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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86화 (86/170)

< -- 86 회: 집 주인 혈마 -- >

“…당신은?”

“주인님께서 보내셨다.”

“주인님이라 함은….”

윤미는 대답하지 않고 엉덩이를 소파에 붙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앞에 두고 상당히 무례하다 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녀는 윤미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정예 한국 무인 협회 요원들이 창현에게 당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광길 역시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 보고에서는 때마침 무황조차 창현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보고를 들은 뒤였다.

명실상부 창현이 한국 최고 고수라는 그리고…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던 천외천의 고수라는 짐작 역시 함께 올라와 있었기에 대통령은 부드럽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8클래스 마스터 마법사, 초절정 그 이상의 경지!

그들은 한 나라가 아니라 한 대륙 자체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에서도 그런 고수가 태어났다.

그런 사람의 부하를 쉽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광길 협회장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는 그래도 침작했다.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가 윤미의 눈빛을 받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윤미를 잘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인님께서 단전을 폐하시고 그 기억을 지우셨다. 평범하게 살아가겠지. 목숨을 취하시지는 않는다고 했으니까.”

그녀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들었다. 그렇지만 창현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 것이 새로 공표된 법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렇다면 정부와 문파가 균형을 이루고 있던 힘의 추는 급격하게 문파 연합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문파연합이 마음을 먹는다면 어찌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창현이 어느 쪽에 서느냐, 그것이 이 나라의 힘의 추를 결정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부는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 것이 국제법이니까요.”

“법 따위에 메일 분이 아니지.”

“….”

“날 이곳에 보낸 것도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그 분의 너그러움을 보여주기 위해서야. 어쨌든 그 분은 무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기를 바라시니까.”

“….”

윤미 역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대통령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여자에게 그 어떠한 정치적 술수가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었다.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런 처세술과 정치적 입장 밖에 없기 때문에 그녀는 윤미 앞에서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경복궁은 물론 서울에 있는 궁에 관한 모든 것을 공개해.”

“…지금 무슨 말씀을….”

“두 번 말하게 하지마라. 그 것이 주인님이 성지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니까.”

대통령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설령 그 분께서 그 곳에 머물러 계신다 하더라도 나라와의 관계는 그리 쉽게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힘으로조차 상당한 압박이 있을겁니다. 그 분이 아무리 강….”

“너희들 따위가 그분의 강함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 너무나 우습군.”

“….”

“인간의 기준에서 그분을 척도 지으려 하지 마.”

윤미는 몸을 일으켰다.

“한 가지 더. 그래도 형식적이나마 정부에 도움을 줘야지.”

“….”

“얼마쯤이면 돼?”

“무슨….”

윤미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일반인들의 여론은 경복궁에 관한 것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좋아지지는 않을거야. 그들에게도 돌아가는 것이 있어야지. 곁에 있던 문화재의 주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허탈할테니까. 평소에는 관심조차 잘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늘 그 자리에 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지. 명분과 대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위화감 없이 그들이 받아들일 테니까.”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몫 잡았다고 착각하지 마. 그 돈의 출처는 정확하게 나에게 밝혀야 하니까. 가뜩이나 약해진 정부인데 괜히 내 심기를 거스르면 쥐도 새도 모르게…알지?”

대통령은 몸을 떨었다.

윤미가 그 자리에서 피슉 하고 사라지자 허탈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결국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대통령은 힘없이 웃었다.

****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본좌 역시 오늘 처음 와 보았어.”

창현과 무황은 천천히 경복궁 내를 거닐고 있었다. 노인과 젊은 청년이었지만 그들의 말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 할 겁니다.”

“윤미가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 할 거야.”

“그렇군요.”

“썩은 뿌리라는 것을 네가 몰랐다는 것은 분명 의외야. 넌 제대로 무공을 익히고 있기에 특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늘그막에 깨달은 자연의 가르침입니다. 아직 많이 미숙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렇지.”

김치우는 어쩌면 창현으로 인하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군께서는 정확히….”

“현경의 절정이라 할 수 있지.”

“아!”

지금의 말로는 초절정이지만 김치우는 알고 있었다. 차원이 다른 경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전 세계에는 주군과 같이 진정한 무의 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군과 같은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약 10명 정도가 있습니다.”

“상위 랭커라 불리는 그들인가?”

“셀린이라는 그 인공지능 컴퓨터는 정말 뛰어나긴 뛰어난 모양입니다. 그들은 잘 힘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정확하게 짚어 냈으니까요.”

“내게도 그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뛰어난 인물들이군.”

힘의 고하를 논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천외천의 고수라 불리는 그들이었다. 국제적 발표에 따라 처음으로 그 인물들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무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도적으로 그들이 속한 국가들이 그들을 전면으로 내서웠기 때문이었다.

