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7 회: 집 주인 혈마 -- >
혈마, 강창현. 무소속
무황, 김치우. 동이문
권왕, 이동석. 태극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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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 업데이트 되어 있는 랭킹 시스템에서 창현은 한국 랭킹 1위에 올랐다. 이광길의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정부 인원 중 10위 안에 드는 것은 겨우 두 명이었고, 모두가 각기 문파에서 배출한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세계 랭킹에서 100위권에 겨우 들었던 창현은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기분 나쁘지 않으세요?”
독도 원정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수연과 김치우 그리고 피콜로 세 명이었다.
수연의 말에 창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르지. 그 알 수 없는 근본의 존재는 날 계속 지켜보고 있어. 딱히 해가 되지 않으니 나 역시 그냥 놔두고 있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그럼 셀린이라는 그 컴퓨터가 주인님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요?”
“컴퓨터라….”
창현은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안에서 고개를 갸웃 거렸다. 기억에 근거하면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기계는 기계다. 그런 기계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그리고 그 눈에서는 분명 영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근데 그 랭킹 시스템이라는 걸 전부 받아들이나?”
“네, 셀린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공지능이에요.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의문이었다.
아직 수치로 환산되는 그 영향력 자체를 창현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정리는 되가고 있나?”
“…색출해내고 있습니다. 의외로 썩은 곳이 많더군요. 스승님께서 지하에서 통곡 하실 일입니다. 나라를 파는 것도 모자라 사문까지 팔다니.”
김치우는 혀를 찼다.
그 날 창현에게 죽은 정부 요원과 동이문 제자들은 전부 일본 가문의 사주를 받은 첩자들이었다. 그들 특유의 기운을 갈무리하고 숨어들어 첩자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들 모두 하나 같이 고수였기에 소속된 단체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이 상당했다.
이광길이 문파 연합을 적대하기 시작한 것도, 동이문이 봉문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 것도 모두 그들의 은밀한 영향력 행사 때문이었다.
김치우는 새삼 몸을 떨었다.
그들은 진정 두려운 인간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찬란했던 역사를 잊지 않고 돌이키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거야. 이번 독도에 나타난 괴생명체 역시 러시아에서 흘러 들어왔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게만 볼 수 없지.’
김치우는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괴생명체라는 건 어떻게 생겼지? 요괴랑은 다른가?”
수연이 테플릿 PC를 꺼내들고 창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괴는 근본적으로 영력을 깨달은 인간 이외의 존재들이 오랜 시간을 살아가면서 승천을 목표로 수련을 하는 존재들을 일컬었어요.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그런 의미조차 많이 무색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인간형 요괴들은 아직도 승천이 주된 목표라 할 수 있죠. 그들끼리도 많이 갈린 것도 사실이구요. 어쨌든, 보시면….”
수연은 여러 가지 동영상과 사진을 동시에 띄웠다.
판타지 세계에서 볼 법한 몬스터들이나, 그보다 더 기괴한 괴물들이 득실거렸다.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이들은 요괴와 같이 이성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하지만 만약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로 무섭죠. 덩치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힘도 강하고 태어날 때부터 방어막을 가지고 있어요. 그 방어막은 현대 무기로 뚫을 수 없고 오로지 마나, 즉 내공에 의해서만 뚫을 수 있기 때문에 서양의 무인들은 동양의 무인들보다 내공에 좀 더 민감한 편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저희처럼 정립된 내공을 쌓는 방법이 없었죠.”
창현은 칼슨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일류급 고수였다.
“검사들은 힘을 단련하면서 마나를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정론이에요. 마법사의 시초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괴생명체 중 이성을 갖고 있던 존재 중 하나가 인간에게 전수해주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높아요.”
“호오?”
“용이라는 존재가 있다고들 했지만, 발견 된 것은 없고요.”
“그렇군.”
“등급은 S플러스급부터 5급 괴생명체까지 있는데 숫자로 표시되는 생명체는 이성이 아예 없고 본능만을 추구하죠. 인간이나 여러 생명체들을 잡아 먹으면서 그 영력을 취하며 살아가요. 그래서 서양에는 많이 출몰을 하는 편이구요. 대부분 서식지가 그 쪽에 몰려 있었는데 이제는 동양까지 뻗쳐 오고 있는 것 같아요.”
바다가 보이자 비행기는 곧 착륙했다.
창현은 수연의 말을 대충 정리했다.
“A-급이면 이성이 있다는 건가?”
“네.”
“강하겠군.”
“통상적 동양 기준으로 절정에 이른 고수 한 명과 일류 고수 20명은 동원이 되어야 잡을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아무런 피해 없이 잡으려면 초절정 고수 한 명과 절정고수 3명이 동원되어야 하고요.”
군인들이 창현을 보고 말을 걸려 했지만 수연의 말이 먼저였다.
“A급은 반드시 초절정 고수가 있어야 해요. 검강 이하의 타격은 통하지 않거든요. 마법사 역시 전투형 마법사가 6클래스 마스터는 되어야 방어막을 뚫을 수 있고요. S급 이상은 한 번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미국에서 거대한 자연재해로 정보를 조작했지만 나라 자체가 존망의 위기였죠.”
창현은 씨익 웃었다.
“재밌는 세상이야. 그런 놈의 내단은 굉장하겠지?”
“경복궁을 사기에는 차고 넘쳐요.”
군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지금 이곳 내륙까지 통제 구역….”
“저게 헬기인가?”
“네.”
“안내해라.”
수연이 대답했지만, 창현은 군인에게 말했고, 곧 상사로 보이는 남자가 황급히 달려왔다.
“가, 강창현님 안녕하십니까! 지금 독도 및 내륙 수호를 책임지고 있는 이두호 중장입니다.”
