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8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도사들이 선천지기, 즉 영력을 수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선이 되기 위해서이다.
요괴들과 귀들이 스스로를 수련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진화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이 신선이 되고 오욕칠정(五慾七情)에서 자유로워지고 상위개체라 할 수 있는 신선이 되기 위해서라면, 요괴나 귀 역시 본래의 본성과 모습을 버리고 상위개체로 진화하기 위함이었다.
인간도 승천하는 것이었고,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경지의 요괴나 귀가 인간들보다 강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오로지 선천지기, 즉 영력을 처음부터 수련할 수밖에 없었다. 짐승에 불과했던 요괴들이나 귀들, 때로는 인간이나 그런 짐승이 죽어 여러 가지 이유로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고 떠돌던 존재들이 영력의 존재를 느끼고 깨달아 일차적으로 요괴나 귀로 진화하는 것이었기에 창현이 나눈 혼인공의 경지부터 시작을 했다.
창현은 영력의 수련과 무공이 혼합되어 적절하게 섞여 있을 때 가장 강한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경우는 조금 복잡해지지만 어쨌든 요괴나 귀들이 본디 선천지기를 이용해서 강해지는 존재들이기에 대부분 혼인공에 머무르거나 그 끝자락에서 영력의 경지가 머물러 있는 무인들보다 강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인간은 후에 그 차이를 무공으로 메웠고, 단련의 속도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빨랐다.
오욕칠정이 비교적 훨씬 적은 요괴들이나 귀들보다 인간들에게 깨달음의 경지라 할 수 있는 선천지기 수련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선천지기만 수련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내단을 몸속에 흡수하는 일이었다. 물론 요괴나 귀들 역시 수련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방법을 통하여 경지를 쌓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범인(凡人)이 가지고 있는 선천지기를 조금씩 흡수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 것은 창현 시절에 귀나 요괴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었고, 지금은 오히려 창현이 보았던 그 언덕의 주인처럼-지금은 피콜로라 명명된-인간의 생명을 빼앗아 전부 흡수해 버리거나 서로 전투를 벌이거나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어쨌든, 그렇게 흡수한 그 내단의 기운을 제어만 할 수 있다면 배는 강해질 수 있었고, 꼭 그 것만이 아니더라도 에너지덩어리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그 내단은 여러모로 쓸모가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고 지난 번 언덕의 주인과 같이 오랜 세월 살아 온 존재들의 내단은 천정부지로 그 가격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예로, 그 내단을 흡수만 한다면 서양의 능력자들이나 동양의 무인들이나 한 단계 더 성취를 이루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진선도인이 살아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입부터 뒤통수까지 도가 꽂혔다.
즉사(卽死)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무릎 역시 뚫려 있었다. 피는 치사량 이상으로 흘렸다.
그럼에도 진선도인은 죽지 않았다.
진선도인과 창현은 같은 경지이지만,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달랐고, 능숙함도 달랐다. 결정적으로 선천지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경지부터가 달랐다. 창현이 아직 화경에 경지에 머물고 있지만, 이 세계에서 초절정이라 불리는 고수들과 만났을 때도 그 승패를 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들과는 다른 무공의 이해도, 내공의 사용도, 그리고 영력의 경지가 자신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절정정도가 되면 이미 선천지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깨닫는 것과 직접 수련을 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내단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내단이 그렇게 널린 것도 아니었고.
최근 들어 그 수요가 조금 씩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 문제는 추후에 논의하기로 하자.
그는 어쨌든 죽지 않았다. 죽어도 전혀, 아니 오히려 죽어야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창현은 그를 쓰러뜨림과 동시의 그의 선천지기를 인위적으로 몸 내부에서 폭발 시켰다. 혈마지기를 통하여 타격을 최소화 하면서도 고통만 주었다. 피가 터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선천지기가 몸속에서 일주천 하자 피가 다시 생겨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럼과 동시에 종욱이 보았던 것처럼 사술을 걸었다.
본디 어려운 사술이고 절정고수에게는 먹히지 않을 사술이었지만 이미 진선도인의 몸속에 있는 선천지기가 혈마지기를 ‘적’ 으로 인식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한 한약냄새와 함께 종욱의 입이 나지막하게 사람들 귓가에 차분히 내려앉았다.
“아무래도…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듯 합니다.”
여기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두꺼운 손목을 내려놓으면서 종욱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파 내에 중요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에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창현의 마지막 모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보셨다시피 상처는 전부 아물었습니다. 그가 자비를 베푼 듯 싶습니다.”
당연했다. 내공이 만능은 아니다. 그러나 도에 뚫려 버린, 그리고 강기라 짐작되는 그 긴 선에 뚫려버린 머리와 무릎이 원상복구가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본 사실이었다.
“뭐가 다행이라는 말인가? 본파의 고수가, 그 것도 장문인의 사제가 만상창이가 되었네! 그 것이 다행이고 자비인가?”