“며 칠전 8클래스 마스터 마법사가 미국 남부에 흘러들어 온 S급 괴생명체를 단신으로 잡은 동영상을 혹시 보셨습니까?”

8클래스 마스터면 전쟁에선 재앙적인 존재이다.

근접전 역시 엄청나지만 그 8클래스 마스터 마법사는 전투형, 방어형을 가리지 않았다. 그 정도 되면 가리지 않는 것이 정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니, 굳이 관심이 없어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천외천 고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정보 중 하나입니다. 물론 오늘 일이 밖으로 흘러나간다면 그들 역시 느낄 수 있겠죠. 한국에도 천외천 고수가 한 명 탄생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들이 마법으로 지켜보고 있던 것인가?”

“아닙니다. 마법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구파일방 중 한 곳이거나 일본의 가문 중 한 곳일 겁니다. 건천궁이 그들을 적대한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 일본의 가문 중 한 곳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창현은 싱긋 웃었다.

“재밌는 곳이야.”

기억에 근거하면 일본과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 본래의 창현 역시 일본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건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흘러간 시간이라 할 수 있었지만, 선조의 한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지라 불리는 이곳은 아직도 전혀 잊지 않은 것 같았다.

“이광길의 착각은 그가 이곳의 주인이라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군.”

“그렇습니다. 그는 왕의 피를 이은 사람이니까요.”

창현은 혀를 찼다.

“중요한 것은 피를 이었다는 것이 아닌데.”

사실 창현 역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 구석에 숨어 있는 영혼에게 이 성지가 반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자신의 영혼에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강창현…강세찬…내 후예라고 웃으며 생각했지만 정말일 수 있겠어.’

백두산 밑에 버려져 있던 자신을 중원의 끝까지 데리고 갔던 사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몇 백년 전이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무척이나 웃겼다.

“혈마지기에도 반응을 했었고.”

혈마지기는 자연의 기운이 아니다. 자연의 기운이 창현의 몸을 거치면서 창현의 특색이 담겨진 기운이라 할 수 있었다. 창현이 손을 휘젓자 붉은 혈마지기가 주변을 부드럽게 감싸기 시작했다.

“뭐 어쨌든 재미있어. 근데…너는 왜 본좌한테 주군이라 하지?”

“동이문은 성지를 지키는 문파 중 한 곳이었습니다. 본디 세 군데가 있었지만 그 명맥을 잇지 못하고 모두가 사라져갔죠. 아니, 강제적으로 멸문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 뿌리조차 남기지 못하고.”

“마법으로 지켜 본 그들과 관련이 있겠군?”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황의 말에는 별다른 원한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죠.”

“뭐 본좌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상관 없지만 꼭 불나방처럼 달려들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무황의 얼굴에 인자한 웃음이 번졌다.

“윤미와 함께 내정을 맡기도록 하지. 집이 넓으니 관리할 사람이 많이 필요하니까.”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무황을 보면서 창현은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때 윤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녀왔습니다, 주인님.”

“잘 풀렸나?”

“성지에 관한 것은 무황이 직접 공개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번 전투에 관한 것 역시 공개를 하도록 하고…지난 번 말씀드렸던 그 바다 괴물에 관한 문제를 아무래도 주인님께서 친히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충 마무리 하고 가보도록 하지.”

피식 웃으며 창현이 말을 이었다.

“이 세계는 넓은 집을 가지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니까. 나도 어느 정도는 맞춰 주도록 해야지.”

“동이문의 힘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대는 성지의 숨겨진 힘을 모두 개방하도록 해.”

“역시 알고 계셨군요.”

“결계는 너무 심하게 치지 말도록.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할 것이니까.”

“그리 처리하겠습니다.”

“건물도 하나 더 올리긴 해야겠어. 이미 올려진 건물을 사도 되고.”

“네, 주인님.”

창현이 씨익 웃었다.

“그럼 그 괴물만 잡으면 되는 건가?”

“1급 괴생명체로 파악 되었지만, 모습을 드러낸 이후 A-급으로 재조정 되었습니다. 아마 성지의 주인임을 알리며 은혜를 베풀기에는 충분한 가격이 될 듯 싶습니다.”

무황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지고 있던 내단도 모두 풀도록 하겠습니다.”

창현은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 보이는 지붕 위로 단 번에 올라갔다. 가만히 경복궁의 기운을 느끼는 창현을 보면서 윤미가 무황을 향해 말했다.

“안면을 트고 있는 기업들이 있으십니까?”

“그렇습니다.”

“내단을 유통 시켜야 하겠군요.”

“네, 자리를 주선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이문은 언제나 지켜보도록 하죠.”

무황이 다시 웃었다.

“썩은 뿌리는 뽑아야 한다고 주군께서 충고하시더군요.”

인자한 웃음 속에 날카로움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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