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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84화 (84/170)

< -- 84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실력을 보지. 그동안 제대로 실력을 보이지 못했으니까. 그 영적인 존재는 확실히 굉장해. 내가 신경 쓰지 않다고 하지만 날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네?”

수연이 의문을 표했다. 윤미는 뭔가 알 것 같다는 듯 옅은 미소를 피어 올렸다. 대길은 그저 한국 무인 협회 요원들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피콜로는 피식 웃고 있었고, 오소리는 그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지현은 오소리 대신 수희를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리해라. 수연이 넌 힘들면 빠져도 좋다.”

“아니에요, 주인님.”

수연의 말에 이광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 때문이었다.

“주인이라니? 허! 근본이 없어 버리기는 했지만 피를 이어 받은 것은 변함이 없거늘. 타락할 때로 타락했어. 하긴, 그래서 돼지 놈에게 널 붙인 것이지만…건방지게 내 말을 어긴 것도 모자라 날 적대해?”

창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천천히 걸음을 옮겼지만 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하고 싶었던 진실이었다.

할아버지가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사랑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그토록 중용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단지 그는 힘을 키우고, 전면에 나서기를 기다리면서 귀찮은 잡일을 자신에게 맡긴 것에 불과 했었지만 그가 없는 빈자리의 정부 기관을 자신이 이끌어간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지루하군.”

창현의 말에 윤미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녀 혼자 충분히 요원들을 제압할 수 있지만, 그녀는 많은 힘은 쓰지 않기로 했다. 창현이 실력을 보고 싶은 것은 자신이 아니라 수연이나 대길 그리고 오소리와 피콜로였기 때문이었다.

그저 창현이 나서기 전에 이광길이 나서지 못하도록 그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초절정을 바라보고 있는 윤미인 것은 분명하지만,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절대적인 내공양도 많고 자신의 무공을 극성까지 익힌 이광길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팟!

그 자리에서 사라진 윤미가 이광길과 마주치고 있었다.

언제 꺼내 들었는지 이광길은 검 한 자루로 윤미의 주먹을 막아내고 있었다. 강기가 서로 부딪히면서 쾅, 하는 폭발음을 내었고, 이광길은 여유롭게 웃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야. 더러운 요괴이기는 하지만 친히 거둬 주도록 하지.”

창현이 무관심한 듯 손을 휘저었다.

차-창! 차-창!

고오오오-!

연못이 붉은 혈마지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휘몰아치고 있었다. 창현은 가볍게 인사를 찌푸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인데…!”

그 말이 마치 시간을 너무 오래 끈다는 말이라도 되는 냥 수연과 오소리 그리고 대길이 한꺼번에 한국 무인 협회 요원들에게 달려들었다.

퍽-!

“큭! 다섯 명씩 맡는다!”

소중한 문화재가 있는 곳이었지만 요원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붉은 혈마지기의 막이 충돌의 파급력을 막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제압하러 온 창현의 힘을 믿고 있었다.

윤미에게 선물 받은 연검을 휘두르는 수연의 기세가 사뭇 날카로웠다.

한 때는 전부 수하 직원들이었지만 망설임 없었다.

츠샥!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가는 검에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쓰게 웃었다.

“더 강해지셨군요. 실장님.”

“…쉬어.”

수연은 가볍게 연검의 손잡이로 남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퍼억-!

종횡무진 하고 있는 세 명을 보면서 창현이 흐음, 신음을 터뜨렸다. 이광길은 윤미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듯 본격적인 힘을 끌어올렸다.

“본좌는 이곳을 망가뜨리라고 허락한 적이 없는데?”

“…!”

이광길은 마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끼며 흠칫 눈을 뜨고 창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는 왜 놀고 있지 피콜로?”

“주인, 저런 더러운 인간들 사이로….”

“피콜로.”

“아하하핫! 힘을 모으는데 잠깐 시간이 걸려서…비싼 옷인데….”