쓰리스타가 직접 창현을 맞이하러 나온 것 같았다.
“그 괴물은 어디 있지?”
“지금 독도 근처 바다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대식 무기는 통하지 않는다면서 많이들 왔군?”
“일반인 통제 및…군대에도 무인들이 속해있는 군대가 있으니까요.”
“뭐 나쁘지 않지. 그럼 가보지.”
무황 김치우가 눈치를 주자 대령은 직접 창현을 헬기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공으로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창현의 행차를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짙푸른 동해를 보면서 창현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자연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좋군. 그런데 수연, 이성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왜 바다에 머물러 있지?”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흘러 들어 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치우의 대답에 수연과 이두호 중장마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법을 쓰는 자식이군?”
단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짐작해내고 있는 창현의 말에 김치우는 괜스레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준 정보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여전히 자신들을 적대하고 있다는 것과 그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괴생명체가 러시아 쪽에서 흘러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단 번에 그들과 연관 짓고, 그 방법과 이유까지 짐작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기억 속에 이곳은 분명 말이 많은 곳이야. 그리고 그들이 나를 이용해 한국 무인의 전력 자체를 약화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분명 성공했지. 때마침 나타난 A-급 괴생명체. 아무런 피해 없이 막으려면…그 전이라면 이광길이나 네가 절정고수 둘을 이끌고 직접 나섰어야 하겠지.”
창현은 옅게 웃었다. 김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깐만요. 무황께선 주인님이 하시는 말씀을 이미 알고….”
“성지를 괜히 지켜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두호 중장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저기….”
“세워라. 여기군.”
망망대해!
독도와 점처럼 보이는 곳에 헬기를 세우라는 창현의 말에 이두호 중장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신호를 보냈다.
“문 열어.”
“차, 창현님!”
이두호 중장이 소리쳤지만 창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가볍게 뛰어 내렸다. 김치우 역시 마찬가지였고, 수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심호흡을 하고 곧바로 뒤를 따랐다.
이두호 중장이 황급히 무전을 쳤다.
“공군과 해군 모두 지금 X-1호가 떠 있는 좌표로 와주길 바란다. 거리는 유지 하되 언제든지 도울 수 있게 공격 준비를 한다.”
이미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받았기에 이두호 중장은 여차하면 괴생명체에게 직접적인 발포를 할 생각이었다.
소속 무인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고, 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지만 단 세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알아서 잘 하겠지…한국에서 유일하게 천외천이라 불리는 고수인데.”
아직 대륙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강하다는 천외천 고수의 위력을 이두호 중장은 두 눈으로 보지 못했기에 썩 많이 믿음이 가는 건 아니었다.
“…이광길 협회장이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했는데…마나석은 대체 무슨 명분으로 회수하지?”
반드시 마나석을 회수해야 한다고 내려진 명령이 생각나자 이두호 중장은 그제야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이건, 저 세 사람이 괴생명체를 정리하기를 바라야 하는지, 아니면 정리 당하기를 바라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명령을 지키려면 저 세 사람이 괴생명체의 무서움을 깨닫고 물러나기를 바라야 하지만, 저 세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은 또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르고 외국 용병들에게 의뢰를 하거나, 공식적으로 UN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빌어먹을. 그래도 자존심이 사는게 낫지. 야 좀 더 물러나.”
“…네.”
헬기는 좀 더 멀어졌다. 이두호 중장은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그는 입을 벌렸다.
“나, 나타났다.”
바다가 마치 갈라지는 것처럼 물살이 양 옆으로 퍼지고 거대한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코끼리의 상아와 같은 모양이었지만 족히 15M는 되어 보이는 긴 송곳니와 그 어떠한 현대식 무기로도 닿을 수조차 없었던 단단한 비늘…그리고 30M는 넘어 보이는 아가미는 마치 날개처럼 보였다.
큰 입을 벌릴 때마다 송곳니만이 아니라 날카로운 이빨이 수백 개는 넘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물고기와 같은 모양이었지만 지능이 있는 A-급 괴생명체였다.
사람 한 명은 충분히 빠지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눈동자가 끔뻑였다.
그리고 창현은 뒷짐을 서고 공중에서 오연하게 그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 힘들면 헬기에 가 있어라.”
“아니에요. 이 것도 경험인걸요.”
“지켜주지 않는다.”
“…호신강기는 이제 잘 펼칠 수 있어요.”
창현이 무황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놈은 무엇으로 공격하지?”
“아마 마나탄을 만들어 낼 겁니다.”
“마나탄?”
“일종의 검강과 같은 강기의 기운이죠.”
영락없는 물고기가 무의 끝이라 불리는 강기까지 구사한다는 말에 창현은 어이가 없었는지 혀를 찼다.
“몸집만으로도 상당하니 아마 그 이외의 것들도 분명 위협적일 겁니다. 핵무기가 아닌 이상 A-급 이상의 생명체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니까요.”
“방어막?”
“일종의 호신강기가 태어날 때부터 생명체의 전신을 감싸고 있습니다.”
“굉장하군! 왜 내단이 비싼지 알겠어.”
창현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괴생명체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너 역시 내 집을 노리는 인간 중 한 명의 지배를 받고 있군? 제법이야. 이 정도 술법이 아직도 정해지다니.”
“…역시 술법인가요?”
“그래. 본좌가 쓰던 것만 못하지만 이 정도의 생명체와 이 정도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제압하려면 상당한 수준인 것은 분명해.”
상당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났지만, 창현에게는 그 기준조차 다른 것 같았다.
그리고 창현이 그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하등 생물로 본좌를 오연하게 바라보다니….”
왜일까?
마치 눈동자 속 또 다른 눈동자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움찔 떤 것 같았다.
창현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괴생명체가 나타날 때처럼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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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주제에