노인의 말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렇지만 종욱은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 이후 살며시 꽉 진 주먹을 풀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끓어오르는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뱁새처럼 찢어진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쏘아 보고 있는 사숙을 보면서 쓴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은 느낌마저 참아 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전보다 힘이 없었다.
“외상은 물론이고 내부조차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사람이 아니라면 진선도인 어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내공을 통하여 그의 내부를 관조 해 본다면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고수는 태극문파 내에 손을 꼽았다.
각각 각의 각주와 장문인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노인과 그의 제자 정도를 들 수 있었지만 모두 반 수 정도 아래였다.
물론 드러난 종욱의 실력은 그들보다 오히려 반수정도 쳐지는 정도였다.
오로지 장문인만이 종욱이 곧 절정 진입을 눈앞에 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철없는 목소리에 종욱이 피식 웃어 버렸다. 그 역시 자신의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현대식 병원에 데리고 가 보았자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고 당연히 해결책도 없다.
웬만한 내상 정도는 운기조식을 하는 정도로 회복 할 수 있는 무인들이기에 병원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민망할까, 그래도 종욱은 그 말에 대답을 해 주었다.
“큰 소용은 없을 겁니다. 일단 좀 지켜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을 했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대답이 종욱이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는 이유였고, 그 실력과 더불어 차기 장문인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평가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자칫 민망함을 더 키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줌으로써 삼류 무사라 할 수 있는 일원을 어느 정도 지켜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단 한 마디 대답이었지만 사내는 그런 종욱의 대답이 너무나 고마웠다.
뭐 딱히 그 것에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을 이룬다고 그런 작은 행동들이 종욱을 보는 시선을 언제나 좋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당장 추적대를 구성해야 하네. 그리고 제거해야 해. 본파에서 이 일을 알면 감당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야. 망설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아!”
노인의 말에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진선도인이 당한 것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지만 그 뒤의 일이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노인은 내쳐 기세를 이었다. 옅은 신음을 흘리며 진선도인을 바라보고 있는 장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문인, 당장 고수들 위주로 구성해야 합니다. 상대가 절정 고수라고는 하지만 가만히 지켜만 본다면 본파의 노여움이 저희에게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이 일은 여기서 결정할 것이 아니라…각주들과 그리고 사제는 물론 사질도 함께 논의해보도록 하세.”
장문인의 말은 반박할 거리가 없기에 노인은 일단 한 발 물러섰다. 평소라면 자신들의 자리에 종욱이 끼어드는 것이 아니꼬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추적대에서 선봉을 맡을 인물이었다.
적어도 노인은 그 것만큼은 꼭 성사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가세.”
“저는 한 번 더 살펴 본 이후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본파의 고수에게 쓸데없는 짓이나 무리한 짓은 할 리가 없기에 노인은 안심하며 건물을 나가고 있었다. 대문파들 중에서도 옛것을 고수하는 태극문파였기에 밖으로 나서자 청량한 산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심각한 분위기와 약냄새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기는 했다.
노인은 옆에 있는 사내에게 속삭였다.
“살펴보도록 해. 그럴 리야 없겠지만…그 녀석이 욱하는 심정에 본파 고수를 건드려 버리면 골치가 아프니까.”
사내의 눈을 피해서 종욱이 술수를 부릴만한 실력은 되지 않을 것이라 노인은 확신하고 있었다.
곧 장문인의 말에 문파 밖에 있는 각주들에게 소식을 알리러 가는 사람들과 다시 일상으로 복귀 하는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사제.”
“네, 장문인.”
“사제는 사형에게 한 번 다녀오게.”
“….”
노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문파의 존립이 걸린 문제라는 느낌이 드네. 이미 소란을 알고 계실 것이니 만나는 주실 게야.”
서울 외곽에 어느 이름 모를 야산…결코 높고 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언덕 수준의 산은 아니었다. 태극문파가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 경관과 여러 가지 진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썼기에 오히려 제법 험하다고 알려져 있는 산이었다.
그 산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머리가 지끈 거리는 지 가볍게 고개를 털고 있는 사형을 보면서 노인은 오랜만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한 번 뵙고 싶었던 참이었습니다. 설마 오랜만에 만나는 사제를 내치시지는 않겠지요. 사형 말씀을 믿고 한 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네.”
언제나 장문이라 불렀던 그 호칭이 오랜만에 사형이라 바뀌자 태극문파의 장문인 역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곧 사람들과 함께 내려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온화함 속에 한줄기 날카로움을 빛냈다.
“사제가 원하는 대로 될지는 과연 모르겠네. 그 아이는 자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거든…어쩌면 나보다 더.”
자신의 제자가 종욱의 반만 닮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태극문파 장문인은 조금 느끼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 덕분에 완전히 한 쪽 팔이 마비된 느낌이네요.
글 쓸 때도 상당히 힘이 든드네요, 달려야 할 시점에ㅜㅜ
하필이면 오른손을 다쳐서 여러모로 불편합니다..
운동 전 스트레칭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2000원 넣고 공 40개 치는 것도 운동이긴 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