피콜로는 오만상을 쓰며 나섰다.

그의 피부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피콜로도 알고 있었다. 윤미가 요원들을 상대하고 있지 않는 이상 대길과 수연 그리고 오소리만으로는 완벽한 제압은 힘들다. 이광길의 직속 수하들과 한국 무인 협회 고수들 중 수위를 다투는 요원들만 왔기 때문에 이들은 다르게 해석하면 대한민국 최정예 요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윤미가 없다면 오히려 제거 당하는 쪽은 자신들 쪽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창현은 끝까지 끼어들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결론은 최선을 다해야 하군. 빌어먹을 내단도 빼앗기고 도괴도 빼앗기고 내가 갖다 바친 것이 얼만데 가장 구박하다니!’

인상을 쓰면서 피콜로는 더욱 힘을 끌어올렸다.

오랜만에 심장을 통과하는 짜릿한 영력을 느끼며 언덕에서 살아가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후후후 미천한 것들!”

피콜로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팔은 훨씬 길어지고 피부는 초록빛과 붉은빛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곧 피콜로가 뛰어 들자 힘의 균형이 다시금 기울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언덕의 주인이었고, 윤미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요괴 중 한 명이었다. 창현에게 당하고 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도괴를 그에게 넘기기는 했지만, 그 본신의 힘이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창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역시 피콜로가 확실하군.”

인간의 모습에서 요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피콜로야.”

피식 웃음이 새어져 나왔다. 수연이나 대길은 물론 특히 오소리는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 같았다.

종횡무진 요원들 사이를 누비고 있는 그의 날카로운 송곳니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한기는 검기 못지않게 날카로웠고, 그의 움직임 역시 네 발로 다니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날렵했다.

이광길은 답답했다.

창현이 한 마디를 한 이후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가 특별한 사술을 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을 기운으로 압박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흔히 그건 한 차원 다른 고수가 낮은 하수에게 기세 하나로 제압을 할 때 쓰는 것이다.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최상위 포식자를 만난 약하디 약한 초식동물의 본능적인 공포심이었다.

‘믿을 수 없어.’

이광길은 윤미를 상대로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이제야 판단할 수 있었다.

여전히 여유롭게 전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물결치고 있는 향원정 연못을 바라보는 창현의 얼굴을 짓이기고 싶었다.

“흐앗!”

이광길은 십이성까지 내공을 끌어올렸다. 완연한 검강이 푸른빛을 빛내며 이광길의 검에서 뻗어져 나왔다.

윤미는 호신강기를 급성까지 끌어올렸다.

엄청난 파급력에 창현이 쳐 놓은 붉은 혈마지기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나라에서도 보물로 취급하는 내단을 삼켜 내공을 만든 이광길의 힘은 확실히 강력했다. 요원들과 대길, 수연, 피콜로, 오소리마저 몸을 멈추고는 그 파급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죽이고 본다.’

내단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내단의 기운까지 끌어올려지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이광길은 모험을 걸기로 했다.

‘너무 방심했어.’

이 정도로 고수인 것을 몰랐기에 뼈저린 실책을 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군대는 물론 그동안 긴밀한 협약을 맺고 있었던 일본의 고수들까지 데려왔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늦다.

연못을 바라보고 있던 창현이 그제야 이광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제법 강하다는 것은 안다 애송이. 하지만 오늘 여기서 죽는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아.”

서슴없이 창현을 죽이겠다고 하는 이광길의 말에 수연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광길의 검강이 쪼개졌다. 여러 갈래로 쪼개진 검강은 창현을 향해 마치 비산하는 것처럼 온 방향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창현은 여전히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검강이 창현의 몸에 닿으려는 그 순간, 향원정 연못의 물이 갑자기 솟구쳐 올랐다.

파팟파파파팟!

“!!!”

창현은 씨익 웃으며 한 걸음 내딛었다.

