 국가보다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더욱 많았다.
한국이 여러 가지 경제면에서도 발전을 하고,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능수능란해졌다 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근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황(武皇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는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였으니까!
그런 그를…수연과 같이 있던 고위층들은 무척이나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지만, 여담은 넘어가고 진선도인은 지금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지금 속가문파인 태극문파 장문인, 차기 장문인은 물론 자신이 밀어주고 있는 장문인의 사제와 그를 따르는 문도들, 다른 일반 문도들 거기에다 수연까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 것이 진선도인을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그는 분명한 강자이지만 모험을 두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사실 언덕에서 창현을 보았을 때 진선도인은 창현을 한 수 아래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 정도야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도에 깃든 귀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병장기에 목을 매는 유형도 아니고, 딱히 병장기에 대한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도 아니었기에 그 귀를 들고 싸워도 자신이 가볍게는 모르겠지만 분명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전 손속을(?) 나눠 본 결과 그 예상이 산산조각 났다.
오히려 한 수는 물론이거니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붉은 기운을 보았을 때 화경의 끝자락에 이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고인은 어디 문파 분이십니까.”
진선도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거드름을 잔뜩 피우고 여문도들을 침실로 들이고 조금만 강해보이고, 싹수가 있어 보이는 후기지수들은 어떤 명목을 붙여서라도 폐인을 만들어 버린 그가 너무나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분명 위화감이 있었다.
창현의 첫 번째 공격이 먹혔다 하더라도 그건 기습의 의미가 강했고, 진선도인의 숨겨진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짐작하고 있는 바였기 때문이었다.
“키킥! 키키킥! 주인! 킥킥! 저 돼지가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키킥! 뇌에도 지방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킥키킥! 아닌가, 아예 머리통 속에 지방 밖에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인가! 킥키킥!”
괴상한 웃음소리를 끊임없이 흘리기는 했지만 도는 제법 뚜렷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빠르게 돌아가는 눈알과 더불어 크게 벌어지는 입은 무척이나…징그러웠다.
“닥치고 있어. 한 번만 더 끼어들면 저 돼지 항문 속에 박아 버릴 테니까.”
“….”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통역을 전해 듣고 있는 진선도인은 분노로 인해 얼굴이 터질 것 같은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저는 무당파에서 나온 진선도인이라고 합니다. 무당파 장문인을 사형으로 모시고 있고, 무당파에서 동양 속가 문파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창현은 피식 웃어 버렸다.
“진선도인?”
“그렇습니다.”
“검선의 기록은 남아 있나?”
진선도인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역대로 검선이라 칭해 받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지만 본능적으로 창현이 하는 말은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당파에서 검선이라 칭호를 받은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말 그대로 기록에만 남아 있는 전설.
그리고 무당파에…수치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창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기억 속에 언어를 전부 잊은 것은 아니었다.
“하긴, 그 말초도사라면 당한 것을 그대로 전부 말하는 것은 물론 적어서 대대로 나한테 원수를 갚으려 했겠지.”
“….”
“네 놈 같이 뒤룩뒤룩 돼지 같은 것들은 그저 그 것을 수치로 여기고 사장시킨 모양이지만…그 말초도사 성격에는….”
뒤에 말은 창현은 삼켰다. 괜스레 그들에게 좋은 정보를 줄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선도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과 다르게 사람들은 조금은 위하감이 느껴지지만 제법 능숙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있는 창현의 모습에 더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돼지 그래서 네가 무당파 장문인에 사제라고?”
“그렇습니다.”
진선도인은 다시 어깨를 폈다. 창현이 어느 곳에 속한 사람이든, 아니든, 무당파 이름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는 무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사 그 것이 창현과 같은 고수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은 한, 두수 뒤질지 모르겠지만 본문에는 자신말고도 고수들이 있었다. 당장 사형이 그랬고, 은거하신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무거운 엉덩이를 들지 않는 분들이었지만 최근 동양 쪽에 속가 문파 관리에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편이기 때문에 자신은 말 그대로 무당파의 모든 권력과 명성을 위임 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적어도 한국이나 기타 무당파 속가 문파에서는!
그 것을 알고 있기에 한국 정부도, 그리고 태극문파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중국은…구파일방이 정부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모든 요직에 그들의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어깨를 똑바로 펴며 그 불룩한 배를 내미는 진선도인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고인께서도 무당파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신 모양입니다.”
통역은 잠시 망설였지만 진선도인의 눈치를 보고 한국어로 말해주었다.
창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꼬랑말초들 모여 있는 곳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무당산의 영기가 많이 지랄 맞은 모양이야. 너 같은 놈들도 나오고.”
“…고인!”
진선도인은 검선을 언급하는 창현을 절대로 눈에 보이는 외모로 나이를 판단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십 줄이 넘은 자신보다 많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다시 산산조각이 되어 깨졌다.