이광길은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검강을 덧씌우며 창현에게 달려들었다. 무진이환지로라 불리는 이광길의 독문무공이었다.

가볍게 찌르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검강이라는 극강의 강기를 덧씌운 검임에도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창현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툭-!

“!!!”

주변의 흙먼지를 소용돌이처럼 피워 올리며 달려들던 이광길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였지만 창현은 그저 가볍게 칼슨에게 그랬던 것처럼 검 끝을 두 손가락으로 부여잡았다.

“본좌를 상대로 네 까짓 놈이 뒤를 생각하다니. 그러면 안 되지. 제어하지 못하는 힘까지 끌어올려야 할 거다.”

말과 함께 창현이 가볍게 검을 놓았다. 그의 등 뒤에 있는 연못의 물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창현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광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애송이 자식이 시건방지게…하늘을 모르고 설치다니.”

힘의 우위는 여전히 자신이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창현의 말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내공까지 사용하기로 이광길은 결심했다.

고오오오-!

은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광길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검을 가볍게 든 이광길이 그대로 허공을 향해 검을 수놓는 것처럼 놓았다.

한 요원이 경악했다.

“어, 어검술인가?!!”

검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빠르게 일직선으로 창현을 향해 날아갔다. 이광길은 내부가 들끓는 것을 느끼면서도 검과 이어져 있는 내공의 실을 끊지 않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땅을 가르며 창현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검의 기운은 엄청났다. 혈마지기가 찢어지면서 검에게 휩쓸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혈마지기만 흡수한 검은 곧 창현의 미간 끝까지 달려들고 있었다.

“멍청하군.”

“…!!!!!”

이광길의 눈에 경악이 스쳤다. 검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말 그대로 멈춰버렸고, 제어를 하려해도 제어를 할 수 없었다.

내공의 실은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쿠억! 이게….”

한 운큼 피를 토해 내었지만 내공의 실을 마음대로 끊을 수조차 없다는 것을 느끼자 이광길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좋군. 그 것이 본좌를 대할 때의 너의 자세다.”

“….”

“검선의 영향인가. 어검술은 그저 허세에 불과한데 마치 최후의 초식인것처럼 쓰다니.”

창현은 혀를 찼다.

툭.

미간에 멈춰 서 있는 이광길의 검을 창현이 가볍게 건들자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천천히!

“이게…대체 무슨…”

창현의 몸을 두르고 있던 연못의 물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창현은 천천히 이광길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 그럼 본좌의 집을 어지럽힌 벌을 받아야지. 본좌는 본좌의 집에 들어오는 것도, 본좌의 집에서 난리를 피우는 것도 허락한 적이 없거든.”

창현은 이광길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여전히 느껴지는 영적인 존재의 기운과…처음 눈을 떴을 때 느꼈던 이 나라에서 가장 빛나던 기운 역시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창현은 살며시 손을 들었다.

펑-!

하늘에서 갑작스레 폭음이 터지자 모두의 시선이 잠시 쏠렸다.

“너 역시 본좌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이것들이 전부 미쳤군.”

“…허허!”

폭음이 가라앉자 그 곳에는 한 명의 노인이 보였다. 그리고 노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인원들 역시 경복궁 향원정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곧 무릎을 꿇고 계속해서 선혈을 토하고 있는 이광길과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창현의 옷차림을 보면서 아연질색하고 있었다.

노인은 허공을 걷듯 창현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이광길이 씹어 내뱉는 듯 말했다.

“…무황.”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오랜 친우이기에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노인의 말에 창현은 다시금 미소를 피워 올렸다.

“아직 본좌는 네가 본좌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다.”

“…저, 저 건방진!”

“본좌에게 두 번이나 말을 하게 하다니….”

창현의 미소가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본좌가 그동안 너무 너그러웠던 모양이야.”

============================ 작품 후기 ============================

너무 너그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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