“고인이라니 이 늙은 돼지 새끼가 어디서 약관을 이제 지난 나한테 고인이래?”
“!!!”
창현이 거짓말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창현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기에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최소 스물에서 아무리 높게 쳐줘도 24살 이상은 보기 힘든 창현의 외모.
그런데 벌써…
“…반도에 뛰어난 인재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
진선도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창현이 가볍게 도를 들었고, 몸 주위를 맴돌던 혈마지기 중 한 줄기가 그 도를 타고 다시 일직선으로 진선도인을 향해 쏟아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태극문파 일반문도들조차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하게 쏟아져 나가고 있었지만, 진선도인은 대경질색 하면서 한 발짝 물러서고는 주머니에서 부채를 꺼냈다.
촤-!
반 원으로 펴진 부채가 혈마지기와 부딪혔다.
캉캉캉캉-!
창현은 그저 도를 들고 있을 뿐이었지만 진선도인은 연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맞받아치지 않고 피하려는 그 순간 뱀의 혀처럼 혈마지기가 자신을 향해 방금 전과는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쏟아져 나올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캉캉캉-!
“커어억-!”
결국 진선도인이 한 움큼 피를 토해 내었다. 창현은 피식 웃었다.
“일단 네 다리를 위해서!”
이번에는 가벼운 지풍이었다. 조금 달랐다. 순간적으로 번쩍하는 순간 이미 진선도인의 무릎 한 쪽은 꿇려져 있었다.
아주 작은 원으로 타 버린 옷이 모두의 눈에 큰 구멍처럼 보이고 있었다.
“크아아악!”
지풍이 살을 뚫고 뼈까지 뚫는 그 고통은 참을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창현의 손가락에서 다시 붉은색이 번쩍였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크아아악!”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진선도인의 모습은 처참했다. 두 다리에 아주 가느다란 혈마지기가 말 그대로 꼬치처럼 걸려 있었다. 내공을 잔뜩 담은 부채는 이미 부서져 있었고, 그의 코와 입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꼬치처럼 꼬여 있는 혈마지기 덕분에 두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고 있었다.
“네가 무당파 장문인의 사제건 뭐건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 돼지 새끼야.”
“….”
통역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옆에서 수연이 그 말을 그대로 전했다.
“바로 죽여버릴까?”
이왕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 창현은 확실하게 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연은 창현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몸을 베베 꼬며 말했다.
“그래도 죽이시는 건….”
평소 당차고 차기 협회장의 모습을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증명해 내었던 수연이 콧소리를 내고 있자 태극문파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태극문파 수장들은 이제는 나서야 할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그의 힘을 받아 차기 장문인 자리에서 종욱을 밀어내려던 노인의 얼굴은 지나치게 떨리고 있었다.
노인이 나서려는 순간 종욱이 먼저였다.
“이 곳에서는 안됩니다.”
막, 손을 들고 있었던 창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종욱을 바라보았다. 굳은 그의 표정이 보였다.
============================ 작품 후기 ============================
앞으로는 전개를 좀 더 빠르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래 어제 4연참 할 예정이었는데 두령이랑 계속 같이 있었어요.
막차 겨우 타고 집에 오니 12시가 넘어서..
오히려 늦기까지 했네요...ㅈㅅㅈㅅ
두령이가 너무 멀리 살아서...
추신
1. 전개가 미약한 부분은 느끼고 있습니다. 진선도인 처리 문제도 다음화에서 더욱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수연과의 모종의 일은 회상 형식으로 설명 될 예정이고 길게 갈지 짧게 갈지는 고민 중입니다.
2.경지의 문제는 삼류,이류,일류,절정,초절정으로 나누었고 절정과 초절정을 편의상 화경과 현경으로 통합했습니다. 현경 이상의 경지 생사경에 대한 내용은 다룰지 안다룰지 정하지 않았습니다.
영력과 무공의 상관관계는 간단합니다. 보통 무협지에 선천지기라고 많이 나오는데 그 선천지기가 영력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요괴나 귀가 근본적으로 수련을 적게 해도 인간보다 강한 이유는 그들은 애초에 선천지기만을 수련하기 때문입니다. 여느 무협지나 보통 내공보다는 선천지기가 강하게 나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말 그대로 생명력이니까요.
그리고 이 글에서 선천지기는 그런 내공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내공 위의 상위 경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협지와 다른 점은 현대의 무인들이 그 선처지기를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것은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3. 두령이에 대해 궁금하시다고 하신 분 있었는데 그냥 사람 애칭입니다ㅋㅋㅋ
미약한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전화에 최다 추천 붙어서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하핫!
아하하하핫! 아하하하ㅤㅎㅏㅆ!
죄송..더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